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cing Strategy
편집자주
4P로 불리는 마케팅 믹스(product, promotion, place, price) 중 가격(price)은 가장 쉽게 조절이 가능한 요소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손대기 어려운 요소이기도 합니다. 특히 현업에서는 전략, 영업, 마케팅, 재무, 생산 등 다양한 부서의 입장 차이 때문에 최적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DBR은 지난 달 서울에서 기업 CFO와 실무자를 대상으로 컨설팅사 웨슬리퀘스트가 주최하고 글로벌 프라이싱 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싱솔루션스(Pricing Solutions)의 폴 헌트(Paul Hunt) 대표가 진행한 ‘월드클래스 프라이싱 세미나’와 인터뷰 내용을 요약 소개합니다.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정수(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현대 기업에 프라이싱은 얼마나 중요할까? 워런 버핏은 “사업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프라이싱 파워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평균적으로 가격을 1%만큼 내리면 매출 대비 이익률은 8%에서 7%로 감소한다. 이는 곧 수익성이 8분의 1, 즉 12.5%만큼 나빠진다는 뜻이다. 다른 예로 만일 매출 대비 이익률이 30%인 제품의 가격을 5%만큼 낮춘다면 그로 인해 떨어지는 수익을 만회하기 위해서 판매물량을 무려 20%나 늘려야 한다. 그만큼 프라이싱은 중요하다.
모든 기업은 제각기 프라이싱을 하는 프로세스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제품 출시 초기에는 이 프로세스가 잘 작동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프라이싱은 점점 반복적이고 수동적인 작업이 돼가며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우리는 기업의 프라이싱 역량을 측정하기 위해 <그림1>과 같은 스코어카드를 사용한다. 이 결과를 통해 각 기업의 프라이싱 역량을 다음의 다섯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림2)
● 레벨 1 Firefighter (소방관): 물건이 안 팔리면 가격을 낮추고 잘 팔리면 가격을 올리는 등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기업
● 레벨 2 Policeman (경찰관): ‘원가+x% 마진’, 혹은 ‘작년 대비 x% 인하’ 등 가격을 통제하는 기업
● 레벨 3 Partner (파트너): 영업, 재무, 마케팅 등 내부 부서 및 협력업체와 조율해 단순히 가격이 아닌 ‘고객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 레벨 4 Scientist (과학자): 과학적 툴을 사용해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분석하고 가격을 최적화할 수 있는 기업
● 레벨 5 Master (마스터): 지속적으로 4단계를 유지하는 초우량 기업
레벨 1: 소방관
가장 한심한 단계다. 이런 기업들은 마치 소방관처럼 매일매일 일어나는 시장상황에 대응하기에도 바쁘다. 경쟁적인 시장상황에서 이런 기업들은 항상 고객들로부터 오는 가격인하의 압력에 직면한다. 따라서 주로 영업부서가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또 시시각각 변하는 판매계약 상황과 경쟁사 제품의 가격변동에 대응하려면 스트레스에 아주 강한 내성을 가진 사람만이 프라이싱 매니저가 될 수 있다. 약 30%의 기업이 이 단계에 머물러 있다. 레벨 2나 레벨 3까지 올라갔던 기업이 레벨 1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레벨 2: 경찰관
소방관 단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업이 주체적으로 가격을 통제(control)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 내부적으로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 가격을 통제하고 또 강요할 수 있는 경찰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이 단계다. 소방관 단계에서 개인의 임기응변이 중요했다면 이 단계에서는 보다 조직적, 규칙적인 프라이싱이 가능해진다.
<그림 3>은 레벨 2에 도달한 기업이 제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소방관’ 단계에 머무르는 기업들은 흔히 제품 원가와 판매정가만을 고려해 가격을 정하지만 ‘경찰관’ 단계의 기업들은 정가 외에도 고객에 대한 보증, 재무지원, 일시불 지급에 따른 할인 등 많은 요소들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약 40%의 기업들이 레벨 2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식스시그마’ 같은 도구를 쓰면서 가격결정 과정을 효율화하기도 한다. 레벨 1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큰 문제가 있다. 가격결정 기준이 외부, 즉 고객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레벨 3: 파트너
약 20%의 기업들은 경찰관 단계에서 더 발전된 ‘파트너’ 단계에 도달해 있다. 이런 기업들은 고객이 단순히 가격에 반응해 구매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업사원들은 입찰에 성공하면 자기들이 고객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입찰에 실패했을 때는 높은 가격 때문이라고 탓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고객들을 설문조사하면 구매결정에 있어서 가격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는 비율은 보통 30%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느냐가 판단 기준이 된다.
