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기업 및 조직의 PR는 환경 지배적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해 왔다. 공중과 이해관계자의 기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보다는 잘 준비된 메시지를 살포하는 ‘전략적 말하기’를 통해 일방적으로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렇게 ‘말’만으로 공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전략적 듣기’를 통해 공중의 기대, 편익과 손실을 기업 의사결정에 끊임없이 반영하지 않으면 이들이 언제 기업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 행동주의자로 탈바꿈할지 알 수 없다.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환경 적응적 커뮤니케이션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기에 PR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경영진은 공중과의 접점에 있는 PR팀에 더 권한을 부여하고 전략 경영에 끌어들여야 한다. 소셜미디어 애널리틱스(SMA) 등의 방법들을 동원해 공중의 의견을 기업의 전략적 경영에 반영함으로써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PR로 거듭나야 한다.
뉴스를 보다 보면 기업들이 수시로 이름이나 로고를 바꾸면서 CI(Corpore Identity) 변경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2018년 한 해 기준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124개 상장사가 회사명을 바꿨고,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기업들의 수까지 고려하면 해마다 수백여 기업이 회사의 이름을 바꾼다.11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2018년 4월1일, https://www.yna.co.kr/view/AKR20180331043400008
닫기 기업의 개명 사례를 살펴보면 사업적 변화, 합병 등의 이유로 인한 경우도 있지만 갑질, 주가 조작, 횡령, 소비자 피해 등의 스캔들, 기업 이슈, 실적 부진 등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를 회피하기 위한 ‘도주적 리브랜딩’이 대부분이다. 가령,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옥시’가 ‘RB 코리아’로, ‘글로엔엠’이 ‘제너럴바이오’로 이름 세탁을 시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기업의 도주적 리브랜딩이 피해자, 소비자 혹은 주주의 신뢰를 복구하는 효과는 미미하며 실적 개선과 기업 발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이처럼 기업들이 위기 극복의 방편으로 흔히 쓰는 리브랜딩, 즉 이름과 로고를 바꾸고 조직의 외양을 다시 꾸미는 것은 문제를 덮을 뿐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차라리 낫다. 소가 탈출했는데도 외양간을 ‘동물의 낙원’이라 바꿔 부르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행태다. 조직의 소통 철학을 ‘심볼릭 컨트롤(symbolic control)’에 두고 이에 집착하면 경영진은 조삼모사의 행태로 이해관계자와 공중을 현혹시키게 된다. 속임수가 영원히 들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기업을 이끄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김정남layinformatics@gmail.com
오클라호마대 전략커뮤니케이션 석좌교수
김정남 교수는 퍼듀대를 거쳐 오클라호마대 게이로드 패밀리 전략 커뮤니케이션 석좌교수로 있다. 주된 연구 분야는 공중 행위와 전략 커뮤니케이션이며 현재 DaLI(Debiasing and Lay Informatics) 랩 디렉터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