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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디지털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 ‘플레이리스트’

‘에이틴’ 시리즈로 10대 사이 거대한 팬덤
“작게 실험해서 반응 보고 크게 키운다”

배미정,이승윤 | 299호 (2020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디지털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 플레이리스트가 고속 성장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1. 또래 문화에 민감한 10대를 타기팅해 몰입도 높은 팬덤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2. 분명한 목적(Object)과 구체적인 핵심 결과(Key Result)를 공격적으로 설정해 구성원을 정렬시키는 동시에 개개인의 능력치를 극대화했다.
3. 스토리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구축해 캐릭터들의 현실성을 더함으로써 간접 광고와 브랜디드 콘텐츠의 효과를 배가했다.
4.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마케팅, 비즈니스팀 등 비제작팀들이 참여해 IP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5. IT 서비스 회사처럼 작게 실험해 소비자 반응을 테스트한 뒤 스케일업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황지수(단국대 경영학과 4학년) 씨와 이지연(한양대 교육공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20년 현재, 10대들의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드라마는 무엇일까?

1990년대 말 ‘학교’ 시리즈, 2000년대 초 ‘반올림’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면 2020년에는 웹드라마 ‘에이틴’ 시리즈를 빼놓고서 10대를 이야기할 수 없다. 파급력으로 치면 과거 TV 드라마에 비할 데가 아니다. 에이틴은 2018년, 2019년에 방영된 시즌 1, 2를 통틀어 4억8000만 뷰 수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즌이 끝난 지 1년이 지난 현재도 10대들 사이에서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드라마 방영 직후 팬들의 성원으로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팬미팅이 열렸다. 또 드라마 주인공, OST 가수와 함께하는 페스티벌도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1

에이틴 주인공으로 얼굴을 처음 알린 신인 배우들은 10대들의 워너비로 등극, 현재 각종 광고와 지상파 방송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에이틴의 OST를 부른 아이돌 그룹 세븐틴은 2018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에서 ‘베스트 OST’상을 수상했다. 드라마에 등장한 뷰티와 문구, 잡화 상품들도 불티나게 팔렸다. 10대 팬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표정과 말투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에이틴 제작사 플레이리스트의 박태원 대표는 “방영 당시 고등학교 교내 방송에서 에이틴 OST가 흘러나오고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에이틴을 돌려 본다는 팬들의 얘기에 에이틴이 10대들의 대화 중심에 자리 잡았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에이틴의 인기에 가려진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대박 작품을 제작한 회사가 업력이 길거나 인력과 자원이 풍부한 대형 제작사가 아닌, 설립된 지 2년이 채 안 된 신생 스타트업이라는 점이다. 플레이리스트는 네이버 자회사인 스노우 안에 있던 일개 팀이었다가 2017년 5월 네이버 웹툰과 스노우가 공동 출자해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킨 스타트업이다. 에이틴은 현 박태원 대표가 2017년 말 CEO로 합류해 첫 도전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당시만 해도 플레이리스트는 대학생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그린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이하 연플리)’ 첫 시즌으로 페이스북에서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수준이었다. 전체 직원 수가 30명이 채 안 됐다. 에이틴 프로젝트는 모든 측면에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타깃 시청자 연령대는 20대에서 10대로, 메인 플랫폼은 페이스북에서 유튜브로 바꿨다. 스케일은 기존 8부작에서 24부작으로 대폭 커졌다. 이전 작품의 3배가 넘는 제작비 예산이 책정됐다. 보통 한 달 정도면 충분했던 제작 기간도 촬영 및 방영 포함 9개월이 걸릴 정도로 시간적인 투자도 컸다. 회사 인력의 절반 이상이 꼼짝없이 이 작품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제작된 에이틴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플레이리스트는 모바일 콘텐츠의 주 소비자인 10대를 사로잡은 디지털 기반 스튜디오로 거듭났다. B2B뿐 아니라 커머스 등 B2C로 IP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하는 데도 성공했다.

