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SR5. 스타트업이 혹한기를 이겨내는 방법

메타인지력 키우고 기술적 우위 유지
‘켄타우로스형 기업’으로 거듭나야

이승아 | 361호 (2023년 0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스타트업 생태계가 불황에 접어들면서 성장성(말)만 앞세우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수익(사람)까지 고루 갖춘 ‘켄타우로스형 기업’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투자 유치가 제때 이뤄지지 않더라도 지속가능하게 경영하려면 실제 현금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켄타우로스형 기업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창업팀이 우수한 메타인지력을 바탕으로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한다는 점,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빠르게 응집한다는 점, 업황에 흔들리지 않고 사업 모델을 확장할 수 있는 기술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경기의 호불황이 일정 주기로 반복되는 것은 불가피한 만큼 켄타우로스형 기업으로 거듭나야 ‘스타트업의 겨울’을 무사히 견뎌낼 수 있다.



‘유니콘의 시대가 끝났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지난 몇 년간의 급성장에 쉼표를 찍고 불황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스타트업은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성장성을 담보로 가치를 인정받았고, 그렇게 높아진 밸류에이션에 걸맞은 투자금으로 더 큰 성장에 도전했다. 유니콘은 스타트업이 응당 목표로 해야 하는 것, 스타트업의 본질로 여겨졌다.

이는 경기가 좋을 때는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 불황에 ‘성장성’만을 담보로 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기업 정보 포털 CB인사이트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기준 전 세계 벤처 투자 규모는 약 745억 달러로, 전년 동기 1640억 달러 대비 반 토막이 났고 직전 분기 대비 34%가 줄었다. 특히 이전이었다면 유니콘으로 나아가야 할 후기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를 통칭하는 메가 딜(Mega deal) 또한 약 296억 달러 규모로 직전 분기 대비 44%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스타트업도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결론이 명확해졌다. 기업의 본질은 매출을 내고, 이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 것이다.

067


그러면서 새롭게 화두가 된 개념이 ‘켄타우로스’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베세머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 이하 베세머)가 2022년 5월, 현 시기를 ‘켄타우로스의 시대(The Age of Centaur)’라고 명명하며 확산됐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런 반인반수에 비견되는 켄타우로스 기업은 현실적인 수익(사람)을 바탕으로 성장(말)하는 기업을 일컫는다. 위축된 경기 상황에서는 투자 유치가 예상 시점에 이뤄지지 않더라도 자생하기 위한 현금 흐름이 중요하다. 이에 성장성과 성과를 모두 만족시키며 경영하는 켄타우로스 기업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투자자들의 관심사도 사뭇 달라졌다. 그간 소비자들의 욕구나 욕망을 충족해 주머니를 열도록 하는 B2C 서비스들에 자금이 크게 몰렸다면 경기 불황을 맞은 지금은 특정 산업군의 운영상 비용을 절감하거나 효율화하고, 공급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업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세머가 켄타우로스의 시대는 곧 SaaS(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 Software as a Service)의 시대라고 설명한 이유다. 연간 반복되는 수익을 통해 현금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켄타우로스 기업은 기업 경영의 본질인 ‘지속가능한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재무 상태를 비롯한 현실적인 상황 파악과 컨트롤 능력을 바탕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게 핵심이다. 블루포인트에서 지금까지 약 270여 곳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지켜본 결과, 켄타우로스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가진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의 중요한 특징으로는 메타인지력이 높다는 점, 창업팀이 빠르게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응집하는 조직 문화가 뒷받침이 된다는 점 등이 있다.

냉철한 현실 직시를 가능케 하는 메타인지력

켄타우로스가 될 수 있는 기업의 첫 번째 특징은 바로 우수한 메타인지력이다. 메타인지란 1970년대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H. Flavell)이 제시한 용어로 자신의 생각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한때 메타인지력이 좋은 학생들이 뛰어난 학습 속도를 갖는다는 뜻에서 교육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기도 했다. 본인이 안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제해결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타인지력은 창업자, 특히 스타트업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메타인지의 주요 내용을 보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 기존의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능력, 관계가 없어 보이는 요소들을 연결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등이 있다. 놀랍게도 이런 내용 모두 훌륭한 창업자의 특성을 꼽을 때 언급되는 역량이다.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아야 좋은 팀을 꾸릴 수 있고, 기존 시장의 문제점과 한계점을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갈증을 새롭게 해결할 방법을 고민해야 좋은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좋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도 잘 찾는 창업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기술을 자신의 핵심 자산이자 무기로 삼은 채 소비자와 시장이 명확한 제품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메타인지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도 이 기술과 잘 맞아떨어지는 시장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한 분야에서 괄목한 성과를 낸 이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박사 학위 소지자 혹은 교수, 연구진이 창업할 때 이런 우를 자주 범한다. 비즈니스는 기술만 좋다고 해서 잘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원하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데 매진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렇게 본인의 분야에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온 이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팀 빌딩부터 프로덕트 개발까지 전 과정에서 성과를 내기 어렵다.

