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발 빠르게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칼을 대기 시작하면서 국내 전기차 업체들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팀이 ‘바이든표’ 산업 보조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고관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미국 사업 비중이 큰 전기차와 배터리 관련 기업들이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된 겁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확대 정책이 전기차 구매를 사실상 강요하는 ‘의무 명령’이라며 “취임 첫날 전기차 의무 명령을 끝낼 것”이라고 공언해 온 바 있습니다. 이에 이미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을 겪으며 위기감이 고조됐던 관련 업계가 ‘트럼프 쇼크’까지 동시에 맞는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향방을 지켜봐야 하는 정치 지형의 변화를 차치하고 최근 전기차 판매 추이만 봐도 캐즘의 심각성을 깨닫게 됩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9월,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의 총대수는 약 432만 대로 전년 대비 5.4%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45.7%였던 데 비해 성장세가 크게 둔화된 것입니다.
캐즘은 신기술 수용 단계에서 ‘얼리어댑터’에서 ‘초기 다수층(early majority)’으로 넘어가며 소비층이 확산돼야 하는 시기, 균열이 발생하며 지체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호기심이 강한 얼리어댑터는 과감하게 신기술에 도전해 보지만 실용적인 성향의 초기 다수층은 다양한 내외부 요인을 꼼꼼히 검증해 본 뒤 소비를 결정합니다. 비즈니스 전략가인 제프리 무어는 1991년 발표한 저서 『캐즘(Crossing the Chasm)』에서 바로 전기차 시장의 예를 들면서 이노베이터→얼리어댑터→초기 다수층→후기 다수층→지체자로 이어지는 전체 기술 수용 주기 가운데 얼리어댑터와 초기 다수층 사이에서 발생하는 캐즘이 ‘가장 강력하고 저항이 큰 전환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이 단계에서 관련 업계가 어떻게 소비자를 설득하는지가 시장 확대 솔루션의 핵심입니다. 실제로 잇단 전기차 화재 사건으로 불거진 안전성 이슈, 내연기관차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등이 이런 주류 소비자들의 결정에 발목을 잡는 요소로 지목됩니다.
경영 전략 컨설팅기업 GBK콜렉티브의 제레미 코스트 대표는 올해 5월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기고문에서 “지난 몇 년간 얼리어댑터들이 전기차를 빠르게 수용하다 보니 정책 입안자와 자동차 제조업체 모두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미래 판매량을 가정하는 우를 범했다”며 “초기 다수층과 얼리어댑터 사이의 틈이 얼마나 깊은지 간과했기에 이 틈을 안전하게 건너기 위한 ‘다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다리 중 하나로 하이브리드 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제시했습니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는 퍼펙트스톰까지 우려되는 위기의 시기, 전기차 산업을 지켜줄 ‘다리’들을 모색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강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후발국 시장에서의 선전,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 적극적인 R&D(연구개발) 투자를 바탕으로 급부상한 중국 기업들의 행보에 돋보기를 들이댔습니다. 이들은 압도적인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장악하고 기술 표준을 선점하는 한편, 사용자 경험(UX)에서도 선구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프리미엄 이미지까지 얻고 있어 그 진화 과정을 주시해야 합니다.
성장 속도 조정, 미국과 유럽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중국의 공급 과잉 등으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은 전례 없는 불확실성과 구조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기적인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전기차로의 전환은 결국 피할 수 없는 메가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여전히 우세합니다. “시장 변동성과 지정학적 긴장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코앞에 닥친 폭풍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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