에이틴으로 이름을 날린 플레이리스트는 뒤이어 연플리(시즌 4), 엔딩 시리즈(이런 꽃 같은 엔딩, 최고의 엔딩, 또한번 엔딩) 같은 시즌제 웹드라마를 줄줄이 흥행시키면서 10대, 20대들이 가장 자주 찾는 웹드라마 채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플레이리스트 유튜브 채널의 커뮤니티는 현재 휴방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어서 빨리 ‘봄방학’이 끝나길 기다리는 팬들, 애칭 ‘러플리(러브 플레이리스트)’들의 댓글 반응이 뜨겁다. 최근에는 지상파 TV와 공동 제작해 동시 방영한 드라마 ‘엑스엑스(XX)’가 흥행하면서 20대뿐 아니라 30대 이상으로 시청자 외연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년간 놀라운 성장세를 인정받아 지난해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알토스벤처스로부터 53억 원의 외부 투자도 유치했다. 현재 플레이리스트는 글로벌 누적 조회 13억 뷰, 전 세계 구독자 약 1000만 명을 확보하고 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플레이리스트는 어떻게 차별화된 입지를 구축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박태원 대표, 강명희 CMO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플레이리스트의 콘텐츠 차별화 전략과 그런 전략을 뒷받침한 OKR 중심의 일하는 방식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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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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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는 웹드라마를 제작하는 디지털 콘텐츠 스튜디오로 2017년 5월 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 웹툰과 스노우가 공동 출자해 설립했다. 2017년 12월 구글코리아 출신의 박태원 대표가 선임됐다. 대표작으로는 ‘에이틴’ ‘연애플레이리스트’ ‘엔딩 시리즈’ ‘엑스엑스(XX)’ 등이 있다. 네이버TV,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작품은 TV에도 동시 방영했다. 주 수익원은 웹드라마를 통한 간접 광고(PPL)와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 작품 유통권 판매 등이 있으며 OST, 웹툰, 커머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직원 수는 90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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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10대 팬덤인가?

2017년 12월 플레이리스트에 합류한 박 대표의 비전은 뚜렷했다. 그는 CNPD(Contents, Network, Platform, Device)로 요약되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먹이사슬에서 콘텐츠의 주도권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글 코리아와 유튜브 코리아에서 7년간 일하며 IT 대기업들의 치열한 플랫폼 전쟁을 직접 지켜본 그다. 특히 유튜브에서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를 교육하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콘텐츠의 힘을 실감했다. 평소 디즈니와 마블 영화를 즐겨보던 그는 콘텐츠 중에서도 스토리 포맷의 확장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꿈꿔온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구글을 뛰쳐나왔다. “외부 콘텐츠에 의존하는 플랫폼들은 결국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게 된다. 그래서 IT 기업들 간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콘텐츠 비즈니스가 주도권을 갖고 성장할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아시아의 디즈니’를 만들겠다는 담대한 꿈을 스타트업 플레이리스트에서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에이틴 프로젝트는 플레이리스트에 합류한 그가 새로운 비전을 향해 도약하고자 사활을 걸고 도전한 실험이었다. 그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가장 먼저 팀원들과 프로젝트의 분명한 목적(Object)을 공유한다. 에이틴 프로젝트의 목적은 바로 “우리나라 10대들의 대중문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만들자”였다.

콘텐츠의 핵심 타깃을 10대로 잡은 것은 당시 굉장히 중요한 의사결정이었다. 콘텐츠 비즈니스에 팬덤이 중요하며, 특히 다른 연령대 집단보다 10대를 타깃으로 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0대들만이 가진 문화 코드는 바로 ‘또래 문화’다. 10대들은 일정한 시간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동 생활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는 또래 집단이 많이 보거나 사용하는 것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이 크다.

따라서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10대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들을 성공적으로 론칭하면 빠른 시간 내에 10대들의 핵심 문화권에 진입할 수 있다. 에이틴은 캐릭터의 디테일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 프로젝트였다. 제작팀은 캐릭터의 비주얼뿐 아니라 성격, 제스처, 습관 등에 관해 백문백답을 만들어 정리할 정도로 캐릭터의 특징을 구체화했다. 포커스그룹 인터뷰, 설문 조사,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탐색 등 10대에 관한 온갖 리서치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10대 시청자들을 감동시키고 더 나아가 그들의 문화를 선도하려면 그들에게 익숙한 ‘공감’뿐 아니라 낯선 ‘동경’까지 이끌어 낼 수 있는, 즉 10대들이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필요했다. 플레이리스트가 추구하는 ‘공감’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 콘텐츠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쉽게 투영할 수 있게 만드는 수준 이상이었다. 시청자가 캐릭터를 동경하고 캐릭터가 느끼는 바를 마치 자신이 느끼는 것 같이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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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틴의 여주인공 도하나의 캐릭터가 딱 그랬다. 똑 단발이지만 양말은 짝짝이로 신고, 겉으로는 도도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도하나의 모습은 평범한 고등학생이면서도 주변에 흔치 않는 매력을 발산했다. 팬들은 이런 도하나가 마치 실존 인물인 양 공감하고, 또 도하나가 되고 싶어 했다. 도하나의 스타일링과 행동, 말투를 따라 하는 ‘도하나병’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마케팅팀은 에이틴이 방영하는 시기에 도하나 개인이 운영하는 SNS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면서 캐릭터의 현실성을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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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희 CMO는 “팬들은 도하나란 캐릭터가 마치 실존 인물인 것처럼 살아 숨 쉬는 데 환호했다. 이런 채널들을 통해 팬들의 충성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10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팬덤은 다른 세대로 확장시키기에도 유리하다. 이들 10대도 시간이 지나면 20대가 되고, 대학생이 된다. 한번 플레이리스트가 만든 세계관에 몰입하게 된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플레이리스트의 20대 대학생용 콘텐츠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동시에 10대, 그중에서도 딸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럽게 40대, 50대로 시청자층이 확장된다. 실제로 플레이리스트는 덕질을 하는 고3 캐릭터와 현실 감각이 없는 딸에게 ‘팩트 폭격’을 하는 엄마가 티격태격하는 드라마 ‘인서울’을 만들어 콘텐츠의 세대 확장을 시도했다. 세대 확장을 위해 어설프게 40대, 50대용 콘텐츠를 만드는 것보다는 10대들이 해당 콘텐츠를 보면서 “엄마 같이 보자. 이거 재미있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2. 공격적인 OKR로 한계를 넘다

