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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Marketing Classics-5

가격 파괴, 좋기만 한 일일까?

정인희 | 112호 (2012년 9월 Issue 1)




편집자주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패션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어느 누구도 패션을 벗어나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패션은 인간 삶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패션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됩니다. 정인희 교수가 Fashion Marketing Classics을 통해 흥미로운 패션 마케팅을 소개합니다.

 

소비자는 종종값이 싸기 때문에 감수할 수 있는 낮은 품질의 범위를 벗어나는 구매 경험을 한다. , 너무 싼 것이 최소한의 가치도 주지 못하면 낮은 가격 뒤쫓기를 그만둔다. 반면 어떤 경우에는 비쌀수록 큰 가치를 느끼는 과시적 소비를 하기도 한다. 두 경우 모두 고객이 값싼 것만을 좋아하지 않는 예외적 상황이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가격이 싼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싼 제품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산자들은 원단 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고 한다. 값이 싼 원단들은 지구의 황폐화와 노동력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파괴적인 가격 경쟁 이외의 차별적 경쟁력을 모색해야 한다.

 

가끔 소비자 중심의 기관이나 단체에서는 터무니없이 비싼 옷값을 질타하는 발표를 하고 가격과 품질은 크게 상관이 없다는 자료를 배포한다. 하지만 가격은 품질에 의해서 결정되는 한편 품질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에서의 가격 결정은 3C의 측면에서 고려된다. 이 제품을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cost)은 얼마인가? 경쟁사(competition)들은 얼마를 받고 있는가? 고객(customer)은 얼마나 지불하려고 하는가?

 

비용(cost) 지향적 가격 결정 방법은 고정비(fixed cost), 즉 제품을 얼마나 생산해 판매하는가와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사업 유지에 필요한 비용과 변동비(variable cost), 즉 제품 하나를 더 생산할 때마다 그만큼 더 소요되는 비용을 합한 총비용(total cost)에다 마진(margin)을 붙여 제품의 가격(price)을 결정한다. 경쟁(competition) 지향적 가격 결정 방법은 비슷한 제품에 대한 경쟁사의 가격을 보고 그것과 같게, 혹은 높거나 낮게 자사 제품의 가격을 붙이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붙이는 것은 가격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고 가격을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게 붙이는 것은 가격 이외의 요소로 승부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결국 상품은 팔려야 하는 것이므로 구매 당사자인 고객(customer)의 반응도 중요하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고객은 값이 싸면 쌀수록 좋아하고 원래는 비싼 것이지만 할인을 받아 싸게 사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이러한 고객의 요구에 항상 부응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객의 요구를 외면해서는 팔 수 없는 것이 패션 상품이다. 그러다 보니 자고 일어나면 어제보다 값싼 옷이 넘쳐난다.

 

고객이 값싼 것만을 좋아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란 무엇일까? 첫째, 최저수용가격(lowest acceptable price)의 존재다. 가격이 품질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값이 비싸면 비쌀수록 품질이 좋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가격이 두 배 비쌀 때 품질이 두 배까지는 아니더라도 1.2배 정도는 좋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눈으로 직접 제품을 확인해보고 구매할 때는이 정도 품질이라면…’ 하고 가격과 품질을 비교한 후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인터넷 쇼핑몰이나 TV홈쇼핑에서와 같이 제품을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비교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상품 배송 후에 불만족과 후회에 따른 교환이나 반품, 환불과 같은 일이 발생하곤 한다. , 값이 싸기 때문에 감수할 수 있는 낮은 품질의 범위를 벗어나는 구매 경험이 생긴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 그 소비자의 마음속에는이 가격보다 낮은 옷은 못 입는 옷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최저수용가격이 형성된다.

 

두 번째 경우는 과시적 소비효과(conspicuous consumption effect)가 나타나는 경우다. 일찍이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 1857∼1929)이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를 논했던 바 과시적 소비효과는베블런 효과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보통 값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하고 값이 내리면 수요가 증가하지만 과시적 소비효과가 나타날 때에는 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오히려 수요가 증가한다. 이는 바로 소비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상품의 희소성 때문이다. 회원제 컨트리클럽이나 피트니스센터가 고가의 회비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나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공간에 대한 프리미엄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에르메스나 아르마니 같은 명품을 구입하는 이유에도 이러한 과시적 소비효과가 작용한다.

 



특별한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소비재일수록 소비자가 지각하는 가치는 커지고 사람들은 이 이유 때문에 한없이 비싼 값을 지불하며 기쁨과 만족을 느낀다. 계급이 사라진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대적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고가품에 대한 소비다. 이 정도 가격의 제품도 소비할 수 있는 신분임을 보여주는 것, 친구들은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 물론 명품의 소비 이면에는 이 밖에도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도 가지고 싶다는 동조 욕구나 그 브랜드의 이미지에 매료돼 그 브랜드의 제품에 둘러싸여 행복감을 느끼는 브랜드-자기 동일시 욕구가 작용하기도 한다. 혹은 단순히 그 상품의 디자인이 좋고 품질이 좋아서일 수도 있다.

