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순의 발로 뛰는 리테일 소식

오프라인 리테일, 미래는 있다
제품 체험 아닌 공간 경험형 매장에 주목

317호 (2021년 0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상황 속에서도 국내외 여러 기업은 오프라인 매장을 새로 열며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단순히 제품 체험에 집중해 왔던 오프라인 리테일은 비일상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매장으로 변모해 온라인이 주지 못하는 오감 만족을 선사할 것이며, 사람 간 소통과 만남을 되살리는 ‘커뮤니티의 장’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상업 시설(건물)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기능해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건물의 임차 브랜드까지 유행의 변화 속에서도 오래 살아남도록 하는 전략이 강조될 것이다.



2020년은 전 인류가 삶의 거의 모든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 버려야 했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었던 한 해였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누구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아마도 오프라인 리테일러들일 것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백화점들과 유명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잇달아 파산에 이르렀다. 국내에선 매일 같이 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던 식당들마저 문을 닫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자가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역시 “이제 오프라인 리테일은 미래가 없는가?”였다.

그러나 이런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2월26일 서울 여의도에서는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두 쇼핑몰인 더현대서울과 IFC에 고객들이 프로야구 관람을 하러 입장하듯 줄을 선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러한 오프라인 리테일러들은 어떻게 사람들을 집 밖으로 끌어낸 것일까?

1. 체험형 매장을 넘어선 경험형 매장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해서 매장을 만들고, 만화방과 인형의 집을 소재로 한 매장을 선보이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2021년 2월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을 새로 선보였다. 매장에 들어가는 순간 폭격을 맞은 듯한 건물 잔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매장 중앙에는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보행 로봇 ‘프로브’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움직이고 있다. 1 이곳에선 공간 구석구석을 감상하느라, 또 이해하기 어렵지만 신기한 조형물들을 감상하느라 정작 매장에서 판매하는 안경에는 쉽사리 눈이 가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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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몬스터에는 이렇게 공간을 디자인하고 조형물을 설치하는 전문가가 40명이나 일하고 있다. 안경 전문가보다도 많은 숫자다. 젠틀몬스터는 ‘이런 전략이 과연 구매로 이어질까?’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오프라인 매장에 많이 투자한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일 듯하다. 젠틀몬스터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구주(기존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를 통한 투자 유치 과정에서 1조2000억 원의 가치를 평가받으며 국내에서 열두 번째 유니콘 기업2 에 등극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연일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안경을 파는 젠틀몬스터는 왜 이렇게 공간에 ‘올인’하는 것일까? 젠틀몬스터 사례는 기존에 있던 ‘제품 체험형 매장’을 넘어서는 ‘공간 경험형 매장’이다. 브랜드 전략 전문가인 강민호 마케터는 본인의 저서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에서 체험과 경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체험은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만, 경험은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얼핏 비슷한 말로 보이지만 이 두 단어의 미묘한 차이로부터 오프라인 리테일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체험형 매장’은 말 그대로 고객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겪어보고 구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오프라인 매장 형태를 가리킨다. 세상의 모든 제품을 온라인상에서 구매하는 것이 익숙해진 지금, 안마 의자부터 침대 매트리스, 고성능 스피커를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 화장품과 같은 거의 모든 브랜드가 온라인이 제공할 수 없는 ‘제품에 대한 고객의 체험’을 오프라인 체험형 매장에서 제공하고 있다.

‘경험형 매장’은 이런 소극적인 의미의 제품 체험을 넘어 고객이 그 공간 안에서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하길 원한다. 강민호 저자가 책에서도 서술했듯 ‘체험은 순간적이지만, 경험은 정서로 이어져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좋은 기억들은 단순한 제품 구매를 넘어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 속에서 문을 연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은 이러한 경험형 오프라인 리테일의 결정판을 보는 듯하다. 더현대서울은 ‘리테일 테라피’라는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다. 아예 대놓고 ‘쇼핑’이 아닌 ‘힐링’을 하러 오라고 광고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상상하기 어려웠던 백화점의 모습이다. 백화점은 평당 매출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용 공간에 많은 면적을 할애하기 어렵다. 반면, 이곳은 전체 영업 면적의 절반을 통 크게 휴식 공간으로 할애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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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5층에 있는 ‘사운드 포레스트’는 인근 여의도공원 미니어처를 만들어 놓은 듯한 개방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통유리로 제작된 천장에서는 자연 채광이 쏟아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12m 높이의 인공 폭포에서 폭포수가 떨어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오면서 새소리도 들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도심 속 자연’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공간이다. 고객들은 쇼핑보다는 공간 자체를 즐기며 코로나19로 인한 오랜 답답함을 풀어낸다.