게다가 스타트업이 처한 환경은 급변한다. 2022년처럼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투자 자금이 얼어붙을 수도 있고, 상황이 좋더라도 소비자들의 수요와 시장 환경, 규제 등 여러 요소가 예상치 못 하게 바뀔 수도 있다. 이때 창업자 자신 혹은 창업팀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며, 여러 요소를 연결해 문제를 해결해야만 눈앞에 닥친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사례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리브애니웨어는 팀 빌딩부터 사업 전환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뛰어난 메타인지력을 보인 기업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코로나 시기에 여행 플랫폼을 창업해 생존을 넘어 성장을 하고 있는 독특한 사례다. 모두가 시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던 때에 틈새를 파고들어 새로운 시장을 물색한 것이다. 특히 ‘한 달 살기’로 여행 업계에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게 됐는데 구체적으로는 오션뷰, 마당 있는 집 등 특색 있는 장기 숙박 숙소를 소비자에게 추천하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이 회사 창업 이전에도 ‘한 달 살기’는 잠재적 수요가 많은 시장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높은 객단가, 계약 문제 등이 늘 걸림돌이었다. 이에 리브애니웨어는 전 직원이 직접 발품을 팔아 장기 숙박에 적합한 숙소를 확보하고 전자 임대차 계약을 도입하면서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고,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김지연 대표를 비롯한 리브애니웨어 창업팀이 처음부터 시장 수요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었던 까닭은 창업 초기부터 여행 업계의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창업팀이 에어비앤비, 마이리얼트립 등 출신으로 여행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라는 점도 큰 역할을 했다. 소비자들의 장기 여행 니즈가 커지는 데 반해 관련 서비스가 없다는 시장의 빈틈을 파고들 수 있었던 이유다. 이들은 코로나19가 한창이고 여행 업계가 줄도산하던 2020년 6월에 창업하면서도 시장의 수요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당초 태국 치앙마이에서의 한 달 살기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재빠르게 국내 시장 중심의 서비스로 피벗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 코로나를 피해 국내에서 한적한 여행지를 찾고 해외여행의 대안을 모색하는 소비자들이 리브애니웨어의 서비스에 호응했다. 그 덕에 회사 설립 2년 만에 앱 누적 다운로드는 110만 회, 확보한 숙소는 8000채에 이른다.

069


최근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겪고 있는 유동성 이슈도 이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초기부터 매출에 기반한 운영을 해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에서 여행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현실 감각을 단련해 온 셈이다. 리브애니웨어는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은 상태였던 법인 설립 다음 달부터 매출을 내기 시작해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매출의 2배에 달할 정도다. 김 대표는 “회사 경영에 있어 외부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자생할 수 있는 원동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여행을 넘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메타인지력이 뛰어난 창업자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본인이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바꿀 수 없는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대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텔의 전설적인 CEO였던 앤드루 그로브는 그의 저서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에서 인텔의 초기 핵심 사업이었던 메모리 사업을 접고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전환한 이야기를 담았다.

인텔은 메모리를 최초로 개발하고 업계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일본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을 잠식하고 수익률이 점차 나빠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1984년, 경기가 악화돼 손실은 불어났다. 이상 신호가 처음 감지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지만 인텔이 결단을 내린 시기는 1985년이었다. 결국 회사는 6년의 시간이 흐른 1986년부터 메모리 사업을 철수하고 1년 뒤에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었다.

그로브 전 CEO는 이 시기를 ‘길고도 고통스러운 투쟁 과정으로, 죽을힘을 다해야 이겨낼 수 있는 죽음의 계곡’이라 표현했다. 또한 이런 순간에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가지 않을 방향을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불황기 조직 운영에 있어서는 무엇을 버릴지를 선택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이런 선택 능력은 메타인지력을 필요로 한다. 창업자에게 가장 뼈아플 수 있는 선택인 조직 정리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리스크가 굉장히 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조직을 정리하는 결단도 감수해야 불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목표를 향해 빠르게 응집하는 커뮤니케이션

한편 아무리 좋은 창업자라고 할지라도 혼자만의 힘으로 불황을 이겨 내기는 어렵다. 창업팀이 모두 합심해 빠르게 새로운 목표를 향해 응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조직 문화, 비전을 명확하게 공유하고 구성원을 응집시키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흔히 리더십은 경기 호황기보다 불황기에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외부 요인에 의해 구성원들이 여러모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도 기존의 경영 방식과 다른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려 할 때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면 추진 동력을 얻기가 힘들다.

