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SR3.현대차 그랜저IG

‘스마트센스 기능’ 등 눈에 띄는 가성비, 현대차 그랜저에 ‘영포티’가 화답하다

정세진,박재항 | 239호 (2017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17년 국산 차 중에서 아니, 어쩌면 수입차를 포함해 국내에서 판매된 차량 중에서 가장 ‘핫’ 했던 차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6세대 신형 그랜저 ‘그랜저 IG’다. 30년 역사를 가진 그랜저 시리즈 중에서 출시 1년 만에 14만 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모델은 그랜저 IG가 최초다. 성공 비결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변신한다’는 그랜저 특유의 DNA 빼고는 모든 것을 바꿨다. ‘영포티’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2) 고급스러움을 놓치지 않고 ‘힙’함을 더했다. 권위와 위엄의 상징일 때에는 맞지 않던 ‘가성비’ 개념이 ‘힙함’이 더해지니 엄청난 장점이 됐다.
 
20230526_170610


2017년, 다시 시작된 그랜저의 쾌속 질주

가로등만 반짝이는 조용한 도시의 밤. 중저음의 엔진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날렵한 차량이 빠르게 좌회전하며 오른쪽으로 미끄러진다.

“다시 처음부터 그랜저를 바꾸다. 그랜저.”

지난해 11월22일 출시된 6세대 그랜저(IG)의 광고는 확실히 과거와 달랐다. 중후한 이미지의 인물도, 성공한 인생을 암시하는 어떤 단서도 광고에 드러나지 않았다. 주인공은 오직 그랜저, 그 자체였다.

신형 그랜저는 2016년 11월2일 사전계약 첫날에만 1만5973대가 계약됐다. 국내에서 사전계약을 실시한 차종 중 역대 최대다. 기존 첫날 최대 사전계약은 2009년 ‘YF쏘나타’가 기록했던 1만827대다. 그랜저IG의 첫날 기록은 국내 준대형 차급의 월평균 판매 대수 1만586대(2016년 1∼10월 기준)보다도 5000대를 훌쩍 넘어선다. 그 이후로도 말 그대로 ‘승승장구’하며 놀라운 실적을 기록했다. 31년 그랜저 역사에서 출시 1년(2016년 11월∼2017년 11월) 만에 14만 대가 넘는 판매량도 역대 최대다. (그림 1) 1세대 그랜저는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이듬해인 1987년 4076대가 팔렸다. 2세대 뉴그랜저(LX)는 출시(1992년 9월) 이듬해인 1993년에 2만9458대, 그랜저가 대중화된 3세대 그랜저(XG)와 4세대 그랜저(TG), 5세대 그랜저(HG)도 출시 이듬해 판매량이 각각 3만9335대(1999년), 12만4023대(2006년), 12만1673대(2012년) 수준이었다.

20230526_170626


수입차를 포함해 그 어느 때보다 차량 선택의 폭이 넓어진 지금, 무엇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했을까.

1. 그랜저의 진짜 DNA: 유연성, 그리고 끝없는 변신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넘은 그랜저의 역사는 사실 한국인 삶의 궤적과 같이했다. 1세대 ‘각(角) 그랜저’는 국내 최고급 승용차로 권위와 위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신형 그랜저는 미끈한 모습과 날렵한 주행 성능을 앞세워 3040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차로 변신했다.

과거의 한국인 역시 인생에서의 성공을 통해 권위와 위엄을 즐기는 삶을 선호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젊은 중년인 이른바 ‘영포티(Young forty)’는 성공과 권위, 위엄이라는 말 대신 스타일리시한 삶의 양식을 추구한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15%에 이를 정도로 소비자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그랜저는 이런 변화에 맞춰 변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바꿨다’는 신형 그랜저의 이면에도 이런 성공의 유전자(DNA)는 그대로 계승된다.

6세대 그랜저의 성공은 그랜저의 역사를 모르고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1∼5세대에 걸치면서 성공한 중노년의 차에서 첨단기술이 집약된 트렌디한 차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부터 살펴보자.

