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1. 성공적 엑시트로 평가받는 쿠팡의 미국 IPO 전략

미국 투자자 ‘미래 시장지배력’에 초점
고객 충성도로 지속 성장을 어필하라

324호 (2021년 0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2021년 쿠팡의 성공적인 뉴욕 증시 입성을 계기로 미국 기업공개(IPO)가 국내 기업의 현실적인 엑시트(Exit) 선택지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대형 기술주 위주로 구성된 고난도 상장 시장이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증명해야 할 ‘성장의 질’에 대한 기준도 매우 높다. 미국 투자자들의 깐깐한 눈높이에 맞추려면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투자가 미래의 ‘성장’과 ‘시장지배력’으로 돌아올 것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쿠팡의 선례처럼 1) 성장의 속도와 가속도를 입증하는 매력적인 지표들을 보여주고 2) 성장 단계 투자자들과 꾸준히 접점을 넓히며 기업을 노출시키고 3) 지주사의 위치를 법인 설립 단계부터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 미국은 상장 비용뿐 아니라 상장 유지 비용도 매우 높은 시장인 만큼 그 명암과 실익을 사전에 꼼꼼히 따져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2021년 3월11일, 쿠팡이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한국 벤처기업의 미국 상장이 처음은 아니지만 쿠팡의 미국 기업공개(IPO)는 그 규모와 파급력 측면에서 국내 벤처기업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된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국내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멀게만 느껴졌던 ‘미국 IPO’를 또 하나의 현실적인 엑시트(Exit) 선택지로 고려할 수 있게 된 점은 ‘쿠팡 효과’가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제2, 제3의 쿠팡과 같은 성공적인 엑시트 사례가 나오기 위해서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미국 IPO를 바라봐야 할까? 미국 증시의 특징과 쿠팡의 사례를 통해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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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증시: 전 세계 성장주가 모이는 곳

우리가 쿠팡의 IPO를 통해 주목하게 된 미국 상장의 장점으로는 무엇보다도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 적자가 지속되더라도 성장성만 검증된다면 상장이 용이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미국 증시가 고성장 기술주에 대해 이해도가 가장 높은 시장인 동시에 전 세계의 다양한 기술 기업이 모인 시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이 스타트업들에 무조건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미국 상장을 노린다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전 세계 어느 거래소보다도 상장 난이도가 높고 경쟁이 치열한 시장 역시 바로 미국이라는 뜻이다. 특히 현재 뉴욕 거래소와 나스닥의 기술주 IPO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닷컴 버블과 금융위기를 거치며 지난 20년간 시장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 미국 기술주 IPO: 대형주 위주의 고난도 상장 시장

매년 미국 IPO 통계1 를 조사해 발표하는 플로리다대 경영대학의 제이 리터 교수에 따르면 닷컴 버블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2000년 당시 260개의 테크 기업이 IPO에 성공했다. 해당 기업들의 설립부터 상장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5년, 그리고 상장 당시 매출의 중간값은 약 130억 원(1200만 달러) 수준이었다. 아울러 당시 상장 기업 중 이익을 내던 기업은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시간을 돌려 2020년 통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2020년에는 42개의 테크 기업 IPO를 완료했는데 설립부터 상장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12.5년으로 늘었으며 상장 당시 매출의 중간값은 약 2300억 원(2억200만 달러)으로 20년 전에 비해 17배가 증가했다. 그리고 상장 기업 중 흑자를 내는 기업의 비중은 19% 수준으로 집계됐다.

