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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불황, 차별화와 도약의 결정적 계기

DBR | 22호 (2008년 12월 Issue 1)
문권모·정임수 기자 dbr@donga.com
도움말=홍덕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dphong@lgeri.com
 
불황으로 인한 걱정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혁신적인 경영자는 위기에 대해 일반인과 다른 시각을 지닙니다. 경기가 좋고 소비가 늘어나는 풍요로운 환경(environmental munificence)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도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소비심리가 얼어붙는 불황기에는 ‘진검 승부’가 펼쳐지고, 한계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집니다. 대부분 산업 분야에서 불황을 거친 뒤 경쟁력 있는 기업의 입지가 강해지거나 새로운 스타기업이 탄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혁신가에게 불황은 기업 체질을 강화하는 ‘호기(好機)’로 여겨집니다.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불황기 경쟁력 강화 비법을 모색해 봤습니다.
 
자동차 경주는 코너링에서 승패가 갈린다. 직선 주로에서는 누구나 빨리 달릴 수 있지만 곡선주로에 접어들면 진정한 실력 차이가 드러난다. 코너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돈 레이서는 다시 직선주로가 시작됐을 때 탄력을 받으며 경쟁자와의 격차를 더욱 벌인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불황기를 잘 이겨낸 기업은 호황기가 왔을 때 훨씬 탁월한 실적을 낸다. 불황이 끝나고 기업 순위가 바뀌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불황은 고통과 위기를 가져오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도약의 기회를 내포하고 있다.
 
2000년대 초 경기침체기 전후의 미국 기업들을 분석한 맥킨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불황 이전 상위 25%에 속해 있던 기업 가운데 40%가 과거 시장 지위를 상실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하위 75%에 속하던 기업 중 14%가 상위 그룹으로 떠올랐다.

진흙 속에서 기회를 잡을 것이냐, 주변 환경만을 탓하며 흙탕물 속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냐는 기업과 리더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극심한 불황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위대한 기업들의 교훈을 살펴보자.
 
군더더기 버리고 핵심에 집중하라
1995년, 캐논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富士夫) 사장은 밤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당시 일본 경제는 복합적인 경기 불황에다 스태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상당수 기업이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캐논 역시 재무 상황이 악화돼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캐논은 1980년대 차입을 통해 사업을 다각화했지만 1990년대 일본 복합불황이 시작되면서 적자 폭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고심을 거듭하던 미타라이 사장은 당시로서는 상당하기 힘든 카드를 꺼냈다. 그는 당시 일본 기업의 최고 관심사인 매출액과 시장점유율에 연연하지 않고 수익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경영 원칙을 발표했다. 수익성 우선 경영을 위해 돈 안 되는 사업에서 과감히 발을 뺀다 수익을 올리고 운영비용을 줄여 재정 건전성을 제고한다 재정 건전성을 기반으로 핵심사업에 과감히 투자한다 등 3가지구체적인 경영 지침을 세웠다.
 
캐논은 우선 PC, 전자타자기, 액정표시장치(LCD), 광(光) 저장 메모리 카드 등의 7개 사업을 정리했다. 이와 함께 디지털카메라, 복사기, 프린터, 반도체 제조장비 등 세계 1위의 기술력과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핵심 사업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이런 핵심역량 강화를 통해 캐논은 ‘신개념 상품’인 디지털 카메라와 소형 복사기 등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점해 나갔다. 그 결과 일본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든 2001년에 도시바·후지쓰 등 다른 전자기업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소니·히다치·NEC 등이 구조적 문제로 시달리고 있을 때 캐논은 2000년 대비 20% 이상의 순이익과 매출 증가를 올리며 최고의 경영 성과를 달성했다.
 
반면에 불황기에 전망 없는 기존 사업을 정리하지 못하거나 경쟁자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기업은 파국을 면치 못한다.
 
