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사람의 서비스가 기계로 대체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식당에서는 키오스크가, 호텔 로비와 공항에서는 로봇이, 민원성 전화 너머에는 음성 안내봇이나 챗봇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안에서 겪는 소비자의 소외는 단지 정해진 절차 안에만 있기 때문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AI가 점차 우리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공존 그 자체보다 더 복잡하고 깊게 얽힐 것이다. 인간 사용자가 AI 시스템을 더 잘 쓸 수 있도록 인간도 알고리즘을 길들이고, 인간도 알고리즘에 맞춰 길들여질 것이다. 전면 자동화를 꿈꾸는 비즈니스 업계일수록 고객의 감정이 온전히 고객 자신이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남게 두지 않아야 한다. 고객의 감정을 AI와 함께 다른 인간이 관리하는 것, 거기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매뉴얼 속 세상에 갇히다 보면 꽤 편하지만 조금은 외로운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며칠 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이때 필자가 경험한 모든 것이 매뉴얼이었다. 보험 담당자의 전화 내용, 병원에서의 동선, 차량 수리 업소와 렌터카 업체의 연계 절차. 한 패키지에서 다른 패키지로 몇 번을 옮겨가고 나니, 내가 겪은 사고는 누구에게는 오늘 처리해야 할 한 개의 일상적 업무, 한 건의 실적이 돼 있었다. 그리고 이 같은 업무의 많은 부분을, 이제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대신할 것이라고들 한다. 가만 따져 보면 이런 예측의 기저에는 모든 프로세스가 어차피 감정을 배제한 시스템이니, 기계가 대신해도 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하지만 필자가 겪은 매뉴얼 속에는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다. 인간 대 인간의 대화다 보니,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친밀감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들, 위로의 뉘앙스, 마무리 단계의 성의 여부 같은 상호 간 다양한 감정이 발견됐다. 모든 것이 설령 책자에 있는 내용일지라도 행간의 감정을 토대로 고객은 해당 서비스에 대한 호불호를 지니게 된다. 이건 단순히 ‘상담은 친절했습니까?’ ‘일 처리는 빨랐습니까?’ 같은 문항에 ‘리커트 척도(Likert scale)’로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뉴얼 자체는 기계로 대체하면 더욱 정확하고 신속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맞닥뜨리는 고객군의 느낌은 다를 것이다. 이 글에서는 기계가 과연 인간 상담사가 뿜어내는 감정을 대체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고자 한다.
내 감각을 상상하게 하는 로봇들요즘은 사용자와 로봇이 마주칠 일이 참 많아졌다. 소소한 추천 서비스부터 자율주행 로봇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로봇이라고 경계를 짓기 어려울 정도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렇다면 로봇과의 상호작용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각은 어떠한가. 최근 미국의 한 공항에서 마주친 커피 로봇을 예로 들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비자는 커피 제조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많은 감각적 경험을 놓친 채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비자가 경험하지 못한 감각은 다음과 같다. 우선 카페에서 주문을 했다면 바리스타와 나누며 느꼈을 대화의 긴장감(나는 묵직한 향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산미를 강조해야 할까?)이다. 칙-칙 퍼지는 스팀의 공감각적(촉각적이면서 시각적인) 경험과 원두가 빠득빠득 갈리는 청각적 경험, 쌉쌀하게 풍기는 커피 향의 후각적 경험을 이 커피 로봇과는 나눌 수 없었다. 모든 절차가 강화 유리판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커피 로봇은 다만 커피 제조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기존 카페 경험을 환기하는 시각적 장치를 택했다. 나아가 개인화(customization)에 따른 추천 서비스가 ‘로봇적 경험’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처럼 많은 서비스 로봇이, 고객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직간접적 경험으로부터 유추된 감각들을 자극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무엇이 더 탁월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필자가 본 장면의 끝은 이랬다. 커피 로봇과 달리 그다음 코너에 있던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에는 줄을 선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림 1)미국 휴스턴의 식료품점과 레스토랑 곳곳에 최근 입점한 샐러드 기계도 비슷했다. 버튼을 한 번만 누르면 잘게 썬 채소들을 신선하게 볼 형태로 제공하는 콘셉트다. 9달러를 내면 섭씨 3도 안팎으로 보관된 17가지 토핑을 골라 900g어치 샐러드를 즉시 뽑아낼 수 있다고 한다. 누구나 쉽게 건강식을 챙겨 먹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해당 업체의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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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이쯤 되면 시공간적 편의를 위해 채소가 썰리는 모습과 드레싱이 뿌려지는 시각·청각·후각적 경험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일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간의 균형(trade-off)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