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상상력의 원천 ‘ SF ’

13호 (2008년 7월 Issue 2)

인간의 꿈과 상상력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견인하며 인류의 삶을 바꾸는 주요 원동력이 되어 왔다. 하늘을 날고, 달나라에 가고, 바다 속을 여행하는 인간의 오랜 꿈과 상상은 이미 현실이 된지 오래다. 이런 꿈과 상상력이 가장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곳이 바로 공상과학(SF, Science Fiction) 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영역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되던 SF 소설과 영화 속의 이야기는 오늘날 이미 상당 부분이 실현됐거나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SF 작가 쥘 베른이 ‘해저 2만리’에서 등장시킨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미 해군의 첫 번째 핵잠수함 ‘노틸러스’의 모형이 됐다. 1911년에 나온 SF 소설 ‘랄프124C41+’에 등장한 양방향 TV, 화상전화, 녹음테이프, 자동판매기 등은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현대 문명의 일부가 됐다.
 
러시아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는 ‘달세계 도착(1916)’에서 오늘날의 우주탐사와 비슷한 형태의 달 여행을 묘사했으며, 액체연료로켓과 우주복까지 등장시켰다. 결국 인류는 1969년 달에 그 첫발을 내디뎠다. 얼마 전에 타계한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원작자이자 미래학자인 아서 클라크는 1945년 ‘행성 밖에서 중계하는 방송’이라는 글을 통해 지구 밖의 정지궤도에서 국가간 통신을 가능케 하는 위성 개념을 발표했다. 많은 사람이 이를 허황한 이야기로 폄하했지만 20년 뒤 정지궤도 위성이 발사됐으며, 정지궤도는 ‘클라크 궤도’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1984년에 발표된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는 인터넷, 3차원 가상현실, 아바타 등을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흥미로운 것은 깁슨이 PC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는 문외한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 SF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과학기술은 앞으로 우리 미래를 어떻게 바꾸게 될까. 우리의 미래 모습은 과연 SF에 묘사된 그대로일까. 현재의 과학기술과 개발 중인 기술을 중심으로 그 가능성을 살펴보자.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3차원 홀로그래피
홀로그래피(holography)는 미래를 소재로 다룬 SF 영화의 단골 메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톰 크루즈가 ‘홀로그래피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정보를 검색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들도 홀로그래피 전송장치를 통해 멀리 떨어진 다른 기사들과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 영화 ‘토털리콜’에는 여배우가 홀로그래피 영상을 보면서 에어로빅을 배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실제의 에어로빅 강사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실감이 난다.
 
이런 SF 영화에 등장하는 홀로그래피의 모습은 우리에게 실제로 얼마나 현실로 다가와 있는 것일까.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로 보았을 때 그리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홀로그래피 입체영상을 촬영하고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는 기술과 홀로그래피 동영상 정보를 압축하고 전송할 수 있는 통신 기술이 필요하다.
 
홀로그래피의 촬영과 재생은 이미 박물관, 미술 전시장, 쇼윈도 등에서 어느 정도 실용화 되고 있는 단계다. 문제가 되는 것은 홀로그래피 영상 데이터의 엄청난 용량이다. 데이터 자체가 너무 커서 홀로그램 기술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통신망으로는 전송이나 저장이 힘들다. 실물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인간 형상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수백 기가바이트(GB)에서 수십 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 용량이 필요하다. 스타워즈의 제다이 화상회의처럼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TB급 데이터를 초당 전송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현재 10 Gbps(Giga bit per second)의 전송망 속도는 조만간 800Gbps로 크게 빨라질 전망이다. 과학자들은 2015년께 홀로그래피 전송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5년께에는 실제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인간 홀로그래피 형상을 인터넷으로 전송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HDTV보다 4배나 선명한 해상도를 재현하는 3차원 홀로그래피, 실제적인 감촉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햅틱 기술, 이런 대용량을 전송할 수 있는 신개념의 초고속 통신망 기술은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사람들이 마치 같은 장소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만남을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홀로그래피는 기업의 화상회의, 사랑하는 가족과의 재회 등 수많은 용도로 쓰이게 될 것이다. 홀로그래피를 이용한 전시, 패션쇼, 광고, 라이브 공연은 물론 소비자들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홀로그래피를 통해 상품의 모양과 색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구매하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동시에 홀로그래피는 3차원 멀티미디어의 핵심 기반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2차원 평면 화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홀로그래픽 게임의 심각한 중독 현상과 홀로그래픽 ‘야동(야한 동영상)’의 범람이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인간이 꿈꾸는 완벽한 유비쿼터스 세계
지난해부터 일본 NHK의 교육채널에서 방영 중인 ‘전뇌(電腦)코일’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현실감과 독특하지만 구체적인 미래상을 담은 SF 작품이다. 일본 SF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공각기동대’의 작화에 참여했던 이소 미쓰오 감독이 원작과 각본을 함께 맡았다.
 
