“대체 회사를 뭘로 보는 거야! 팀워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들한테 내가 뭘 기대하겠어!!”
“어제는 너무 급작스럽게 말씀하신 거라 선약이 있어서….”
“선약? 회사원이 회사 일보다 더 중요한 선약도 있나?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거 몰라?”
어제는 강 부장이 회식을 주도한 날이었다. 강 부장의 회식 제안은 퇴근 시간 무렵 느닷없이 부원들에게 날아들었다. 아예 회식이라는 행사 자체를 혐오하는 조아라는 학원 수업을 핑계로 도망갔다. 나만희 과장은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와야 해서, 유부단 대리는 하필이면 집안에 제사가 있어 회식에 불참했다. 결국 회식 자리에는 강 부장과 김기본 차장, 일만해 주임 달랑 3명만 참석했다. 자신이 주도한 모임이 썰렁하게 흘러가자 강 부장은 평소 스타일과 달리 9시 즈음에 자리를 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분풀이를 아침부터 하고 있는 것이다.
“자, 자, 일단 지난 일은 됐고! 오늘 다시 회식! 끝!”
“!!! 저, 오늘은….”
“왜? 더 할 말이라도 있어?”
조아라는 뭔가 항변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인사고과 운운하는 강 부장과 길게 얘기하는 게 싫어 입을 다물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아무래도 오늘 회식에는 참석해야 할 것 같다.
“그럼 오늘은 특별히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걸로 먹어볼까?”
“요 앞에 태국 음식점이 새로 생겼던데 거긴 어떨까요?”
“우리 입맛에는 영∼. 난 태국 음식은 향신료가 많아서 별로야.”
“그럼 바비큐 립은요?”
“고기? 좋지. 그럼 오랜만에 삼겹살이나 먹어볼까?”
# 1차 회식
1차 회식 장소는 강 부장의 단골 삼겹살집이다. 강 부장이 대리 때부터 다녔던 이 집은 20년 동안 인테리어를 새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만희 과장 이하 직원들은 누런 기름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벽지(원래는 흰색이었던)를 볼 때마다 식욕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다. 소주와 맥주로 만든 폭탄주가 고기가 익기 전부터 돌기 시작한다.
“첫 잔은 원샷! 알지? 자, 잔 털고. 이제 내가 한 잔씩 주지. 받자마자 원샷이야!”
“부장님, 지난번에도 부장님께서 주신 술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 갔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종합병원 근처로 왔잖아. 나 과장 쓰러지면 5분 안에 데려다줄 테니 걱정 말고 쭉 들이켜. 자, 자, 원샷! 나랑 같이 일하기 싫으면 안 마셔도 돼.”
강 부장은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에 따라 충성도를 확인한다. 흡족한 미소가 그의 취한 뺨 위로 흐른다.
# 2차 회식
2차 장소는 오늘도 어김없이 맥주집이다. 술이 거나하게 오른 강 부장의 일장 연설이 이어진다.
“김 이사 있지? 걔가 나랑 입사 동기잖아. 처음 입사했을 때는 비리비리했는데, 저렇게 초고속 승진을 할 줄 알았나. 솔직히 내가 짚이는 게 있지만 그 친구를 위해 입 닫고 있는 거라고.”
어느덧 강 부장의 대화 점유율이 95%를 넘어가기 시작한다. 나머지 직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김기본 차장은 연신 하품을 해댄다.
“여기 치킨 안주를 보니까 예전에 건강식품 처음 론칭하던 때가 생각나네. 그게 벌써 10년 전인가?”
“닭 가슴살을 활용한 단백질 강화식품이요? 그 얘긴 벌써 몇 번이나 하셨는데….”
“흠, 흠. 그런가? 유부단 대리. 자네 표정을 보니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할 얘기가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해보라고. 불만이나 건의 사항 같은 거 말이야.”
“아, 아닙니다. 불만은요, 무슨.”
“쯧쯧, 저것 좀 보게. 자리를 깔아줘도 아무 말도 못하니 사람들이 자네보고 미련하고 무식하다고 하지! 그런데 나만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여러분도 편하게 얘기들 하라고. 어서!”
직원들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라는 ‘꼬임’에 빠져 속마음을 얘기했다가는 두고두고 강 부장에게 시달릴 게 뻔하다. 굳게 입을 다문 직원들은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 3차 회식
드디어 3차 노래방이다. 일만해 주임은 이제 책을 보지 않고도 강 부장의 18번 노래들을 착착 예약한다. 마이크를 독차지한 강 부장은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다른 직원들은 기계적으로 박수를 친다. 이 와중에 여전히 노래방 예약 리모컨을 조작하고 있는 일 주임에게 조아라가 살짝 속삭인다.
“부장님 혹시 부부 싸움 한 거 아닐까요? 집에 들어가기 싫으니까 우리들까지 이렇게 붙들고 있는 거 아니냐고요!”
스토리 김연희 작가 samesamesame@empal.com/ 인터뷰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리뷰 김현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hkkim@lgeri.com/ 자문 김용성 휴잇어소시엇츠 상무 calvin.kim.2@hewit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