 

, 어떤 경우에는 비쌀수록 큰 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혹은 너무 싼 것이 최소한의 가치도 주지 못할 것을 우려해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 뒤쫓기를 그만둔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보통의 소비자들은 가격이 싼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싸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더욱이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제품의 가격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싸게 파는 제품을 찾는 일은 마치 오락과 같은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우리는 이제 1만 원짜리, 7000원짜리를 넘어 3000원대에 판매하는 티셔츠까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상상할 수도 없이 비싼 옷값도 존재하지만이렇게까지 싸도 될까하고 걱정스러워지는 옷값도 존재한다. 그러면 옷값이 한없이 내려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옷은 패션 상품이기 때문이다. 패션은 주기(cycle)를 가지고 변화하기 때문에 유행이 돼 사람들이 많이 찾을 때는 비싼 값에 팔 수 있지만 유행이 지나가면 아무리 값이 떨어지더라도 찾는 사람이 없다. 따라서 신상품이 출시될 때에는 의도적으로 비싼 가격을 매기고 이후 제품 출시 기간이 경과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격을 내리게 된다. 이처럼 최초에 실제 투입 비용에 비해 높은 가격을 책정해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제품의 새로움이나 희소성 때문에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한 후 점차 가격을 내려가면서 그 가격대에서 구매의도를 가지는 사람들로부터 부가적인 수요를 창출해내는 것을 스키밍 가격전략(skimming pricing)이라고 한다. 패션 주기가 소멸돼 가는 때가 오면 내일이면 더 이상 팔 수 없는 옷을 떨이 가격에 파는 것이 재고를 떠안고 있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재고를 소각 처분하더라도 값을 내리지 않는 편을 택한다.

 

둘째, 공헌마진(contribution margin)만 생기는 정도라면 일정 기간 사업의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헌마진이란 판매 가격, 즉 매출액에서 제품을 하나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변동비를 뺀 금액으로 공헌마진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하나라도 파는 것이 하나도 팔지 못하는 것보다 이익이 된다. 하나도 팔지 못하면 고정 인건비나 임대료 등의 고정비 부담을 사업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지만 변동비보다 값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면 변동비를 상쇄하고 남는 금액을 고정비에 보태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즉 제조 소매업체 브랜드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시작된 가격경쟁 때문이다.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발표하는 100대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에 수년간 이름을 올리고 있는 H&M, (Gap), 자라(Zara)를 비롯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브랜드인 유니클로(Uniqlo)와 망고(Mango) 이외에도 C&A, 스페라(Sfera), 블랑코(Blanco) 등 여러 SPA형 브랜드들이 속속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들은 저가격대의 상품을 팔지만 명품에 버금가는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주간 단위로 제품 구색을 바꾸어 소비자들이 대량구매와 반복구매를 하도록 유혹한다. 세계 각국으로 진출해 엄청난 물량을 취급하면서 생산 비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직영 운영체계를 통해 유통마진도 절감하기 때문에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제품과 가격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이제 국내 캐주얼 브랜드에 대해서도 가격이나 구색 면에서 동일한 추구 혜택을 요구한다. 아니,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국내 브랜드들에 대해서는 어쩌면 다소 더 낮은 가격대를 기대할 것이다. 유통망이나 운영체계 등 모든 면에서 글로벌 SPA 브랜드에 비해 빈약한 체력을 지닌 국내 캐주얼 브랜드들은 엄청난 가격 경쟁에서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값이 싼 것을 좋아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속성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병들어 아파하는 지구 앞에서, 아프리카 어느 나라 어린이들의 고된 육체노동 앞에서 조금쯤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SPA 브랜들이 생산해내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은 결국 쓰레기를 양산한다. 대학생들을 인터뷰해보면 만 원에 두 장하는 티셔츠를 사서는 한 철 입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값이 싼 만큼 많이 구매하고 품질도 좋지 못하고 값도 비싸지 않으니 쉽게 버린다.

 

지금, 옷을 만드는 사람들은 나날이 생산 비용을 줄여 가격을 낮추려고 한다. 소비자들이 싼 제품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단의 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고 한다. 값이 싼 원단들은 그 나비 효과로 지구의 황폐화와 노동력 착취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결국 모든 브랜드들이 비슷비슷하게 품질이 나쁜 상품들을 생산하도록 이끈다. SPA 브랜드들을 둘러보면 실제로 제품 품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가 몇 달러나 몇 유로가 비싸더라도 품질이 더 좋은 상품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그 브랜드의 이미지가 매우 좋게 각인된다. 싼 옷의 옷값은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이제 파괴적인 가격 경쟁 이외의 다른 측면에서 차별적 경쟁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정인희 금오공과대학교 교수 ihnhee@kumoh.ac.kr

필자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과 기업에서 강의와 실무를 병행하며 일하다 2000 3월부터 금오공대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패션 시장을 지배하라> <이탈리아, 패션과 문화를 말하다> 등이, 역서로 <재키 스타일> <오드리 헵번: 스타일과 인생> <서양 패션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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