자가용 자체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1986년. 차의 외형에서 곡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네모반듯하게 각이 진 이른바 1세대 각 그랜저는 그랜저라는 이름에 걸맞게 위엄과 권위, 웅장함의 상징이었다. 1세대 그랜저는 1975∼1980년대 중반 국내 고급 차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로얄’ 시리즈에 대항하기 위해 현대차가 내놓은 야심작이다. 로얄 시리즈는 새한자동차(현 한국GM)가 독일 오펠의 레코드를 들여와 조립 생산했다. 그랜저는 현대차가 일본 자동차 기업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모델이다. 당시 디자인은 현대차가, 설계는 미쓰비시가 맡았다. 한국에서 고급 중대형차를 생산할 역량이 그만큼 갖춰지지 못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당시 신문광고 문구는 ‘품위도 정상, 사업도 정상’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의전 차량으로 사용된 1세대 그랜저는 6년간 국내 대형 승용차 수요의 대부분을 흡수하며 9만2571대가 팔렸다. 자연스럽게 국내 최고급 세단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1992년에 나온 2세대 ‘뉴그랜저(LX)’ 역시 기사를 두고 뒷좌석에 타는 최고급 승용차였다. 광고는 ‘성공한 사람들의 차’ 이미지를 앞세웠다. 디자인은 기존의 딱딱한 직선에서 곡선미를 살린 유럽풍의 역동적인 스타일로 바뀌었다.

그랜저의 타깃층이 본격적으로 젊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에 출시된 3세대 그랜저(XG)부터다. 이러한 변신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출시 2년 전에 나온 ‘다이너스티’와 1999년 출시된 ‘에쿠스’ 같은 대형차들이 기존 그랜저가 갖고 있던 최고급 차라는 이미지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체어맨’과 ‘오피러스’ 같은 상위급 차들이 나온 것도 이 시기다. 그랜저는 상류층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모델 중의 하나가 됐다. 좀 더 젊어지기 위한 시도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XG까지만 해도 타깃층을 완전히 바꾸는 변신까지는 하지 못했다는 것. 실적은 이전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3세대 모델의 상대적 부진에 자극을 받은 현대차는 이전 모델보다 차의 길이와 넓이, 높이를 키운 4세대 모델(TG)을 내놓는다. 현대차가 명운을 걸고 개발했다는 람다 V6 엔진(3300㏄)을 장착하는 등 배기량도 상향 조정했다. 현대차는 당시 국내 대형 승용차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잠재우기 위해 디자인 면에서도 훨씬 젊은 콘셉트를 취했다. 뒷좌석에 앉는 ‘쇼퍼드리븐’형 승용차에서 운전자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른바 ‘오너드리븐’ 승용차로의 본격적인 변신은 4세대부터 시작돼 2011년에 나온 5세대 그랜저(HG)에도 이어졌다. 상당한 성공을 거둔 5세대 역시 혁신을 말했지만 ‘그랜저의 원형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랜저가 변했지만 그 안의 원형과 유산, 즉 헤리티지는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2015년 현대차가 럭셔리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출시하면서 현대차의 고민은 좀 더 깊어진다. 신형 그랜저의 포지셔닝은 과거 어느 때보다 새로워야 했다. 제네시스가 고급 차 브랜드로 독립하면서 그랜저는 사실상 현대차의 플래그십(기함) 모델이 됐다. 상위 모델인 아슬란이 있지만 사실상 존재감이 없었다. 럭셔리를 표방하는 제네시스와 차별화하면서도 현대차의 최고급 모델로서의 역할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0230526_170640


2. 소비자에게 길을 묻다: ‘영포티(Young forty)’를 위한 차로 변신

신형 그랜저를 준비하던 현대차는 2016년 6월 준대형 차량에 관심이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에 나섰다. 준대형 신차를 선택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시하냐는 질문에 고객들은 제품이 주는 브랜드 이미지와 디자인, 안전성과 주행 성능을 꼽았다.

현대차 상품개발팀은 우선 그랜저가 기존에 지닌 이미지를 분석했다.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 변해왔지만 여전히 그랜저에는 중후한 이미지와 함께 ‘아빠 차’ ‘올드’라는 느낌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기존 그랜저의 주 고객층인 40대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젊다. 나이보다 젊게 사는 40대 이상의 중년을 의미하는 이른바 영포티에게 기존 고루한 이미지로 상품을 구매하도록 설득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1

현대차는 우선 그랜저를 젊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출시를 앞두고 신형 그랜저가 나오는 4부작 웹무비인 ‘특근’을 제작해 네이버TV 캐스트를 통해 공개했다. 이 웹무비에는 배우 김상중, 김강우, 주원이 출연한다. 한국을 점령한 괴생명체와 특수요원의 반격과 사투를 그린 공상과학(SF) 블록버스터로 신형 그랜저가 공식 출시하기도 전에 영화에서 내외관이 공개됐다.

