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名에서 使命을 읽다: 닷사이

‘제사 지내듯 정성껏’ 최고의 사케를 빚는다

260호 (2018년 11월 Issue 1)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가 있다. 세계적 와인 평론가인 칸자키 유타카 씨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자신의 와인 컬렉션(약 200억 원 상당)을 걸고 실제 아들(칸자키 시즈쿠)과 양자(토미네 잇세) 간에 와인 이름 맞추기 경쟁을 하게 하는 이야기다. 와인 이름 맞추기 경쟁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가 아니다. 칸자키 유타카 씨는 특정 와인을 마실 때의 느낌을 글로 표현한다. 그러면 두 경쟁자는 그 느낌에 어울리는 와인이 몇 년산, 어느 와인인지를 답으로 제출한다. 같은 포도밭이더라도 해마다 포도 작황이 다르다. 몇 년산이냐에 따라 같은 브랜드라도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와인의 맛을 나타내는 작가의 표현력이 걸출하다. “프레시한 아로마, 그리고 서양의 허브, 상쾌하고 우아한, 그래요. 금발의 귀부인이 산들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 클로드 모네의 ‘산보, 파라솔을 든 여인’입니다.” 아쉽게도 필자는 이런 혀를 갖고 태어나지 못한 것 같다. 아무리 만화처럼 느껴 보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아카시아맛, 코르크맛, 초콜릿맛, 심지어 담배맛이 난다고까지 하는데… 필자의 혀가 허름한 건지, 아님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한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 것이 와인의 세계다.

그러다 사케를 만났다. 도쿄에 들락날락하다 보니 공항 면세점도 자주 간다. 어느 날 시간이 나서 술 코너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별도로 진열된 유명 사케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그간 알고 있던 쿠보다(久保田), 핫카이산(八海山)이 반가웠다. 놀라운 것은 이들보다 상단에 진열돼 있는 닷사이(獺祭)였다. 1인당 한 병만 구매할 수 있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최고 인기 술은 쿠보다인데 그게 아닌 듯했다. 나름 고가의 제품을 구매해서 마셔봤다. 비싼 만큼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최고가 제품의 맛이 궁금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몇 번을 그냥 지나가다가 결국 한 병 샀다. 일본 주재 생활을 5년 이상 했던 지인들 모임에서 병을 땄는데 향이 달랐다. ‘아, 술에서 꽃 냄새가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내가 와인에서 꽃 냄새를 못 느낀 건 내 혀가 허름해서가 아니었구나!’ 사케의 새로운 세상을 만난 셈이다.

이 술을 만든 사람은 아사히 주조(旭酒造)의 3대 오너인 사쿠라이 히로시(桜井 博志)다. 1950년생인 그는 24세에 대기업형 양조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26살에 입사하지만 자주 의견 충돌을 겪는다. 관서지방의 변방인 야마구치(山口)현, 거기에서도 산골짜기에 있는 조그마한 양조장과 그가 일했던 대규모 양조장과는 일하는 방법이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다시는 술 관련 업종에 종사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석재(石材)업에 뛰어든다. 하지만 1984년 그의 부친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어쩔 수 없이 회사 대표로 취임한다. 그리고는 회사를 철저히 뜯어고친다.

아사히 주조의 대표 상품은 닷사이인데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양조장이 위치한 지역 이름이 오소고에(獺越)다. 옛날부터 이 지역에 흐르는 강 상류에 수달(오소)이 살았는데 이들이 여기까지 넘어와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사쿠라이 사장은 수달이 들어간 브랜드를 갖고 싶었다. 여러 개를 검토하다가 ‘수달의 제사’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다. 수달은 잡은 물고기를 물가에 일렬로 늘어놓은 습성이 있는데 그 모습이 제사상 같아 수달의 제사라 부른다는 것이다. 제사상이 아닌 책상에, 물고기가 아닌 책을 늘여놓으면 어떤 모습일까? 동아전과, 표준전과, 국어사전 등등을 늘어놓고 공부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실제 ‘수달의 제사’라는 용어는 옛 문장가들이 선호하는 단어다. 우리나라 천재 시인인 이상(李箱)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일본에 마사오카 시키(正岡 子規)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스스로를 달제서점 주인(獺祭書屋主人)이라 칭했다. 문장을 써내려 갈 때 자료를 뒤적여 가며 신중히 적었기 때문이다. 사쿠라이 회장은 여기서 착안, ‘제사를 지내듯 정성껏 술을 빚겠다’ ‘달제처럼 성실히 노력하겠다’는 뜻을 담아서 ‘닷사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한다.

그는 기존의 발상을 거침없이 깨버린 탓에 ‘양조업계의 이단아’라 불린다. 일본 양조장은 구라모토(蔵元)와 도우지(杜氏)의 분업 시스템이다. 구라모토는 오너이면서 판매를 주로 담당하고, 도우지는 생산 및 품질을 책임진다. 구라모토가 영화제작자라면 도우지는 영화감독인 셈이다. 냉면 집의 퀄리티가 냉면 주인의 손이 아닌 주방장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당연히 술의 퀄리티는 도우지의 손에 달려 있다. 사쿠라이 회장은 이게 싫었다. 주방장의 손끝 기술로 술을 제조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보고 도우지 제도를 폐지했다. 사원과 함께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데이터에 의한 제조 기법을 하나씩 장착시켜 나갔다.

사케는 원료가 쌀인 탓에 쌀 수확철인 가을부터 생산 사이클에 들어간다. 사쿠라이 회장은 내부 온도를 섭씨 5도로 유지하고 완벽한 공조 설비를 갖춰 연간 생산 체제로 시스템을 바꿨다. 이를 통해 생산량을 다른 일반 양조장보다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었다.



닷사이의 고급화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쌀을 어느 정도 깎아내는가에 따라 사케에 붙이는 호칭이 달라지는데, 40% 이상 깎아내면 긴죠(吟醸), 50% 이상 깎아내면 다이긴죠(大吟醸)라는 명칭을 쓴다. 많이 깎아낼수록 꽃향기가 강해지지만 기술력과 자금력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사쿠라이 사장은 ‘깎을 수 있을 만큼 깎아보겠다’며 여기에 승부를 걸었다. 그들의 술 중 ‘닷사이 39’는 61%를, ‘닷사이 23’은 77%를 깎아낸 술이다. 최고 등급은 ‘닷사이 비욘드’인데 어느 정도 깎았는지는 대외비다.

사케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프랑스 유명 셰프인 조엘 로부숑(Joël Robuchon)은 미슐랭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11개 국가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어느 레스토랑은 세 개, 어느 레스토랑 한 개 등 별을 총 28개 보유하고 있을 정도의 실력을 과시한다. 사쿠라이 회장은 2018년
4월 조엘 로부숑과 함께 파리 8구에 ‘닷사이 조엘 로부숑’을 개장했다. 사케는 신선도가 중요한 술임에도 불구하고 보관이 잘못돼 맛과 향기를 잃고, 그럼에도 마치 이 맛이 본연의 맛인 양 서양에 알려지고, 당연히 와인이나 위스키에 비해 저등급 술로 취급받고… 이런 모습에 분함을 느낀 그가 제대로 된 사케 맛을 전 세계인에게 알리기 위해 파리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일본에 사케가 있다면 한국엔 막걸리가 있다. 시골의 조그마한 양조장을 일본 최고로 우뚝 세우고 다시 세계 최고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막걸리 가운데서도 이런 제품이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신현암 팩토리8 대표 nexio@factory8.org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연구실장을 지냈다. 저서로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공저)』 『잉잉? 윈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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