단지 ‘적자 기업이라도 상장이 가능하다’는 점에만 주목하면 2000년이나 2020년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여전히 미국 상장에 성공한 기술주의 80% 이상은 적자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 1]에서 IPO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난 20년간 미국 기술 섹터 상장주는 매출 100억 원 언저리의 소형주 위주에서 매출 2000억 원대의 소수 대형주 위주의 시장으로 완전히 재편됐음을 알 수 있다. 오랜 기간 비상장 기간을 거쳐 강력한 시장지배력과 높은 성장성을 인정받은 대형주들이 시장에 포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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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장한 기술 섹터 기업들의 공모가 대비 기업 가치는 주가매출액비율(Price to Sales, PSR) 기준 13.4배 수준이었다. 이를 같은 해 상장 기업의 매출액 중간값에 적용해 볼 경우 상장 시점 시가총액의 중간값이 대략 3조 원을 넘어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PSR 기준 10배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매년 50∼100% 이상의 성장성을 보이면서 이 같은 성장성이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오히려 가속화되는 수확 체증(Increasing Rate of Return)의 구간에 들어섰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감안할 때, 실질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성공적으로 미국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증명해야 할 ‘성장의 질’에 대한 기준은 매우 높다고 봐야 한다.

2) 빅테크의 교훈: 성장성과 시장지배력의 중요성

닷컴버블 전후에 탄생한 1세대 기술 스타트업인 아마존, 세일즈포스, 구글과 같은 기업들은 설립부터 상장까지의 시간이 5년 내외로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 아마존은 설립 3년 만인 1997년 약 5000억 원의 기업 가치를 증명하며 상장했으며 세일즈포스는 설립 5년 만에 약 1조3000억 원, 구글은 설립 6년 만인 2004년 약 30조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상장에 성공했다. 물론 해당 기업들도 당시에는 조 단위 IPO로 주목을 받긴 했다. 하지만 지금 아마존과 구글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1000조 원을 넘어선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기업들의 가치는 대부분 상장 이후에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를 지나며 비상장 스타트업들이 IPO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생긴다. 기업들이 빠른 상장보다는 비상장 시장에서 사모 조달로 규모를 키우며 상장을 최대한 늦추는 ‘Stay Private Longer’이란 트렌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금융위기 이후 시장이 폭락하며 실질적으로 IPO가 어려웠던 측면도 있고, 엔론 사태 이후 여러 가지 규제가 더해지며 상장 기업으로서 감당해야 할 컴플라이언스 비용이 높아진 점도 주요 원인이 됐다. 그리고 2012년 잡스 법(JOBS Act)2 이 통과되면서 공시 의무가 부과되는 최소 주주 수가 500명에서 2000명으로 늘어난 점 또한 스타트업이 좀 더 오랜 기간 비상장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테크 기업의 성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단기 이익에서 장기적인 시장 지배력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창업자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닷컴버블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성장을 가속할 수 있었던 아마존, 세일즈포스, 구글과 같은 기업들의 전략에 주목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성장성, 시장지배력, 고객 충성도에 집중해왔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실리콘밸리의 축적된 경험이 응축된 사례가 바로 페이스북의 성장과 2012년 상장이었다.

3) 페이스북 모멘트: 유니콘 시대의 도래

페이스북은 쿠팡과 마찬가지로 설립 초기부터 대규모 펀딩과 독특한 성장 전략으로 언제나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2005년 페이스북이 액셀파트너스(Accel Partners)와 몇몇 투자자로부터 150억 원 규모의 시리즈A를 유치할 당시 기업 가치는 1300억 원(1억1000만 달러) 수준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클럽하우스의 시리즈A 기업 가치가 1100억 원(1억 달러)에 달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당시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가 얼마나 화제였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대학생 중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몰리는 자금을 보고 ‘제2의 닷컴 버블’ ‘실리콘밸리의 불장난’ 정도로 치부했다.