이철민 현대차 국내광고팀장은 “내부적으로 반대가 많았지만 상품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 웹무비를 통해 먼저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 웹무비는 누적 조회 수 2630만 회를 기록하며 신형 그랜저의 붐업에 큰 도움을 줬다.

공식 론칭 행사 역시 파격이었다. 기존 중대형 신차 소개는 통상 권위를 상징하는 고급 호텔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신형 그랜저는 김포에 있는 헬기격납고에서 공개했다. 현장에 모인 기자들조차 왜 굳이 헬기격납고에서 신차 행사를 하는지 사전 정보가 없었다.

차량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가 끝난 이후 50m에 이르는 대형 격납고의 문이 열렸다. 앞으로 탁 트인 헬기 착륙장에서 신형 그랜저가 엔진음을 내며 활주로에서 드라이빙쇼를 시작했다. 공중에서 드론이 찍은 영상도 실시간으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방송됐다. 주홍철 현대차 국내커뮤니케이션팀 차장은 “호텔이 주는 권위와 고급스러운 이미지 대신 자동차 자체의 주행 성능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헬기격납고에서 신차 출시 행사를 마련한 이유를 설명했다. ‘고급’보다 ‘힙’을 추구하는 40대의 취향과 모든 게 맞아 떨어졌다.

영상광고 역시 사람이나 분위기가 아닌 자동차 자체에 집중했다. 커뮤니케이션 광고에서 나온 카피 문구인 ‘다시 처음부터 그랜저를 바꾸다’는 그랜저의 헤리티지마저 근본적으로 뒤집겠다는 의지였다.

신형 그랜저의 광고가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4세대 그랜저(TG)와 비교하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젊어지려는 시도를 했던 4세대 모델이지만 광고는 여전히 성공의 이미지를 두드러지게 드러냈다.

4세대 그랜저 광고를 회상해보자. 클래식한 기품이 느껴지는 유럽의 어느 건물 입구. 40대 초의 남자와 여자가 회전문을 사이에 두고 눈이 마주친다. 첫사랑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두 남녀의 표정에 복잡한 변화가 일지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런 내색 없이 사라지던 남자는 그랜저 앞에서 잠시 갈등을 하다가 차를 몰고 사라진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는 “참 많이 변한 당신, 멋지게 사셨군요”라고 독백한다. 광고에 깔리는 음악은 1960년대 히트 팝송인 ‘트라이 투 리멤버(Try To Remember)’. 또 다른 버전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라며 오랜만에 만난 두 중년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칫 속물적으로 보이는 이 광고들은 모두 40대의 성공한 남자가 타는 그랜저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자동차를 신분 과시의 도구로 삼는다는 비판, 인생의 성공 기준을 자신이 타는 자동차로 설명하는 방식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반응도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하지만 이번의 신형 그랜저는 오직 차만을 보여줬다. 주행 성능을 시작으로 안개 속에서 스스로 안전을 지켜주는 능동형 안전장치 등을 통해 고객이 기대하는 그랜저의 실용적인 측면을 소구하고 있다.

그랜저를 젊게 만들기 위한 현대차의 노력은 성공했다. 6세대 그랜저의 사전계약 고객 중 30∼40대 비중은 48%로 기존 5세대보다 7%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신규 유입된 고객 중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60% 이상을 기록했다. 사전계약 이후에도 30대의 구매가 늘어나는 패턴은 이어졌다.

김재형 현대차 국내광고팀 과장은 “기존 그랜저 모델에 비해 30대의 구매가 약 5%포인트 늘었다”며 “준대형차인 그랜저의 주력층으로 보기 어려운 30대의 구매가 늘었다는 것은 젊은 이미지와 혁신적인 기능이 소비자를 끌어들였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고급 차, ‘가성비’를 달다

1. ‘고급+힙=가성비’라는 새로운 공식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그랜저는 상품 측면에서 경쟁 모델보다 상당한 이점을 누리고 있다. 그랜저라는 이름만으로 차량 성능이 최소 평균 이상은 될 것이라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다. 현대차는 초기 설문을 통해 국내 소비자가 준대형차에서 원하는 기능 중 유독 안전성에 대한 니즈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영포티로 정의되는 주력소비층의 특성을 고려해 이미지가 아닌 제품의 실체에 근거한 고급스러운 상품성을 강조해야 했다.

