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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강글리오

너무도 선명했던 두 글자 ‘농심’ ‘몸에 좋은 고급 커피’에 독이 됐다

이승연 | 143호 (2013년 12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문경(건국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3 1, 커피 업계는 물론 식품업계 전반에 전운이 감돌았다. 인스턴트커피 시장의 독보적 1위 업체인 동서식품(맥심)을 비롯해 네슬레(네스카페), 남양유업(프렌치카페) 등은 라면 1위 업체 농심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2012년 말부터 농심의 커피시장 진출이 기정사실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창 성장세를 구가하던카누루카같은아메리카노스타일의 원두커피 형태일지, 전통적인설탕+프림조합의 믹스커피의 형태일지조차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어떤 상품명으로 언제쯤 시장에 나올지 역시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리고 올해 1, 다소 생경한 이름의 커피 제품 하나가 등장했다. 농심의강글리오. 녹용, 녹골, 모유 등에 포함된 성분이라는 강글리오사이드가 들어갔음을 강조하기 위해 성분명에서 제품명을 따왔다.

 

농심은 강글리오 제품의 홍보를 위해프리미엄’ ‘기능성’ ‘건강에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라면시장 1위 업체로서 보유하고 있던 왕성한 영업력과 유통망 네트워크를 활용하면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영화배우 이범수를 광고 모델로 내세우면서 중독성을 지닐 만한 CM송도 퍼뜨렸다. 농심의 자신감은 충만했다. 당시 농심은 직거래/대리점/특판으로 구분되는 유통망을 갖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마케팅 투자만 제대로 하면 인스턴트커피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올해 초 식품업체 관계자들 모임에서 농심 측 임직원들은 커피시장 1위 동서식품 임직원들에게이제 우리의 경쟁상대는 동서식품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출시된 지 1년 가까이 지난 2013 12월 현재, 강글리오는 어떻게 됐을까?

 

강글리오의 판매 실적은 통계로 잡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하다. 시장점유율 조사 기관인 AC닐슨이 그간 공개했던 자료만을 토대로 2013년 국내 인스턴트커피 시장점유율을 보면 농심 강글리오는기타에 포함돼 있어 시장주도자 혹은 유의미한 변수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1) DBR에서 각 대형마트를 통해 취재한 결과도 비슷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대형마트에는 12입과 24입 두 가지 상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지난 3월 입점 이후 5월부터 각종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해 6월까지 두 달간 4000∼5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뒤 다시 추락해 현재 1200∼1300만 원대의 매출에 머무르고 있다. (그림 1) 이는 월 100억 원이 훌쩍 넘는 해당 대형마트 인스턴트커피 매출의 0.1%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농심이 대형마트를 상대로 상당한 영업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지극히 미미한 점유율이다.1  대형마트 관계자는프로모션 행사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점유율이 추락해 시장에서 영향이 거의 미미한 상품이 됐다중장년층에서 일부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약 맛이 강하게 난다는 점 때문에 젊은층에서 재구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트위터 등 SNS 반응을 살펴보면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적나라한 불만들을 확인할 수 있다. “모양은 라면스프, 맛은 보약 맛이라는 의견부터비주얼이 라면스프다. 포장만 라면스프인줄 알았는데 커피도 라면스프처럼 갈아 놨다. 물에 녹는 모습도 라면스프이고 맛은 들척지근하다” “강글리오 살까 말까 했는데 포장지에 적혀 있는 너무나 선명한농심이라는 글자를 보고 그냥 카누 사왔어요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자사의 야심작인 강글리오 제품에 대해 소비자의 반응이 회의적으로 나타나자 농심은 지난 1125일부터꿀사과 강글리오라는 단맛을 추가한 강글리오 2탄을 출시하고 배우 주상욱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반전을 노리고 있다.

 

1. 농심의강글리오’, 잠정적 실패의 과정과 그 원인

 

1) 농심은 왜 커피사업에 뛰어들었나?