만약 기존의 목표가 ‘유니콘이 되는 것’, 즉 당장에 매출이 나지는 않더라도 투자 유치를 발판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가 경기 불황에 맞춰 켄타우로스로 목표를 바꿨다고 하자. 달라진 목표를 내부에 명확하게 공유하고, 기존의 큰 방향성은 물론 사업부별 목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에 맞춰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의 혼선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혼선을 빚을 뿐 아니라 회사의 새로운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렇게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비전 제시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하는 신뢰의 조직 문화는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솔직함, 비전을 중심으로 한 응집의 문화를 긴 호흡으로 꾸준히 만들어간 기업만이 불황을 견디는 힘을 보여준다. 더욱이 불황의 시기에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직을 정리해야 하는 뼈아픈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개 조직원들은 이미 문제를 감지하고 불안을 느낀다. 간혹 이런 상황에서 감정을 달래고 불안을 무마한다고 회피형 커뮤니케이션을 택하는 리더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문제를 직면하고, 이를 명확하게 다루는 커뮤니케이션만이 남은 조직의 방향 전환에도, 떠나게 되는 사람들의 미래 준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11월, 글로벌 테크기업 두 곳이 구조 조정을 앞두고 보여준 상반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온라인상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바로 스트라이프(Stripe)와 아마존(Amazon)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아마존에서는 내부에서 구조 조정에 대한 내용이 유출됐고, 그 결과 구성원들이 알기도 전 언론에 먼저 구조 조정 소식이 보도됐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난 뒤에야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CEO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2023년 1월 추가 해고가 진행될 것이란 사실도 이때 알려졌다. 언론 보도 후 공식 발표가 나기 전까지 3일간 이미 상당한 혼란을 겪었던 직원들은 당장의 구조 조정을 피했더라도 이듬해 1월 또다시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에 떨게 됐고, 이는 사기 저하를 낳았다.

한편 스트라이프는 CEO인 패트릭 콜리슨이 구조 조정을 하면서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지금까지 전자상거래 시장의 확장에 힘입어 크게 성장했지만 경기 불황으로 환경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물론 갑작스럽게 매출이 끊어지지는 않겠지만 투자 속도를 주변 환경과 일치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콜리슨 CEO는 전체 인원의 14%가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고, 이들에게 퇴직금과 보너스, 연차 휴가 수당, 의료보험, 비자, 다른 회사로의 추천 등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의 목록을 나열했다. 또한 이 모든 상황은 경제 성장에 대해 낙관하고 운영 비용을 빨리 늘렸던 경영진의 실책이었다고 인정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잘못을 떠넘기지 않았다.

071


정리 해고에 맞닥뜨린 두 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솔직함,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방향성이었다. 스트라이프는 자신들의 판단 실수를 포함해 잘못을 명확히 인정하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해결하고 대응해 나갈 것인지도 밝혔다. 그리고 이 사실을 내부에 먼저 공유한 뒤 메일 내용을 그대로 외부에 공개했다. 직원들이 외부에서 먼저 소식을 듣고 발표를 기다리게 했던 아마존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이런 솔직하고도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케이션의 비용을 줄임으로써 운영상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위기 상황일수록 커뮤니케이션은 큰 힘을 발휘한다. 가령 LB인베스트먼트, 삼성벤처투자 등에서 누적 275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최근에도 계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국내 AI 스타트업 ‘노타’도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노타는 AI 경량화 솔루션으로 글로벌 AI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2018년 스마트폰 키보드 오타를 줄여주는 ‘노타 키보드’ 서비스를 버리고 AI 모델 최적화 사업에 뛰어들기로 피벗했을 때에는 채명수 대표와 김태호 공동 창업자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노타가 약 4년 만에 90여 명의 인원이 근무하는 탄탄한 조직으로 재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거의 실패를 딛고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에 힘쓴 창업자들의 노력이 있다. 노타는 사업적으로 뜻이 맞지 않는 직원들과 작별하는 위기를 겪고 사실상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회사의 ‘핵심 가치’와 ‘리더십 원칙’에 대한 공감 없이는 궁극적으로 조직이 성장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에 기존 사업 정리와 새로운 아이템 시작 사이 1~2년의 공백기 동안 의사결정의 합을 맞추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했고, 결국 잦은 커뮤니케이션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피벗 이후에는 신뢰, 호기심 등 4개 핵심 가치와 주인 의식, 큰 생각 등 8개 리더십 원칙을 사내 회의에서 반복적으로 공유했다.