차량의 수동안전은 운전자가 스스로 안전주행을 위해 취하는 조작 등 행동을 의미한다. 현대차가 신형 그랜저를 내세우면서 내놓은 능동안전은 안전주행을 위해 차량이 스스로 판단해 움직임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통상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으로 불리는 능동형 안전 기능을 현대차는 ‘현대 스마트 센스’로 이름 붙였다. 현대 스마트 센스는 ▲차량 전면의 레이더와 카메라가 차량과 보행자를 감지하는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AEB)’ ▲차선을 이탈하면 운전자 경고와 함께 차량이 스스로 스티어링 휠을 제어해 기존 주행 차선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기능주행 조향보조 시스템(LKAS)’ ▲차선 변경 시 사각지대에 차량이 있을 때 충돌 위험을 센서가 감지해 운전자에게 경고하는 ‘후측방 충돌 회피 지원 시스템(ABSD)’ ▲차량이 스스로 주행 패턴을 분석해 운전자의 피로도와 부주의 여부를 파악해 경고하고 운전자에게 휴식을 권유하는 ‘기능 부주의 운전경보 시스템(DAA)’ ▲운전자가 주행 중 설정한 속도로 차량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앞 차량과의 거리도 일정하게 유지하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 기능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랜저보다 상위 모델인 아슬란에도 이런 기능은 없다. 2015년부터 제네시스에 도입된 이 기능을 현대차 브랜드로서는 6세대 신형 그랜저에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현대 스마트 센스는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차에서 보기 힘든 사양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 경쟁차를 놓고 비교하던 고객들에게 신형 그랜저를 선택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런 능동형 안전 기능의 일부가 한국에서 많이 사용되지 않아 그랜저 선택의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어쨌든 안전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특히 ‘막연한 성공과 권위’의 상징보다 ‘내가 그랜저를 선택하는 합리적 이유’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디자인 역시 기존 1∼5세대를 이어온 중후한 외관 디자인을 버리고 6각형 모양 디자인의 캐스케이딩 그릴과 볼륨감 있는 범퍼가 적용됐다. 후면부는 이전 세대의 디자인을 계승해 곡선으로 연결된 리어램프를 채택했다. 측면은 이전보다 부드러운 캐릭터 라인을 사용하면서 전체적으로 날렵하고 스포티한 모습으로 거듭났다.

자동차 전문가인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신형 그랜저는 디자인과 연비, 가격, 옵션 등 모든 측면에서 평균 이상인 차로 상품의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 측면에서 소비자에게 확실히 선택할 이유를 줬다”고 분석했다.

가솔린과 디젤에 이어 하이브리드까지 내놓은 다양한 엔진 라인업도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현대차 영업사원들은 그랜저의 하이브리드 모델이 가솔린이나 디젤과 같은 디자인을 유지한 점도 판매를 늘리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보통 하이브리드 모델은 연비를 개선하기 위해 가솔린이나 디젤 차량과 디자인이 일부 다르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본인이 경제성을 위해 하이브리드 모델을 타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한다. 특히 그랜저를 선택하는 소비자 중 일부는 여전히 그랜저가 갖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과시하기 원한다. 경제성을 상징하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그랜저의 이미지가 상충하는 부분이다.

주홍철 현대차 차장은 “당초 하이브리드 모델의 디자인을 가솔린이나 디젤 차량과 같게 해달라는 소비자 요구는 쏘나타부터 있어왔다”며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가솔린 모델 등과 같은 디자인으로 한 것은 경제성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동시에 붙잡으려는 고객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20230526_170653


2. 애매한 포지션? 사실은 경쟁상대의 부재!

마땅한 경쟁상대가 없었다는 점도 신형 그랜저의 성공에 영향을 끼쳤다. 한국GM이 마케팅에 적극 나서지 않아 사실상 방치된 임팔라나 풀체인지 모델을 내놓지 않은 르노삼성의 SM7은 신형 그랜저와 경쟁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동차업계는 현대차가 신형 그랜저를 내놓으면서 2016년에 히트를 쳤던 SM6를 사실상 정조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에 SM6는 쏘나타와 그랜저 사이를 공략하는 상품이었다. SM6의 가격은 2360만∼3260만 원에 걸쳐 있다. 현대차는 그랜저의 가격을 2625만∼4330만 원대로 책정했다. 적당한 수준의 옵션을 붙인 3000만 원대면 SM6 대신 그랜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가격을 정한 셈이다. 몇백만 원만 더 주면 신형 그랜저를 구매할 수 있다는 유혹은 소비자에게 크게 다가왔다. 그랜저의 흥행몰이 여파로 올해 경쟁 차종의 판매량은 저조하다. 올해 10월까지 임팔라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0.7% 줄어든 3042대, SM7의 판매량은 16.6% 감소한 5042대에 그쳤다.

