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선택의 폭 커지면 고민↑ 만족↓

14호 (2008년 8월 Issue 1)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백화점 매장을 모두 뒤지고 나서야 가장 맘에 드는 청바지를 고르는 사람과 맘에 드는 청바지를 발견하는 순간 바로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다, 이 두 가지 타입의 소비자 중 과연 누가 더 행복할까, 누가 더 자신이 고른 청바지에 만족할까.
 
매장을 다 뒤져 청바지를 고른 사람이 쇼핑 만족도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선택에 관한 심리학을 연구하는 미국 스와스모어대 사회행동학과의 배리 슈워츠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모든 매장을 훑는 사람은 더 좋은 대안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 쇼핑에 들인 노력에 비해 구입한 청바지의 효용성이 낮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이 고른 물건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더 낮다고 주장한다.
 
선택의 천국에서 고객 만족도는? 
요즘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은 그야말로 ‘선택의 천국’이다. 과자 종류만 해도 300가지가 넘으며, 하다못해 음료수만 보더라도 스포츠음료, 과일음료, 탄산음료, 어린이용 음료 등 온갖 종류의 음료가 있다. 같은 과일 음료라 하더라도 맛과 브랜드가 제각각이며, 종류만 해도 적어도 100가지는 될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대한민국에 들어선 전형적인 대형마트는 3만∼5만 개의 품목을 전시하고 있고, 매년 2만 개 이상의 새로운 제품들이 출시되어 선반 위에 올라오며, 이 가운데 대부분은 오래지 않아 시장에서 곧바로 사라지는 비극적 운명에 처하고 있다.
 
과연 현대인들은 먹을거리 선택의 기회가 넓어진 만큼 선택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 부유한 동네의 특설 매장에서 수행한 연구가 하나 있다. 연구자들은 평소 새로운 품목을 올려놓는 견본 진열대에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잼’들을 진열한 뒤 고객들에게 견본 잼을 맛보게 하고, 잼 한 병을 사면 1달러를 깎아주는 쿠폰을 제공했다.
 
이들은 먼저 여섯 가지 잼을 진열해 맛보게 하고, 그 다음에는 24가지의 잼을 진열해 놓았다. 과연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잼을 더 많이 사고 잼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았을까.
 
사람들은 6종류의 잼이 놓여 있을 때보다 24가지 잼이 놓여 있을 때 더 많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맛을 본 잼의 가짓수는 둘 다 비슷했다. 그러나 실제로 구입한 잼의 양은 매우 달랐다. 견본 잼이 여섯 가지일 때 실제로 잼을 구매한 사람들의 비율은 30%였던 반면에 견본 잼이 24가지일 때 구매한 사람들의 비율은 3%에 불과했다.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24가지 잼을 선택한 집단보다 달랑 여섯 가지 잼 중에서 고른 사람들이 더 만족스럽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대안 많아질수록 선택의 고민 깊어져 
청바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대안이 제시될수록 고민이 깊어지고, 선택에 대한 확신도 줄어든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나, 커피를 마셔야 하나?”
 
커피를 마시는 문제에서부터 목숨을 끊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점철돼 있으며, 매순간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내 앞에 놓인 것을 선택하지 않은 순간에 늘 새로운 대안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는 내가 어떤 타입의 선택자인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내 선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위해 가장 먼저 ‘가장 좋은 것을 택할 것인가’, ‘충분히 좋은 것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최고만을 추구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극대화자(maximizer)’라고 부른다. 배리 스워츠의 ‘선택의 심리학’(웅진지식하우스, 2005)에 따르면 극대화자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구매나 결정이 반드시 최고이기를 고집한다. 그러나 최고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대안을 직접 확인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극대화자들은 모든 매장의 모든 청바지를 다 둘러보고 때론 입어봐야 자신이 가장 좋은 청바지를 찾았다고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청바지의 가격을 전부 확인해야만 가장 좋은 가격으로 구매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다. 이런 전략은 노력의 범위 안에서 가장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겠지만, 선택 그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 된다. 또 대안의 수가 늘어날수록 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반면에 극대화자와는 달리 충분히 만족하기만 하면 바로 선택하는 ‘만족자’(satisfier)들이 있다. 이들은 충분히 좋다고 판단되면 바로 구매하는 사람들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지만, 이로 인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만족자들은 나름대로 물건 구입을 위한 기준을 갖고 있어서, 이 기준만 충족되면 탐색을 멈추고 바로 선택한다. ‘맘에 드는 청바지를 발견하는 순간 바로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적당히 만족할 줄 아는 지혜 가져야 
흥미로운 것은 극대화자들이 좀 더 나은 제품을 살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결코 만족자들에 비해 더 만족스런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극대화자들은 시간이 없어 알아보지 못한 대안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며,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아픔을 느낀다. “저걸 살 걸 그랬나?” 게다가 이런 사람들은 꼭 다른 백화점에 가면 내가 구입한 물건의 가격을 점원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내가 최저 가격에 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수많은 대안이 무한정 기다리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만하면 충분해”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심리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1950년대 ‘만족하기’(satisficing)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하면서 모든 대안에 관한 정보 수집에 수반되는 요인, 예를 들어 시간이나 돈, 노력과 고민들을 감안한다면 ‘만족하기’ 전략이 최대 만족을 얻기 위한 가장 적절한 전략이라고 제안했다. 다시 말해서 최선의 선택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가장 좋은 제품을 고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제품을 구입한 뒤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TV에는 공중파 방송 3∼4채널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TV를 즐기며 보았는가! 그러나 이제 우리는 케이블 채널이 60개가 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TV는 인터넷과 결합해 시청자들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채널이 60개인 오늘날 과연 우리는 20년 전에 비해 20배의 만족을 느끼며 TV를 시청하고 있을까? 예전에 비해 볼거리는 더 풍성해졌지만 한 프로그램을 진득하니 즐기지 못하고 어디선가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하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리모컨을 눌러대고 있지는 않은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사진작가로 꼽히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면, 후회가 남을 가능성도 두 가지이다.” 최고를 추구할 때보다 충분히 좋은 것을 선택할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실천해 보면 어떨까?
 
필자는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마쳤다.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로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도전, 무한지식> 등이 있다.
 
편집자주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주제로 연재합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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