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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Innovation: 초신선 푸드테크 스타트업 ‘정육각’

“왜, 도축 1∼4일 內 식탁에 못 올릴까?”
축산의 ‘ㅊ’ 몰라도 신선의 ‘ㅅ’에 승부

김철수 | 275호 (2019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온라인 주문으로 돼지고기를 배송하는 스타트업 정육각은 보수적인 축산업계 구도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입소문의 힘이자 ‘초신선’이라는 마케팅 슬로건의 힘이기도 했다. 고기를 먹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신선도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데 사업 역량을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 또 ‘온라인에서 고기를 사면 주문금액과 고기의 양이 맞지 않는데도 왜 선불제만을 고집하지?’라는 순진한 질문(innocent why)을 던진 후 그 해결책으로 선포장-후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육고기는 단연 돼지고기다. 1인당 소비량만 보더라도 돼지고기(29.8㎏)는 소고기(10.3㎏)나 닭고기(17.2㎏)에 비해 거의 2배 가까이 높다.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갈 때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식재료이며 일과 후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도 부담 없이 즐기는 안주 역시 돼지고기다.

그런데 누구나 한번쯤 가졌을 법한 궁금증이 하나 있다. 왜 고기 맛은 먹을 때마다 차이가 나는 걸까? 품종이나 분위기에 따라 고기 맛이 달라진다는 막연한 추측 외에 고기 맛이 차이가 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다소 엉뚱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축산시장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초신선(超新鮮)’ 푸드테크 플랫폼 정육각이다. ‘신선’이라는 단어가 진부함으로 느껴지는 식품시장에 ‘초신선’이라는 도발적인 선언과 비즈니스 전략으로 도전장을 낸 젊은이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시장의 숨겨진 기회를 포착했으며, 어떻게 고착화된 시장의 질서에 맞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세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김재연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필자는 스타트업 및 기업이 혁신의 추구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노베이션 딜레마의 전형과 그것을 돌파할 방안을 찾을 수 있었다.


축산의 ‘ㅊ’도 모르면서 시장의 판세에 도전하다

카이스트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한 김재연 대표는 2016년 8월 미국 국무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의 길을 걷기로 돼 있었다. 유학이 결정된 그해 1월, 남은 반년 동안 뭘 하고 놀아 볼까 고민하던 그는 유학 가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없을 테니 진짜 맛있는 돼지고기를 실컷 먹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전국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다 결국 안양의 한 도축장까지 찾아갔다. 고기 한두 근쯤 사 와서 맛보려고 했는데 도축장에서 판매하는 최소 단위는 20㎏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무거운 고기 박스를 버스에 싣고 집으로 향했다. 직접 칼질을 해서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어릴 때 하동에서 먹었던 진짜 맛있는 돼지고기 그 맛이었다고 한다. 이웃과 친구들에게 골고루 나눠줬고 구입처를 물어볼 정도로 먹어 본 사람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김재연 대표는 “유학 가기 전까지만 돼지고기 장사를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김환민 최고제품책임자(CPO)와 의기투합해 안양의 재개발 지역에 월세 3개월 치를 내고 가게를 얻었다. 처음에는 네이버에 있는 농수산물 직거래 카페를 통해 돼지고기를 팔았다.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하루 종일 고기만 썰다가 끝날 정도로 주문량이 많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온라인 카페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성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렵게 준비한 유학의 꿈을 포기하고 대전에 공장을 차렸다. 본격적으로 육고기 유통 비즈니스에 뛰어든 것이다.