현대차는 신차를 출시하면 항상 기아차를 포함한 자사 차량과의 카니발라이제션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랜저 상위 모델인 아슬란은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약하다. 소비자들은 럭셔리 브랜드로 제네시스를 선택하지 않는 이상 현대차에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제네시스 G80 모델에 기본적인 옵션을 갖추면 5500만 원대를 훌쩍 넘는다. 그랜저 최고급 모델에 비해 1500만 원가량 비싸다. 그랜저를 고려했던 소비자들이 제네시스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신형 그랜저는 기아차의 동급 모델인 K7이나 자사의 쏘나타와는 일부 경쟁이 불가피했다. 중형차 부문 부동의 1위인 쏘나타는 2016년 부진했다. 국내 시장에서 8만2203대가 판매됐지만 전년 대비 24.2%가 감소했다. 올해 3월 기존 7세대(LF) 모델의 내외관 디자인과 성능을 개선한 모델을 내놓기 전까지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했다. K7 판매량 역시 올해 10월까지 작년 같은 기간(4만5825대) 대비 21% 감소한 3만6178대에 그쳤다. 1998년 10월에 출시한 그랜저XG가 다이너스티와 에쿠스 같은 초대형차에 치여 고전을 면치 못했다면 이번에 나온 IG는 앞뒤로 경쟁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는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로 한국에서 판매가 중단된 상황까지 겹치면서 국내에는 준대형 차량의 대기 수요가 압축돼 있었다”며 “신형 그랜저는 이런 상황에서 역대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형 그랜저가 나오기 전까지 현대차는 내수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현대차는 파업과 품질 논란으로 2016년에는 11월까지 42만9092대(승용 기준)를 판매했다. 이는 기아차에도 뒤지는 판매량이다. 기존 그랜저 역시 준대형차 시장에서 기아차의 K7에 밀렸다.

이 때문에 현대차 영업현장은 신형 그랜저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다. 풀체인지돼서 나오는 신형 그랜저는 항상 기본 이상의 판매량을 보여왔다. 영업직원들은 신차가 출시되기 전에 이미 준대형 차량 소비자를 대상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신차가 나오기도 전에 영업사원당 최소 10명의 리스트를 만들어 신차 출시와 함께 판촉에 들어갔다. 신형 그랜저는 내수 부진에 시달리던 현대차에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다.

자동차업계는 신형 그랜저의 성공을 특정 이유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다. 30년 넘게 이어온 브랜드가 주는 품질에 대한 신뢰감과 광고마케팅을 통한 젊어지려는 노력, 경쟁자가 별로 없었다는 행운까지 겹치면서 신형 그랜저는 2017년 현대차에 구세주와 같은 차가 됐다.

이 교수는 “현대차가 준대형 차량인 그랜저를 올해 한 달에 1만 대씩 팔아왔다는 것은 국내 내수시장에서 대단한 성과”라면서도 “수입차를 포함해 경쟁차량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내년이 신형 그랜저에는 진검승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공 요인 분석 및 제언

1. ‘샌드위치’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예전부터 한국 경제를 두고 ‘샌드위치 신세’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기술에서 아직도 먼발치 앞서 있는 일본 등의 선진국과 가격경쟁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중국 사이에 끼어 한국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였다. 세대를 논할 때 ‘낀 세대’라는 용어가 샌드위치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샌드위치 비유는 대개 피동적, 방어적, 심하게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며 표현할 때 쓰인다. 경쟁 상황을 두고 얘기할 때 더욱 그런 경향이 심하다. 그런데 사실 샌드위치에서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요소를 찾고, 또 그들을 활용할 수도 있다.

