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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을 꿈꾸지 말아야 할 때

DBR | 24호 (2009년 1월 Issue 1)
마커스 알렉산더, 해리 코린
 
미래가 세계화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지만 일부 기업들은 그들의 세계화 정책으로 인해 혹독한 고난을 겪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세계화를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한 최선의 해법으로 보기도 하지만 최대 위협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기업이든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 한다. 금융시장, 투자은행가와 컨설턴트, 언론, 경쟁사의 행보 등에 영향을 받아 소규모 기업들조차도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기업을 세계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최근의 금융위기가 세계화 붐을 위축시키고는 있지만 기업에 쏟아지는 세계화 압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세계화가 필연적이라는 인식은 일부 기업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세계화 전략 때문에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게끔 한다. ABN 암로는 여러 국가에서 은행을 인수했지만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필요한 은행간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다. 에너지 회사 AES도 마찬가지다. AES는 5대륙 29개 국가에서 124개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 년간 개별 지역 발전소를 기계적으로 합한 것보다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다. 독일 다임러벤츠는 1998년 세계 기업(Welt AG)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미국 3위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를 인수했지만 시장 및 공급업체에 대한 지배력을 결코 확보하지 못했다.
 
오늘날 기업들에는 그들의 실수를 좋은 경험으로 남기고 다시 나아갈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경쟁회사와 행동주의 주주(activist share -owners)들은 기업의 세계화 투자를 철회하라는 압력 수위를 날로 높이고 있다. 설사 그 세계화 투자가 시행 초기 애널리스트와 시장의 지지를 받은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이들은 그 정책을 결정한 고위 경영진에 대한 퇴진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AES 주가는 투자자들이 이 회사의 국제화 전략에 기대감을 나타낸 이후 계속 하락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AES에 3개 이상의 사업 부문으로 회사를 분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 합병을 추진한 위르겐 슈렘프 회장은 2005년 주주들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사퇴했다. 이는 2007년 슈렘프의 후임자가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털에 크라이슬러를 매각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과거 잘못된 사업 다각화 전략을 가진 회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잘못된 세계화 전략을 가진 기업 또한 행동주의 주주들에게는 기업 해체나 재편을 시켜야 할 다음 목표물로 비친다. 오늘날 대표적인 행동주의 주주들은 사모펀드, 헤지펀드, 전통적 연기금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소액주주들이 제공한 발언권에서부터 전면적인 경영권 취득이나 주식 대량 매각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단으로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경영진이라 해도 오늘날처럼 복잡한 기업 환경에서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세계화를 이끄는 힘이 강력하며 글로벌 기업이 된 뒤 얻는 이익이 엄청나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기업이 세계화를 의심의 여지없는 당면 목표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자신들이 재앙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표면적인 실적 수치에만 안도한다는 점이다.
 
본 글에서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몇몇 기업들에 대해 다루고 세계화 전략 채택으로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했던 많은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잘못된 전략 방지
17세기 영국 동인도 회사와 허드슨 베이 상회의 설립 이후 기업들은 끊임없이 세계화에 대한 야심을 품어왔다.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기업은 20세기 초반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후 이러한 기업 숫자는 그들의 성패와 더불어 증가해 왔다.
 
지난 15년 간 국제 거래 및 투자에 대한 정치, 규제 장벽이 빠르게 무너지고 기술 발달로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하루 24시간 내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세계화는 많은 업계에서 필수 요건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20012003년의 세계 주식시장 침체기를 제외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많은 기업은 앞다퉈 세계화의 대열에 들어섰다.
 
해외 직접 투자가 사상 최대로 늘어나고, 해외 파트너십 체결 및 기업 인수가 빈번해지며, 해외 아웃소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신흥 경제 대국의 고객 유치 경쟁도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많은 기업이 이익을 거두거나 최소한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낙오자 또한 생겨나고 있다.
 
기업들은 그들의 글로벌 전략 방향이 크게 어긋나 실패하기도 하고 전략의 실행이 예상보다 어려워 실패하기도 한다. 간단해 보이는 아래의 3가지 질문을 고려했다면 그 기업들은 어쩌면 실패를 미연에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1. 우리 회사를 위한 잠재 이익이 있는가 경쟁사나 다른 업계의 회사에 이익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당신의 회사나 업계에도 이익이 존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세계화 경쟁은 기업에게 때로는 그에 따른 보상을 지나치게 고평가하도록 만든다.
 