073


실제로 채 대표는 KAIST IT융합연구소와 인공지능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이력과 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피벗 이후 내부 운영과 이슈 컨트롤, 두 가지에 가장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직 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각 리더급이 의사결정의 맥락을 풍부히 전달하고 서로 이해하는 바를 명확히 일치시키도록 하는 ‘오버 커뮤니케이션(Over Communication)’을 강조하고 있다. 인원이 늘어날수록 의사결정의 과정과 내용이 충분히 공유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려면 핵심 가치와 리더십 원칙을 정하고, 경영진의 의사가 명확히 전달될 때까지 긴밀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이처럼 오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노력은 피벗 이후 지금까지 노타의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AI 모델 최적화 SaaS ‘넷츠프레소(NetsPresso)’를 필두로 한 사업 모델에 매진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와 유사하게 얼굴 사진 1장, 30초 분량 음성으로 가상 인간을 제작해주는 ‘클레온’도 조직 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클레온은 격주로 전 직원이 타운홀 미팅에서 투자 상황, 신규 계약 건 등 외부 소식을 공유하고 프로덕트 이슈 등의 내부 사안을 토의한다. 전사적으로 문제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해법을 찾는 클레온의 조직 문화는 문제해결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21년 6월, 클레온의 첫 SaaS 제품이었던 디지털 휴먼 플랫폼 ‘클론’의 론칭 과정에서 버그가 발생하면서 계약이 무산할 뻔한 경험이 있었다. 이 버그가 일어난 배경에는 개발, 연구, 서버, 기획 등 많은 부서가 연관돼 있었다. 그런데 타운홀 미팅에서 이 같은 고객사 이슈가 긴급히 공유되고, 구성원들이 연관 부서들을 탓하기보다는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한 덕분에 집단 지성을 통해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계약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에 클레온 구성원들은 현재까지도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한편 회사의 규모가 커진 뒤에는 80여 명의 직원이 저마다의 가상 인간을 제작하고 이 가상 인간의 목소리와 얼굴을 빌려 이슈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자체 플랫폼 클론으로 구현한 직원들의 가상 인간을 활용해 토론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영상을 찍어 올려둠으로써 구성원들이 미리 숙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각자 원하는 시간대에 사전 자료 형식으로 영상을 공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회의에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시간을 단축하고 커뮤니케이션 효율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렇듯 수시로 변화에 대응하고 외부 변수에 대응하는 불확실성의 환경에서 커뮤니케이션 혁신이 가지는 가치는 더 커질 수 있다.

하방 리스크를 방어해 주는 테크 에지

물론 리더십과 조직 문화도 중요하지만 경기 불황기의 하방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술적 강점이 뒷받침돼야 한다. 여기서 기술이란 원천 기술 수준의 딥테크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나 플랫폼 등 다양한 서비스의 백그라운드가 되는 모든 기술을 포괄한다. 이런 강점이 자리 잡고 있어야 시장 상황에 맞춰 빠르게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할 수 있고, 기술 자체만으로도 여러 매출과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경쟁 우위가 있는 기술을 ‘테크 에지’라고 한다.

074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인 컬러(Color)는 테크 에지를 가진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에 설립된 컬러는 유전자 검사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유사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선발주자 23앤드미(23andMe)에 가려 빛을 못 보고 있었다. 그런데 기술적 강점이 확실했기에 팬데믹이 시작되자 빠른 피벗 결정으로 기회를 포착해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소를 열었고, 자신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PCR만큼이나 정확하게 코로나 검사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FDA로부터 비상 승인받았다.

또한 최대 8일까지 걸릴 수 있었던 PCR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매일 수천 건의 테스트를 실행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자동화했다. 이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매일 테스트한 분량의 절반을 처리하고 1~3일 내에 결과를 내며 급성장했다. 이렇게 기술 기반의 피벗 덕분에 팬데믹 시작 당시 140여 명의 직원이 일하던 컬러는 600명 이상이 일하는 회사로 성장했고, 2021년 11월 시리즈E 라운드 투자 유치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투자사 관점에서도 이런 팀들은 매우 매력적이다. 컬러의 사례처럼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회사는 비즈니스 모델만 바꾸거나 사업 분야를 다각화하면서 매출처를 확보하고, 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불황에 굴하지 않고 좋은 투자 유치 기회를 확보하는 데도 큰 힘이 된다.

