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2. 팬데믹 이후의 공연예술계

“영상으로 표현한 공연은 영상일 뿐”
라이브를 뛰어넘는 매력 요소 갖춰야

310호 (2020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물리적으로 ‘지금, 이곳(here and now)’에 존재함으로써 완성되는 공연예술은 비대면 시대에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했다. 해외에서는 시공간의 제약이 불가피한 공연 무대를 영상으로 옮김으로써 제작 여건과 유통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시도가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됐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공연의 영상화 흐름은 코로나 전후로 명확히 나뉜다. 코로나 이전에는 라이브 무대를 단순 녹화해 집단 상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코로나 이후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스트리밍 유료화와 양식의 확장이 본격화한 것이다. 공연과 미디어의 접점을 찾는 노력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 시장 지위를 확보하려면 기획 단계부터 매체의 특성과 함께 소비자, 즉 고객의 니즈에 주목해야 한다.



비대면 시대 라이브 공연의 존재론적 위기

대다수의 산업이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입었지만 라이브 무대를 매개로 퍼포머와 관객이 같은 물리적 시공간, 즉 ‘지금, 이곳(here and now)’에 존재함으로써 완성되는 공연예술 분야의 타격은 특히 컸다. 2020년 2월 코로나 대응 단계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된 이후 다수의 공연이 중단되거나 취소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된 2020년 5월부터 조심스레 공연장의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8월, 다시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면서 ‘객석 띄어 앉기’가 의무화됐다. 규모와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대극장 공연의 경우 객석 점유율이 70% 안팎은 돼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이 같은 국내 공연계의 구조적 현실에서 한 칸 띄어 앉기 의무화는 공연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불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11월 이후 의무화 조치는 잠정적으로 해제됐으나 코로나 이전같이 안정적 운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1∼8월 공연예술 분야의 피해액은 1967억 원에 달하며1 객석 띄어 앉기가 시행됐던 9월 이후를 합산하면 그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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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간신히라도 라이브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국내에 비해 해외 공연계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세계 최대의 공연 시장인 브로드웨이는 2020년 3월 모든 공연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수차례 기간을 연장한 끝에 최소 2021년 5월까지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뉴욕을 비롯한 미국 공연계 전체가 라이브 무대의 존재론적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미국의 공연 전문지 ‘아메리칸 시어터(American Theatre)’가 2020년 9월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는 미국 내 60개 비영리 공연예술 단체의 약 3분의 1이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2021년 전면적인 운영 중단을 예상한다고 응답했다. 최대한 폐업을 피하기 위해 예산과 인력을 삭감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예상이다. 런던 웨스트앤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공연이 중단된 상태이며 급기야 1986년 개막 이래 34년 가까이 공연을 지속해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마저도 기약 없는 휴지기를 선택했다. 스위스 베르비에 음악축제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페스티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전 세계 유명 페스티벌도 취소되거나 프로그램이 축소됐다. 고사 위기에 놓인 라이브 무대는 온라인 비대면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며 대안 찾기에 나섰지만 영상 매체로 재매개된 양식으로는 공연예술의 존재론적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해온 공연예술이 미디어와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라짐(disappearance)’ 덕분이다. 즉,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경험이라는 공연예술의 본질에서 기인한 아우라(aura)와 희소성만큼은 대체될 수 없는 가치였다. 동시에 퍼포머와 관객이 ‘지금, 이곳’의 현장에서 공유하는 고전적 형태의 ‘라이브니스(liveness)’는 그 어떤 미디어보다도 즉각적이고 생생한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복제를 통한 대량 생산과 유통이 가능한 영상 미디어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과 달리 ‘비용 질병(cost disease)’이라는 고질적 한계를 안고 있는 공연예술이 지금까지 꾸준하게 탄탄한 소비층을 유지하며 발전해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매체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비용 질병이란 윌리엄 보몰(William J. Baumol)과 윌리엄 보웬(William G. Bowen)이 1966년 발행한 저서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Performing Arts: The Economic Dilemma)』에서 공연예술의 재정적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개념이다. 한마디로, 기술 진보를 통해 생산성을 쉽게 높일 수 있는 제조업과 달리 공연예술은 노동집약적인 대인 서비스 산업으로서 ‘생산성의 지체(productivity lag)’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보몰과 보웬에 따르면 제조업에서는 노동자가 원재료와 완성품의 매개체인 반면 공연자는 공연 활동을 통해 그 자체로 하나의 소비재가 된다. 따라서 기술의 발전과 관계없이 공연예술의 작업 방식은 실질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산성의 지체에도 불구하고 공연예술 종사자들의 인건비는 다른 경제적인 여건과 맞물려 상승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동 단위당 비용은 계속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연 단체는 비용이 사업 소득을 초과해 늘 재정적인 긴장 속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공연예술의 존재론적 가치이기도 한 일회성과 희소성이 경제 논리로는 존재의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코로나의 위협 속에서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 비해 공연예술의 피해가 특히 컸던 것도 바로 이런 ‘라이브’ 속성에 내재된 고질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다각화되는 공연의 영상화 사업