코닥은 성장 활력이 떨어진 기존 필름사업에 역량을 대거 투입했다가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쳤다. 이 회사는 특히 1992년 일반용 디지털 카메라를 시판하는 등 새로운 이미지 처리의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황기에 신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오판을 내렸다. 게다가 기존의 필름 사업을 오히려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하다가 2004년 다우존스 편입종목 30개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반면에 캐논, 니콘 등 경쟁사들은 경기 침체기에 디지털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결실을 얻었다.
 
1990년대 후반 PC 시장의 강자이던 컴팩은 2000년대 초 불황기에 델의 저가 공세에 가격 인하로 맞서는 것도 모자라 델의 직접 판매 방식까지 모방했다. 이런 대응은 수익성 악화와 기존 유통망의 반발만 불렀다. 결국 컴팩은 시장지배력이 약화되면서 2002년 HP에 합병됐다. 컴팩이 제품 고급화와 같은 델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이와 같은 최악의 결과는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차별화의 기회로 활용하라
불황기에 상당수 기업이 신규 투자를 망설인다. 그러나 뛰어난 기업은 이 시기를 기술 및 서비스 차별화의 기회로 활용해 경쟁자의 허를 찌른다.
 
인텔은 2001년 IT 불황기에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자인 AMD의 추격을 따돌렸다. AMD는 불황기 이전에 중앙처리장치(CPU) 설계 투자에 심혈을 기울여 매출 성장이 인텔의 3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불황이 닥치면서 공급과잉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AMD는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새로운 설비에 투자를 하지 않했다. 반면에 인텔은 최신 제품에 대한 투자를 계속했으며, 펜티엄4 프로세서에 대한 광고를 대대적으로 집행했다. 결국 다음해 AMD는 인력을 15%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지만 인텔은 시장 1위 업체라는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캐논은 불황기에도 연구개발(R&D) 투자를 매출액의 78% 수준으로 유지해 디지털 광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했다. 특히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디지털 광학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견고한 기술적 진입장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핵심 기술의 특허를 아예 출원하지 않는 ‘블랙박스’ 전략을 도입해 모방의 여지를 일절 봉쇄했다.
 
노키아는 불황기를 과감한 포트폴리오 전환으로 극복한 사례로 유명하다. 그 원동력은 바로 꾸준한 신사업 전략 및 기술 개발이었다. 이 회사는 잘 알려진 대로 1990년대 초 불황기에 목재, 제지, 고무 등 전통적 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이동통신 장비 및 단말기 분야로 사업 초점을 옮겼다. 이때 노키아는 기존 사업을 매각한 자금으로 세계 120여 개 나라에 대해 심층 시장조사를 실시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기존의 아날로그보다 디지털 방식의 이동통신 시장에 더 큰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해 체질을 강화하라
외환위기 이후 국내 건설업계도 수년 동안 극심한 불황에 빠졌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청구·우방·우선건설 등 중견 건설업체가 잇따라 도산했으며, 2000년에는 동아건설 등 우량 건설업체마저 무너졌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최상위 건설업체에 비해 뒤처져 있던 GS건설(당시 LG건설)은 이러한 불황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사례다. 특히 최근 제2의 해외건설 붐을 선도하고 있는 플랜트 건설 부문에서만 지난해 수주 3조7300억 원, 매출 1조9900억 원을 달성하며 업계 1위로서 해외건설의 ‘신(新)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그룹 내 엔지니어링사를 앞세워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에 석유화학·정유 공장을 건설하며 해외 플랜트 사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동남아 지역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해외 공장 건설은 타격은 받은 국내 업체들은 엔지니어링 부문을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그러나 다른 기업들과 달리 GS건설은 오히려 1999년 LG엔지니어링을 합병하는 전략을 택했다. 당시 LG엔지니어링은 적자도 많았으며,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사업 관리를 위한 시스템도 미비했기 때문에 합병으로 인해 동반 부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경영진의 의지는 확고했다.
 
