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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전략으로 풀어보는 턴어라운드(Turn-around)

험한 길에선 속도 늦추고 발밑 주시
평상시 관리 수준 높여 성장 축으로

김성호 | 361호 (2023년 0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기업이 혼돈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신속하게 출혈을 멈춰야 한다.
2. 현금 흐름을 관리해야 한다.
3. 정체성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
4. 강점을 지키며 변화해야 한다.
5. 시스템 혁신에 투자해야 한다.
6. 평상시 관리 수준을 높여야 한다.



최근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위기는 한마디로 ‘급작스러우면서 공포스럽다’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줄곧 이어진 미•중 패권 전쟁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가세하면서 세계는 다시금 정치적 냉전과 경제적 갈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더불어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글로벌 공급망은 한순간에 무력화됐다. 이런 급격한 변화로 인한 높은 인플레이션율, 그리고 그를 잡기 위한 각국 정부의 금리 인상, 뒤따르는 경기 침체의 확산 등 모든 것이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환경하에 안정적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기업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기업에 있어서 위기란 일상적인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에 있어 위기를 예감하고 맞이하는 것은 창업 초기부터 일상과 같다. 기업의 역사는 위기와 돌파의 반복이라고 할 만큼 위기는 모든 기업에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숙명이다.

필자는 위기 상황에 놓인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봄과 동시에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기업에 따라서는 현재의 위기 상황이 처음이거나 생소한 곳도, 유사한 위기를 겪었던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경험한 적 있다 해도 막상 또 위기가 닥치면 다시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기업이 혼돈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들을 함께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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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1. 신속하게 출혈을 멈춰라.

기업에 있어서 현금은 피와 같다. 이 때문에 모든 망하는 기업이 마지막에 경험하는 공통된 증상은 바로 ‘현금 고갈’이다. 이는 마치 사람이 생명을 잃을 때 호흡이 멈추고 숨이 끊어지는 것과 같다. 응급 상황에서 지혈이 되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듯이 현금 유출이 멈추지 않으면 기업의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갑자기 비용이 증가한 것이 아닌데 왜 위기 상황에서는 현금 유출이 더 많아질까? 그것은 현금 유입이 현저히 줄어들거나 멈추기 때문이다. 이전과 동일하게 비용을 사용함에도 현금 유입이 크게 저하되면 급속하게 현금 보유량이 줄어들게 되며, 그 상황을 멈추지 못하면 유동성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진다. 따라서 위기에 처할 때 가장 시급한 일은 현금 유출을 최대한 막는 것이다.

최근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 전체 직원 수의 50%에 이르는 3700명을 정리하는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모기업인 메타는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인 1만1000명을 해고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고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대규모 정리 해고가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여기에 과거 15년간 디즈니를 지휘하며 2006년 픽사, 2009년 마블, 2012년 루카스필름, 2019년는 21세기폭스를 잇달아 인수하는 등 디즈니를 엔터테인먼트계의 왕좌에 앉힌 뒤 2020년 2월 CEO직에서 물러났던 로버트 아이거가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디즈니로 돌아왔다. 그가 떠난 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다시금 등판한 아이거 역시 복귀와 동시에 대대적인 사업 구조 조정을 예고했다. 아마존 또한 역대 최대 규모의 구조 조정에 착수하며 약 1만 명에 달하는 인력 해고를 계획하고 있다.

더 암울한 소식은 내년까지도 이런 감축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세일즈포스, 페이팔,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리피트, 스냅, 코인베이스, 리비안 등의 기업이 이 감원 열풍에 동참하고 있으며, 혹자는 일련의 흐름을 일컬어 ‘대해고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인 기업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위에서 말한 미국 기업의 한국 지사가 정리 해고의 광풍에 휘말리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으며 네이버와 카카오를 위시한 국내 주요 IT 기업도 2021년까지의 적극적인 인력 채용 기조에서 완전히 돌아섰다. 채용을 멈추고 고용에서의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OCI, SKC, 현대중공업,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의 기업들도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거나 투자 규모를 대대적으로 축소하는 등 사업 구조 조정에 나서고 있다. 건설 업계, 증권계도 감원에 돌입하고 있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 또한 내년 시설 투자 규모를 대폭 하향 조정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도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선택과 결정의 배경에는 현금 유출을 최대한 틀어막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달리는 러너도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땅을 지날 때에는 속도를 늦추고 자세를 낮춰 바닥을 응시하며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위기를 만난 기업에도 이런 자세는 불문율과 같다.