4명으로 구성된 팀은 진짜 맛있는 고기의 비밀을 찾기 위해 사업 초기 6개월 동안 돼지고기 500㎏을 시식했다. 하루 세끼 돼지고기만 먹었을 정도다. 품종이나 숙성 시간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검증해보기로 한 것이다. 연구 끝에 고기 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3통(三通)과 신선도(시간)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3통이란 품종, 사료, 사양 관리 3가지를 통일해야 한다는 것으로 축산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품종에 따라 사료가 달라져야 하고, 발육 정도에 따라 사료나 항생제를 다르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맛의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정육각의 생각이다. 돼지고기는 도축 후 3∼5일이 가장 맛있기 때문에 그 기간 안에 고객의 식탁에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시행착오 끝에 주문이 들어오면 도축한 지 1∼4일 된 돼지고기를 곧바로 패키징해 당일 또는 다음 날까지 배송을 완료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따라서 오늘 오전에 주문한 고객은 빠르면 오늘 저녁때 도축한 지 48시간 내의 돼지고기를 받아 볼 수 있게 된다.



정육각 사업 초기에는 축산업계의 거부감이 컸다고 한다. 무시하거나 걱정하는 업계 전문가들도 많았다. 도축한 지 1∼4일 이내의 돼지고기를 작업해서 하루 안에 고객의 식탁에 올린다는 것은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인 사업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한 달 이상 재고관리할 수 있는 상품을 4일 이내로 한다는 것은 난이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만큼의 수익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를 아무리 정확하게 예측하더라도 재고를 두지 않고 초신선으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돼지고기를 매일 매입하는 수밖에 없다. 매일 매입하게 되면 물류비용 부담도 늘어나지만 축산업에서 사업자별 수익률을 좌우하는 원물 가격 변동을 활용한 수익 극대화도 포기해야 한다. 45일을 기준으로 돼지고기 원가는 20∼30%씩 변동이 있는데 가격이 저렴한 시점에 대량 매입해 팔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축산의 ‘ㅊ’ 도 모르는 친구들, 저러다 망할 거야’라는 시각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망하기는커녕 점점 자리를 잡아가자 이젠 ‘저 친구들 분명히 사기를 치는 거야’라며 경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기나 과대광고 신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실제로 구청으로부터 여러 번 조사를 받기도 했다. 최근엔 다른 도축업자들도 도축일자를 표시하고 초신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육각이 비즈니스를 하기 전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고 한다.


이노베이션 스윗스폿(Sweet Spot), 초신선에 집중하다

정육각은 2018년 2월부터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소고기, 닭고기, 달걀, 우유, 쌀 등 취급 품목을 확대했다. 서비스를 이용해 본 구매 고객 수는 약 3만 명인데 최근 이용 고객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가파른 성장을 바탕으로 2019년 3월과 4월, 20억 원 규모의 후속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2019년 매출 1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육각 고기는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구매율이 높다. 2회 이상 이용 고객의 1개월 내 재구매율은 70%, 3회 이상 고객은 80%에 이른다. 늘 높은 수준의 품질을 유지한다는 것이 정육각 고객들의 전반적인 평가다. 그래서일까, 정육각은 마케팅 비용을 크게 쓰지 않았는데도 먹어 본 고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정육각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 즉 이노베이션 스위트스폿(Sweet Spot)은 무엇일까? 필자는 정육각의 비즈니스 혁신 사례를 연구하면서 ‘초신선’이라는 도전적 단어에 주목했다. 정육각에서 선제적으로 정착시킨 초신선의 의미는 재료 자체의 효용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순간의 신선함을 말한다. 즉, 생산에서 소비까지 가장 빠르게 공급해 재료의 가치를 온전하게 소비자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세스 혁신과 정보기술(IT) 역량이 갖춰져야 가능한 개념이다.