영국 지붕 타일 제조업체 레드랜드는 197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들어갔다. 영국을 넘어 자사의 기술 노하우를 활용하겠다는 포부였다. 문제는 미국과 일본과 같은 국가에서 기회를 모색했다는 데 있었다. 영국과 달리 미국과 일본의 주택 건축 방식은 콘크리트 지붕 타일에 대한 수요를 거의 발생시키지 않았다. 레드랜드는 관련 기술을 충분히 이전했음에도 가치를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2. 필요한 경영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가 회사를 위한 잠재 이익이 존재한다 해도 당신의 회사가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규모의 경제’와 같은 세계화의 이론적 이익은 실제 상황에서 매우 달성하기 어렵다. 또한 기업들이 이 이익을 가져다 줄 경영상의 열쇠를 가지지 못한 경우도 흔하다.
 
영국의 거대 복합기업 BTR은 1990년대 후반까지 많은 국가에 사업장을 구축했다. 그러나 각각의 사업장은 하나의 자치적인 사업체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즉 엄격한 수익 책임을 지긴 했지만 다른 사업체와 일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었다.
 
분화된 체계에서는 이 운영 방식이 통했지만 BTR이 점점 국제 기업으로 거듭나자 고객들은 국가 간 조율된 공급 및 지원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기회가 명확히 보이고, 기회를 확보하기에 충분한 입지도 점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BTR은 전통적인 체제와 동떨어진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CEO를 비롯한 경영진을 교체한 이후에도 BTR 기업 문화는 글로벌 통합 시도에 걸림돌로 남았다. 결국 BTR은 1999년 시브와의 합병을 단행했다. 많은 분석가의 눈에 이는 BTR이 필요한 변화를 이루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증거로 비춰졌다.
 
3. 비용이 이익을 넘어서지는 않는가 세계화를 통해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해도 당신의 회사에 예기치 않은 부수적인 손해가 발생해 생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흔히 기업들은 세계화에 들어가는 막대한 전체 비용이 세계화로 인한 이익을 크게 축소시킬 수 있음을 간과한다. 이는 각국의 사업 부문들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고객을 몰아내거나 각국 경영진의 시장 요구 파악을 방해할 경우 종종 발생한다.
 
국제 사업장을 운영할 때 가중되는 복잡성 또한 기업에 큰 위협이다. 중국 전자기기 및 가전제품 제조업체인 TCL은 일련의 기업 인수 및 합작회사 설립을 통해 미국과 유럽에서 급속한 확장 정책을 펼쳤다.
 
TCL은 지난 몇 년 동안 톰슨 및 알카텔과 합작 계약을 체결했다. 이 결과 이 회사는 4개의 연구개발(R&D) 본부, 18개의 R&D 센터, 20개의 제조 기지, 45개국에 자리한 영업 조직들을 갖췄다. 그러나 늘어난 규모에서 거둔 이익보다 이 거대 인프라를 경영하는 비용이 더 컸다. 결국 TCL은 2개의 합작회사에서 모두 큰 손실을 입었다.
 
[HBR TIP] 현실에서의 아이디어
 
세계화를 위한 자체 평가
저자는 날로 더해가는 세계화 압력으로 많은 기업이 잘못된 세계화 전략을 수립했다고 지적한다. 당신의 회사에서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세계화 계획에 관한 다음 3가지 측면을 검토해 보자.
 
우리 회사에 잠재적인 이익을 주는가
- 세계화에 따른 이익이 언제 어디서부터 우리 회사의 재무제표에 가시적으로 드러날 것인가.
- 각각의 이익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는 무엇인가.
- 각각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필요한 경영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가.
- 세계화로 인한 이익 실현을 위해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가.
- 과거에 이러한 기술을 발휘한 명확한 실적이 있는가.
- 우리는 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방법을 알고 있는가.
 
비용이 이익보다 많이 들지는 않은가
- 세계화 전략으로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얼마인가.
- 여러 사업 부문 내의 회의론자들은 세계화 비용과 각각의 현지 실적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 우리가 세계화 전략에 투입하려는 모든 자원에 대한 가장 생산적인 대체재는 무엇인가.
 
사례 이 같은 자체 평가가 이뤄졌다면 ABN 암로는 국제적인 확장에 따른 실패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ABN 암로의 세계화 전략이 지닌 표면적인 이익에는 사실 의문 사항이 존재했다.
 