이렇게 매장 영업 면적을 휴식 공간에 할애했음에도 더현대서울은 가오픈 첫날부터 매출 목표치를 30% 초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가장 매출이 높았던 매장의 경우 일매출이 7억 원에 달했다. 결국 더현대서울의 성공은 새로운 브랜드를 늘어놓거나 더 많은 제품을 선보이는 데 있었던 게 아니다. ‘집콕’에 지친 고객들에게 잠시나마 답답함을 해소해준 것, 이제 마음껏 여행도 가지 못하게 된 현실 속에서 유럽의 어느 쇼핑몰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 것 등 ‘경험 선사’의 결과물이다. 규모에 상관없이 오프라인 유통 사업을 하는 모든 사업자와 기업이 고객의 새로운 경험에 집중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 고객과의 소통을 넘어선 커뮤니티 플랫폼

더현대서울이 문을 연 바로 그날 오전, 맞은편 IFC 건물에선 애플스토어가 새로 문을 열었다. ‘입장객 사전 예약’을 진행했음에도 1호 손님이 매장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50분. KTX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와 기꺼이 줄을 선 사람도 있었다. 이제 온라인을 통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애플 제품인데 왜 사람들은 이 애플스토어에 입장하기 위해 애를 썼던 걸까. 필자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커뮤니티’의 속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애플은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충성 고객들을 하나의 ‘애플 커뮤니티’로 관리해 왔다. 여기에 속한 애플의 얼리어댑터 그룹 일원들은 새로 생기는 애플스토어의 개장 날에 입장하면서 일반인들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특별한 만족감을 느낀다. 이는 BTS에 열광하는 팬클럽 ‘아미’ 커뮤니티가 가지는 ‘팬심’과도 유사한 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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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운 좋게도 공식 오픈 하루 전날 열린 ‘프리 오프닝’ 행사에 참여했는데 이날 행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세션이 바로 ‘Today at Apple’이라는 애플의 교육 커뮤니티 프로그램이었다. 오프라인 애플스토어 교육 프로그램은 애플의 전문 인력이 영상, 코딩, 사진, 음악, 그림, 디자인 등 애플 기기를 활용한 다양한 기법을 소개하고 참여자들과 같이 작품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애플 유저들의 커뮤니티 속성을 강화시키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한편 2013년 9월 서교동의 작은 주택을 개조한 동네 호텔로 출발해 2015년, 국내 최초의 코리빙&코워킹 브랜드로 새롭게 태어난 ‘로컬스티치’는 현재 12개의 지점과 700명의 회원을 보유한 공유 주거 브랜드다. 이 브랜드를 이끄는 김수민 대표는 로컬스티치를 ‘도시의 창의적 생산자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라고 말할 정도로 관계를 통한 커뮤니티 형성을 가장 큰 모토로 삼고 있다. 로컬스티치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수많은 젊은 크리에이터는 로컬스티치가 더 좋은 시설을 더 저렴하게 공급해서가 아니라, 이 오프라인 공간이 만드는 ‘라이프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로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역 기반의 콘텐츠를 공간에 녹여 네트워킹을 제안하고 이곳에 입주한 1인 창작자들의 재능과 역량에 투자해 수익을 공유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로컬스티치는 ‘내일상점’이라는 매니지먼트 플랫폼을 통해 1인 창업가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투자를 받아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을 구현했다. 연남동에서 말레이시아 현지 음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 ‘아각아각’은 로컬스티치가 직접 투자한 매장인데, 이곳의 말레이시안 셰프 ‘바시라’ 씨는 로컬스티치 3호점 커뮤니티의 일원이었다. 브랜드가 오프라인 공간을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만들고 커뮤니티 일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좋은 사례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갖는 반면, 같은 커뮤니티 일원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신뢰와 친밀감을 느끼는 새로운 집단주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가족 혹은 4명의 식사 자리에 선택받은 소수의 친구, 골프장에서 카트를 함께 타는 소수 일행과 함께할 때 비로소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미소 짓는다.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이 같은 새로운 집단주의 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국 사람은 사람과 함께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오프라인 스토어들이 매장을 기획할 때 반드시 되짚어 봐야 할 문제다.