전략2. 현금 흐름을 관리하라.

현금 유출을 최대한 막으려는 목적은 결국 안정적인 현금 보유량 확보에 있다. 즉, 유출을 막기 위한 구조 조정(인력 해고)이 기업의 유일한 대응 방안이 아니며 현금 유입을 늘리기 위한 더 넓은 대응 방안들도 유효하다. 처분 가능한 자산의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 비주력 사업부의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 추가 자본이나 차입금 조달 등 현금 유입을 늘리는 것도 동반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현금 유출을 저지하고 유입을 증대하는 것을 현금 흐름 관리라 부른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많은 현금 흐름 관리가 너무 다급한 나머지 앞뒤 가리지 않고 조치를 취하게 되면 자칫 미래의 경쟁력을 소실할 수 있다는 점이다. 꼭 필요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미래 성장에 필수적인 사업부를 없애 버리면 당장에는 현금 보유량이 증가하지만 장래의 방향과 가능성이 사라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현금 흐름 관리가 철저히 기업의 비전과 사업 전략에 근거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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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파나소닉은 턴어라운드 과정에서 기존의 주력 사업이었던 TV 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관련 사업부를 없앰으로써 현금 유입을 신속히 늘리고 현금 유출을 대대적으로 축소했다. 그로 인해 파나소닉의 현금 흐름이 개선됐지만 이 결정은 단지 현금 보유량을 늘리기 위한 단기적인 조치가 아니었다. TV 사업을 주축으로 B2C 사업을 해오던 기업의 사업 구조를 B2B 사업으로 이동시키려는 전략적 방향에 근거한 조치였다. 이처럼 당장의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 이후 어떤 방향과 전략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먼저 정하고 나서 그 방향에 맞춰 현금 흐름을 관리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더라도 재차 유사한 위기를 부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전략3. 정체성의 혼란을 막아라.

2020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필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에 있는 한 가게 앞에 있었다. 세계적인 장난감 기업인 레고(LEGO)의 밀라노 플래그십 스토어였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대부분의 매장이 예년에 비해 한산한 상황에서도 레고의 매장만큼은 줄지어 선 아이들과 부모가 눈에 띌 정도로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레고의 2020년 매출은 전년 대비 13% 성장했고 2021년에는 21% 성장률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전년도인 2019년의 28%보다 성장해 30%대로 복귀하는 탁월한 성적을 거뒀다. IT 기업도 아닌 전통 장난감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31%라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그만큼 레고는 외형이나 수익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우량 기업이다.

하지만 이 회사도 암울했던 시기가 있었다. 2004년에는 매출이 2002년 대비 34%나 역성장했고, 2003년과 2004년 연속으로 큰 폭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을 정도로 경영 상황이 크게 악화됐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파산이 임박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 같은 위기는 온라인 게임의 위상이 강화되자 레고가 전통적인 블록형 장난감이 아닌 온라인 게임 개발과 레고랜드로 눈을 돌리면서 촉발됐다. 레고는 이런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자 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경쟁력인 블록을 버리고 다른 경쟁자들과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비교 우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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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성장을 위해 시도한 새로운 전략을 포기한 레고는 다시 본연의 정체성인 블록으로 돌아갔고, 한발 더 나아가 그 강점을 더욱 뾰족하게 다듬는 전략에 집중한 끝에 고객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오히려 레고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블록보다 더욱 정교하고 세밀한 블록을 만들어 조립에 더 많은 수고와 시간을 쓰도록 했다. 소비자인 어린이의 놀이 행동을 면밀히 관찰한 후 채택한 이 같은 결정은 결과적으로 재기를 가능케 했다. 소비자가 원했던 것은 레고의 ‘레고다움’이었다.