먼저 샌드위치의 특성 혹은 이름은 바로 중간에 낀 ‘꾸미’와 재료들에 의해 결정이 된다. 물론 빵의 재료를 가지고 ‘호밀빵 참치 샌드위치’식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주연은 당연히 ‘참치’지 ‘호밀’이 아니다. 중간에 낀 존재가 자신의 주변부까지 정의해버리는 게 가능하다. 즉 세그먼트나 나아가 업종 전체를 자신에 맞춰 규정해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로 샌드위치 상황은 바로 앞에서 말한 것과 연결해 양쪽으로 다 진출할 수 있는, 더욱 많은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쪽이 막혔을 때,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갖추기가 보다 용이하다. 한쪽만을 선택해 공략해야 한다고 해도 두 가지 대안이 있으니 자신의 강점이 더욱 확실하게 발휘될 곳을 선택해 나아가면 된다. 물론 그 반대로 상대방이 정해 놓은 규정에 맞춰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쪽을 택하는 이들이 훨씬 많기는 하다.

‘샌드위치 전략’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사례와 접근법을 정리하고, 열심히 그 용어를 주창한 대표적인 인물로 인시아드 학장을 맡고 있는 디팍 자인(Dipak Jain)이 있다. 페덱스(Fedex)와 미국우체국(USPS)을 대표 사례로 설명했다. 접수 다음 날 오전 10시 이전에 배달되는 ‘오버나이트 배달(Overnight Delivery)’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페덱스에 맞서 미국우체국은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한다. 신제품을 개발하고 그것을 중간에 주요 재료로 끼워 넣어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영역도 확보했다. 이들이 내놓은 제품은 ‘2일 배달’, 곧 ‘Two Day Service’였다. 빨리 배달이 되는 것을 원하기는 하지만 굳이 비싼 가격을 치르면서까지 빠른 배송은 원치 않는 소비자들을 겨냥했다. 기존 우체국 소포 서비스를 아래에, 페덱스의 오버나이트를 위로 두고 중간에 2일 서비스의 공간을 마련했다. 기존 소포보다는 속도에서, 페덱스 대비해서는 가격에서 확실하게 경쟁력을 가졌다. 속도가 소포 배달의 핵심 경쟁요소로 페덱스의 등장과 함께 확실하게 떠올랐는데 미국우체국은 속도가 아닌 자신의 강점인 가격으로 경쟁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당연히 속도를 중시하는 기존 우체국 고객들을 위해 페덱스와 같은 서비스도 제공했으나 주력이 아니었고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 우체국의 오버나이트 서비스는 페덱스에 아웃소싱하는 형태로 제공됐다고 한다. 곧 가격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굳이 자신들이 새롭게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랜저에서도 미국 우체국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 대표 고급 세단으로 탄생했던 그랜저는 이후 다이너스티, 에쿠스 등의 상위 모델들을 출시했지만 수입자동차와 싸움에서 선봉장이라는 부담을 줄곧 지니고 있었다. 현대차가 내놓는 최고급 세단은 아니지만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편의사양이나 첨단 기능을 주 무기로 갖추고, 프리미엄 수입차가 주축이 된 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쏘나타가 매출 볼륨을 맡고, 그랜저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볼륨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제네시스가 나오면서 ‘고급’이라는 부담에서 해방됐다. 이때 많은 이들은 이를 ‘해방’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고급 차 제네시스와 대중차 쏘나타 사이에 낀 ‘샌드위치’라고만 생각했다. 곧 세단 시장에서 위로는 제네시스, 아래로는 쏘나타라는 ‘빵’ 사이에서 그랜저라는 샌드위치 ‘꾸미’로서 특성이 명확해졌다. 게다가 지난 2011년부터 강조되기 시작한 ‘젊음’ ‘역동성’과 같은 요소는 SUV 열풍 속에서도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세단의 대표주자로서 그랜저를 자리매김하게 했다고 본다. 그랜저 샌드위치의 제네시스와 쏘나타라는 빵은 오히려 중간의 그랜저를 누르는 게 아니라 방어하는 형세로 작용했다.

그랜저 샌드위치 성공의 일등 공신은 가격이었다. 공격적인 가격 정책도 제네시스가 고급 이미지 구축이라는 책임을 우선적으로 맡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더욱 인상적으로 각인됐을 것이다. 가격 자체가 고급이라는 표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 부담 역시 샌드위치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떨쳐버릴 수 있었다. 즉, 이제는 제네시스가 있기에 ‘고급’을 위해 굳이 비싼 가격을 책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에 더해 동급 차량을 내놓는 국내 경쟁사들은 반대로 고급화 전략을 취하며 그랜저의 가격전략은 제네시스 G70과 더불어 경쟁자들을 압박하는 샌드위치 빵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2. ‘가성비’와 ‘브랜드 파워’는 반비례 관계가 아니다!