“우리나라 10대들의 대중문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만들자.”

박 대표가 사내 공유한 에이틴 프로젝트의 목적은 언뜻 보면 이상적이고도 무모한 도전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목표는 리더 개인의 치기 어린 욕심도, 허무맹랑한 이상도 아니었다. 목적(Object)은 구성원들이 함께 달성해야 할 핵심 결과(Key Result), 즉 ‘시청 시간’으로 구체화했다. 추상적인 목표를 손에 잡히는 수치로 현실화한 것이다. 박 대표는 “정성적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그에 걸맞은 정량적인 수치가 필요하다. 에이틴의 경우, 예컨대 중•고등학생 인구의 70% 이상은 시리즈 전체를 꾸준히 봤다는 가정이 성립해야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을 역산한 시청 시간을 우리가 달성해야 할 정량적 목표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구글에서 일하면서 체화한 ‘OKR’ 중심의 일하는 방식을 플레이리스트에 이식했다. OKR는 목표(Object)와 핵심 결과(Key Result)의 약자로 기업과 팀, 혹은 개인이 목표를 달성하고 협력하기 위해 세우는 일종의 약속을 의미한다. 목표가 성취해야 할 대상이라면, 핵심 결과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의미한다. OKR는 구성원들을 분명한 목표를 향해 정렬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려면 측정하고 검증할 수 있는 핵심 결과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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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는 왜 하필 ‘시청 시간’에 초점을 맞췄을까? 2017년 말은 페이스북이 알고리즘을 바꾸면서 사용자들의 활동성이 줄어든 반면, 유튜브가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페이스북이 메인 플랫폼이었던 플레이리스트에도 유튜브 플랫폼에 맞는 전략의 변화가 필요했다. 유튜브에서 일했던 박 대표는 텍스트와 이미지 중심 플랫폼인 페이스북과 달리 영상 플랫폼 유튜브에서는 조회 수, 친구 공유보다 절대적인 누적 시청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알고리즘 기반 추천과 공유에 더 유리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박 대표는 “조회 수보다 시청 시간 지표에 집중함으로써 영상 콘텐츠의 길이를 늘이고, 한 번 보기 시작한 사람이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영상을 보도록 영상 초반의 집중도를 높이면서 섬네일과 제목도 바이럴보다는 콘텐츠에 대한 흥미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핵심 결과는 구성원 모두에게 목적지로 나아가기 위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플레이리스트에서 ‘시청 시간’은 프로젝트 기간 내내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이 됐다. 구성원 각자의 전문성과 성향이 다를지라도 논의의 초점은 결국 “10대들이 진정 원하는 게 맞을까? 10대들이 여기에 열광할까? 10대들이 더 많이 보게 할 수 있을까?”로 모였다. 작가, 연출, PD뿐 아니라 디자인, 사업팀 등 관련 모든 팀원이 작품의 섬네일 디자인, 대사 톤 하나하나까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OKR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지를 찾아 나갔다. 30대 중반인 박 대표도 생활 패턴까지 바꿀 정도로 몰입했다. “출퇴근길, 틈날 때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최신 아이돌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들었다. 10대들, 특히 여성들이 즐겨 찾는 장소와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다니면서 요즘 유행이 무엇인지 공부했다.”

OKR는 작품별 방영 시점과 인원과 예산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에이틴 프로젝트에는 이전 시리즈의 3배에 달하는 8억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신생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큰 금액일지 몰라도 OKR에 비하면 과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당시 플레이리스트 규모에 비하면 대중문화를 바꾸겠다는 OKR 자체가 너무 높은 수준은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박 대표는 “OKR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한다”면서도 구성원들과 협의해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해야 겨우 달성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적으로 높게 설정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구성원 모두의 업무 몰입도가 높아지고, 구성원과 조직 모두 한계를 시험하면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낮으면 구성원들은 안정적으로, 쉬운 선택지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목표가 높으면 구성원들이 기존에 해오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도모하게 되고, 스스로 최소한의 리소스로 최대의 임팩트를 낼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된다.”