 

농심이 이미 라면시장에서 1위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레드오션인 인스턴트커피 시장으로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식품산업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농심의 이 같은 선택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현재 국내 식품 시장은 포화상태이자 위기상황이다. 이는 다이어트나 웰빙 열풍의 여파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바로 인구구조의 변화가 전통적 식품산업의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출산율이 낮아져 위기에 봉착했던 분유업계는 가격을 계속 올리는프리미엄화전략으로 위기를 지연시켜왔지만 국민 소득 수준이 정체상태에 머물면서 이 역시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다. 과자 업체들 역시 아이들 수가 감소하고좋은 먹거리를 찾는 주부들이 많아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국민 간식 혹은 대체식으로 각광받던 라면 역시 시장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분유시장 1위 업체 남양유업, 우유업계 강자 서울우유, 국내 제과업·유통업 강자 롯데의 롯데칠성음료, 그리고 라면시장 1위 업체 농심까지 모두커피시장에 뛰어든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동서식품이 장악하고 있는 커피시장에서 현재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만이카제인나트륨 없는 커피를 내세운노이즈 마케팅으로 10%를 조금 넘는 점유율을 확보했을 뿐 나머지 다른 업체들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중에서 농심의 강글리오 사례가 가장 눈에 띄는 이유는 출시 전부터 업계 전체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녹용 성분이 첨가된 제품이라는 차별화를 시도했으며, 또 나름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를 펼쳤음에도 현 시점에서 볼 때 신제품 출시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농심이 강글리오 출시 직후 약 두 달에 걸쳐 투자한 마케팅 비용만 해도 업계에서는 약 22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시 농심의 판단은 이랬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골프장에서 VIP들에게 녹용커피나 홍삼커피를 제공하는 걸 보고 녹용과 커피의 결합을 기획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지만 건강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분명 있기 때문에 건강을 보장하는 개념으로 커피를 출시하면 고객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서라도몸에 좋은 커피를 구매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출시 당시 농심 관계자는건강까지 생각한 강글리오 커피는 집에서나 카페에서나, 클래식하고 트렌디하게 언제 어디서나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다양한 모습으로 힐링타임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자신감이었다.

 

2) 그리고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농심이 노리고 들어간 그곳. 이미 레드오션인 인스턴트커피 시장에서 자신들이 자리매김하게 될 곳이라고 생각했던프리미엄·기능성·건강 커피영역.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농심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커피를 가장 많이 즐기는 20∼30대 여성들의 경우녹용 성분을 강조한 게 오히려 강글리오를 외면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약의 핵심 재료인 녹용은 여성들 사이에서살이 찐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성분이다. 또한 커피믹스와 같은 인스턴트커피는 사무실에 비치돼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 해소나 휴식을 위해 마시기 때문에 여타 속성들보다이 강조된다. 한 봉지당 70원 수준인 마트 자체상표(PB·Private Brand)가 가장 힘을 못 쓰는 제품군이 바로 인스턴트커피인 이유는 봉지당 50원을 더 내더라도 사무실 직원 대다수가 좋아할 만한 검증된 제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한 봉지당 130원 수준인 동서식품이나 남양유업 커피믹스보다 두 배 이상 비싼 돈을 지불하고건강을 이유로 강글리오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커피전문점의 원두커피 맛을 즐기는 젊은층은 필요에 의해원두커피 스틱을 구입할 순 있지만 굳이 강글리오를 선택할 이유가 없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이미 검증된 맛있는 믹스커피를 두고 굳이 다른 것을 마실 이유가 없었으며, 건강을 생각하는 장년층이나 노년층 역시 커피를 대체할 다른 음료를 마시면 될 뿐이었다. 또 주부들의 경우, 가정에서 간편 접대용으로 필요한 기존의 커피믹스를 두고 굳이 다른 선택을 할 이유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좀 더 분석하면 기존의 커피믹스는 1000원짜리 다방커피의 대체재였고, 아메리카노 원두 스틱커피는 3000∼4000원짜리 커피전문점 커피의 대체재 성격이 있었지만 강글리오는 그 어느 것의 대체재도 되기 힘든 제품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후 분석만으로애초에 시장이 없었다고만 판단하는 것은 다소 섣부르다. 초기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농심의 제품을 구매할 시장은 진정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말 그대로 한약 맛 나는 애매한양탕국2 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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