필자가 턴어라운드 자문을 맡았던 한 기업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건실했던 기업의 실적이 크게 후퇴한 배경에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섣불리 바꾸려 했던 결정이 있었다. 이 브랜드의 강점은 바로 가성비, 즉 가격 대비 괜찮은 디자인과 품질에 있었다. 또한 주요 고객군은 대부분 경제성을 중시하는 중년층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기업이 주요 고객군을 20대로 변경하고 이 세대의 취향에 맞춰 디자인과 광고 전략에 동시다발적인 변화를 단행했다. 이에 기존 고객들은 실망해서 떠나기 시작했다. 반면 새로운 타깃 고객은 쉽게 유입되지 않았다. 이처럼 브랜드의 정체성을 섣불리 바꾸려 한 결과 불과 2년 새 기업의 실적은 악화됐고 재무 상태는 현저히 나빠졌다.

국내 기업 가운데서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2000년대 초반 중공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 두산도 유사한 사례 중 하나다. 한국네슬레, 3M, 코카콜라 등 알짜 내수 산업을 두루 갖췄던 두산은 90년대 중후반 관련 기업을 모두 매각한 데 이어 수익성이 가장 좋았던 오비맥주까지 매각했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소비재 기업의 경험과 강점을 버린 것이다. 그 후 중공업 관련 기업들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기업의 정체성은 중공업 중심으로 변신했지만 현재까지도 부침이 있다. 최근 반도체 후공정 업체 테스나를 인수한 뒤에는 대규모 설비 투자를 선행해야 하는 부담도 떠안게 됐다. 테스나의 매출 및 자산 규모가 현재로선 크지 않고 두산그룹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가스터빈, 수소 발전 등 신사업도 수익 창출력이 아직은 크다고 평가하긴 이르다. 이에 단기적으로는 재무적인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체성을 확 바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기업 사례들도 있다. 위기의 순간에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과감하게 진출해서 큰 성공을 만들어낸 기업들의 스토리는 매우 매력적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던 핀란드 국민 기업 노키아(Nokia)의 경우가 그렇다.

노키아는 원래 제지 사업으로 성공한 기업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제지업 분야에서 거둔 큰 성공을 바탕으로 고무와 케이블, 통신 장비업으로 다각화를 하면서 이미 핀란드에서 가장 큰 기업이 됐다. 하지만 소련연방의 해체라는 정치적 변수로 인해 주업인 제지업이 커다란 타격을 받고 추락하기 시작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CEO가 사업 부진에 따른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사건까지 겹치면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 노키아는 새로운 경영자와 함께 제지업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모바일 폰 생산과 유통을 주력 업종으로 삼아 기업의 사업 구조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그런 대담한 결정을 한 것이 1992년인데 노키아는 그로부터 6년 후인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글로벌 1위 휴대폰 기업의 자리에 앉게 됐다.

이런 사례를 보면 불가능은 없다는 식으로 대담한 도전을 찬양하기 쉽다. 하지만 노키아는 제지 분야에서 철수할 때 이미 통신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던 상태였다. 통신 장비업을 영위하고 있었고, 모바일 디바이스 사업부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이들 사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가능성을 확인한 뒤 테스트가 줄곧 이어져 왔다. 더불어 제지 사업의 추락 이후 약 4년 이상에 걸쳐 기업의 새로운 비전을 숙고하는 시기를 가졌던 점도 참고해야 한다. 모바일 디바이스로의 방향 전환을 정하는 기간만 해도 약 1년 정도가 걸렸다. 결정 이후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전면적으로 사업 구조 조정을 단행했을 뿐 쉽게 방향을 바꾼 게 아니란 얘기다.