페이스북은 개의치 않고 꾸준히 사업의 성장 궤도에 맞춰 펀딩을 진행했다. 2006년 4월 시리즈B 펀딩 당시 기업 가치는 5000억 원 이상으로 수직 상승했다. 그해 7월 페이스북이 야후가 약 1조 원에 인수하려던 제안을 거절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금융위기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2011년 50조 원의 기업 가치로 골드만삭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으며 결국 페이스북은 2012년 5월 100조 원 이상이라는,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기업 가치로 상장에 성공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페이스북의 가치에 많은 의구심을 보였다. 고평가 논란이 일고, 동시에 모바일 전환에 다소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이 정체되는 신호가 보이자 상장 이후 주가가 반 토막 나기도 했다. 이미 100조 원의 가치로 상장했으니 더 이상 상승 여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팽배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이후 단기간 내 모바일 전환에 성공하며 매 분기 놀라운 성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상장 1년 반 만에 기업 가치는 200조 원에 이르렀다. 현재는 1조 달러(약 1130조 원) 클럽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에서 유니콘이란 용어가 2013년 처음 등장하고, 2014년부터 이러한 유니콘 기업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페이스북 상장 이후 창업자들과 투자자들이 테크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페이스북의 성공적인 IPO 이후 비상장 기업의 기업 가치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한 일이 돼 버렸다. 독점적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결국에는 엄청난 이익을 창출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논리가 드디어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 결과 투자자들의 관심은 ‘언제 이익을 창출할 것인가’에서 ‘현재의 적자가 미래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인가’로 옮겨가게 된다.

페이스북의 성공 이후 실리콘밸리와 월가의 투자자들은 모두 ‘차세대 페이스북’을 찾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게 되며 기술주에 투자하는 펀드매니저들의 눈높이 또한 페이스북의 규모와 성장성에 맞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2014년부터 시작된 대형 유니콘 주도의 미국 테크 IPO 흐름은 팬데믹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2. 쿠팡 IPO: 실리콘밸리 플레이북의 확장판

한국에서는 상장 직전까지도 쿠팡의 대규모 적자 규모가 언론의 주요 관심사였다. 하지만 사실 쿠팡의 성장 방정식은 실리콘밸리의 관점에서 볼 때 페이스북을 필두로 한 성공적인 테크 기업들이 써내려 간 플레이북을 120% 활용한 것이었다. 또한 쿠팡의 성장성과 차별적인 경쟁력 위주의 경영은 초기부터 실리콘밸리의 자금을 대규모로 유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서 성공적인 상장을 원하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라면 과연 쿠팡의 성공적인 미국 IPO로부터 어떤 점을 참고할 수 있을까?

1) 성장의 속도와 가속도에 집중하라

앞서 언급한 대로 스타트업이 미국 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기업의 펀더멘털을 보여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 시장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성장의 질’을 어떻게 설득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의 적자가 당장 문제 되지 않는 것은 오직 현재의 투자가 미래의 성장과 시장지배력으로 돌아올 것이란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기업들에 국한된 이야기다. 똑같이 손실을 내는 기업인데 왜 에어비앤비는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증시에 데뷔한 반면 위워크는 상장에 실패하고 기업 가치까지 쪼그라들었을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플랫폼 기업을 가정해보자. 만약 플랫폼 가입자 수가 이탈 없이 꾸준히 늘어나고, 플랫폼에 참여하는 사용자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비용이 높지 않으면서, 사용자들의 이용률과 결제 금액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상승하는 플랫폼이 있다면? 이런 기업은 아마도 매 분기 꾸준한 매출 및 이익 상승을 보여줄 것이다.