파트너 단계에 오른 기업은 이러한 고객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영업, 재무, 마케팅 등 여러 부서들이 협조하며 모두가 한배에 탔음을 자각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부서를 탓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소방관, 경찰관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기업들은 부서 간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충돌이 상시적으로 발생한다. (표1)
이러한 의견차를 조절하는 것이 ‘파트너’ 단계에 오른 기업에서 프라이싱 매니저의 주 역할이다. 이들에게는 변화관리와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단순히 영업과 마케팅, 재무팀에 정해진 가격을 불러주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설득을 통해 자연스럽게 컨센서스가 형성되게 만드는 역량이 필수적이다.
레벨 4: 과학자, 레벨 5: 마스터
레벨 2, 레벨 3에 오른 기업들도 분석적인 역량을 갖추고는 있으나 이들에게는 현재의 가격이 최적수준이라는 확신은 없다. 고객 스스로도 자신들이 어떠한 가치를 위해 얼만큼의 다른 가치를 희생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10% 정도의 기업만이 최적의 가격을 알아낼 수 있는 수준, 즉 레벨 4에 도달해 있다. 레벨 5는 이러한 레벨 4 수준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지속성을 갖춘 상위 1%의 기업들을 말한다.
가격 최적화는 가격탄력성(price elasticity) 연구, 그리고 가격 최적화 소프트웨어라는 두 가지 도구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 가격탄력성은 가격이 변화함에 따라 소비자의 구매수요가 변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가격탄력성을 측정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고객에게 직설적으로 ‘이 가격이라면 사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효용이 없고 오히려 잘못된 해석을 가져올 수 있다. 소비자는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싫어 한다. 따라서 적정 가격을 묻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이유가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현실에서는 컨조인트 분석(conjoint analysis)이 가장 유용하게 쓰인다. 경쟁사 제품과 자사 제품의 여러 가지 가치와 가격을 한꺼번에 고려해 물어보는 것이 고객의 정직한 대답을 얻어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북미시장에서 세단 승용차의 가격탄력성을 알고 싶다고 하자. 우선 고객들에게 렉서스, BMW, 볼보, 아우디 등 다양한 브랜드들을 각각 가격, 안정성, 성능, 브랜드, 가격 등 다양한 척도에서 점수를 매기도록 한다. 그리고 각각의 가치를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가중치를 쓰게 한다. 이를 종합하여 분석하면 그 고객이 어떤 제품을 가장 선호하는지, 또 각 제품의 가격에 대해 고객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얻고 있다고 느끼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경쟁사 제품의 가격 대비 가치를 비교할 수도 있다.
‘소프트 밸류’를 제공하라
프라이싱을 잘하는 기업은 고객에게 만족할 만한 가치를 준다. 그런데 고객가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재무적 가치(financial value)와 인지적 가치(perceived value)가 그것이다. 가격결정에 있어 재무적 가치뿐 아니라 인지적 가치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곧 소프트 밸류(soft value)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70%의 확률로 1400만 달러를 탈 수 있는 복권과 95% 확률로 700만 달러를 탈 수 있는 복권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첨금액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확률이 높은 쪽을 택한다. 기대수익은 낮지만 확실성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권 판매자 입장에서는 후자와 같은 복권을 파는 것이 훨씬 수익이 좋다.
실제로 이렇게 소프트 밸류인 확실성을 제공해 매출을 높인 사례들이 있다. 약 6년 전의 일이다. 항공사에 비행기용 타이어를 파는 회사가 있었다. 기존의 항공용 타이어들은 약 200회 착륙한 후에는 교체해야 했고 개당 가격은 1200달러였다. 이 회사는 600회 착륙할 수 있는 개선된 신제품 타이어를 2400달러에 팔고자 했다. 이는 가격 대비 가치로 볼 때 분명히 더 좋은 조건이지만 항공사들은 구매를 거부했다. 기존에 잘 쓰고 있던 제품을 버리고 두 배 비싼 신제품을 사는 데 따르는 심리적 거부감과 리스크 때문이었다.
그러자 이 타이어회사는 전략을 바꾸었다. 타이어 하나에 2400달러에 파는 것이 아니라 타이어는 무료로 제공하되 비행기가 1회 착륙할 때마다 4달러씩 과금하는 새로운 가격정책이었다. 결과적으로 2400달러라는 최종 가격은 변함이 없지만 항공사 입장에서는 신제품 사용에 대한 리스크가 제거되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결국 이 제품은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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