3. 공간 브랜딩

필자는 상업 시설에 국내외 브랜드를 유치하며 상업 시설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10년 이상 해왔다. 그동안 필자의 회사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고민해 온 부분은 어떻게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고 그런 브랜드를 유치할까였다. 그러나 급변하는 소비자들의 취향 탓에 이렇게 발굴한 ‘핫’한 브랜드가 곧 ‘올드’한 브랜드로 변하는 현상을 목도했다. 아무리 당대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상업 시설도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지금의 임대차 계약 구조 아래서는 시즌마다 브랜드를 교체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이 때문에 상업 시설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오픈 때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사랑받는 상업 시설을 만들 수 있을까’를 이제 더 고민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건물의 브랜딩’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즉, 상업 시설 자체가 브랜드가 돼 충성 고객들을 만들면 그 안에 입점한 여러 테넌트(임차인)도 상대적으로 유행의 변화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단순히 상업 시설에 이름을 붙인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건물 하드웨어 자체가, 앞서 설명한 젠틀몬스터의 매장처럼 고객에게 영감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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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쿄 긴자 한복판에서 전 세계 관광객들의 사진 명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니콜라스 G. 하이에크(Nicolas G. Hayek)센터 3 는 이러한 건물 브랜딩의 효과를 잘 설명해 주는 장소다. 2007년 일본의 유명 건축가인 반 시게루가 설계한 이 건물의 1층에는 엘리베이터만 있고 매장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1층에 있는 여러 엘리베이터 중 하나를 타고 해당 매장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 엘리베이터 내부 역시 브랜드 쇼룸으로 꾸며져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각각의 브랜드 매장보다 건물 자체를 방문하는 것을 더 큰 목적으로 삼는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설령 내부에 브랜드 두세 개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건물 자체가 가진 브랜드 파워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근처 세로수길에는 올 5월 ‘피겨앤 그라운드’가 문을 열 예정이다. 6층짜리 벽돌 건물을 브랜딩해 새로 오픈하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매입한 이 건물에는 총 11개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들어갈 예정인데 기획 초기 단계부터 입점할 브랜드들의 의견을 반영해 건물을 설계했다. 각각의 매장이 오픈형으로 만들어져 고객들이 보기에 건물 전체가 하나의 대형 쇼룸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건물 내부는 투명한 실린더 계단을 통해 지하부터 6층까지가 한눈에 보이도록 설계했다. 이는 건물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포인트다. 이를 통해 기존 가두 상권의 상업 시설에서 생기는 고질적 문제점인 매장의 층별 편차, 위치별 편차가 최대한 극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프라인 리테일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유례없는 빠른 속도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코로나19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했을 뿐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5년 뒤에나 있을 법한 오프라인 리테일의 모습을 갑자기 마주하게 됐다. 그 덕분에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얻었고, 반대로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실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분명한 것은 오프라인 리테일러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1년간 누구보다 노력해 왔다는 사실이다. 오프라인 리테일은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또다시 어딘가에서 긴 대기 행렬을 만들며 오픈을 이어갈 것이다. 인간은 다섯 가지 감각을 가진 동물이다. 인간의 모든 구매 행위와 구매 과정 전부가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날이 오더라도, 결코 오프라인 리테일을 완벽히 대체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리고 여기에 오프라인 리테일의 미래가 있다.


김성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전무 dan.kim@ap.cushwake.com
김성순 전무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전략마케팅팀, PwC컨설팅을 거쳐 2008년부터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합류해 현재는 리테일 본부를 총괄하고 있다. 상업 시설의 기획, 임대차, 매입매각, 운영관리, 해외 브랜드 유치 및 브랜드 M&A 서비스를 국내외 투자기관, 디벨로퍼 등에게 제공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