초신선은 ‘보다 맛있는 고기’에 대한 기대를 넘어서는 특별한 힘이 있다. 그것은 부패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에 기인한다. 인류가 농작물을 경작한 것은 1만2000년 정도에 불과하며 그 이전 수십만 년은 수렵과 채집으로 생명을 유지해 왔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먹을 것이 가득한 오늘날에도 우리의 DNA는 여전히 아프리카 초원 위를 누비고 있다고 서술했다. 저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도축은 곧 ‘즉시 소비’를 의미했다. 도축 시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부패에 대한 두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호모사피엔스의 이러한 생존 본능과 무의식은 현대인의 삶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정육각의 ‘도축한 지 1∼4일 된 초신선 돼지고기’라는 메시지는 소비자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유통과정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정육각은 ‘초신선을 먹는 습관’이라는 마케팅 메시지를 통해 고객들에게 갓 잡은 돼지고기 맛을 어필하고 있다. 식육점이나 마트에서는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던 메시지일 테다.

1. 휴먼 관점: 합리주의 경험 디자인

초신선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육각은 고객의 입장에서 소비 경험 전체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초신선 상품 구매는 일반적인 구매 과정과 뭔가 다르다는 걸 고객들이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정육각에서 여러 차례 구매해 본 필자는 매번 새로운 기능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에 놀라곤 한다. 정육각에서 시도한 합리적인 경험 디자인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 번째, 정육각은 주문 시 바로 결제를 진행하지 않고 생산을 완료해 정확한 무게를 측정한 후 결제 금액을 확정하는 독특한 결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른바 ‘신선페이’다. 마트에서 고기 무게를 저울에 재고 난 후 결제 금액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보통 인터넷으로 고기를 구매하면 주문 시 결제 금액이 확정되고 해당 금액에 해당하는 양의 고기를 배송해 준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양이 오기도 하고 더 적은 양의 고기가 오기도 한다. 고객과 판매자 중 누군가는 오차로 인한 손해를 감당해야 하는 불합리함이 존재하는 것. 신선페이 방식은 “왜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오프라인처럼 정확한 금액을 결제할 수 없을까?” “왜 누군가 오차를 감수해야만 하지?”라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구매해 본 고객들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훨씬 합리적이고 신뢰가 가는 방식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이득이 된다고 한다. 1g까지 정확하게 계산하는 신선페이 시스템으로 인해 작업 중 오차가 큰 돼지고기나 소고기 스테이크를 폐기하지 않고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육각은 주문 시 확정되지 않은 조건에 의해 가격이 변하는 경우 사후에 과금하는 신선페이로 특허 등록까지 마쳤다.



두 번째, 익일, 당일, 새벽 배송 등 ‘신선배송’ 시스템을 운영한다. 초신선이라는 비즈니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오후 4시 전에만 주문하면 전국 어디서나 익일 오후 6시 전에 받아 볼 수 있다. 서울 지역은 낮 12시까지 주문하면 당일 저녁 6시 전에 수령이 가능하다. 오후 8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7시 전에 도착하는 새벽 배송도 운영 중이다. 오전 11시에 주문한 초신선 돼지고기를 오늘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받아본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주문을 받은 후 생산을 시작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마트에서 제공하는 3시간 배송이나 물류창고에서 공산품을 내보내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다. 주문량이 갑작스럽게 몰려도 2시간 안에 모두 처리한 후 택배 시간에 맞게 내보낼 수 있어야 가능하다. 재고가 남지 않게 하는 주문량 예측 시스템과 2시간 내 생산 프로세스는 축산업계나 투자심사역들도 놀라워하는 정육각의 핵심 역량이다.



