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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역사

‘더 나은 방법’은 항상 있다

서광원 | 371호 (2023년 0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많은 생명체가 무성생식이 아닌 유성생식을 한다. 어렵고 위험한 과정을 감수하면서도 유성생식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더 건강한 후손을 만들기 위해서다. 서로 다른 유전자를 섞어 새로운 조합을 만들면 더 강력한 면역 시스템과 강점을 가질 수 있다. 우연히 생긴 돌연변이를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무성생식에 비해 더 빠르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이 같은 자연의 생존 원리는 우리의 무의식에도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새로움을 선호하는 성향으로 말이다. 새로운 것을 선호하고 선택하는 경향은 진화로 이어진다. 생명의 역사에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어류에서 양서류와 파충류, 그리고 포유류로 주인공이 바뀌도록 만든다. 이 같은 주인공의 교체는 이전 주인공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움이 나타났을 때 이뤄진다. 더 나은 방법은 항상 존재한다. 끊임없는 진화만이 지속가능한 삶의 열쇠다. 새로운 시대를 연 주인공들은 이를 증명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에게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한 것으로, 안 됐던 것을 되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곧 혁신이다.



멀리서 보면 뭐가 있을까 싶지만 가까이서 보면 놀라운 것들이 가득한 게 자연이다. 오랜 시간 수많은 생명체가 축적한, 생존을 향한 기상천외하면서도 끊임없는 노력이 켜켜이 쌓여 있어서다. 일본 오키나와 근처 바다에 주로 사는 오키나와 베니히제라는 물고기도 그중 하나다. 크기가 2㎝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물고기이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 수컷은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동굴을 자기 영역으로 삼아 살아가는데 때가 되면 암컷들이 찾아와 수컷을 떠본다. 괜찮은 짝짓기 상대인지 살피는 것이다. 수컷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암컷을 빙글빙글 돌며 뜨거운 구애 공세를 펼친다. 보시다시피 이런 괜찮은 집을 갖고 있으니 나와 짝짓기를 하자는 뜻이다. ‘마음’이 맞으면 둘은 보금자리로 들어가 암컷이 알을 낳고, 그 위에 수컷이 정자를 뿌린다. 어류에 흔한 체외수정 방식이다.

이들은 이런 수컷을 중심으로 일종의 작은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데 가끔 사고나 자연사로 이 수컷이 사라질 때가 있다. 무리에 다른 수컷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망망대해 어느 곳에 있을 다른 무리나 수컷을 찾아 나서야 할까, 아니면 우연히 찾아올지도 모를 다른 수컷을 기다려야 할까?

이들은 이런 불확실성 속의 우연을 기대하거나 찾아 헤매며 살지 않는다.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수컷이 사라져 후대를 이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가장 몸집이 큰 암컷이 수컷이 있던 동굴로 들어간다. 주인 없는 텅 빈 동굴 속에서 뭘 할까 싶은데, 그 결과는 4일쯤 후 나타난다. 완전히 다른 모습, 그러니까 수컷이 돼 나타나기 때문이다. 분명히 암컷이 들어갔는데 수컷이 돼서 나타난다. 단군 신화에서 곰이 웅녀가 되는 것 같은 이런 일이 이들에겐 별일이 아니다. 종족 번식 실패의 위기가 올 때마다 이런 식으로 생존의 돌파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들에게 위기라 할 수 있는 특별한 상황이 생기면 이 상황이 자극이 돼 몸속 변화가 생겨나고 그 결과 성전환이 되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 덕분에 이들은 어떤 상황 변화에도 대를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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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반대 상황이 벌어지면 어떨까? 수컷은 있는데 암컷들이 사라지는 것 말이다. 물론 이런 상황 역시 숱하게 겪었는지 문제없이 해결한다. 남은 수컷 중 한 마리가 먼저 보금자리 동굴을 차지하거나 수컷들끼리 대결을 벌여 이기는 쪽이 그곳에 남아 계속 수컷 역할을 하고, 다른 수컷은 암컷으로 성을 전환한다. 우리는 성전환을 하려면 큰 수술과 함께 수많은 신체적, 사회적 난관을 뚫어야 하지만 이들은 별 어려움 없이 성별을 바꾸고 별일 아닌 듯 살아간다. 놀랍고 특별한 능력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용치놀래기라는 물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수컷 한 마리가 암컷 3~4마리와 함께 무리 생활을 하는데 수컷이 죽거나 사라지면 가장 큰 암컷이 수컷으로 변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로 잘 알려진 물고기 흰동가리는 반대다. 암컷 한 마리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사는 모계 사회인데 이 암컷이 죽으면 무리에 있던 수컷 중 가장 덩치가 큰 수컷이 암컷으로 변해 무리를 이끈다.