정상적인 공연장 운영이 어려워지자 전 세계 공연계는 관객을 만나는 대안을 찾기 위해 미디어 플랫폼으로 눈을 돌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 공연 영상화 사업을 운영해오던 해외 유명 단체들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유료로 서비스하던 공연 영상을 무료로 전환하거나 스페셜 온라인 콘서트를 개최해 코로나로 발이 묶인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국내에서도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교향악단, 국립국악원, 남산예술센터, 경기아트센터, 국립극단 등 공공 공연장과 단체들을 중심으로 기촬영된 공연 영상이 스트리밍 서비스됐다. 무관중 공연의 스트리밍도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는 공연의 영상화 사업의 시도들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이한 공연 단체들이 급조한 대응이었다. 위기의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예정된 작품들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미디어 플랫폼으로 이전된 공연 콘텐츠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작하고 유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사실 시공간의 제약이 불가피한 공연 무대를 영상으로 옮겨 유통함으로써 제작 여건과 유통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노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연 영상화의 초기 시도는 영화가 처음 탄생했던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술은 있으나 막상 담아낼 콘텐츠가 부족했던 영화는 연극의 소재를 빌려 빈틈을 채웠다. 예컨대, 1900년대 프랑스 영화사 ‘필름 다르(film d’art)’는 ‘카미유’와 ‘엘리자베스 여왕’ 등 주요 연극 작품을 필름에 담아 선보였다. 이들은 연극 무대를 그대로 카메라에 옮긴 ‘영화로 찍은 연극(photographed theatre)’에 머물기는 했으나 극장 밖에서 관객들이 연극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해 연극을 스튜디오로 옮겨서 찍는 형태로 이어졌으나, 이 또한 서로 다른 두 매체를 효과적으로 결합해 공연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했다기보다는 단순 교차점에서의 시도에 그쳤다. 마찬가지로 TV의 발명 이후에는 연극과 뮤지컬 등의 무대를 TV 화면으로 옮긴 프로그램이 다수 제작됐다. 브로드웨이의 전성기에는 뮤지컬 ‘신데렐라(1957)’처럼 TV 화면용으로 먼저 제작된 뒤 역으로 무대에 올려 성공한 사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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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다양한 형태로 발전돼 온 공연의 영상화가 새로운 분기점을 맞았던 것은 200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시즌 공연을 영화관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한 최초의 사례, ‘더 맷: 라이브 인 HD(The Met: Live in HD)’ 시리즈를 론칭하면서부터다. 뒤이어 2009년 영국 국립극장의 NT 라이브(Live)는 라이브캐스트 시네마 시어터(Livecast Cinema Theatre, LCT)를 연극과 뮤지컬 장르로까지 확장했다. 공연 평균 티켓 가격의 10∼20% 정도의 비용으로 공연장까지 이동할 필요 없이 편리하게 라이브 중계로 관람할 수 있는 LCT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이후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볼쇼이 발레단 등 많은 공연 단체가 공연 영상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온라인 스트리밍을 목적으로 구축된 공연 영상화 플랫폼들도 확장됐다. 라이브 무대의 물리적 환경을 넘어서 가까운 상영관 또는 컴퓨터나 TV,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해 고품질의 영상화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통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예술의전당의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이 2013년부터 지속적으로 운영돼 오다가 코로나 이후 눈에 띄게 이용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역사가 오래되고 관객층이 두터운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에서 영상화된 공연의 성공 사례는 아직까지는 팬덤이 두텁게 형성돼 있는 K-POP 등 특정 장르에 국한된다. 그동안 홀로그램 콘서트, 홀로그램 뮤지컬 등 테크놀로지와 대중문화 콘텐츠가 결합된 IT 융합 콘텐츠를 꾸준히 시도해온 SM엔터테인먼트는 코로나 이후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해 온라인 콘서트 플랫폼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를 선보였다. BTS 또한 미디어 기술을 적극 활용해 ‘멀티뷰 라이브 스트리밍’과 클라우드 기반의 인터랙션 서비스를 통해 생동감 있는 공연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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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온라인에서의 무대 구현과 관객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K-POP 콘서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 크다. 아티스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대중음악은 공연 비즈니스이기에 앞서 음악 비즈니스의 연장선으로, 이미 두터운 글로벌 팬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연극이나 뮤지컬과 같이 내러티브의 몰입이 중요한 극예술 장르에서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자칫 흐름을 끊을 수 있다. 극과 유기적으로 결합되거나 적어도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활용돼야 하다 보니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공연으로의 확장폭이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게다가 영상 제작의 권리 확보가 수월한 국내 창작 공연으로 범위가 좁아지는 것도 극예술 장르의 영상화 사업이 넘어야 할 산이다. 이미 해외 시장에서 흥행성을 입증한 라이선스 공연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와 선호도가 낮기 때문이다.