전뇌코일은 3D 홀로그래피가 일상화된 근(近)미래를 배경으로 하면서 유비쿼터스 기술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작품 무대는 ‘전뇌안경’이라는 물품이 생활화된 2020년 일본의 한 작은 도시. HMD(Head Mounted Display)의 진화된 형태인 전뇌안경은 ‘전뇌 세계’라고 하는 가상의 공간을 현실에서 시각화해 주는 도구다. 요즘의 인터넷, 컴퓨터, 휴대전화, 게임기 등의 기능이 모두 합쳐진 형태라고 보면 된다.
 
전뇌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현실 세계뿐 아니라 가상공간(전뇌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까지 동시에 볼 수 있다. 전뇌 세계의 모든 사물은 3차원 홀로그래픽 형태로 실체화되어 있으며, 심지어 ‘전뇌펫’이라는 가상의 애완동물까지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전뇌 세계는 가상과 현실이 혼합된 일종의 4차원 공간인 ‘가상혼합 현실(Hybrid Reality)’의 세계이다.
 
전뇌코일’이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전뇌코일에서 묘사되고 있는 세계야말로 현재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완벽한 유비쿼터스의 세계이며, 컴퓨터·인터넷·게임기·휴대전화 기기가 진화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을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전뇌안경을 착용한 사람은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디지털 정보 등 각종 자료를 바로 눈앞의 가상 스크린에 띄워 터치 방식으로 검색할 수 있다.
 
이소 감독은 이 밖에도 텔레매틱스(tele -matics)와 같은 현재 개발 중이거나 상용화한 기술을 애니메이션에 적극 반영해 이런 기술이 앞으로 불러올 수 있는 여러 문제점과 부작용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작품 속에서는 지능형 교통시스템의 버그(bug)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 가상세계에서 창조된 애완견 등 인공생명에 대한 윤리 문제 등이 제기된다. 이런 점에서 전뇌코일은 사이버 폭력, 인터넷·게임 중독, 개인정보 대량 유출 등 정보화 사회의 부작용을 경험한 우리가 미래의 유비쿼터스 사회가 가져올 여러 문제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텔레포테이션-석유 고갈 이후의 대안?
인기 SF 시리즈 ‘스타트렉(Star Trek)’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텔레포터(teleporter· 순간원격이동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주인공인 커크 선장이 동시에 2명으로 존재한다. 1966년에 TV 시리즈로 첫선을 보인 ‘스타트렉’은 텔레포테이션의 실현이 가장 리얼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우주선 승무원들은 텔레포터를 이용해 순식간에 먼 곳으로 이동하거나 다시 우주선으로 귀환한다.
 
1986년에 개봉한 SF 영화 ‘플라이(The Fly)’에도 순간 공간이동 장치인 텔레포터가 등장한다. 영화의 주인공 과학자는 물체를 순간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장치를 발명한 뒤 여자친구 앞에서 스타킹을 순간 이동하는 실험을 시현한다. 주인공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공간이동 실험을 하게 되고, 실수로 등에 붙어 있던 파리의 유전자가 몸에 섞여들어 괴물이 된다는 이야기다.
 