ABN 암로는 이탈리아나 브라질 등의 소매금융 시장에서 지배적 입지를 확립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이는 이미 경쟁회사들이 합병 등을 통해 상당 부분 선점한 상태였다. 또ABN 암로는 각국 시장 전반에 걸쳐 규모의 경제 달성에 필요한 공통의 정보 체계 및 경영 절차를 수립할 의지와 역량을 명백히 지니지 못한 상태였다. 이 은행의 세계화 정책이 그들이 창출한 것 이상의 가치를 파괴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흡한 전략은 결국 은행의 해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계화의 치명적 유혹
기업들은 세계화의 이익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가정 때문에 명백해 보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간과한다. 보통 이런 가정은 주식시장의 유혹적인 메시지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세계화의 유혹은 많은 업계의 회사들을 위험한 상황으로 유인했지만 그 유혹은 다음 3분야의 업계에서 특히 치명적이었다.
 
규제 완화 업계 통신, 우편, 설비 등 이전에 국유 산업이던 기업들은 규제 완화와 함께 공격적인 세계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제한적 성장 기회나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에 직면할 때 기업들은 지리적 확장을 새로운 전략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삼았다.
 
이 회사들은 음성 및 자료 전송, 편지 및 소포 배달, 전기 및 수도 공급 등 기존의 기능을 새로운 시장의 규제 완화 절차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력 분야에 집중하면서 세계 사업장에서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논리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노하우를 아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한때 격찬받던 비관련 분야로의 사업 다각화 전략이 크게 위험하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종종 해외시장 진입에 지나친 비용을 들인다. 또한 규제가 완화된 많은 산업은 세계화 전략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 즉 국제적으로 규격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이 업계에서 고객의 기대, 운영 환경, 경영 방식 등은 사실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수도 공급은 서로 다른 두 국가의 규제 환경에서는 동일한 업계에 속해 있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국경을 아우르는 경제를 현실에서 구현하기란 매우 어렵다. 통합되지 않은 배관망을 통해 전기 흐름을 최적화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은 국제화에 난항을 겪거나 글로벌 전략을 뒤엎기도 한다. 영국의 수도회사 켈다는 미국 회사를 인수했다. 하지만 가격 정책, 환경 규제, 공급 방식 등에서 워낙 차이가 커 두 회사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고, 결국 6년 뒤 이 회사를 다시 매각했다.
 
도이체 텔레콤은 고객 행동에서 나타나는 차이점 때문에 미국 내 사업 부문인 T모바일을 언제든 매각이 가능한 완전히 독립적인 사업체로 운영하고 있다. 도이체 텔레콤의 경쟁사인 영국 보다폰 역시 주주들의 불만때문에 일본 계열사인 J폰을 결국 매각했다.
 
도이체 포스트는 우편, 택배, 물류 서비스의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미국 택배회사 DHL과 에어본 인수에 지나치게 높은 비용을 투입했다. 이전에 국영 독점회사였던 도이체 포스트는 또한 자사와는 전혀 다른,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DHL의 문화를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도이체 포스트의 개별 사업 총액을 회사의 시장 가치보다 25% 더 높게 평가했다. 이는 이들 사업 부문을 분리하라는 압력을 가중시키는 선고다.
 
서비스 업계 소매금융, 보험 등 전통적으로 내수 시장에 주력하는 서비스 업계에 속한 기업들은 세계화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해외 경쟁사들의 공격에 직면한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삼았다. 어떤 경우 고객과 공급업체를 국제화, 즉 다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세계화가 적절한 방법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고객들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국수적인 경우가 많다. 또 많은 기업은 국경을 넘어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경영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세계 여러 곳에 흩어진 한 기업의 지점들이 글로벌 고객에게 일관된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화 전략으로 이익을 실현하려는 서비스 업체들은 규제가 완화된 업계의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국제 및 국내 요인들의 융합에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마케팅과 영업은 나라마다 다른 규제와 규격화 요인으로 난항을 겪을 수 있다.
 
서비스 산업에서 글로벌 전략 실행의 많은 문제는 인력 또는 절차상 조율과 관련이 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조차도 해외 협력사와 직원들에게 일상적인 업무 방식을 수용하게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ABN 암로가 세운 금융 제국은 기업 사냥꾼들에 의해 손쉽게 해체됐다. 이 회사의 해외 사업이 브라질에서 모나코에 이르는 여러 국가의 거의 아무 관련 없는 사업들의 집합체였기 때문이다. ABN 암로는 ‘규모의 경제’를 거의 실현하지 못했다.
 