플레이리스트가 OKR에 따라 일하는 방식은 에이틴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작품에도 적용된다. OKR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핵심 결과를 통한 목표 달성률도 높아지고 있다. 플레이리스트는 예산, 편성 시기, 장르적 성격, 플랫폼 특성 등 자체적으로 설정한 10여 개 변수를 고려해 달성해야 할 ‘시청 시간’의 정량적 수치를 계산하고 있다. 박 대표는 “그간 작품별 OKR 중심으로 일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이제 내부적으로 정성적인 목표가 설정되면 그것을 수치화하는 작업은 공식을 통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품의 OKR가 확정되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팀별 OKR와 개인별 OKR가 뒤따라 정해지는 시스템이다. 제작팀을 제외한 마케팅팀, 디자인팀, 비즈니스팀, 경영지원팀 등의 OKR 역시 크게는 각자 맡은 작품의 OKR, 즉 시청 시간을 따라가는 한편, 팀별 역할에 필요한 OKR도 세부적으로 설정한다. 예컨대, 마케팅팀의 경우 에이틴의 시청 시간 OKR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브랜딩 PPL 같은 세부 전략을 짜는 동시에 작품과 별도로 플레이리스트 전체 브랜딩에 필요한 OKR, 예컨대 SNS 채널별 소통 전략도 함께 세운다. 제작팀의 OKR는 작품별로 6개월∼1년 단위로 범위가 유동적이지만 다른 팀은 연간, 분기별 OKR를 별도로 설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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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R란?

OKR는 목표(Objective)와 핵심 결과(Key Results)의 약자로 목표와 핵심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성과를 관리하는 프레임워크를 말한다. ‘OKR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앤디 그로브(Andy Grove) 전 인텔 CEO는 피터 드러커의 목표 관리(MBO) 이론을 보완한 iMBO(intel Management By Objectives) 시스템을 구축해 인텔에 적용했다. 1970년대 인텔 엔지니어로 일했던 존 도어(Joan Doerr)가 그로브로부터 이를 직접 배우고 iMBO의 핵심 원칙을 OKR로 정의했다. 이후 글로벌 벤처 투자 기업인 클라이너퍼킨스(Kleiner Perkins)로 옮긴 존 도어 현 클라이너퍼킨스 회장은 1999년 당시 스타트업이었던 구글에 투자하면서 OKR 운영 방식도 함께 전수했다. OKR를 기업 문화로 실천한 구글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OKR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기업, 비영리 단체로까지 널리 확산됐다.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는 “존 도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가 열 배 성장에 도전하도록 자극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겠다는 우리의 목표를 성취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존 도어는 본인이 쓴 책 『전설적인 벤처투자자가 구글에 전해준 성공 방식, OKR(Measure What Matters)』에서 OKR 프레임워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존 도어에 따르면 OKR는 구체적이고 행동 지향적으로 정의된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3∼5개의 핵심 결과로 구성된다. 핵심 결과는 반드시 측정과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 핵심 결과를 모두 달성했다면 목표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OKR를 애초에 잘못 설계한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해놓은 기간이 끝나면 구성원들은 핵심 결과를 달성했는지 여부로 성과를 평가한다. OKR 문화는 구성원들을 구체적인 목표에 전념시키고, 목표와 핵심 결과로 팀과 개인의 노력을 정렬시키는 동시에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어려운 목표도 달성 가능하게 만든다.


이렇게 팀별, 개인별로 정렬된 OKR의 가장 큰 특징은 하향식이 아니라 상향식으로, 구성원들이 직접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OKR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에 크게 의존한다”며 “전체 OKR로 큰 방향이 설정되면 팀과 개인 레벨에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세부 OKR를 설정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특성은 일반 기업에서 쓰는 핵심 성과지표(KPI)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KPI가 제시하는 세세한 업무 단위의 정량적 목표가 상위 레벨에서 직원들을 마이크로매니지먼트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OKR에서 제시하는 상위 레벨의 숫자는 전략적 방향성을 보여주는 역할에 그친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실질적인 세세한 업무 내용은 직원들의 자율에 맡겨진다. 그래서 플레이리스트의 작업 방식은 작품별로 다 다르다. 다시 말해, 콘텐츠 제작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성공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공통의 방향성과 목표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주도적으로 일할 뿐이다.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작품 단위별로 매주 ‘위클리’ 회의가 열리는데 이 자리에서 개별, 팀별로 업무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전체 OKR를 달성하는 데 수정하거나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서로 피드백한다. 이런 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OKR를 중심으로 서로 협력하는 조직문화가 형성됐다. 구성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율적으로 공통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고, 그런 모습이 존중받는다. “작품별, 팀별로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하게 정렬돼 있기 때문에 중간에 직원 한두 명이 퇴사해 업무에 공백이 생기더라도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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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속적인 세계관의 구축