미국 투자자들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성장의 속도, 나아가 성장의 ‘가속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충분히 매력적이면서 분석 가능하게 주어지길 기대한다. 만약 ‘고객 획득 비용(Customer Acquisition Cost)’ ‘고객 이탈률(Churn Rate)’ ‘순 달러 유지율(Net Dollar Retention)’같이 성장의 가속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최상위급이고 잠재 시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논증해낼 수 있다면 미국 시장에서도 단연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쿠팡의 상장 신청서(S-1)에서 가장 중요한 차트는 바로 코호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 이탈을 감안하더라도 5년 전 쿠팡을 사용하기 시작한 고객이 5년 전 대비 3.59배의 결제액을 사용한다는 지표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쿠팡이란 플랫폼이 고객 충성도와 로열티 측면에서 얼마나 매력적이고도 강력한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쿠팡의 금액 기준 코호트 지표를 최근 50조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상장한 미국 1위 음식 배달 기업 도어대시와 비교한 [그림 2]를 살펴보면 쿠팡의 결제액 변화 추이가 얼마나 우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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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떤 지표를 보여줄 것인지가 아니라 어떤 기업을 만들 것인지다. 쿠팡의 창업자는 ‘모든 고객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묻게 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늘 이야기했다. 이 같은 목표는 전 세대를 관통하는 기업을 이루겠다는 창업자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비전이다. 우리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없는 세상을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기업들 모두가 결국 지금 1조 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대중에게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십, 수백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세일즈포스, 서비스나우, 스노우플레이크와 같은 B2B 소프트웨어 기업도 마찬가지다. 사실 소프트웨어만큼 고객의 록인효과가 크면서 꾸준히 성장하는 산업이 드물다. 수많은 미국의 SaaS 기반 소프트웨어 기업이 매출의 10배에서 20배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장 시장도 분명 상대평가가 존재한다. 미국 상장을 노리는 기업이라면 우리 회사가 지금 성공적으로 미국에 상장한 유사 기업들과 비교해 어떤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여전히 글로벌 투자자들에겐 생소한, 그리고 잠재 시장의 규모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 시장 기반 스타트업이라면 ‘유명한 기업’의 ‘한국 버전’이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쿠팡도 가장 직관적으로 회사를 설명하기 위해 ‘한국의 아마존’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것만 가지고 미국 시장의 문턱을 넘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아마존보다도 월등한 성장성과 고객 지표를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미국 상장의 난이도를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2) 성장 단계 투자자와의 접점을 넓혀라

기업의 생애주기에서 IPO란 주주의 구성이 소규모의 특정 투자사에서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로 손 바뀜이 일어나는 중대 이벤트다. 이때 상장 과정을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 기업들은 주관사를 고용해 상장 업무를 맡기고 마케팅도 진행한다. 하지만 투자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투자자, 시장, 고객에게 전혀 노출이 없는 시장에 글로벌 투자은행만 데려간다고 해서 상장이 뚝딱 이뤄질 리는 만무하다.

사실 의외로 많은 기업이 사전 마케팅 단계에서 미국 상장의 벽이 높음을 실감한다. 팬데믹 이전에도 국내 대기업의 계열사, 소셜 카지노 등 국내 여러 기업이 미국 시장 상장을 검토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투자자들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에 국내 상장으로 선회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조 단위 스타트업들도 자금 조달을 동반하는 전통적인 IPO에 임할 때는 1년 이상 준비 기간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물며 잠재 시장의 투자자들과 교류하며 기업을 노출시키는 활동은 IPO 2∼3년 전부터는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유니콘 기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실리콘밸리 성장 단계 스타트업 투자에서 일어난 변화 중 하나는 전통적으로 스타트업이나 비상장기업에 투자하지 않던 사모펀드, 헤지펀드, 뮤추얼펀드들까지 앞다퉈 비상장 기술주 투자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최근 타이거 글로벌(Tiger Global), 코트 매니지먼트(Coatue Management), D1 캐피털(D1 Capital) 같은 기술주 전문 크로스오버 펀드들이 미국 비상장 투자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블랙록, 피델리티, 웰링턴, 캐피털그룹, 티로우프라이스와 같은 전통적인 뮤추얼펀드 운용사들도 전용 비상장 펀드를 운용하며 시리즈B에서 프리 IPO 단계까지 활발하게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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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월가의 큰손이라 불리는 투자자들과 성장 단계에서부터 꾸준히 교류하고 이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미국 시장, 특히 미국 상장 시장과의 접점을 단계적으로 넓혀 나가는 것은 해외 기업으로서 태생적으로 가지는 불리한 인지도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다. 특히 앞서 언급한 헤지펀드와 뮤추얼펀드는 상장 단계에서 6개월 이상 록업은 물론 추가 투자도 단행하며 기업이 장기 투자자 중심의 주주 구성을 가져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때문에 미국 IPO를 생각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상장에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투자자와 접점을 넓히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전략이다.