그런가 하면 낚시꾼에게 익숙한 감성돔은 또 다른 유형의 성전환을 한다. 이들은 태어날 때는 모두 수컷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난소와 정소를 지닌 자웅동체가 됐다가 성체가 되는 4~5년쯤 되면 다들 암컷이 된다. 이런 식으로 성을 전환하는 생명체는 지금까지 400여 종쯤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후손을 생산하지 못하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 개발한 능력들이다.

이상한 것은 자연에는 이보다 훨씬 간단하고 쉬운 번식법이 있는데 대부분의 생명체가 이를 선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짚신벌레나 아메바 같은 단세포 동물들은 숫자를 늘려야겠다 싶으면 몸을 두 개로 나누는 2분법(분열법)으로 번식한다. 일부 도마뱀과 일부 어류, 일부 조류는 수정 없이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는 무성생식을 한다. 암컷과 수컷이 서로를 애타게 찾아다녀야 하고, 온갖 방법으로 구애와 수정을 해야 하며, 더러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전환까지 하는 번거로움 없이도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있어야 하는 유성생식에 비해 너무나 쉽다. 그래서 훨씬 먼저 나타난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거나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생명체들은 대체로 이런 쉬운 방법을 놔두고 어려운 쪽을 택한다. 성별을 나눈 다음, 수정을 통해 새끼를 낳는 귀찮고 복잡한 짝짓기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짝짓기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에서는 수컷 사이의 싸움이 일상이라 할 수 있다. 싸움의 절반은 먹이나 영역에 대한 싸움이고, 나머지 절반은 짝짓기 때문에 벌어진다. 암컷은 더 나은 유전자를 가진 수컷을 선택하려 하고, 수컷은 더 많은 유전자를 뿌리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곤충에서부터 사자, 호랑이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비슷하다. 이 때문에 짝짓기 철이 되면 불꽃 튀는 접전들이 각 생태계마다 연례행사처럼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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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세상에서 목이 가장 긴 기린은 이 긴 목을 방망이처럼 휘둘러 상대를 후려치는 ‘목 치기’로 승부를 벌인다. 적임자를 가리기 위한 것인데 목끼리 부딪치는 퍽 하는 소리가 먼 곳에서도 들릴 만큼 인정사정없는 승부다. 사람이 맞을 경우, 즉시 사망은 따 놓은 당상일 정도로 강하다. 사슴들은 커다란 뿔을 창처럼 상대에게 겨누는 대결을 벌이고, 유라시아 큰뿔 영양들은 박치기를 해서 승자를 가린다. 이들의 박치기 역시 대단해서 울창한 숲인데도 충돌 소리가 1㎞ 너머까지 들릴 정도다. 사자와 호랑이들도 주변 천지가 요동칠 정도로 으르렁거리며 무서운 한판 대결을 불사한다. 이뿐인가? 사마귀 수컷은 짝짓기를 하는 도중 암컷에게 먹히는 일이 다반사다. 이렇게 하는 게 종의 진화에 유리하기 때문이라지만 수컷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거는 일이다.