플레이리스트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누가 연출 혹은 작가인지와 상관없이 작품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플레이리스트 작품에는 에이틴의 배경인 서연고등학교, 연플리의 배경인 서연대학교, 이들 주인공이 자주 찾는 카페 리필 등이 교차 등장한다. 에이틴의 주인공들이 서연대 진학을 지망하고, 이들이 방과 후 즐겨 찾는 카페 리필에서는 연플리 주인공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이다. 플레이리스트 드라마의 팬이라면 에이틴, 연플리, 엔딩 시리즈 등 주요 작품 속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일명 ‘플레이리스트 유니버스(Playlist Universe)’ 지도를 마음속에 그릴 수 있다. 한번 팬이 된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시리즈에도 관심을 갖고 꾸준히 구독하게 된다. 한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캐릭터가 다른 작품에도 조연 혹은 카메오로 등장하면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플레이리스트 세계관 안에서 한번 등장한 캐릭터는 계속 살아 숨 쉬면서 다른 작품에도 등장해서 팬들로 하여금 마치 실제 인물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한 시리즈가 성공하면 다른 시리즈도 덩달아 인기를 얻는다. 개별 작품이 아닌 플레이리스트란 회사를 향한 대규모 팬덤, 애칭 ‘러플리’가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플레이리스트는 유튜브와 같은 SNS 채널들에서 쏟아지는,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와 어떻게 스스로를 차별화할 수 있었을까? 플레이리스트가 내세운 차별화 포인트는 바로 ‘하이퍼 리얼리티 세상, 즉 실재(實在)보다 더욱 실재같이 느껴지는, 가상의 세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안에서,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플레이리스트가 만든 캐릭터들에 몰입함으로써 팬덤을 키워간다.

이런 가상의 세계관을 통한 팬덤 구축은 플레이리스트의 가장 주요한 수익원인 PPL이나 브렌디드 콘텐츠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도 유리하다. 최근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 김은숙 작가의 신작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지나친 브랜드 간접 광고(PPL) 장면들 때문에 ‘이게 드라마를 보는 건지, 홈쇼핑을 보는 건지 모르겠다’는 시청자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PPL은 중요한 수익원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극의 흐름을 파괴하는 수준의 PPL은 전체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또 이로 인해 시청률이 하락할 경우 수익에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더 킹:영원의 군주’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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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PPL은 PPL이 콘텐츠 자체로 보이거나 시청자가 해당 PPL 관련 콘텐츠를 억지로 보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찾아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플레이리스트는 세계관을 만들고, 그 안의 캐릭터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살아 숨 쉬는 인물들로 드러날 때 내부의 스토리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PPL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봤다. 즉, 시청자가 플레이리스트의 세계관에 몰입한다면 실제 그 세계관에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고등학생인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실존하는 인물처럼 느끼게 될 것이고, 이 캐릭터가 운영하는 SNS 채널들에도 방문하게 될 것이다. 또 해당 캐릭터가 어떤 옷을 구매하고, 어떤 향수를 뿌리고, 어떤 식당에 가는지를 해당 캐릭터가 운영하는 SNS 채널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면 PPL 혹은 브랜디드 콘텐츠 형태의 광고 콘텐츠더라도 캐릭터가 등장하는 스토리의 극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플레이리스트는 연애플레이리스트의 메인 캐릭터인 정푸름이 직접 운영하는 브이로그(Vlog) 형태의 ‘정풂 TV’를 유튜브 채널 안에서 운영하면서 다양한 브랜디드 콘텐츠를 양산하고 있다. 또 인스타그램에서 ‘Playlist_Fashion’이란 독립 계정을 통해서 플레이리스트의 주요 캐릭터가 콘텐츠 안에서 입고 있는 패션 아이템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브랜디드 콘텐츠들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플레이리스트는 견고한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가 실존 인물처럼 살아 숨 쉬며 성장하게 만들면서 비즈니스 모델 또한 확장시키는 미래형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4. 작품 간, 팀 간 경계를 허무는 스토리