특히 마케팅에서 이 회사는 하나의 국제 브랜드를 통한 효율을 누리지 못했다. 각국 은행들이 대부분 고유의 이름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 시스템, 경영 절차, 이 밖의 인프라 공유가 반복적으로 지연되고 무계획적으로 실행되는 바람에 비용 절감 효과도 거의 창출하지 못했다.
 
다른 서비스 회사들의 글로벌 전략 결과는 그만큼 비참하지 않지만 역시 기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무서운 기세로 국제적 성장을 추구해 왔지만 해외 마진이 미국 내 사업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프랑스 보험회사 악사는 세계 사업 부문에서 만족스러운 금융 성과를 달성했지만 아직까지 국제 운영 비용을 줄이거나 미국 지사의 변액연금보험 프로그램을 전 세계적으로 정착시키지 못했다. 세계화 전략이 악사의 가치를 깎아 내리지는 않았지만 애초 구상한 만큼 가치를 배가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제조업계 지난 10년간 자동차, 통신장비 등 제조업계 주요 기업들은 발 빠른 해외 합병을 생존의 조건으로 삼아왔다. 해외 합병 및 파트너십 체결은 국내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규모의 경제에 필요한 외형 확장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역적 차이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므로 제조업체들이 서비스 업체에 비해 세계화로 추구한 이익을 달성하기가 쉽다는 것은 착각이다. 세계화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훨씬 큰 운영 및 조직상 어려움이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 흩어진 조직 및 사업장을 통합할 때 나타나는 복잡성은 업무를 지연시켜 많은 비용을 초래하거나 때로는 기업의 실패를 야기할 수 있다.
 
규모를 통한 이익에만 의존하다가 재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많은 기업은 특히 경기 침체기에 취약하다. 경기 침체기에는 확장 및 합병 비용을 감당할 기업의 능력이 줄어들고 부채 비율 또한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경영진은 투자자나 새로운 경영진에게 경영권을 빼앗긴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은 이 문제에 관한 전형적인 실패 사례를 보여 준다. 독일과 미국 자동차업계의 공룡은 기업 문화에서 구매 방식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판이하게 달랐다. 결국 이 둘은 공통의 공급망 관리를 통해 수십 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대만 가전제품회사 벤큐가 독일 지멘스의 모바일기기 사업 부문을 인수한 것도 이와 유사하다. 두 회사는 R&D 활동 통합뿐 아니라 기업 문화와 업무 절차를 조화시키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가 단행한 황급한 합병의 악몽을 되풀이라도 하듯이 벤큐는 기업 실사 자료만을 검토했을 뿐 지멘스의 사업장과 제조 공장을 방문하지도 않은 채 계약을 체결했다. 벤큐는 모바일 장비 부문에서 계속적으로 활발한 사업을 벌였지만 독일 사업 부문은 결국 2007년 파산했다.
 
앞에서 언급한 두 기업이나 수많은 다른 실패 사례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세계화의 전략적인 논리가 빈약했고, 세계화 전략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HBR TIP] 경영 유행의 전염성
 
기업이 지금보다 더욱 글로벌화해야 한다는 신념은 의심의 여지없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업 또는 업계 전체의 이성적 행위를 저해하는 숱한 가정 가운데 최근에 가장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정이기도 하다. 유행이라 일컬을 만한 이 경영 트렌드는 종종 부주의한 사고를 유발할 수 있어 위험하다. 하나의 트렌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가 원래 의미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리엔지니어링’은 이제 사전적 의미보다 기업의 조직 개편이라는 의미로 굳어졌고, ‘관련 다각화’란 단어는 동종 업계 내 기업 인수를 정당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
 
분별없이 이런 트렌드를 받아들이려는 기업들의 성급한 움직임은 더욱 문제다. 이로 인해 자사의 상황에서 무엇이 가치가 있고 달성 가능한지에 대한 경영진의 판단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유능한 인재들이 경영진을 구성하고 있는 ○○라는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회사는 하나의 새로운 경영 방식을 선도하고 있으며, ○○가 경영을 잘해 나가자 다른 기업들도 여기에 주목한다. 이후 1, 2개 회사가 ○○와 유사한 혁신을 시도해 본다.
 