최근 SF 속의 텔레포테이션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미 1997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에서 빛을 구성하는 입자인 광자를 원격 이동시키는 실험이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수년 내에 원자의 공간이동이 가능해질 것이며, 10여 년 뒤에는 분자의 공간이동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급속 조형기술, 미립자 홀로그래피, 3D 프린터 등의 기술적 발전은 텔레포테이션의 현실화 가능성을 더욱 구체화시키고 있다. 이 세 가지 주요 기술과 함께 양자물리학, 양자컴퓨터, 나노기술, 재료공학, 유전자공학 등의 발전은 앞으로 20년 내에 생명체를 제외한 물질들을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텔레포테이션 기술의 실현은 미래의 통신·운송·환경 등의 산업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텔레포테이션의 보편화는 내연기관을 통한 운송시스템의 대체를 가져와 배기가스 등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석유자원 고갈 이후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 해 줄 전망이다.
 
하지만 텔레포테이션 기술의 현실화는 의외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인류는 석유 개발 초기에 화석연료의 심각한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했고, 원자력의 방사능 오염과 핵폐기물 문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이슈가 됐다. 따라서 텔레포테이션과 관련해서도 마약 유통이나 전송을 이용한 폭탄테러 등 신종 범죄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면밀한 대비와 감시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최근 SF는 현실성 있는 근미래 묘사
과거 대부분의 SF물은 작가나 감독의 상상력에 의존해 왔지만 최근에는 상상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실제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먼 미래보다 현실감이 더 높은 가까운 미래를 그려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과학자들이 직접 참여해 극사실적 표현과 미래상을 담아내는 것도 일반화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근에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 맨’이다. 이 영화에는 슈퍼맨처럼 태생적으로 초자연적 힘을 지니고 있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충분히(또는 상당 부분 충분히) 개연성 있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초인적 힘을 지니게 된 ‘Self Made Super Hero’가 등장해 악당을 물리친다.
 
아이언 맨’에서 묘사된 ‘입는 로봇’은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한창 개발 중에 있으며, 곧 상용화될 예정이다. 일본 쓰쿠바대 산카이 요시유키 교수는 노인과 장애인의 거동을 돕는 ‘HAL 로봇 슈트’를 개발했다. 미국에서는 입는 로봇 기술을 군사용으로 개발 중이다. 한국에서도 ‘아이언 맨’과 같이 초인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근력강화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근력강화 옷’은 전기신호, 센서, 모터, 금속 골격 등을 이용해 인간 근육의 힘을 증폭시키는 장비로 향후 군사적 활용은 물론 인명구조나 위험작업, 장애인 대상 재활용 등에도 이용될 전망이다. 평범한 사람 어느 누구라도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하면 현실 세계에서 슈퍼맨이 될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만은 않다.
 
SF는 문학세계를 넘어선 미래학 영역
일부 진지한 사람들은 미래학자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미래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 종종 “소설을 쓰고 있군”이라고 폄하하거나 핀잔을 주곤 한다. 그러나 이런 진지한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소설 속에 녹아있는 미래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가능성이다.
 
과거나 현재에 매몰된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본다면 미래 모습도 현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꿈과 상상력은 인류의 현재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새로운 미래를 여는데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특히 SF 소설과 영화는 과학적 논리에 기반을 두어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의 지평을 무한대로 넓혀 줌으로써 다양한 미래의 모습을 제시하는 훌륭한 실험실이자 공작소라 할 수 있다. 이런 과학기술적 논리에 기반을 둔 특성이 SF를 판타지(fantasy)와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또 현재 진행 중인 과학기술 발전이 SF에 반영되는 측면도 있지만, 실제의 과학기술 발달에 SF가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는 상호작용적 측면이 강하다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SF 강국인 미국과 일본이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SF 세계는 문학의 경계를 넘어 미래 지향적 사고를 배양할 수 있는 ‘미래학’ 영역”이라며 그 가치를 인정했다. SF 환경이 너무도 척박한 한국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토플러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는 KT 경영연구소 미래사회연구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미래학과 미래사회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 동양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에서 법학 석사 학위, 미국 하와이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