플레이리스트의 세계관이 작품별로 꾸준히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비결은 작품뿐 아니라 해당 작품을 맡은 제작팀들도 끈끈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리스트가 제작 인력의 80% 이상을 내부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작품의 고퀄러티를 유지할 뿐 아니라 작품 배경과 캐릭터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새로운 작품에 녹여내려면 회사 내부 인력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플레이리스트 제작 과정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마케팅팀과 비즈니스팀 등 비제작팀들이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스토리 혹은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이다. 대본을 쓰는 단계에서부터 작가, 마케팅, 비즈니스팀이 협의해 스토리와 가장 어울리는 브랜드가 어디일지를 고민하고, 브랜드에 직접 PPL을 제안하기도 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브랜드 특성에 맞춰 스토리를 구성하기 때문에 PPL 단가도 높게 책정하는 편이다. PPL이 스토리를 훼손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웹드라마 스토리의 영향력을 오프라인으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시킬 수 있는 비결이다. 실제로 스토리에 녹아든 PPL은 단순 노출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와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실제 상품 매출의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콘텐츠 애청자가 상품 구매자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연플리 시즌4에서 진행한 파리바게뜨와의 컬래버레이션을 들 수 있다. 플레이리스트와 파리바게뜨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드라마 톤앤드매너에 맞춰 제품을 개발해서 PPL과 브랜디드 콘텐츠를 드라마에 노출하고, SNS 이벤트와 오프라인 프로모션까지 함께하는 ‘올인원(all in one)’ 마케팅 컬래버를 진행했다. 박 대표는 “대학생들의 데이트 장소로서 공간적 배경이 중요한데 누구나 격식 없이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곳, 동시에 선물을 주거나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곳 중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파리바게뜨에 컬래버를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중적이지만 Z세대 인지도는 약한 파리바게뜨는 1020세대에 ‘데이트 장소로도 파리바게뜨가 좋다’는 인식을 심을 수 있길 원했다. 이에 플레이리스트는 캠퍼스 커플의 핑크빛 로맨스를 대표하는 연플리의 톤앤드매너에 맞춰 ‘썸 탈 때 먹는 빙수=썸빙수’ 등 ‘핑크테마’ 기획 상품의 출시를 파리바게뜨에 제안했고, 드라마에서 연애코드가 나올 때마다 상품을 지속적으로 노출했다. 드라마를 통해 대학 생활, 핑크빛 로맨스, 달달한 디저트, 데이트 장소 하면 자연스럽게 파리바게뜨가 연상되도록 만드는 장치였다. 또 브랜디드 콘텐츠인 ‘파리바게뜨 X 연애플레이리스트 특별편’에서는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고픈 연플리의 20대 대학생 커플뿐 아니라 에이틴의 10대 고등학생 커플까지 등장시켜 콘텐츠 타깃을 확대했다. 이 영상은 유튜브, 페이스북, 네이버 TV 등에서 총 300만 뷰를 기록하며 대규모 바이럴에 성공했다. 플레이리스트도 이번 컬래버를 통해 전국 파리바게뜨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연플리 IP를 알릴 수 있었다. 오프라인으로 영향력을 확장시킨 것이다.

작품 엑스엑스(XX)는 아예 스토리와 함께 신규 커머스 상품을 직접 기획해 성공을 거둔 사례다. 플레이리스트는 2020년 1월 엑스엑스(XX) 작품의 종영과 동시에 향수 브랜드 ‘니어리스트 벗 로스트(Nearest but lost, 이하 니어리스트)’를 출시했다. 플레이리스트가 외부 브랜드와 협력 없이, 자체적으로 커머스 상품을 기획 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향수 커머스 아이디어는 1년 전 워크숍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우연히 꺼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향수는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자아낸다. “웹드라마를 본 팬들이 오프라인에서 실제 향을 맡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 캐릭터를 떠올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향수는 영상에서 보고 듣는 이상의 후각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매력적인 카테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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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엑스엑스(XX)는 메인인 여성 주인공 캐릭터는 정해지고, 남자 주인공은 여주인공의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으로 섬세한 성격이라는 정도의 콘셉트만 결정된 상태였다. 비즈니스팀과 작가팀은 향수 커머스를 염두에 두고 이 남자 주인공의 직업을 조향사로 설정했다. 그리고 향도 드라마 주인공 캐릭터 4명에 맞춰 4가지 타입을 개발했다. 향수병, 로고 디자인 등 브랜드의 톤앤드매너와 정체성도 엑스엑스(XX)의 대본 작업과 더불어 구체화했다. 예컨대, ‘니어리스트 벗 로스트’란 브랜드명에도 ‘가장 가깝지만(가까웠지만) 잃어버린 것’이란 뜻으로 과거에 가까운 사이였지만 이제는 떠나간 사랑을 다루는 드라마의 함축적 스토리를 담았다. 이렇게 엑스엑스(XX) 시청자들은 남자 주인공 왕정든이 향수 공방을 운영하면서 드라마 속에서 만든 향수 상품을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왕정든 역을 맡은 배우가 직접 프로모션에 나서면서 의미를 더했다. 이 상품은 올리브영에서 ‘2020 신상품 TOP 5’ 부문 1위에 선정됐다. 드라마 속 왕정든이란 캐릭터의 힘을 오프라인 커머스로까지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제작팀, 작가팀뿐 아니라 디자인, 마케팅, 비즈니스팀이 팀 간 경계를 허물고 공통의 목표 아래 정렬돼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5. IT 스타트업처럼 실험, 또 실험