이처럼 노키아의 대담한 도전은 이면에 보이지 않는 여러 여건과 조건 속에서 실행에 옮겨졌다. ①기존 사업의 전면적인 추락, ②정체성 변화에 대한 신중한 논의, ③강력한 경영진의 구성, ④과감한 사업 구조 조정을 통한 최대한의 자금 확보, ⑤공격적인 M&A를 통한 신규 사업 가속화가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정체성을 바꾸고 그에 맞춰 비전과 전략을 변경하는 작업은 정교하게 준비돼야 하며 결정된 후에는 지체 없이 과감하게 진행해야 한다. 소비자와 시장은 정체성으로 혼동을 야기하는 기업을 원치 않는다.

전략4. 강점을 지키며 변화하라.

파나소닉은 한때 TV 시장에서 글로벌 넘버원을 하던 기업이었다. 다만 기술 면에서 LCD(액정표시장치)에 완패한 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기술을 기반으로 했기에 시장에서 퇴출됐다. 전략2에서 소개했듯이 위기에 몰린 파나소닉을 회생시킨 전략은 B2C 기업이었던 파나소닉을 B2B 기업으로 새롭게 포지셔닝하는 것이었다.

그 전략은 파나소닉의 강점을 버리는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자신이 이미 보유하고 있던 최고의 강점인 기술에 방점을 둔 결정이었다. TV와 더불어 연계 사업 부문에서 오랜 기간 축적해온 영상과 음향 기술을 중심에 두고, 사업의 대상을 일반 소비자가 아닌 기업으로 바꿨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나소닉은 자신의 강점을 버린 적이 사실상 없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강점이 무엇인지 재평가하고 그것을 새롭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튼 것은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이렇게 강점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시도해 성공한 또 다른 사례는 바로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업을 주된 사업으로 하던 기업이다. 블록버스터라는 미국 시장의 기존 1등 기업을 물리치고 시장을 석권했던 기업이며,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0년 이미 3조 원(22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런 기업이 2011년 주력 사업이던 DVD 대여업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고 스트리밍 사업에만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그러자 분노한 소비자들은 이탈했고, 주가는 80%가 빠지는 등 재앙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그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대대적인 투자를 거듭하고 자금을 스트리밍에 쏟아부었다. 지금이야 그때 그 결정이 얼마나 현명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누가 봐도 두려울 만큼 위험한 결정이었다.

그들의 결정은 정말 본업의 강점을 버린 결정이었을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홈비디오 분야의 아마존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DVD 대여의 틀을 벗어야 하는 게 당연한 귀결이었다. 때마침 스트리밍 기술이 고도화되기 시작했고 넷플릭스는 초기에 그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결정은 자신의 강점을 버린 게 아니라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선택이었고, 이 선택 덕분에 3조 원 매출 기업에서 2021년 기준 42조 원 매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넷플릭스는 창업 초기부터 자신의 강점을 고도화하면서도 변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전략5. 시스템 혁신에 투자하라