쿠팡이 2015년 소프트뱅크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하지만 사실 쿠팡은 이미 2014년 진행한 펀딩 라운드에서 세쿼이어캐피털은 물론 뮤추얼펀드인 블랙록과 웰링턴, 헤지펀드로 분류되는 그린옥스 등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수천억 원의 자금을 유치한 바 있다. 또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37벤처스(137 Ventures) 같은 다수의 미국 중소형 비상장/세컨더리 전문 펀드도 5년 전부터 물밑에서 쿠팡에 투자하거나 쿠팡의 구주를 거래해 왔다. 쿠팡이 적어도 2014년 이후부터는 실리콘밸리와 월가에서 전혀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어떤 투자자를 유치한다는 것이 IPO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IPO도 최소한 상장 1∼2년 전부터 끊임없는 시장과 교류하며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상장하려는 시장의 투자자들과 어떻게 접점을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은 사실 자문사를 고용하기 이전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이런 준비는 스타트업이 설립에서 상장까지 걸리는 시간이 10년 이상으로 길어지고 상장과 비상장사 투자사 간 경계가 이미 허물어진 미국 시장에서는 더더욱 중요한 요소다.

3) 지주사의 위치는 설립 단계에서부터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국적 논란으로 변질되기는 했지만 쿠팡이 애초에 선택한 ‘미국 지주 모회사’와 ‘한국 운영 자회사’ 구조는 장기적으로 미국 등 해외 IPO를 고려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설립 단계에서부터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는 모델이다. 쿠팡은 시드 단계부터 미국에서 투자를 유치했기 때문에 사실 이러한 구조가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분화된 구조는 꾸준히 해외 투자자를 유치하고 회계 및 내부 통제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운영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그 결과, 쿠팡은 궁극적으로 상장 단계에서도 법인의 위치에서 오는 제약 없이 빠르게 미국 상장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한국 스타트업이 해외 투자를 유치할 때 한국에 법인을 세우는 것이 불리하다고 여겨진 적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시리즈B 이상 성장 단계에서 법인의 위치가 더 이상 이슈는 아니라고 본다. 빠르게 성장하면서 독보적인 경쟁 우위를 갖춘 스타트업이란 것만 증명된다면 오히려 해외 투자자들이 앞다퉈 투자할 정도로 국내 스타트업들의 위상이 높아졌다. 배달의민족, 토스, 마켓컬리, 무신사와 같은 소위 한국의 유니콘 기업들도 국내에 법인을 둔 채로 해외 투자자 중심의 대규모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문제는 법인의 위치가 해외 IPO 단계에서 다시 이슈가 된다는 점이다. 해외 거래소는 한국 상법의 적용을 받는 한국 기업이 발행한 주식을 자국 거래소를 통해 사고팔 때 해외 투자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리스크를 일일이 모니터링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상법 체계 및 회계 기준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인정받는 미국, 영국, 싱가포르 또는 조세중립국으로 고려되는 케이맨제도나 버진아일랜드 같은 곳에 법인이 있을 것을 암묵적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기업이 이미 성장해 다수의 주주가 존재하는 경우 법인의 위치를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변경하는 ‘플립(Flip)’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해외 상장 시 모든 서류를 영어로 준비하는 것은 기본인데 모든 회계 및 내부 통제와 관련된 자료를 자국 거래소의 기준에 맞게 준비하는 것 또한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의 상장 방식이 자금 조달과 연계한 전통적인 IPO에서 스팩(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상장3 , 직상장(Direct Listing)으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이러한 선택지들을 온전히 가져가기 위해서라도 법인을 상장하고자 하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국가에 설립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스팩 상장의 경우 법률적으로는 합병 거래이기 때문에 스팩 합병 시 국경 간 거래에서 오는 대주주 및 투자자 세금 이슈까지 고려하기 시작하면 논의가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현재 미국 증시에는 약 250개의 중국 기업이 상장돼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은 미국 또는 케이맨제도와 같은 지역에 지주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징둥닷컴, 핀둬둬, 바이두와 같은 곳들도 애초에 케이맨제도에 지주사를 세우고 시작한 기업들이다. 중국 법인은 외자 유치가 어렵고 해외 투자자들이 느끼는 규제 리스크도 훨씬 크다. 이 때문에 글로벌 투자 유치와 해외 상장을 염두에 둔 많은 중국 스타트업이 처음부터 지주사를 해외에 세우는 것은 스탠더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최근에는 인도의 스타트업들도 적자 기업의 상장이나 해외 상장이 어려운 인도보다 해외 상장이 용이한 싱가포르에 지주사 법인을 세우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모든 스타트업이 해외에 법인을 세울 필요는 없다. 만약 한국에 고객이 있고, 한국 인재를 주로 채용할 계획이며, 국내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아 코스닥에 상장할 계획이라면 한국에 법인을 세우는 것이 최상이다. 스타트업에 있어 지주사의 설립, 특히나 사업 영위 목적이 아닌 순수 지주사의 설립은 사업을 해나가는 데 있어 전략적 의사결정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제품-시장의 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찾듯이 스타트업이 법인을 세울 때부터 ‘고객-인재-투자자의 적합성(Customer - Talent - Investor Fit)’을 고려해 최적의 지역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 IPO를 하겠다는 목표가 있다면 미국에 법인을 세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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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국 상장의 장단점 면밀히 고려해야