플레이리스트는 콘텐츠 제작 회사지만 IT 스타트업처럼 끊임없이 작은 실험을 하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스케일업을 하는 방식으로 작은 성공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초기 제작비가 많이 드는 콘텐츠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기존 IT 기업이 서비스를 테스트하듯이 가볍게 파일럿 형태로 론칭, 소비자 반응을 보고 스케일업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분야로 확장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례로, 플레이리스트는 IT 웹드라마를 만드는 게 주 사업이지만 일부 캐릭터를 가지고 웹툰을 만들기도 했다. 2019년 에이틴 시즌 1과 시즌 2 사이에 시즌 1.5로 웹툰을 시도한 사례를 토대로 2020년 방영한 웹드라마 ‘또한번 엔딩’은 드라마와 웹툰을 별도 제작, 동시 공개해 인기를 쌍끌이했다.

또 2018년 에이틴 시즌 1 방영 당시 무료로 진행했던 팬미팅은 2019년 시즌 2가 끝나고 유료 팬미팅으로 규모를 키웠다. 웹드라마가 팬미팅을, 그것도 유료로 개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이벤트였다. 티켓값이 5만5000원인데 과연 1500석을 채울 수 있을까 우려도 컸지만,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 예매 당일 오전 8시에 예매 사이트에 2만여 명이 접속하면서 1분이 채 안 돼 팬미팅은 매진됐다. 팬미팅의 성공 경험을 토대로 최근 대규모 플레이리스트 페스티벌을 기획하기도 했다. 비록 코로나 위기 때문에 취소됐지만 페스티벌 역시 블라인드 티켓 사전 판매가 1분이 채 안 돼 매진되면서 팬덤의 힘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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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는 모든 작품이 끝날 때마다 그 작품이 실패했든, 성공했든 반드시 전체 인원이 모여 리뷰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 자리에서 팀별로 업무가 OKR 달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부분은 잘됐으며, 어떤 부분은 미진했는지를 발표하고 토론한다. 박 대표는 “회의는 누군가를 벌을 주거나 평가하기 위한 자리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작품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고 할지라도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분석, 토론하면서 새로운 교훈을 얻는 것으로 늘 회의를 마무리한다.

실제로 플레이리스트가 제작한 작품들이 전부 흥행한 것은 아니다. 시리즈별로도 반응이 다 다를 뿐 아니라 아예 전체 시리즈가 실패한 사례도 있다. ‘연애포차’는 그중에서도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2017년 하반기에 2부작 파일럿으로 편성됐다가 시청자 반응이 좋아 정규 편성된 연애포차는 높은 관심 속에서 출발했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파일럿 편 스토리가 본편에서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데다 파일럿 때 출연했던 배우들이 전부 교체되면서 연기력 논란까지 불거졌다. PPL이 과도해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파일럿 성공을 이끌었던 내부 인력이 출산 및 육아 휴직을 떠나 부재한 상황에서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본편 제작을 무리하게 진행한 탓이 컸다. 박 대표는 “준비 기간이 짧았고 외부 작가와 협업하면서 충분한 내부 소통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움만큼이나 깨달음도 컸다. 작품을 시작할 때 제작만큼이나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과 내부 전문 인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이때의 실패를 계기로 플레이리스트는 한 작품 내 PPL 브랜드 숫자를 최대 3∼4개로 제한하기로 했다.