글로벌 시장의 대표 SPA 브랜드를 들자면 스페인의 자라(ZARA)와 스웨덴의 H&M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중저가 의류 시장이 사실상 이 두 브랜드의 각축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오는 그들의 경쟁은 다섯 번째 전략인 시스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먼저, 지난 12년간 두 기업의 매출 추이를 비교해 보자. 2010년까지만 해도 H&M은 자라 대비, 근소한 차이이긴 해도 매출이 더 컸다. 하지만 2011년부터 자라가 역전을 해서 해마다 그 격차를 더 크게 벌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림 1) 영업이익률 면에서도 2012년을 기점으로 자라가 H&M을 제치면서 격차를 키웠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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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까지 자라보다 더 잘해오던 H&M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경쟁사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이후로도 실적이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는 걸까? 그 대답은 두 기업의 시스템 차이에 있다. 더 정확하게는 빠른 제품 기획의 적중도 차이, 생산 시스템의 차이, 안정적인 공급망의 차이다. 자라는 장기간에 걸쳐서 기획의 정확도, 생산의 속도, 공급망의 안정성을 위한 투자를 지속해 왔다. 반면 H&M은 기존 방식과 다른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가령, 생산 주기에 있어 자라가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2주 내 완성’이란 혁신을 이루는 동안 H&M은 5개월 이상이 소요되던 기존 속도를 혁신적으로 줄이지 못했다. 생산이 빠르면 그만큼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여력이 클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판매 적중도가 향상돼 재고를 많이 남기지 않게 된다. 즉, 자라는 H&M보다 생산을 여러 차례 나눠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했고, 그 결과 현저히 적은 양의 재고로 더 높은 매출을 기록할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적은 양을 자주 만들어 파는 기업이 많은 양을 한 번에 만들어 쌓아 두고 파는 기업보다 유동성 측면에서나 적중도 측면에서 월등한 것은 자명하다. 문제는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고, 이는 단기간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숫자로 비교를 해보면 H&M의 2021년 기준 재고회전율(=매출/재고자산)이 5.2회전인 데 반해 자라는 9.2회전이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H&M은 평균적으로 2.3개월 치 매출에 대응할 수 있는 재고를 보유하고 장사를 하는 데 반해 자라는 1.3개월 치만 보유하고 있다. 즉, 자라는 H&M의 56% 정도에 해당하는 재고만 가지고도 동일한 매출을 내는 효율을 거뒀다.

이처럼 자라가 시스템 혁신으로 기존 관행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많은 기업이 당연시하는 전제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더 큰 매출을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재고를 보유해야만 한다”는 전제와 반대되는 질문, 즉 “더 적은 재고로 더 많은 매출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역으로 던져 해답을 찾아낸 것이다. 이 해답을 실현하기 위해 자라는 기획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AI 기술에 투자했고, 매장 로케이션을 연구하는 데 투자했으며, 생산 속도를 올리기 위해 근거리에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데 투자하고, 로지스틱의 고도화에도 투자했다. 지금도 그들은 지속적으로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며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패션 기업 중 F&F 또한 이를 벤치마킹해 몇 년 전부터 상품 기획의 적중도를 높이기 위해 기술에 투자를 하고 실적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단기적으로 향상된 실적에 기뻐하기보다 지속적으로 좋은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 혁신에 투자하며 준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에 대한 관심과 도입과 시험의 자세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전략6. 평상시 관리 수준을 높여라

주식투자를 업으로 삼는 이들 사이에서는 흔히들 시장이 폭락하는 위기 시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총알, 즉 가용 현금을 이구동성으로 언급한다. 아무리 주식의 가치가 크게 저평가됐다 하더라도 가용 자금이 없다면 기회를 잡을 수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평상시에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한 사람으로 국한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평상시에 어떤 준비를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참고할 만한 모범 사례를 찾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2022년 11월24일 LG생활건강은 이사회를 열고 대표이사를 전격 교체했다. 이번에 물러난 차석용 부회장은 2005년 1월1일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18년 만에 퇴진을 하게 됐다. 차 부회장 재직 기간 동안 LG생활건강은 17년 연속 실적 성장을 기록했을 정도로 탄탄하게 성장해 왔다. 2021년 말 기준 매출은 2014년 말보다 8배나 성장한 8조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림 3) 비록 2022년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하긴 했지만 지난 17년간 보여온 경영 성과는 기업들이 지침으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LG생활건강이 이 기간 동안 일상적으로 관리해 온 내용들을 상세히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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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림 3]에서 알 수 있듯이 LG생활건강은 매출이라는 외형 측면에서만 아니라 실속에 해당하는 순이익 측면에서도 일관되게 상승 곡선을 그려 왔다. 이런 이들의 성향은 현금 흐름 관리에 있어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2004년 영업 활동에서 유입된 현금이 857억 원이었지만 2021년 영업 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입액은 11배 증가한 9844억 원이었다. 매출이 8배 증가하는 동안 영업에서 창출한 현금은 11배 증가했을 만큼 현금 창출 능력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LG생건은 이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 회사는 2005~2021년 17년 동안 영업 활동을 통해 누적 8조3000억 원의 현금을 벌어들여서 그중 66%는 투자 활동에 사용했고, 26%는 채무 상환에 사용했으며, 남은 8%는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했다. 17년 동안 일관되게 이런 흐름을 유지했다.