일부 사업에 편중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사업 분야의 전문 인력을 확보해 국내 1위의 종합건설사로 성장한다는 중장기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LG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이 효과적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건축과 주택사업 비중이 70%에 이를 정도로 편중된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던 GS건설은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한 체질 강화가 필요했다. 건축·토목 공사는 원가가 높고 과당 경쟁으로 인해 수익률이 높지 않았으며, 주택 분야는 정부의 주택 정책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 자체개발 사업은 용지 매입에 따른 대규모 투자와 금융비용이 너무 컸다. 반면 플랜트 부문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만큼 부가가치가 컸으며, 특히 당시에 해외에서 대규모 공사 발주가 잇따르고 있었다.
 
GS건설은 엔지니어링 부문을 합병하고 건설업계 구조조정의 반사이익까지 얻은 데다 원가절감 노력을 지속한 결과 이듬해인 2000년 다른 건설사들이 경영난을 겪는 가운데서도 매출과 순이익을 전년보다 20% 이상 늘렸다. 또 플랜트 사업 비중을 꾸준히 늘려 현재 수익구조의 30% 이상을 플랜트 부문에서 달성할 정도로 사업 구조를 성공적으로 재편했으며 올해 플랜트 부문에서만 해외 수주 46억 달러를 달성했다.
 
GS건설은 또 해외 사업 지역의 포트폴리오도 다각화해 시장 개척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동남아 등 일부 지역에 편중해 해외 진출에 나선 다른 기업들이 외환위기 당시 사업을 중단한 것과 달리 GS건설은 외환위기 당시 카타르의 대규모 플랜트 공사를 성공적으로 끝내며 브랜드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를 시작으로 GS건설은 중국, 베트남, 인도, 태국, 이란, 쿠웨이트, 오만, 이집트, 터키, 폴란드, 러시아 등 다양한 지역으로 시장을 넓혔다.


큰 그림을 가지고 멀리 보라
베인&컴퍼니의 대럴 리그비 파트너와 스티브 엘리스 이사는 올해 9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카레이서가 시선을 더 멀리 둘수록 자동차는 가파른 커브를 더 빨리 돌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당장 눈앞의 일에만 연연하지 않고 중장기적 시각을 지니고 있어야 위기 극복을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두 사람은 “근시안적 기업은 불황에 닥치면 비용 및 인력 감축 등을 과도하게 추진한다”며 “이런 기업은 (기존 자원의 고갈 때문에) 호황이 찾아왔을 때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업에서 세계 최고가 되자’는 모토로 1995년 일찌감치 사업 구조조정에 들어간 아모레퍼시픽(당시 태평양)은 최신 기술과 신제품 개발, 치밀한 시장조사 등을 통해 외환위기 도중에 오히려 시장점유율(1995년 21.6% → 2000년 29.3%)을 끌어올린 사례다. 이 회사는 1996년 10월 국내 최초의 기능성 화장품을 개발해 불황 극복에 큰 도움을 받았다.
 
아모레퍼시픽의 사례는 특히 화장품 시장이 개방되고 기존의 유통채널이 약화된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당시 국내 화장품 시장은 P&G·유니레버·로레알 등 세계 일류기업들이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대형마트 등 새로운 유통채널이 부상하면서 아모레퍼시픽이 구축한 기존의 방문판매 조직이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모레퍼시픽은 백화점 브랜드인 ‘설화수’를 전면에 내세운 프리미엄 방문판매라고 하는 새로운 유통 채널을 개발해 새로운 고객 기반을 개척했다.
 
전문가들은 다른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비전 제시를 통한 불황기 극복을 위해서는 뛰어난 혜안과 강력한 의지를 가진 리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덕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불황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며 “단기적 위기 대응도 중요하지만 리더는 항상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지고 기업의 앞날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황을 기회로 활용한 모든 기업은 5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린 원대한 꿈(vison)을 구체화하고,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물적·인적 자원과 역량을 찾아 실행에 옮겼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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