이런 싸움은 결국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같은 종에게는 손해이기에 대부분의 동물은 이를 대체하는 행위를 통해 승자를 가린다. 굳이 싸움을 해보지 않아도 승부를 알 수 있다면 서로 이익 아닌가. 승자는 힘을 쓰지 않아서 좋고, 패자는 굳이 상처를 입지 않아서 좋으니 말이다. 사자의 갈기나 공작의 꼬리가 대표적인데 사자의 갈기가 검은빛이 날 정도로 짙은 갈색이고, 공작의 꼬리가 길면서도 무늬가 선명하다면 상대에게는 적신호다. 살아가는 데 상당히 걸리적거리는 이걸 이런 상태로 갖고 있다는 건 대단히 건강하다는 신호임과 동시에 전투력 역시 최고조라는 뜻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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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호는 대개 자신이 없으면 알아서 물러나라는 의미로 상대에게 전달되는데 여기서 발달한 게 바로 과시 행위다. 자연은 물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과시 행위가 사실은 여기서 기원한 것이다. 이런 성향들은 우리에게도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명품이나 스포츠카 같은 산업의 본질 역시 여기서 시작하니 말이다. 앞으로 계속 알아보겠지만 생명의 역사에서 축적된 성향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 특히 비즈니스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뿌리가 깊고 강할수록 산업의 규모 또한 크다. 우리가 자연의 속성이나 성향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른바 업의 본질을 깊숙하게 이해할 수 있다.

생명체들은 왜 쉽고 편한 방법을 두고 이런 귀찮고 복잡한 번식법을 갖고 있을까? 답은 하나. 더 건강한 후손을 만들기 위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년 넘게 고생하면서 우리 모두가 알게 됐듯 삶은 언제나 공격받기 쉽다. 수많은 세균과 바이러스, 기생충들이 호시탐탐 삶을 노린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는 한결같이 면역 시스템 같은 방어 체제를 갖추고 있는데 무성생식 방식은 기본적으로 방어 시스템이 약하다. 모체(母體)와 같은 유전자, 그러니까 같은 면역 시스템을 가지기에 한 번 뚫리면 모두가 다 뚫려버리는 까닭이다. 마치 아파트 한 동 전체가 같은 출입문 비밀번호일 경우 한 곳의 비밀번호가 알려지면 다른 모든 곳이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유성생식을 통해 서로 다른 유전자를 섞어 새로운 조합을 만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기에 세균이나 기생충들에게는 처음 접하는 새로운 자물쇠와 같아 쉽게 공략당하지 않게 된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조합이 바로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설의 핵심, 변이다. 이전과 다르면서 좀 더 나은 변이가 생겨나 적응력을 획득하고 계속 살아남는 것, 이것이 자연선택이고 말이다. 다윈은 진화가 바로 이 변이에서 시작한다는 걸 발견했는데 자연의 두 번째 속성 역시 여기서 볼 수 있다. 자연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새로운 것을 선호하고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DBR 3651 호에서 소개한, 주인공을 바꿔가며 진화한다는 자연의 첫 번째 속성이 결과에 해당한다면 새로운 것을 택하는 속성은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작동 기제다.

무성생식에서는 이런 변이가 나올 확률이 극히 적다. 어쩌다 우연하게 생긴 돌연변이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물론 식물까지 수많은 생명체가 번거로운 데다 에너지까지 많이 드는 유성생식을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수록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자연이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생존 원리다.(이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의 결혼 역시 원초적인 창조 행위다.)

이런 뿌리 깊은 성향은 우리 삶에 생각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왜 신제품을 좋아할까? 우리는 지금 갖고 있는 게 멀쩡한데도 새로운 게 나오면 눈길이 가고 마음이 쏠린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 뉴욕대 교수가 새로운 것에 본능적으로 열광하는, 그러니까 새로운 것을 정도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마음의 편향에 ‘뉴 마니아(new mania)’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오랜 진화의 결과물인 우리 마음은 ‘새로운 것=대체로 더 나은 것’으로 여긴다. 더구나 이런 성향은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생각을 하게 만들거나,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게 하기에 실제 영향력은 더 크다. 알다시피 무의식은 옳은 것보다 새로운 것을 더 선호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가짜 뉴스들이 성행하는 게 대표적이다.