현대차라는 기업 브랜드의 강점은 무엇보다 ‘가격’이다. 브랜드의 힘은 프리미엄 가격에서 표현된다고 흔히 얘기한다. 그래서 현대차가 브랜드 키우기를 전면에 내세웠을 때 ‘상대적인 저가’는 마치 떨쳐버려야 할 굴레처럼 인식됐다. 이는 삼성전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했으면 ‘제값받기’라는 용어를 만들고, 그 한글 앞머리 발음을 그대로 로마자 알파벳으로 옮긴 ‘GKBK’를 법인들 평가의 공식 잣대 중 하나로 적용했을까. 제품이나 브랜드를 평가하는 여러 속성 중에 ‘가격 대비 가치’, 영어로 ‘Value for money’가 있었다. 인지도가 낮으면 브랜드 파워가 약하기 때문에 가격을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속성들은 점수가 낮은데 ‘가격 대비 가치’만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곤 했다. 묘하게 ‘가격 대비 가치’ 점수 자체가 브랜드 파워에 반비례하는 것 같은 인식이 형성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형성되고 물량이 유통되는 상황에서 ‘가격 대비 가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가성비’까지 갖춘 금상첨화가 되는 것이다. 그랜저로 치면 상위 등급이 부담스러운 이와 하위 등급에서 상위 사양에 대한 욕구를 가진 이들을 동시에 양쪽으로 공략할 수 있는 무기가 됐다.

이런 그랜저의 가격전략은 현대차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의 쇼크, 미국 시장의 불투명한 미래, 국내 시장, 특히 세단에서의 부진 등이 충격요법을 불가피하게 한 측면이 있다. 그래도 이 가격전략 실행은 현대차만의 힘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를 세 개의 ‘S’로 정리해서 말한다. 첫째는 모든 등급의 다양한 차종을 낼 수 있는 국내 최대, 세계 5위권의 규모(scale)이다. 이런 가격을 맞출 수 있는 원가경쟁력, 곧 현대차만의 축적된 기술(skill)이 두 번째다. 마지막으로 온갖 풍상을 겪으며 다져진 현대차만의 버텨나가는 힘, 곧 다른 의미로 더 많이 쓰기는 하지만 ‘sustainability’가 있다. 이 3S를 기반으로 더 크고, 더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드는 게 그랜저뿐만 아니라 현대차의 과제다.

이에 대한 전망과 조언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떤 샌드위치 브랜드도 맛 하나만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랜저는 기능 이상의 감성적 가치, 사용자의 이미지를 강화해야 한다. 디팍 자인 교수가 미국우체국을 성공사례로 들었지만 장기적으로 페덱스와 대등한 경쟁자가 되지는 못했다. 제대로 비즈니스를 하려면, 혹은 하고 있는 이는 페덱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형성하지 못하고 초반에 성공했던 가격에만 치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랜저가 고급스러움을 내세울 때는 사용자 이미지를 강조했다. 가격을 비롯한 기능성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느낌인데, 감성과 연계해 소구점을 찾는 활동이 이어져야 한다. 현대차 내부에서 G70이 위에서 누르고, 쏘나타 신차가 내년에 출시돼 치고 올라오면 그랜저 샌드위치는 그야말로 부정적 의미의 샌드위치가 돼버릴 수도 있다. 도전자로서가 아닌 응전하는 입장에서의 그랜저 샌드위치는 어떤 형태가 될지 궁금하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하영(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경영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정세진 동아일보 기자 mint4a@donga.com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parkjaehang@gmail.com

정세진 기자는 고려대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한양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2003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후 사회부를 거쳐 경제부, 산업부 등에서 주요 기업 및 정부 부처를 출입했다. 경제 산업의 움직임과 다양한 정치, 사회 현상의 영향과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현재 자동차 분야를 맡고 있으며 국내외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다.

박재항 대표는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등을 역임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글로벌 마케팅기업인 하바스그룹 한국법인에서 국내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트렌드 분석 및 마케팅 실행 전략을 제시하고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플래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저서로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 『브랜드마인드』 등이 있다.
  • 정세진 정세진 | 2003년 동아일보 입사
    mint4a@donga.com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박재항 | - (현)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 연구소장
    -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 본부장
    -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parkjaehang@gmail.com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