물론 극예술 장르라고 코로나로 오프라인 공연에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시작된 변화는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의 유료화다.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어쩌면 해피엔딩’ 등의 작품은 실황 녹화 영상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이 유료 판매됐으며 ‘귀환’과 ‘광염소나타’ 등의 작품은 라이브 무대가 온라인으로 유료 생중계됐다. 초기 단계인 만큼 영상화의 미학적•기술적 퀄러티 보완, 작품과 배우의 팬덤에 기대는 한계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히지만 새로운 시장성을 타진함으로써 공연 산업 확대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연극, 뮤지컬 부문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움직임은 공연을 ‘스낵 컬처’인 웹 콘텐츠의 문법으로 옮기는 새로운 양식으로의 확장이다. 예술의전당은 2020년 11월1일 짧은 분량을 특징으로 하는 숏폼 콘텐츠 ‘플레이 클립스(Play Clips)’를 선보였다. ‘클립으로 보는 연극’을 표방한 ‘플레이 클립스’는 연극을 5∼6분 내외의 짧은 비디오로 제작해 제공한다. 첫 작품으로는 2015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을 선보였는데 90분 분량의 공연을 40분으로 압축해 총 5개의 비디오 클립으로 쪼개어 구성했다. 예술의전당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으며 곧이어 두 번째 작품으로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단막극이 서비스될 예정이다.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 ‘엘리자벳’ ‘웃는 남자’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대형 뮤지컬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의 계열사 EMK엔터테인먼트는 국내 대표 MCN(멀티채널네트워크) 기업인 샌드박스와 함께 웹 뮤지컬 ‘킬러 파티(A Killer Party)’를 2020년 11월20일 론칭했다. 이 웹 콘텐츠는 샌드박스가 11월16일 종합 미디어 그룹 IHQ(싸이더스HQ)와 함께 새롭게 개국한 디지털 콘텐츠 케이블TV ‘샌드박스 플러스’를 통해 3일간 총 9개의 에피소드가 순차적으로 방영됐으며 앞으로 네이버V라이브를 비롯한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과 OTT 등을 통해 제공될 예정이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약 10분 안팎의 숏폼 콘텐츠로 제작된 ‘킬러 파티’는 앞서 8월 미국에서 제작된 온라인 뮤지컬의 한국 버전이다.

공연과 숏폼 콘텐츠의 만남은 긍정적인 시도다. 일반적인 연극과 뮤지컬의 러닝타임은 짧게는 100분 안팎에서 길게는 180분 정도다. 다시 말해, 무대 공연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길 경우 관객의 몰입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관 또는 공연장과 같은 공공장소에 다른 관객들과 함께 관람하는 경우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음질과 화질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랙션이 배제된 채 온라인으로 개별 관람을 하는 환경에서 긴 시간 집중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온라인 미디어 이용자들은 웹 드라마나 웹 예능과 같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고 편리한 이용이 가능한 숏폼 포맷에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다. MBC, tvN 등 방송사에서 젊은 시청층을 공략하기 위해 숏폼 예능을 꾸준히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추세를 방증한다. 2019년 나영석 PD가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로 5분 편성 예능을 최초 시도한 데 이어 ‘나 혼자 산다’의 스핀오프인 ‘여은파’ 등과 같이 기존 방송에서 확장된 예능 프로그램이 유튜브를 통한 숏폼 콘텐츠로 제작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플랫폼으로의 영역 확장에 나선 공연계에서도 이러한 경향 숏폼 연극과 뮤지컬을 시도하기에 이른 것이다.