올해 플레이리스트는 SNS 채널에 최적화된 숏폼을 넘어서 TV 같은 전통 미디어에서도 소화될 수 있는 미드폼 드라마에 본격 도전한다. 2020년 1월 플레이리스트 최초로 지상파와 공동 제작, 동시 방영한 작품 엑스엑스(XX)는 처음으로 작품 전편의 러닝타임을 20분으로 제작한 미드폼 드라마다. 플레이리스트는 5∼7분에서 10∼15분으로 러닝타임을 늘려왔으며 연플리 시즌 4의 일부 에피소드에서 처음으로 20분의 미드폼 에피소드를 실험했다. 그리고 올해 엑스엑스(XX)를 시작으로 미드폼 형태로 TV와 동시 제작하는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방영할 예정이다. 10대들을 위한 웹드라마 제작사라는 한계를 스스로 깨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플레이리스트의 2020년 OKR에는 시청 시간뿐 아니라 시청률, 화제성 지수, 매출 같은 지표가 새로 추가됐다. 올해 목표는 뉴미디어와 전통 미디어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장기적으로 OTT(Over The Top) 서비스 회사로 진화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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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폼 드라마와 TV 진출은 플레이리스트가 콘텐츠 비즈니스를 한 단계 더 스케일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 플레이리스트의 B2B 주 수익원은 PPL이나 브랜디드 콘텐츠 뿐 아니라 OTT나 IPTV 같은 다른 채널에 작품 유통권을 선공개 형식으로 제공하거나 종영한 작품에 대한 유통권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플레이리스트 IP가 1020 시청자 팬덤을 보장하는 대표 IP로 자리 잡으면서 유료 플랫폼들도 플레이리스트 IP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TV 진출은 플레이리스트가 뉴미디어와 전통 미디어의 경계를 허물고 디지털 세대뿐 아니라 30대 이상의 TV 시청자들 또한 공략해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IP를 통해 파생되는 비즈니스 규모 자체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아시아의 디즈니’를 꿈꾸는 박 대표의 가슴 속에는 디지털 스튜디오의 한계를 뛰어넘는 더 큰 플라이휠(Fly Wheel)2 이 돌아가고 있다. 박 대표는 “웹드라마뿐 아니라 TV 미드폼 드라마에서도 인정받는 우수한 IP로 시청자들의 트래픽과 화제성을 집중시키고, 그것을 다시 매출로 연결해 회사를 성장시키고 인재를 모아 더 우수한 IP를 개발하는 선순환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6.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플레이리스트는 견고한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실존 인물처럼 느끼는 ‘러플리 팬덤’을 구축함으로써 브랜드 자체의 인지도뿐 아니라 10대와 20대 중심의 확고한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플레이리스트의 비즈니스 모델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러플리 팬덤’을 잘 관리할 뿐 아니라 확장시키는 게 중요하다.

특히 팬덤은 ‘양날의 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덕질을 하는 팬들이 많아질수록 해당 콘텐츠에 대해서 팬들이 원하는 바, 눈높이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팬들과 좀 더 깊이 있는 수준으로 소통해서 팬들이 자신이 이 세계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보다 적극적으로 플레이리스트 세계관에서 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들이 반영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플레이리스트는 플레이리스트 세계관에서 중요한 캐릭터들의 인기가 높아지고, 이를 실존 인물로까지 느끼게끔 하면서 팬덤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세계관을 해칠 수 있는 위기는 언제든 닥칠 수 있다.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세계관에 맞지 않는 형태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높은 인기로 인한 출연료 인상으로 출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캐리 언니’로 유명한 콘텐츠 미디어 업체 캐리소프트는 1대 캐리인 ‘강혜진’ 씨가 하차하면서 구독자들의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이처럼 세계관에서 캐릭터를 실존 인물처럼 느끼게 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들의 인기가 하락하거나 연기자들이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는 사건 등에 연루될 경우 어떤 방식으로 세계관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할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

플레이리스트와 영역은 다르지만 플레이리스트처럼 세계관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콘텐츠 기업들이 어떤 방향으로 팬덤을 확장시켜나가는지를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게임회사 넥슨은 팬들을 위해서 일명 ‘네코제’라고 불리는 넥슨 콘텐츠 페스티벌(Nexon Contents Festival)을 운영하고 있다. 넥슨의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좋아하는 팬들이 중심이 돼서 만드는 넥슨 콘텐츠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는 굿즈와 팬아트 등이 전시 판매되고, 게임 캐릭터의 코스튬 행사, 게임 OST 콘텐츠 행사 등이 열린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넥슨이 철저하게 넥슨의 게임 유저 팬들이 게임의 지식재산권(IP)을 개방하고, 팬들이 직접 2차 창작물을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하도록 장려했다는 점이다. 2015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유저 아티스트 숫자가 무려 1500명이 넘는다. 그리고 이들이 기획하고 만들어서 판매한 액세서리, 피규어, 인형 같은 창작물 개수도 수십만 가지에 달한다. 플레이리스트도 앞으로 더 깊이 있는 수준의 세계관, 그리고 그 세계관에 더 깊이 있는 수준의 팬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들의 팬을 보다 생산적인 팬덤 집단으로 유도하는 방식을 고민해야겠다.

  • 배미정 배미정 | -동아일보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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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윤 |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디지털 문화 심리학자다. 영국 웨일스대에서 소비자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에서 경영학 마케팅 분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영리 연구기관 디지털마케팅연구소(www.digitalmarketinglab. co.kr)의 디렉터로 디지털 및 빅데이터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공간은 경험이다』 『디지털로 생각하라』 『바이럴』 『구글처럼 생각하라-디지털 시대 소비자 코드를 읽는 기술』 등이 있다.
    seungyun@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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