그러자 주식 분석가들과 언론도 이 새로운 경영 방식에 대해 알게 된다. 누군가가 여기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용어를 만들어 낸다. ‘패러다임’이라는 단어도 거론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영 방식이 간행물 등을 통해 가시화됨에 따라 학자들은 기업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낸다. 학계는 단순히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나아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론적으로 이를 체계화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이제는 익숙해진 이 용어를 점점 더 느슨하게 사용한다. 모든 종류의 활동을 이 용어에 포함시킨다. 그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이 범주에 속한 활동들은 모두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점점 커진다. 투자 은행가들은 이 개념을 기업들의 인수 또는 다른 활동의 이유로 언급하고, 통합과 실행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덮는다. 금융 시장에서는 때때로 이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에 보상을 제공한다.
 
안타깝게도 최근 많은 기업이 너도나도 이 트렌드에 속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이 개념을 태동시킨 정황에 대한 이해는 말할 것도 없고 원래의 의미조차 퇴색했다. 기업들은 애초에 의도한 이익은커녕 세계화의 적절치 않은 요소들마저 모두 모방한다. 이 개념을 주제로 한 서적이 몇 권 출간되면 관리자들은 그들의 조직 내에서 이와 관련된 사례를 찾을 수 없을 때 매우 난처해 한다.
 
기업들이 이 트렌드를 따라 떼지어 몰려다닐 때 현명한 관리자들은 그들에게 경쟁 우위를 가져다 줄 새로운 생각의 지평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트렌드가 유효할지, 그들의 상황에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지에 대해 여전히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떠한 개념을 잘못 적용하는 시점과 이로 인한 결과가 실적에 반영되는 시점 사이에는 언제나 시간적 격차가 존재한다. 많은 기업의 관리자들은 새로운 개념을 격찬하는 수많은 자료와 사례에 빠진 나머지 이를 철폐하는 순간마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완고한 관리자들은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계속 정책을 밀고 나감으로써 결국 행동주의 주주들이 개입하여 변화를 강제하는 단계까지 초래한다.
 
세계화에 관해 이러한 우울한 시나리오가 전개되는 이유는 세계화의 기본 개념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화는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고 세계화를 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트렌드를 받아들일 때 특정 상황에서 회사의 특정한 선택이 가지는 장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위험
물론 모든 세계화 전략이 결함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 스페인의 전화 독점업체인 텔레포니카는 스페인 언어권 국가 대부분에서 성공적인 사업 확장을 이뤄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상업 금융 사업 역시 지난 5년간 10여 개의 해외 시장에 빠르고 효과적으로 진출했다.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의 제휴는 현재까지 두 회사 모두에 이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담에 집중하는 것은 세계화 전략이 비즈니스의 필수 요건이라는 통념만 강화할 뿐이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이 자신의 세계화 계획을 충분히 점검하지 않은 채 성급한 세계화에 나선다. 세계화의 대표적 실패 사례는 ‘HBR TIP 로열 아홀드의 몰락’을 참조하기 바란다.
 
우리는 다양한 업계의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글로벌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만큼 이 트렌드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떠오르고 있는 재생 에너지 업계를 살펴보자. 우리는 생물연료, 태양에너지, 풍력 등의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의 경영진과 이야기를 해 보았다. 그들은 이 부상하는 분야에서 국제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해 앞으로 몇 년 간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으로 급속한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에 이들은 국제화로 인한 여러 경영상 문제는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세계화가 처음에는 금융시장의 찬사를 받지만 성급하게 추진한 세계화 전략이 훗날 행동주의 주주들의 공격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경영진은 거의 없었다.
 
경영진이 잘못 선택한 정책의 결과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행동주의 주주들은 회사를 급습할 채비를 하고 있다. 본 글에서 언급한 일부 회사들에서 이미 행동주의 주주들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행동주의 주주들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기업이라 해도 안심할 수는 없다. 그들은 아직 직접 개입을 할 시기가 아니라고 여기거나 최근의 글로벌 신용위기와 주식시장 급변동으로 일시적으로 공격을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경쟁사의 이사회, 연금회사 및 사모펀드의 투자 위원회에서는 끊임없이 당신의 회사가 논의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때로는 다른 회사의 글로벌 전략에서 약점을 발견한 일부 공격자들도 같은 덫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 영국 2위 은행인 스코틀랜드 왕립은행(RBS)은 2000년 규모가 더 큰 경쟁회사 냇웨스트를 성공적으로 인수하고 이후 인수 회사의 기업 문화를 철저히 재정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RBS가 ABN 암로 인수를 통해 보유하게 된 50개국의 이질적인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냇웨스트 인수에서 거둔 성공과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최근 영국 정부는 RBS와 포르티스에 대해 구제금융 지원을 결정했다. 이것이 RBS의 국제화 전략의 결과는 아니지만 ABN 암로 인수 때문에 RBS의 재무제표가 나빠지고 글로벌 신용위기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많은 기업은 사업 유형과 세계화 정도 면에서 30년 전 붕괴 또는 매각된 대기업들보다 훨씬 다각화되어 있다. 때로는 행동주의 주주들이나 사모펀드 또한 잘못된 세계화 전략을 구사하곤 한다. 세계화 전략 실패로 해체된 기업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현 상황을 보면 이 질문이 저절로 떠오른다. 오늘의 사냥꾼이 내일의 먹이로 바뀌지는 않을까.
 