한 예로, 국내 스타트업 스타스테크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연 매출 200억 원을 기록하며 견조한 현금 흐름을 보이고 있다. 스타스테크가 경기 상황이나 계절 등 주기에 따른 변동 없이 꾸준한 매출을 낼 수 있는 배경에는 불가사리 업사이클링 기술이 있다. 불가사리는 어류나 산호초를 포식하면서 수산업에 큰 피해를 입히는 생물이다. 이에 지자체나 수협은 불가사리를 수매해 일괄 소각한다. 이렇게 버려지는 불가사리를 무상 공급받아 친환경 제설제를 만드는 게 바로 이 회사의 사업 모델이다.

양승찬 스타스테크 대표는 경기과학영재학교 재학 시절부터 중금속 이온을 흡착하는 다공성 구조체에 관심을 가져왔고, 불가사리 뼛조각으로부터 다공성 구조체를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던 제설제는 주로 염화이온으로 만들어져 자동차와 도로를 부식시킨다는 점에서 착안, 불가사리의 이온 흡착 경향성을 이용한 친환경 제설제 사업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고 B2G(기업과 정부 간 거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 같은 기술 전문성이 있으면 사업 모델의 적응이나 확장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이미 스타스테크는 불가사리 유래 콜라겐을 피부까지 유효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기술 연구개발에 성공해 화장품 분야로 사업을 뻗치고 있다. 불가사리 유래 콜라겐 원료를 화장품 브랜드사에 판매하는 모델을 고안한 것이다. 또한 제설제와 화장품 원료를 만들고 남은 폐기물로 액상 비료를 만들 수도 있다. 이렇듯 회사가 3개 사업부를 병행하고 업황에 따른 변동 없이 안정적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고유의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시장에 찬바람이 한창인 작년 11월 말 10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펀딩을 마쳐 업계의 주목을 받은 이마고웍스도 기술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혹한기를 피해간 스타트업이다. 투자가 사실상 멈춘 시기였던 만큼 업계 관계자들은 숨어 있던 뭉칫돈이 이마고웍스로 향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마고웍스의 기술력을 아는 이들은 놀라울 것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마고웍스는 그간 수작업으로 제작되던 치과 보철물을 AI를 이용해 간단하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게 해준다. 기존 치기공사가 10분 걸려 만들던 보철물을 1분 만에 제작하고, 병원과 치기공소를 오가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하기도 한다.

치기공 업계에서는 이마고웍스의 솔루션이 의사와 환자들이 치과 보철물 제작에 쓰던 시간을 줄여줄 것이며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김영준 대표는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20년간 인체 3D 소프트웨어(SW) 기술을 연구한 전문가다. 연구실 멤버들과 손잡고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덴티스트리(Digital Dentistry)’를 지향하면서 당분간 솔루션의 고도화와 보철•교정•임플란트 영역으로의 서비스 확대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렇듯 기술에 있어 경쟁 우위를 갖추면 모험 자본이 위축되는 시기에도 활로를 찾을 수 있다.

겨울을 잘 견딘 기업에는 더욱 따뜻한
봄이 온다

2022년은 ‘스타트업의 겨울’이라는 표현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겨울은 나무가 새 봄을 준비하며 잎사귀를 다 떨어뜨리고 대사량을 줄이는 계절이다. 기업이 잎사귀를 떨군다는 것은 다가올 봄을 준비하고 생존하기 위해 구조 조정 등 고통스러운 결정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생존을 위한 최선을 선택할 준비가 돼 있는지 고민해볼 때다.

경기의 호불황이 일정 주기로 반복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여러 학자가 이를 둘러싼 가설을 세웠지만 확실한 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변곡점이 되는 이벤트에 따라 호황과 불황은 반복된다. 하지만 불황은 오히려 기회의 시기다. 실제로 2008~2010년 금융위기 당시 초기 투자를 유치했던 우버, 에어비앤비, 스트라이프, 스포티파이 등의 기업이 이후 10년 내 크게 성장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지금은 성장 단계, 규모에 관계없이 어느 기업에나 쉽지 않은 시기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이 시기를 잘 넘긴 켄타우로스형 기업이라면 향후 시장이 회복됐을 때 더욱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아 블루포인트 전략기획팀 익스퍼트매니저 slee@bluepoint.ac
이승아 익스퍼트매니저는 학부에서 물리학과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과학기술정책학 석사 학위 취득 후 국회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략기획실을 거쳤다.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 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을 지원하는 다양한 업무를 해왔고, 2019년 3월 블루포인트에 합류해 전략 기획, 리서치, IR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