공연 기반 콘텐츠에 군침 흘리는 IPTV, OTT

이처럼 제작 목적과 유통 플랫폼의 측면에서 국내 공연의 영상화 흐름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명확히 나뉜다. 코로나 이전에는 현장 관객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영화관이나 공연장 등에서 ‘집단 상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라이브 무대를 단순 녹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었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공연예술 단체들이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스트리밍 유료화와 양식의 확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라이브 무대의 안전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공연예술과 플랫폼의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본격화한 것이다. 더욱이 라이브가 여의치 않은 여건이 지속되면서 애당초 영상화를 목적으로 공연을 제작하고 기술을 접목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즉, 예전에는 현장의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퍼포머의 무대를 더 널리 유통하기 위해 영상화를 수단으로 택했다면 이제는 영상화가 목적이 돼 온라인 관객을 타깃으로 퍼포머를 무대에 세우는 형태가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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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같은 변화가 반드시 공연예술이 비대면 시대에 갈 길을 잃고 새로운 활로를 필요로 하게 돼 나타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코로나 위기가 눈앞에 닥치면서 다른 문화예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양식을 고수해 왔던 공연계가 비로소 미디어 시대로의 전환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맞다. 하지만 공연 영상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미디어 플랫폼으로 넘어온 배경에는 미디어 기업 간 과열된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기존 방송사를 넘어 IPTV, OTT를 포함한 미디어 채널은 넘쳐나지만 변화무쌍한 시청자를 끌어들일 경쟁력 있는 콘텐츠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창기 영화 촬영 기술이 등장했을 때 소재의 빈곤을 메우기 위해 연극이 스크린으로 넘어오고, 2010년대 이후 미국 지상파 TV가 시청률 하락으로 고전할 때 뮤지컬이 방송 스튜디오에서 생중계되는 ‘TV 뮤지컬’의 형태로 영역을 확장한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이런 상호매체적 발전의 양상은 새로운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미디어 기업들의 니즈와도 맞물려 있다.

점차 온라인 기반으로 수용 행태가 바뀌고 1인 미디어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국내 OTT 사업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에 놓여 있다. 대표적인 OTT 플랫폼으로는 ‘푹(POOQ)’과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oksusu)가 결합한 ‘웨이브(WAVVE)’, CJ ENM과 JTBC가 손잡은 ‘티빙(TVING)’, CGV와 업무 협약을 맺은 ‘왓챠(watcha)’, KT와 LG유플러스에서 각각 운영하는 ‘시즌(Seezn)’과 ‘U+모바일tv’ 등이 있다. 국내 OTT 시장의 2020년 매출액이 1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 중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진 플랫폼은 단연 시장점유율 약 40%를 차지하는 넷플릭스(Netfilix)다. 케이블, 종편은 물론 지상파 채널들도 자사 콘텐츠를 넷플릭스를 통해 유통하고 있으며 통신사들도 앞다퉈 IPTV와 넷플릭스의 결합 상품을 구성해 서비스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론칭한 지 1년여 만에 무서운 속도로 넷플릭스를 맹추격하고 있는 또 다른 글로벌 OTT, 디즈니+의 국내 상륙도 예정돼 있고, 네이버, 카카오, 쿠팡까지 OTT 시장 진입을 준비 중이어서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OTT 전쟁터에서 플랫폼들은 경쟁력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됐고, 새로운 콘텐츠 소재인 공연예술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한 예로, LG유플러스는 올해 5월부터 ‘집으로 온 공연’을 앞세우며 대학로 연극과 뮤지컬 24편을 영상화해 U+tv와 U+모바일tv에 ‘대학로 라이브(Live)’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미 25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지난해 오프라인 연극 관람객의 14.7%에 달하는 숫자다. 또한 LG아트센터와 손잡고 디지털 스테이지 ‘컴온(CoM On)’을 론칭해 해외 유명 단체들의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2020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제17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영상을 독점 제공하는 등 공연 콘텐츠를 계속해서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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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유플러스는 이외에도 글로벌 통신사 및 제작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5G 콘텐츠 개발에 힘을 쏟으면서 ‘모차르트’ ‘킹키부츠’ 등의 유명 뮤지컬과 컬래버레이션해 증강현실(AR) 콘텐츠를 개발했다. 이제는 이들 콘텐츠를 U+AR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비스하면서 크로스 마켓의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뮤지컬의 주요 장면과 음악 넘버, 배우들의 생생한 모습을 AR 영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은 관객들에게 미디어 기술을 입힌 공연 콘텐츠를 향유하는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KT 역시 올해 7월부터 회사의 OTT인 ‘시즌’을 통해 공연예술을 담은 오리지널 콘텐츠 ‘뮤:시즌’을 제작해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매회 한 편의 뮤지컬을 선정해 집중 조명하는 음악 토크쇼다.

