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지털 기업의 성공적인 사업 모델 90% 이상은 기존에 존재하는 사업 모델들의 융복합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킨 비즈니스 칵테일 방식이다. 사업 모델 혁신은 창의적 천재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도메인 전문가들의 사업적 통찰과 디지털 기술의 접점에서 도출된다. 또한 무관해 보이는 사업일수록 아이디어를 조합했을 때 혁신의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융복합 대상을 선택한 다음에는 일률적으로 접목하지 않고 각 유형의 중요도와 핵심 역량의 연관도에 따라 우선순위와 비중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혁신의 아이콘이다. 음원 재생 디바이스 아이팟과 음원 판매 플랫폼 아이튠즈를 조합하는 사업 모델로 음악 산업 전체를 변화시켰다. 나아가 아이팟에 휴대전화를 조합한 아이폰은 전 세계 통신·미디어 산업 격변의 기폭제가 됐다. 그런데 이런 애플의 사업 모델은 스티브 잡스 한 사람의 창조적 역량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외부 IT 프리랜서인 토니 파델이 아이팟과 아이튠즈의 아이디어를 애플에 소개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필립스, 에릭슨, 도시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출신으로 구성된 35명의 개발팀을 이끌면서 기존 기술과 사업 모델을 재해석하고 창의적으로 조합했다. 애플을 상징하는 하얀색의 미니멀리즘 디자인도 디터 람스가 1960~70년대 독일 가전 기업 브라운(BRAUN)에서 디자인한 것과 연속선상에 있다. 스티브 잡스는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혁신이란 결국 그동안 인간이 이룬 최고의 업적을 자신의 작업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피카소는 이런 말을 남겼다.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들을 훔치는 것을 한 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디지털 산업의 글로벌 리더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도 창조와 발명보다 인식과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전국시대(1467~1600) 말기 최강자로 부상한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의 역량을 이렇게 평했다. “최첨단 무기를 스스로 발명하지 않더라도 무방하다.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얻은 건 철포를 발명해서가 아니라 발명돼 있는 첨단 무기를 최대한 빨리 활용했기 때문이다.”
리더들의 이런 관점은 디지털 시대 사업 모델의 혁신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즉, 혁신은 천재적인 발명의 결과물이 아니라 기존 유형의 인식과 재해석 및 창조적 조합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같은 의미에서 필자는 사업 모델 혁신을 ‘비즈니스 칵테일’이라고 새롭게 명명하고자 한다.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가 기존의 술을 조합해 새로운 맛을 만들듯이 사업 모델 혁신 또한 기존의 사업 모델들의 혁신 유형을 접목하고 조합해 새로운 유형으로 변모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김경준kjunkim@hanmail.net
CEO스코어 대표
김경준 대표는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 딜로이트 경영연구원장 및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기업데이터연구소인 CEO스코어 대표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디지털 인문학』 『세상을 읽는 통찰의 순간들』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마흔이라면 군주론』 등이 있다. 서울대 농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