세 번째, 신선 할인 정책을 통해 배송비 문턱 효과를 낮췄다. 정육각에는 ‘얼마 이상 구매 시 무료 배송’ 제도가 없다. 무료 배송비 하한선을 맞추기 위해 추가 구매를 해야 하는 것은 고객 입장에서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대신 상품을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할인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고객들의 합리적인 소비를 돕는다. 예를 들어, 우체국 신선배송으로 삼겹살 2개와 달걀 1팩, 쌀 1세트를 구매하면 기본 배송비 2500원의 60%인 1500원이 할인돼 배송비가 1000원만 부과되는 식이다. 최근에는 통신사 데이터 요금제처럼 월 3500원만 내면 4회까지 무료 배송해주는 신선 플랜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구매 주기 단축에 따른 건당 매출 감소나 배송비 부담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신선 플랜 회원의 구매 데이터 분석 결과, 구매 주기는 28일에서 11일로 줄어든 반면 건당 평균 구매액 감소는 약 10%밖에 되지 않았다. 그 밖에도 초신선 구독 서비스도 테스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월 10만 원을 내면 고객의 기호에 맞는 육고기, 계란, 우유를 알아서 주기적으로 배송해 주는 식이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가치로 ‘낮은 가격’과 ‘고객’을 꼽았다. 물론 품질이라는 요소를 기본 전제로 한 말일 것이다. 특히 식품 영역에서는 품질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흔히 사람들은 낮은 가격의 제품은 품질 또한 낮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육각 돼지고기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상품으로 불린다. 왜일까? 초신선 프리미엄 상품에 걸맞은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해 왔기 때문이다. 정육각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처음부터 프리미엄으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좋은 품질의 상품을 취급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합리적인 가격과 합리주의 고객 경험의 결합은 자연스럽게 정육각을 프리미엄 채널로 포지셔닝시켰다. 그래서 고객 경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 비즈니스 관점: ‘이노센트 와이’ 사고로 혁신의‘빠른’ 걸음 촉진

정육각은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면 도축한 지 1∼4일 이내의 돼지고기를 패키징해 고객에게 당일 또는 익일까지 배송해 주는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사육에서 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농장-도축-육가공-도매-중도매-소매-소비자’로 이어지는 가치사슬 프로세스로는 정육각이 추구하는 초신선의 가치를 구현하기 어렵다. 우유의 경우에도 ‘착유-집유-저유-표준화/균질화-살균-포장-유통’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시간은 지체되고 신선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유통마진으로 인해 소비자 가격도 올라간다. 정육각은 맛의 골든타임을 잡기 위해 IT를 적용해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애거나 단축했다. 그리고 자체 생산 시스템을 만들었다. 직접 참여하기 힘든 영역은 뛰어난 역량을 보유한 파트너와의 협업에 많은 공을 들였다. 고품질의 신선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농장 운영과 제품 생산이 동시에 가능한 거래처를 찾아 수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프로세스 단축으로 인해 고기는 유통기한 대신 도축일자, 우유는 제조일자가 아니라 착유일자를 표기할 수 있게 됐다. 최근 달걀 산란일자 표기 의무화로 인한 사회적 논란이 있으나 정육각은 이미 달걀 포장과 낱개에 모두 산란일자를 표시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식재료에 대한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당일 생산한 초신선 달걀과 우유를 먹어본 고객들은 하나같이 맛의 차이를 느낀다. “아침에 낳은 달걀을 먹을 수 있다니 놀라워요.” “비린내가 나지 않고 탱글탱글한 노른자가 잘 깨지지 않을 정도로 신선하네요” 등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정육각의 비즈니스 혁신 추구 과정에서 기존 축산업계의 경계심은 생각보다 컸다. 처음에는 협업 파트너를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기존 대형 거래업체의 반발과 불이익을 염려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형성된 기존의 유통 표준에 도전하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법이다. 특히 기존 생태계의 상호연결성 구조는 변화의 속도를 더디게 한다.

바스카르 차크라보티는 자신의 저서 『혁신의 느린 걸음(Slow Pace of Fast Change)』에서 상호연결성은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혁신의 속도를 촉진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이해관계자 모두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완성되지 않으리라는 암묵적인 공감대 때문에 기존의 핵심 이해관계자는 이러한 균형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혁신이 성공하려면 고착화된 생태계의 균형상태를 뒤흔들고 그 자리에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끼워 넣어 새로운 균형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차크라보티의 주장이다. 이때 핵심은 원하는 최종 판세를 상상하고 거기에서부터 거꾸로 네트워크를 움직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상호연결성 구조는 혁신의 속도를 느리게 하지만 오늘날의 IT와 ‘이노센트 와이’ 사고는 그것을 한순간에 허물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정육각은 ‘어떻게 보관하면 상품의 신선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품을 고객의 식탁에 빨리 올릴 수 있을까’로 질문을 바꿨다. 그래서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개별 주문에 맞게 포장, 택배를 발송하는 등 축산업 프로세스에 직접 관여함으로써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3. 기술 관점: 인공지능(AI) 기술로초신선 서비스 완성