[HBR TIP] 로열 아홀드(Royal Ahold)의 몰락
 
네덜란드의 슈퍼마켓 경영업체 로열 아홀드는 2003년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퇴임으로 몰고 간 회계 부정 스캔들로 악명을 떨친 기업이다. 이 회계 부정은 로열 아홀드가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 세계화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70년대 국제적 확장을 시작한 로열 아홀드는 1990년대에 이를 가속화했다. 유럽, 아시아, 남미, 미국 등지의 업체들을 인수한 결과 세계 4위의 유통업체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이익은 실현하기 어려웠거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규모의 경제’는 기업이 국제적인 확장을 모색하는 이유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는 사실 많은 기업에 있어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이며, 특히 식품 유통업계에서는 더욱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구매 측면의 ‘규모의 경제’는 모든 시장과 거래하는 국제 공급업체들이 취급하는 상품에서만 달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상품은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고 지역마다 각기 다른 신선한 식품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통상 전체 슈퍼마켓 상품의 20%를 넘지 않는 수준이다. 심지어 이집트 콩을 삶아 만든 중동 음식 후머스처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상품도 각국의 다양한 기호에 맞춰져야 한다.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때도 공통의 정보 시스템과 경영 절차가 필요하다. 로열 아홀드는 인수 기업들을 자신의 조직 내에 통합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각기 다른 상이한 정보 시스템이 기업 내 또는 심지어 한 지역 내에 공존했다.
 
글로벌 이익 확보에 필요한 통합 제도와 절차가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로열 아홀드의 분식 회계를 감추는 데 용이하게 작용했다. 세계화를 통한 이익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고위 경영자들을 압박하기에 충분했으며, 결국 회사에 유리하게 조작된 회계 자료를 내놓은 사태로 이어졌다.
 
분식 회계 스캔들 이후 로열 아홀드의 새 경영진은 공통 경영 절차를 도입했지만 이 절차들은 시장 전반에서 공통된 구매를 하는 등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07년만 해도 주요 공급업체들은 국가별로 상이한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로열 아홀드를 고발했다.
 
2007년 로열 아홀드가 미국 내 슈퍼마켓 대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는 사실은 불만에 찬 소수 주주들의 압력으로 로열 아홀드가 한때 야심차게 추진한 세계화 전략을 거의 포기했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증거다.
 
사실 반대자들이 우려한 것은 사업 유형의 지나친 다각화가 아니었다. 로열 아홀드는 유통업을 계속 영위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려한 것은 지리적 위치의 지나친 다각화였다.(적절한 사업 다각화를 위한 테스트는 HBR 1995년 3∼4월호에 실린 앤드루 캠벨, 마이클 굴드, 마커스 알렉산더의 ‘기업 전략: 모기업의 우위를 위한 추구’에 실려 있다.) 로열 아홀드에 대한 지배력에 주력하는 바람에 실패한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결국 로열 아홀드는 행동주의 주주들의 공격에 처했다.
 
번역 이유진 krazylois@naver.com
 
마커스 알렉산더는 영국 런던대 경영대학원(LBS)의 전략 경영 및 국제 경영 부교수이자 런던 소재 애시리지 전략 경영센터 소장이다. 그는 앤드루 캠벨과 함께 <전략의 문제점은 무엇인가(What’s Wrong with Strategy?)>를 공동 집필했다. 해리 코린은 런던대 경영대학원의 전략 경영 및 국제 경영 연구원이자 프랑스 리옹 소재 IFGE의 상임 연구원이다. 그는 피에르 이브 고메스와 함께 <세계화로의 도약(The Leap to Globalization)> <기업가와 민주주의(Entrepreneurs and Democracy)>를 공동 집필했다. 두 저자 모두 본 글에서 언급한 일부 기업들과 일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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