이렇게 확보한 총알을 바탕으로 LG생활건강은 그 기간 코카콜라음료, 다이아몬드샘물, 한국음료, 해태음료, 더페이스샵 등을 포함한 30개 기업을 인수(M&A)했고 108%였던 부채 비율을 38%로 낮춰 재무적으로 초우량 기업이 됐다.

이 같은 M&A 전략도 흥미롭다. 차 부회장의 취임 이후 LG생활건강은 2007년 코카콜라음료와 2009년 다이아몬드샘물, 그리고 2010년 해태음료 등을 인수하며 음료사업 부문을 강화해 생활용품, 뷰티, 음료를 축으로 하는 3대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해 매출과 이익에서 성장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런 결정은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구조적인 발판이 됐다.

여기에 최근 LG생활건강은 북미의 화장품 기업인 뉴에이본과 더크렘샵도 인수했다. 코로나 이후 중국 시장에서 연이어 터지는 위험 신호에 따라 시장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후 면세점 업계에 거대 큰손이었던 중국인 소비자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기에 단기적으로는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차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지금 위기 속에서 투자를 이어가면서 위기 후의 시간을 준비할 수 있는 것도 평소에 높은 관리 수준을 보이는 준비된 기업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LG생활건강의 성공적인 행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서두름 없이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서 단계적으로 성장을 가져갔다.

2) 이익률을 서서히 높여가며 영업 활동에서 나오는 현금 유입을 꾸준히 늘렸다.

3) M&A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4) 영업에서 벌어들인 현금의 3분의 2를 성장 자금으로 투자하고 3분의 1은 재무 안정성 개선에 사용했다.

5) 총 현금 흐름을 마이너스로 바꿀 정도의 대형 투자를 하지 않았다. 투자로 인해 일시적으로 총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가 된다 해도 2~3년 이내 유입될 현금으로 정상화가 가능한 규모의 투자만을 했다.

6)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현금 흐름을 관리하면 위기 시 대응할 수 있는 재무적 안정성의 여력이 커지며 이는 투자자에게 총알과 같은 것으로서 위기 시 턴어라운드의 기반이 된다.

턴어라운드 인사이트

지금까지 살펴본 턴어라운드 케이스들이 전하는 인사이트를 요약하면 기업들을 위한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익을 늘려라. 뼈를 깎듯이 비용을 줄이고 가지고 있는 강점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현금을 더 창출하라. 그 패턴을 반복해 현금이 모이면 반드시 성장과 안정에 투자하라. 성장 또는 안정 중 하나에만 올인하지 말고 분산 투자하라. 규모에 비해 지나친 욕심으로 성장을 앞당기려 하지 말고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투자하라.

오늘날의 변동성 높은 시장은 지나치게 안정만을 추구하는 기업에 절대 항구적 안정을 약속하지 않는다. 성장과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경영자의 몫이다. 그렇게 평상시에 정성을 다해 관리해야 위기가 왔을 때 효과적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성호 실전리더스쿨 대표 sungho.kim@kshleaderschool.com
김성호 대표는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경영 현장에서의 경험을 정리한 『돌파하는 기업들』과 『나도 나를 믿지 못했다』 『쉽게 배워 크게 쓰는 재무제표』 등을 집필하고 비즈니스 현장 리더들을 상대로 코칭을 하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회계학을 전공했고 에릭슨(Ericsson), 인텔(Intel) 등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법인 CFO를 지낸 뒤 이랜드그룹 유럽법인에 합류해 유럽 지역 CFO와 유럽법인장으로 활약했다.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9년간 머물며 다섯 개의 패션 기업을 경영했고 그중 코치넬레(Coccinelle s.p.a)와 수토만텔라시(Sutor Mantellassi)는 유럽을 넘어 한국과 중국에도 론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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