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2.0 시대, 위기대응도 2.0으로

30호 (2009년 4월 Issue 1)

‘웹 2.0’. 2004년을 기점으로 본격 논의된 이 용어는 이젠 너무 흔해졌다. ‘마케팅 2.0’은 물론이고 ‘조직 2.0’ ‘민주주의 2.0’에서부터 ‘아이돌 2.0’ ‘부모 2.0’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트렌드를 나타내려면 모든 단어 뒤에 ‘2.0’을 붙이는 게 대세일 정도다. 그런데 경영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잘 모른다는 게 문제다. 조직에 집중되던 힘이 인터넷으로 인해 개인들에게 분산되는 변화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사회 패러다임 의 변화다. 이러한 전환의 시기에 기업의 의사결정자들이 흐름을 잘못 읽고 대처하여 낭패를 본 사례들이 많다.
 
웹 2.0 시대에는 기업에 닥치는 위기도 달라진다
웹 2.0이 기업 경영에 끼치는 영향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그라운드스웰(groundswell)’이라는 단어를 눈여겨보자.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커다란 파도 혹은 정치적 의견 등이 동시에 급속히 커지는 상태’를 뜻하는 이 단어는 2008년 하버드비즈니스출판부에서 펴낸 책 제목이기도 하다. 공동 저자인 포레스터리서치사(社)의 셸린 리와 조시 버노프는 최근 인터넷으로 인해 바뀐 대표적 사회 트렌드를 그라운드스웰이라 지칭했다. 이들은 그라운드스웰의 의미를 ‘과거에 사람들이 기업과 같은 전통적 조직에 기대어 얻던 것을 이제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서로에게서 얻어내는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일반 소비자들에 의한 뉴스의 생산과 소비는 대표적인 그라운드스웰 현상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윤전기나 방송용 카메라, 스튜디오를 갖춘 언론사만이 뉴스를 생산했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서로가 자신의 경험과 관심 분야를 블로그 등을 통해 소식과 의견을 생산하고 나누며 소비한다. 새로운 식당에 가고 싶다면, 이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실제로 음식을 먹어보고 서비스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여행, 영화, 책, 컴퓨터, 공연에서부터 직장이나 학교를 선택하는 것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그라운드스웰 현상은 현재로서는 위기관리에 많은 도전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 뉴스는 대개 언론사만이 생산하고 퍼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기업의 문제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업 투명성을 강화시킨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누구라도 조직의 명성에 흠을 낼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이와 관련해 조직 내부 인력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낸 사례를 살펴보자.
 
CASE 1 앞서 언급한 책 ‘그라운드스웰’의 1장에서는 2007년 4월 한국에서 벌어진 던킨도너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언론 보도와 회사 측 설명을 종합하면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던킨의 인력 아웃소싱업체 직원이 던킨에 불만을 품고 인터넷에 카페를 개설한 후, 이 회사 도넛 생산 과정이 비위생적이라는 글과 함께 (조작 가능성이 있는) 녹슨 기계 사진을 올렸다. 이 글은 던킨의 위생 상태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키며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던킨은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 인터넷 포털 다음과 네이버 등에 올라간 자사의 위생 문제를 지적한 글이 허위라는 증거를 갖고, 이들 포털과 접촉해 블로거들의 글을 일괄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수많은 글들을 일일이 검색해 작성자에게 삭제 요청을 하기는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법적으로는 문제없는 조치였다. 하지만 결과는 이상한 방향으로 튀었다. 던킨의 증거 자료 제시 등으로 블로거들 사이에서 위생 문제에 대한 의혹은 줄어들었지만, 논쟁은 다른 곳에서 불거졌다. 갑자기 자신들의 글이 모두 삭제되자, 블로거들은 던킨의 조치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즉 도넛의 위생 문제에서 블로거에 대한 회사의 부적절한 조치로 이슈가 바뀐 것이다. 블로거들의 반발이 커지자 던킨은 장문의 해명서를 내놓았고, 일부 블로거들에게는 개별적으로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CASE 2 지난 1월 KAIST가 총장 명의로 한 학생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는 기사가 주요 일간지에 실렸다. KAIST의 한 학생이 블로그에 서남표 총장의 개혁 조치에 대한 강한 비판과 함께 학교 측의 총학생회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KAIST는 여러 언론이 ‘총장이 불만 학생을 고소했다’는 시각에서 보도하자, “이 학생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올렸으며 이 글을 인터넷에서 삭제하고 사과하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밝혔다. KAIST는 바로 고소를 취하했지만, 학생의 글은 아직 인터넷에 남아 있다.
 