미국 MIT대 소셜분석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시난 아랄 교수 연구팀은 2018년, 10년간의 트위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6배나 더 빨리, 그리고 더 넓게 퍼진다는 걸 발견했다. 전파 속도가 빠른 소셜미디어에서 6배면 엄청난 차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가짜 뉴스를 주로 만들까? 많은 사람이 짐작하듯 팔로워 수가 많거나 이름 깨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좀 더 강하게 확대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아니었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팔로워가 적은 이들이 주로 가짜 뉴스 생산자였다. 그리고 이들이 만든 가짜 뉴스가 빨리 퍼져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더 자극적, 그러니까 진짜 뉴스보다 새로운 사실을 많이, 강도 높게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흔히 새로운 것이라고 하면 ‘좀 더 나은’이나 ‘좀 더 빠른’ 것만을 생각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눈에 들어오는 가짜 뉴스를 터치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나쁜 뉴스 역시 새로운 것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런 성향이 우리 안에 깊고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미디어 산업이 날로 커지고 번창하고 말이다. 물론 짝짓기 성향, 그러니까 성(性) 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 앱 내려받기 톱 10에 항상 몇 개씩 들어가 있는 게 데이팅 앱이고,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짝 찾기 프로그램’은 언제나 인기다. 산업 규모가 어마어마할 뿐만 아니라 쇠퇴할 것 같지도 않다.

언젠가 지상파 방송의 예능국장을 지낸 사람을 만났을 때, 그에게 히트 프로그램의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재직 시절 많은 히트 프로그램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서다. 그때 그가 말한 첫 번째 조건 역시 참신함이었다. 그의 지론은 간단 명확했다. 대중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기에 그걸 채워줘야 하는데 단순히 채워주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했다. 흥미를 느끼거나 감탄사가 나올 만한 걸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연출력 같은 완성도는 두 번째였다. 잘 만드는 것보다 대중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필자가 이런 얘기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 역시 그의 말이 생각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새로움의 힘은 우리의 생각 이상이다.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새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고 시도되는가? 관련 시장 규모 역시 어마어마하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새해라고 별다를 게 없는 그저 똑같은 하루하루일 뿐인데 말이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것을 선호하고, 그 결과로 주인공이 바뀌는 생명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자연의 세 번째 속성, 항상 더 나은 방법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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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생명의 역사는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어류에서 양서류와 파충류로, 그리고 포유류로 이어져 오고 있다. 주인공들의 교체는 단순한 자리바꿈이 아니었다. 새로운 주인공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나타났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체로 이전 주인공들이 가진 한계를 돌파하는 방식으로 그 역할을 대체했다. 물속에서만 살아야 했던 어류의 한계를 돌파한 게 양서류였고, 물 밖으로 나올 수는 있었지만 물 근처를 멀리 떠날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 파충류였다. 포유류 역시 이 한계를 더 확장, 파충류보다 훨씬 넓은 영역과 더 효과적인 삶의 방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세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런 특징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연의 진화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선호하고 선택하는 것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이런 과정을 거쳐 결과적으로 이전 주인공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한계를 넘어서는 진전을 이뤄내는 까닭이다. 다르게 말하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려면 완전히 새로운 능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고, 진화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언제나 더 나은 방법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일반 생명체에게는 너무나도 까마득한 시간인 1억 년 이상을 살아오고 있는 장수 생명체들을 보면 이걸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장수 생명체를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시대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체다. 탁월한 생존력을 갖고 있다는 뜻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이들 중에는 악어처럼 2억 년 전과 지금의 모습이 거의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은 경우가 꽤 있다. 역시 비슷한 시간을 살아온 거북이나 훨씬 더 오래 살아오고 있는 상어와 투구게들도 그러한데 이유는 시작이 좋았기 때문이다. 워낙 효과적인 형태로 시작했기에 겉모습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겉모습만 그런 것이고 속은 다르다. 이들의 화석이나 유전자를 살펴보면 계속해서 새로운 능력을, 그것도 열심히 장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악어의 화석을 보면 악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턱을 계속 개량해왔고, 우리가 장수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거북 역시 방패 같은 등딱지를 계속해서 더 강하게 만들어왔다. 2008년 중국 구이저우성에서 발굴된 2억 년 전 거북 화석을 보면 등딱지보다 배딱지가 더 발달돼 있다. 헤엄치는 도중 아래에서의 공격이 많았기에 배 부분을 진화시켰다는 뜻이다. 이들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이 완전하지 않은 등딱지를 꾸준하게 업그레이드해 쥐라기(약 2억 년~1억4500만 년 전) 시대에 드디어 지금과 같은 등딱지를 삶에 장착했다. 우리로 치면 계속적인 강점 강화를 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이들은 지금까지 살아 있다. 거북 화석 중에는 공룡시대에 몸길이가 4.6m나 됐던, 지금까지 존재했던 거북 중에서 가장 컸던 아르켈론(Archelon)이라는 종도 있었지만 멸종했다. 모든 거북이 다 살아남은 건 아니라는 뜻이다. 변화보다 변신이 느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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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은 뭘 의미할까? 끊임없는 진화를 통해 능력을 업그레이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고, 더 나은 방법은 항상 있으며, 이걸 찾으면 지속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장수 생명체들은 이런 교훈을 가진 살아 있는 증거다.