미디어 기업에 공연 콘텐츠는 나날이 다양해지는 시청자들의 다양한 취향과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유용한 재료다. 게다가 이미 무대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와 완성도를 확보한 작품을 오리지널 콘텐츠로 선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 공연계의 주요 관객층이 해외와 달리 20∼40대 젊은 층에 집중돼 있는 점도 주요 타깃층이 겹치는 OTT 기업들이 공연 제작사와의 적극적인 컬래버레이션을 타진하는 이유다.

한편, 해외에는 공연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OTT 플랫폼도 이미 수년간 운영 중이다. 대표적인 공연예술의 스트리밍 플랫폼은 2009년 서비스를 개시해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올드 빅 시어터, 영 빅 시어터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디지털 시어터(Digital Theatre)’다. 2013년부터 운영 중인 ‘브로드웨이HD’도 연극, 뮤지컬, 무용, 콘서트, 공연 관련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유료 서비스하고 있다. 또한 올해 5월 론칭한 미국의 ‘브로드웨이 온 디맨드(Broadway On Demand)’는 공연 작품 이외에도 아티스트의 콘서트, 토크쇼, 교육 프로그램 등 공연의 팬뿐만이 아니라 종사자들을 겨냥한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자체 제작해 제공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영국의 ‘스테이지투뷰(Stage2View)’가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웨스트앤드의 다양한 연극과 뮤지컬을 들고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한편, 대형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디즈니+도 코로나로 불이 꺼진 브로드웨이 공연장에 새로운 통로를 열어주고 있다. 2020년 7월 브로드웨이 메가히트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이 2016년 촬영했던 오리지널 캐스트 공연의 영상을 영화관 상영 대신 디즈니+를 통해 독점 공개했으며 2021년으로 개막이 미뤄진 신작 뮤지컬 ‘다이애나(Diana)’도 영상으로 선제작해 넷플릭스를 통해 첫선을 보이게 됐다. 물론 대형 글로벌 OTT의 경우 두 작품처럼 이미 흥행성이 입증됐거나 어느 정도의 브랜드 가치가 보장된 콘텐츠를 선별적으로 제공하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공연예술의 미디어 플랫폼 진출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에 목말라 있는 OTT 플랫폼과 라이브 무대의 통로가 막힌 공연계의 상호 보완적인 전략으로서 지속적으로 확대되리라 기대한다.

공연과 미디어의 접점,
소비자에게서 해답 찾아야

공연과 영상 기술의 접목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행보이며 코로나는 이 흐름을 다소 앞당겼을 뿐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라이브니스를 축으로 매체 특성이 명확히 구분되던 두 분야의 접점을 넓혀가는 시도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국내에서는 팬데믹 시대 라이브 공연의 존재론적 위기가 당혹스러운 게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첫째, 라이브 무대를 영상화하는 데 필요한 제작 기반과 유통 체계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등장해야 한다. 해외에는 공연 영상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거나 유통하는 회사들이 점차 증가해 왔다. 가령, Live in HD와 NT 라이브, 볼쇼이 발레단 등의 공연은 전문 배급사인 ‘바이 익스피어리언스(By Experience)’에 의해 전 세계로 유통되고 있다. 바이 익스피어리언스는 2003년부터 250개가 넘는 작품을 75개국 이상에 공급한 대형 배급사다. 더불어 공연 영상의 전문 제작 인력을 육성하고, 온라인 유통이 가능한 스트리밍 플랫폼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빠른 시일 내에 전문적인 시스템을 갖추기가 어렵다면 LG 유플러스, KT 같은 통신사나 국내 OTT 기업과 긴밀한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다.