미국 증시는 상장 비용뿐 아니라 상장 유지 비용 또한 매우 높은 시장이다. 또한 철저히 주주자본주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장이다. 단순히 높은 밸류에이션과 차등의결권만 보고 미국 상장을 고려하기보다는 상장의 실익과 장단점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상장사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공모 시장을 통한 자본 조달의 용이성이다. 비상장사의 경우 높은 자본 비용을 지불하고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반면 상장사가 될 경우 다양한 자금 조달의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다. 특히 상장 이후에도 흑자 전환보다는 성장에 투자해야 하는 고성장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미국이 상장 당시뿐 아니라 상장 이후에도 자금 조달이 쉬운 시장일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밸류에이션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적으로 창업자가 지분율을 덜 포기하고도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상장 이후 밸류에이션이 하락하거나 조 단위 시가총액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시장 조달 비용이 예상외로 높아질 수도 있는 곳이 미국이다. 일례로 한국은 시가총액 1000억 원 수준의 코스닥 상장사도 이사회 결의만으로 시가에 전환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주주 이익에 반하는 전환사채는 발행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소형주의 전환사채 조달 금리도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미국은 주주행동주의와 소액주주 소송이 매우 빈번한 시장이다. 상장 이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 경우 상장 당시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기 일쑤다. 특히 중국의 루이싱커피가 분식회계로 상장 폐지를 당한 이후 미국에 상장한 중국 기업만을 대상으로 공매도 전략을 추구하는 펀드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로 움직이는 시장인 것이다.

예전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가 한국으로 유턴한 기업의 창업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미국 상장의 경험을 두고 “상장의 실익이 없었다”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상장의 기쁨도 잠시, 매 분기 회계감사 및 IR에만 수십억 원씩 지출하고 주가가 하락하자 다수의 소송에 휘말리며 자금 조달은커녕 법률 비용만 지출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자진 상장폐지를 할 때도 주주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3년이 넘는 기간을 써야 했다고 회고했다.

지마켓의 나스닥 상장 이후 15년 만에 다시 국내 기업의 미국 상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쿠팡이 그 문을 열었고 이제 K-유니콘이라 불리는 국내 기업들이 그 뒤를 따를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이 한국을 벗어나 해외를 무대로 활동하며 해외 상장까지 노린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며, 국내 스타트업들의 향상된 역량을 고려할 때 후속 사례도 곧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상장이라는 이벤트가 회사의 생애주기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미국 상장의 명암을 사전에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방향에 확신이 있다면 상장 이전부터 단계적으로 경영의 목표와 투자자 구성을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박제홍 아틀라스퍼시픽캐피탈 대표 jpakr@atlas-pac.com
박제홍 대표는 현재 투자 회사인 아틀라스퍼시픽캐피탈을 이끌며 글로벌 성장 단계 벤처기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에이티커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했으며 이후 국내 사모펀드 및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에서 국내외 스타트업과 중소•중견 기업 투자를 수행한 바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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