물론 이전에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삶에 장착하는 것만이 더 나은 방법은 아니다. 때에 따라선 줄이고 버리는 것도 새로워지는 것이다. 가을이면 자주 볼 수 있는 잠자리 역시 손꼽히는 장수 생명체 중의 하나인데 이들의 조상을 찾으려면 3억 년을 훨씬 넘어 고생대 석탄기(약 3억5900만 년 전~2억9900만 년 전)까지 올라가야 한다. 아득한 원시 시절부터 하늘을 날았다는 얘기다. 사실 이들에게는 이 시절이 ‘왕년의 한때’였는데 당시 잠자리들의 조상 메가네우라가 날개를 만들어 처음으로 공중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데다 거의 무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거의 독수리 정도만 한 크기였다. 대기의 산소 비율이 지금의 21%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30% 전후에 달했던 덕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잠자리 같은 곤충은 산소 흡입을 위한 폐 등의 전문적인 기관 대신 피부 호흡을 하듯 몸 전체를 통해 산소를 흡입한다. 산소 비율이 높을수록 그만큼 덩치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번성은 끝이 있는 법. 이후 산소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특히 2억5000만 년 전쯤 페름기 대멸종이 일어난 후에는 대기 중 산소 비율이 20%도 안 될 정도로 급락하자 풍부한 산소에 기반했던 수많은 생명체가 멸종했다. 그럼에도 잠자리는 살아남았다. 신체 크기를 줄인 덕분이었다. 양치류인 고사리의 조상 역시 석탄기 시절 30m 넘게 솟았던 거대한 시절이 있었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지금의 크기로 작아졌고 그랬기에 살아남았다. 커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환경에 맞는 새로운 적응력을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진화인 까닭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이나 최적의 생명 형태는 없다는 말이 뜻하는 것도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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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다를까? 이 세상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연 주인공들은 대체로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든 사람들이었다. 더 나은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하나같이 비웃음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하는 말과 일이 ‘말도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914년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의 하루 임금을 당시 업계 평균의 두 배로 올리고, 근무시간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자 미국 산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경영진이 하루 종일 회의를 한 끝에 25센트 인상안과 50센트 인상안 두 가지를 건의했지만 포드는 퇴짜를 놓고 두 배로 올렸다. 품질 향상과 차 판매량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신문사들까지 “포드가 미쳤다”고 했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세상은 틀렸고, 그가 옳았다. 그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낸 덕분에 ‘자동차의 왕’이 됐다.

이런 일은 허다하다. 1929년 로켓 추진력의 기본 원리를 로버트 고다드가 발견했을 때, 당시 미국의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아메리칸은 그를 비웃고 조롱했다. 말도 안 되는 이론이라고 말이다. 마르코니가 무선통신을 만들었을 때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했을 때도,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이 하나같이 ‘될 리가 없다’거나 ‘전기학과 역학의 기본조차 모른다’고 비웃으며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더 나은 것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비웃었던 이들은 사라졌지만 비웃음을 받았던 이들은 우리 기억 속에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그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혁신의 산실로 통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비웃음을 받지 않으면 혁신적이지 않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럴수록 더 큰 대박 상품이 되고, 무엇보다 누군가는 결국 그걸 한다는 걸 몇 번이나 경험한 까닭이다.

세상을 바꾸는 진화는 다른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으로, 안 됐던 것을 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전까지 한계이고 막다른 골목이라고 여겼던 것, 그래서 넘을 수 없었던, 아니, 넘을 수 없다고 믿었던 금단의 선을 넘는 것이다. 모두들 어쩔 수 없다고 할 때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고착되지 않고 그 너머에 더 나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서광원 |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araseo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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