이 2가지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조직의 내부 인력이 블로그를 통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냈고, 이 글이 다른 블로거들에 의해 댓글과 링크, 또 다른 포스팅 등으로 확산됐다는 점. 둘째, 해당 조직에서 이러한 불만이 근거가 없거나 사실을 왜곡했다고 지적한 점. 셋째, 해당 조직이 포털사이트를 통한 일괄 삭제나 해당자 고소 등과 같은 규칙과 법률에 근거한 조치를 주로 취했다는 점이다.
 
‘위기 대응 2.0’을 실행하라
본 글의 목적상 2가지 사례에서 고발 글의 내용이 어디까지가 사실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제외하기로 하자. 그리고 사례 연구를 위해 조직원의 불만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과장됐다고 가정해보자. 본 글의 초점은 ‘조직원이 블로그를 통해 불만을 제시했을 때, 해당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이다. 이는 웹 2.0으로 인해 조직이 부닥치게 되는 대표적 위기 중 하나이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불만 내용 중 객관적 사실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려내는 것이다. 이는 추후 법적 절차를 밟는 일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자사의 입장을 밝히는 데 가장 기본적인 근거가 된다.
그러고 나서 최초의 불만 글에 대한 반응과 확산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던킨의 경우 최초 글은 이미 삭제됐지만, 검색해보면 지금도 이와 관련한 많은 블로거들의 의견을 볼 수 있다. KAIST 사건의 최초 글에는 지금도 3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려 있으며, 이 역시 수많은 블로그들을 통해 재생산됐다. 이들의 반응이 어떤지, 그리고 블로거들의 입장에서 어떤 부분이 이슈로 다뤄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던킨 사건에서는 초기를 제외하고는 위생 상태가 아닌, 기업이 블로거와 어떤 식으로 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주요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던킨이 뒤늦게 올린 입장문을 보면, 위생에 문제가 없다는 점에만 포커스가 맞춰졌다.
 
참고로, 블로그에서 생산되는 불만 및 폭로성 글들이 모두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위의 사례와 달리 댓글이 없거나 새로운 글들로 재생산되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글을 쓴 블로거 개인에게 사실과 다른 내용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해당 포털에 삭제 요청을 하거나 법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글이라도, 단순히 원문을 퍼 나른 게 아니라 블로거들이 개인적 의견을 달아 확대 재생산한 경우에는 던킨처럼 일괄 삭제를 하기보다 자사의 입장을 온라인에 올리는 게 좋다. 개별 블로거들에게는 뚜렷한 해명 없이 포털에만 설명하고 일괄 삭제하도록 하는 것은 던킨 사례에서처럼 역효과를 가져온다. 회사에서 무엇이 사실과 다른지를 명확히 표현하면, 그 논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블로거들은 자신이 올린 내용 중 사실과 다른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 수정을 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시 기업의 입장이 확대 재생산되어 기업으로서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KAIST는 무엇이 사실과 다른지를 이야기하기보다 언론에 노출되기 전까지 법적 소송으로 해결하려다 결국 무리수를 둔 꼴이 되고 말았다.
 
이상의 사례에서 기업들이 배울 점은 무엇일까? 첫째, ‘기사 빼기’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 과거에 기업의 위기관리는 상당 부분 기사 빼기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가판이 있던 시절, 자사에 부정적인 기사를 미리 확인한 후 해당 언론사를 설득해 기사를 빼려 했던 것이다. 해명이 없는 상태에서 포털에 일괄 삭제를 부탁한 던킨의 조치는 마치 기사 빼기의 인터넷 판을 보는 듯하다. 문제는 인터넷에서는 이런 조치가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둘째, 조직이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던 과거에는 조직원들의 불만 표출에 대해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었고, 대부분 조직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인터넷상의 모든 불만에 대해 시시콜콜 대응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던킨이나 KAIST의 사례처럼 인터넷 공간에서 불만이 확대 재생산되면 단순히 법적 조치를 넘어 조직의 입장을 공개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격언은 이런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 인터넷상에서 부정적인 내용을 모두 없애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위기 사건은 2.0의 방식으로 돌아가는데 아직도 위기 대응 1.0을 고집한다면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편집자주 위기는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느 기업에서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정립해놓고 비상시에 현명하게 활용하는 기업은 아직 드뭅니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기업의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겪은 위기관리 사례를 공유하고 싶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김 대표의 e메일(coolcommunication@gmail.com)로 보내주십시오. 좋은 사례를 골라 본 글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필자는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마켓대에서 PR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연구 중이다. 글로벌 PR 컨설팅사인 에델만 한국 대표를 거쳐 더랩에이치 대표로 있으면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에게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하는 코칭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9호 Boosting Creativity 2020년 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