둘째, 영상화를 목적으로 공연(혹은 공연에서 파생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에도 미디어 기업과의 공조를 적극 꾀해야 한다. 다만, 단순히 일회성 시도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시장 지위를 확보하려면 기획 단계부터 공연과 미디어의 매체적 특성과 함께 소비자, 즉 고객의 니즈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콘텐츠 소비는 더욱 분화하고 있으며 능동적이다. 따라서 기획자는 다양한 소비층을 공략할 전방위적인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2020년 10월 KBS에서 방영한 나훈아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에서 화제가 된 ‘테스형’ 무대는 중장년층에게는 레전드의 귀환으로 향수를 자극했고, 젊은 층에게는 B급 정서와 맞물리며 시대를 관통하는 스타의 재발견으로 주목받았다. 방영 직후 10∼40대를 중심으로 탄탄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는 EBS의 ‘자이언트 펭TV’에서 패러디 무대를 선보인 것만 봐도 기존 세대 및 소비층의 구분을 뛰어넘는 미디어 소비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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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영상화된 공연을 사업화하기 위해서는 공연의 관객을 넘어 미디어 이용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따라서 공연이 낯설고 영상 미디어가 익숙한 수용자의 취향과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크로스 미디어 마케팅’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인접 문화예술 장르인 영화, 드라마, 서적, 웹툰 등 다양한 장르의 유사 취향 콘텐츠와의 제휴 패키지 구성, 큐레이션 마케팅을 통한 콘텐츠 추천 또는 할인 서비스 제공 등이 가능하다.

공연과 영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만큼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다. 영상화된 공연 또는 공연 미디어 콘텐츠를 라이브 무대의 대안이 아닌 별개의 매체, 포맷으로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 공연 기획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객을 공략하는 창의적인 발상을 시작해야 한다. 막연히 무대를 영상에 담아내거나 ICT와 콘텐츠의 접목을 시도할 게 아니라 유통과 수용 환경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때 이전에 없던 콘텐츠를 더욱 도전적으로 기획•제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예컨대, 몇 년 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 고’와 같은 모바일게임을 응용해 공연의 내러티브와 캐릭터를 AR 기술과 결합해 온라인 게임을 매개로 풀어내는 방식이 가능하다. 또는 단순 관람을 넘어 체험으로서의 공연을 확장하는 시도로서 VR를 활용해 보다 개인화된 경험에 집중하고 이머시브(immersive) 공연을 다각화하는 방식도 유용하다. 라이브 무대 공연의 ‘비용 질병’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미디어 영역으로의 확장을 꾀할 때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공연 매개 콘텐츠의 소재나 양식도 더욱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으로 재매개된 공연은 결국 영상이다. 미디어 플랫폼으로 넘어온 이상 미디어 비즈니스의 큰 구조 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해외의 유명 공연 단체나 K-POP 가수처럼 이미 브랜드가 형성돼 있거나 고정 팬층이 두텁지 않다면 단기간에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영상의 퀄러티를 높이고 라이브 무대와 구별되는 매력과 재미를 갖춘 새로운 포맷으로서의 가치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공연의 세부 장르나 규모, 형식 등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령, K-POP 콘서트는 ICT를 적극 활용해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관객과 쌍방향 상호작용으로 현장감을 더할 수 있지만 관객의 직접 개입이 어려운 극예술 장르는 공연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거나 스페셜 영상을 삽입하는 등 영상에 고유의 재미를 더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계를 섣불리 예측하긴 힘들다. 하지만 소비자는 개인화된 경험에 더욱 익숙해질 것이고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미디어 패러다임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소비자를 잡을 수 있는 창의적 기획을 통해 더욱 대담한 시도를 이어나가야 한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공연예술경영 MBA 교수
필자는 경희대 경영대학원 공연예술경영 MBA 주임 교수이자 공연 칼럼니스트와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컬럼비아대에서 공연예술경영학(Theatre Management and Producing)으로 석사 학위를, 연세대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 뮤지컬 본고장에 살아 있는 예술경영』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4호 세계관의 세계 2021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