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Biz
Article at a Glance
우리의 주식 ‘쌀’이 점차 외면받고 있다. 누가 쌀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을까. 흔히 상상하는 것과 달리 빵은 쌀의 대체제가 아니다. 빵은 여전히 국내에서는 간식의 성격이 강하다. 라면은 대체재 역할을 하지만 최근에는 라면의 소비도 줄고 있다. 오히려 빠르게 쌀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육류다. 그러나 육류를 많이 소비한다고 밥을 안 먹지는 않을터. 때문에 쌀 가공기술이나 쌀 육종기술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역시 좋은 품질의 쌀을 편리하게 소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가 쌀을 덜 먹는 것은 쌀이 싫어서가 아니라 쌀을 조리해서 밥과 반찬을 해먹는 과정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
쌀의 소비가 줄고 있다. 우리 쌀 생산 농민들은 쌀 소비가 줄어드는 것에 힘겨워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여기에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면 반드시 거기에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쌀 소비를 반등시키려면 왜 쌀 소비가 줄어드는지를 봐야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왜 쌀을 덜 먹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 이유를 찾아보자.
오래 전부터 중국과 일본에서는 우리를 ‘대식국(大食國)’이라 불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무열왕 김춘추의 식사량을 보면 하루에 쌀 서 말과 꿩 아홉 마리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굉장하다. 임진왜란 시절의 기록을 보면 군량미 기준 조선군의 한 끼 쌀 섭취량은 7홉인데, 일본군은 2홉이었다고 한다. 조선군이 일본군보다 무려 3배 이상을 먹었다. 조선군의 한 끼 쌀 섭취량인 7홉은 조선 중기의 기준으로 1홉이 60㏄였으니 7홉이면 대략 420㏄가 된다. 심지어 1890년대 자료를 보면 밥공기의 용량이 무려 900㏄에 달한다. 요즘 밥공기 하나에 들어가는 쌀의 양은 겨우 100∼120㏄ 정도이고, 밥공기의 용량은 190㏄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예전에는 쌀을 지금의 네 배 이상을 먹었던 것이다. 이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쌀 소비는 이미 상당량 줄어들었다.
쌀의 대체재는 빵일까?
소비자들이 밥을 줄였다면 분명히 다른 것의 소비를 늘렸을 것이다. 우리는 대식국의 후예들이 아니던가! 이에 관해 많은 이론과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그럴듯한 이론은 ‘빵 대체재론’이다. 많은 이들이 빵이 쌀을 대체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이 수집한 수도권 1000여 가구의 5년간 식품 구매 영수증 자료 분석에 따르면 믿음과는 달리 빵이 밥을 대체하고 있지는 않다. 한국인은 여전히 ‘밥심’이기 때문에 빵은 주로 간식으로 먹는다. 그래서 국내에서 판매되는 빵들은 단맛 위주의 페이스트리류이다. 유럽식의 밍밍한 식사 대용 빵은 한국 시장에서는 선호되지 않는다. 빵은 빵대로 먹고 밥은 밥대로 먹어야 하는 것이 여전히 주류 소비자들의 음식 소비 패턴이다.
빵에 대해서 조금만 더 들여다보자. 국내에서 빵은 커피와 보완재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둘 다 간식 비용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대체재 관계로 추정하고 있다. 빵을 많이 사 먹으면 다른 간식 비용을 줄인다. 즉, 커피와 음료, 과자 등의 지출을 줄이게 된다. 그래서 카페가 잘되면 빵집이 힘들고, 빵집이 잘되면 카페가 힘들다. 요즘은 카페에서도 빵을 팔고, 빵집에서도 커피를 팔면서 대체재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고 있다. 반면에 쌀은 이들과는 다른 독립재이다. 자료 분석을 해보면 쌀의 대체재 역할을 하는 것은 라면이다. 쌀과 라면은 모두 주식비용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라면을 사 먹으면 그만큼 밥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고 쌀을 사지 않게 된다. 즉, 빵과 커피는 왼쪽 호주머니, 쌀과 라면은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소비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제 라면의 소비도 감소 추세에 들어갔다. <그림 1>을 보아도 쌀 소비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나 밀 소비는 증가하고 있지 않고 정체돼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밥을 안 먹고 뭘 더 먹고 있는 것일까?
고기가 쌀을 대체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수도권 주부들의 구매 패턴을 보면 단일 제품군으로 가장 구매액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육류 쪽이다. 물론 국내 외식에서도 단연 1위는 고깃집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다. 신선육 구매를 보면 앞서 언급했던 수도권 주부들의 경우 2012년에 연평균 58만 원을 지출했는데, 2015년엔 무려 74만 원을 지출했다. 가공육까지 포함하면 2012년엔 75만 원, 2015년에는 94만 원이다. 육류가 상당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신선육의 경우 전체 구매액 중 41%가 돼지고기로 역시 대한민국 대표 육류 식재료는 돼지고기로 나타났다.
채소 쪽을 조사해보면 채소 소비량은 쌀보다도 더 급격히 줄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채소를 많이 먹는 국가인 대한민국의 위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세계 1위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그 자리를 이탈리아에 내줄 것 같다. 한국인의 1인당 채소 소비량이 놀라울 정도로 높았던 가장 큰 이유는 채소를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는 습관 때문이다. 채소를 샐러드의 형태로 먹는 것에 비해 데쳐서 나물로 먹으면 훨씬 많은 양의 채소를 섭취할 수 있다. 그러나 외식이 증가하고 한 그릇 음식의 식문화가 증가하면서 나물의 섭취가 줄고 있다. 밥을 적게 먹으면 나물의 섭취도 줄어든다. 채소류는 쌀과 보완재인 데 반해 육류는 쌀과 대체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한국인은 밥심이 아닌 육심으로 산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우리 국민의 고기 섭취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서구 국가에 비하면 높지 않은 수준이다. 대표적인 육식국(肉食國) 독일과 비교해보면 적색육의 경우 우리가 독일의 72% 수준에 머물고 있고, 가공육의 경우 겨우 5% 수준으로 소비하고 있다. 소시지와 햄으로 대표되는 가공육은 우리 한국인의 식문화에 아직 제대로 편입되지도 않은 셈이다. 독일인들은 커다란 햄 덩어리를 스테이크처럼 썰어 먹는 경우가 꽤 많은데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식문화이다. 반면에 채소의 경우 우리는 1년에 무려 222㎏을 먹고 있다. 독일의 2.5배 수준을 먹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양이다. (표 1)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추정해 보자면 앞으로 우리의 식생활은 더욱 서구화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밥과 채소의 소비량은 더 줄고 고기의 소비량은 더욱 증가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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