정육각이 ‘초신선’이라는 고객 및 비즈니스 관점의 강점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IT와 데이터 역량을 접목하려는 노력 덕분이다. 재고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의 구현은 경험과 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육각은 기술적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생산 및 포장 시간을 극한으로 줄여야 했고, 포장 무게가 다른 모든 상품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어야만 했다. 정육각의 직원 27명 중 약 30%가 개발자이거나 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다.

특히 정육각은 정확도 높은 주문 예측 및 재고 관리를 위해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고객들의 주문 패턴을 분석하는 것 외에도 온라인상의 정육각 관련 트래픽이나 날씨, 요일, 구제역 발생 알림 같은 다양한 변수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최적의 수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필요한 물량을 정확히 예측하고 주문도 시스템에서 자동 처리한다. 현재는 재고가 거의 남지 않는 수준으로까지 정교해졌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 밖에도 정육각은 온도나 습도, 배송 현황 등 공장의 각종 환경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고객의 다양한 문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육각에서 기술 역량 측면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또 다른 영역 중 하나는 배송 패키징이다. 도축한 고기를 얼마나 빨리 가공해 판매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최적의 상태로 배송하는 것도 초신선을 완성시키는 데 중요한 요소다. 정육각은 최적의 배송 환경을 만들기 위해 종이박스와 보냉백을 자체 개발했다. 배송 시간을 고려해 12시간, 24시간, 36시간용 패키지를 달리 사용한다. 어떤 패키지든 소비자가 상품을 수령했을 때 7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정육각 김재연 대표는 수요 예측부터 주문, 재고 관리, 가공, 포장, 배송에 이르는 전체 프로세스에 빅데이터와 IT를 적용한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완성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시스템의 완성도가 높아지면 향후에는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왜?” 고정관념 버리고 도전하면 무엇을 상상하든 현실이 된다

정육각은 올해 오프라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초신선 돼지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더 많은 소비자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어서다. 퇴근길에 모바일로 주문한 초신선 돼지고기나 소고기, 계란을 지하철 인근 매장에서 픽업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것은 온라인 플랫폼이 가진 구매 데이터와 쇼핑 편의성 등의 강점을 살려 오프라인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O4O(Online for Offline) 서비스 모델에 해당한다. 궁극적으로는 무인 결제와 3㎞ 이내 30분 배송 등이 가능한 중국의 오프라인 신선마트 허마셴성(盒马鲜生)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정육각은 이 밖에도 엉뚱한 상상과 호기심을 발휘해 초신선 식품의 새로운 서비스 경험을 계속 선보이고자 한다.



필자소개 김철수 SK플래닛 매니저 myconceptone@gmail.com
필자는 시카고 IIT 디자인대학원(IIT Institute of Design)에서 이노베이션 디자인 방법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SK텔레콤과 SK플래닛에서 마케팅, 신규 사업 기획 등의 업무를 거쳐 사람 중심의 혁신 방법론(Human Centered Innovation)으로 고객 인사이트와 상품 컨셉을 제안하는 컨설팅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미디어 사업에 몸담고 있다. 저서로 『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인사이트, 통찰의 힘』 『작고 멋진 발견』 등이 있다.
  • 김철수 김철수 | - SK플래닛 매니저
    - <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인사이트, 통찰의 힘>, <작고 멋진 발견> 저자
    myconcept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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