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간접체험 서비스

서핑체험, 죽어가는 병원을 살리다

이창호 | 7호 (2008년 4월 Issue 2)


필자가 처음으로 병원 컨설팅을 시작한 곳은 한방다이어트 전문 한의원이다. 지금은 한방다이어트가 보편적인 비만 치료법으로 자리잡아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2003년만 해도 한의원에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다.
병원의 주요 고객층이자 다이어트에 관심 많은 젊은 여성들은 노인이 주로 찾는 고리타분하고 칙칙한 분위기, 침이 주는 공포 등과 같이 한의원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었다. 주변의 소개로 병원을 찾은 환자조차 한의원의 다이어트 치료법에 의구심을 가졌고, 의료진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 치료 과정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병원을 홍보해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의사들도 치료 외적인 일에 신경을 써야 해 힘들어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가 처음 생각해낸 것이 1회 체험 진료였다. 비만 치료는 보통 23개월의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치료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없으면 환자가 선뜻 치료에 동의하기가 어려우리라 예상했다. 따라서 환자들에게 우선 1회만 치료를 받아본 뒤 장기치료를 받을 것인지 결정하게 했다. 1회 체험 진료를 도입한 이후 환자가 조금 늘긴 했으나 기대한 만큼 진료 동의율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환자들은 일회성 진료도 비용이나 시간 때문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간접 체험서비스를 새로 도입했다. 그때만 해도 환자가 병원을 찾아오면 상태를 검진한 뒤 적합한 치료법을 설명하고 권유하는 것이 병원의 전형적인 환자 응대 방식이었는데 이를 과감히 탈피하고자 했다.
 
환자가 체험서비스를 신청해 병원을 찾아오면 코디네이터가 병원 구석구석을 데리고 다니며 병원 전체를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한의원에서 비만 치료를 위해 어떤 검진을 하는지, 각 치료에는 어떤 시술이 실시되는지, 어떤 의료장비와 시설을 사용하는지 등등을 직접 시연해가며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런 후에 환자가 진료 상담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자유롭게 결정하게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런 형식으로 진료 상담 하는 것 자체가 입소문을 탔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도입한 간접 체험 서비스가 ‘병원 서핑(surfing)’이라는 말로 회자됐다. 진료 동의율은 90%를 넘어섰고, 매출은 배 이상 뛰었다. 지금까지 한방다이어트가 무엇인지, 어떻게 시술되는지 잘 모르던 환자들이 병원 서핑 서비스를 통해 병원이 구비한 모든 치료방법과 의료장비를 실제로 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한방다이어트와 병원을 신뢰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런 경험을 응용해 임플란트 전문 치과에도 병원 서핑 서비스를 도입했다. 임플란트 시술을 받는 이가 늘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임플란트가 어떻게 시술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또 수백만 원에 이르는 비용 때문에 선뜻 병원을 찾기 힘든 이도 있다. 필자의 권유로 병원 서핑 서비스를 실시한 치과는 일반 치과와 달리 환자가 병원을 찾으면 치아 상태에 대한 검진을 실시하지 않았다. 검진은 뒤로 미루고, 임플란트 시술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먼저 설명했다. 코디네이터가 임플란트 치료 과정에 따라 치료법과 병원 내 의료장비를 시연하면서 치료 기간과 비용을 설명했다. 환자는 병원은 물론 진료 과정 전체를 미리 서핑한 후에 치아 검진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했다. 이를 통해 임플란트 시술에 대한 환자의 부담감이 대폭 해소됐고, 진료 동의율은 급상승했다. 치료 도중 비용과 기간에 대해 쏟아지던 환자의 불평이나 불만도 크게 줄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어떤 병원을 선택하겠는가. 병원에 가자마자 검진을 받은 뒤 수백만 원에 달하는 임플란트를 권유하는 치과와 병원 장비와 치료법을 모두 시연한 뒤 검진을 받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치과 가운데 말이다.
 
강의를 다니다 보면 치료 횟수가 많아지거나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진료, 또는 특정 의료장비나 시술에 설명이 필요한 병원만이 서핑 서비스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은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병원 서핑 서비스는 통증이나 병 때문에 병원을 꼭 가야 하는 환자를 다루는 병원보다 예방적인 치료나 미용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에 훨씬 더 효과적이긴 하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일회성 치료로 끝나는 대다수 의료기관도 서핑 서비스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내과의 내시경 진료가 대표적인 사례다. 내과는 모두 한번쯤 가봤을 테지만 내시경 진료는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많다. 특히 주변 사람들에게 내시경 진료가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기 때문에 내시경 진료를 꺼리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서핑 서비스를 도입해 검진 전에 내시경 의료장비와 진료과정을 시연하고 설명하자 환자의 거부감이 크게 해소됐다.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는 환자도 크게 늘었다.
 
 
의료기관은 일반인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사소한 질병으로 병원을 방문하더라도 항상 낯설고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병원의 진료 시스템을 간접 경험하게 해줌으로써 환자에게 친근감과 신뢰감을 주고, 궁금증을 풀어준다면 이런 거부감은 사라질 것이다. 병원도 폐쇄된 의료 정보를 개방하는 것은 물론 병원 서핑 서비스와 같은 체험 마케팅을 도입해 치료법을 시연하고, 고가의 비용이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 시스템을 공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체험 마케팅이 마케팅의 대세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직접 구매하지 않더라도 제품과 서비스를 체험해본 고객은 주변이나 온라인을 통해 입소문을 냄으로써 훌륭한 홍보 메신저가 되어준다. 상품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와 로열티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체험 마케팅의 장점이다. 제품을 미리 써본 고객이 제품의 개선사항을 제시하는 등 사전검증도 해주면서 기업은 이들에게서 제품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고객 참여를 통해 판매를 극대화하려는 기업이 늘면서 체험 마케팅 기법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다양해지는 추세다. 최근에는 판매 목적 이외에 체험 마케팅을 위한 매장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자사의 통신 서비스와 각종 콘텐츠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 매장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으며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콘솔게임기 등을 판매하는 기업들도 체험 매장을 차츰 확대하고 있다. 서핑 서비스도 이처럼 다양해지고 정교해진 체험 마케팅 기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장시간이나 오랜 과정을 거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기업들에게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서비스의 전과정을 직접 시연하고 설명하는 서핑 과정을 통해 고객은 직접 체험한 듯 서비스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해당 서비스에 대한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해소하고, 해당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과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
 
마케팅 권위자인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의 번 슈미트 교수는 체험 마케팅을 “기업이 독특한 서비스나 이벤트 등을 통해 상품과 브랜드 이미지를 꾸준히 심어줌으로써 소비자를 충성고객으로 만드는 21세기형 마케팅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마케팅의 유일한 목적은 바로 가치 있는 고객 체험을 창조하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좋은 사업이다. 당신의 고객은 당신의 그러한 노력에 고마워하고 당신의 사업에 충실한 고객이 될 것이며,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다.” 슈미트 교수의 말로 글을 갈무리한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현장경험이 묻어나는 생생한 병원 마케팅 사례를 통해 비즈니스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마케팅 노하우를 전달합니다. 동네의 작은 병원부터 기업형 병원에 이르기까지, ‘죽어가는’ 병원을 ‘대박’ 병원으로 살려낸 필자의 실전 노하우를 만나보십시오.
 
필자는 경희대 의료경영대학원 메디컬 마케팅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메디컬 전문 컨설팅업체 ‘리얼메디’의 대표로 재직중이다. 서울 강남의 다이어트 전문 한의원의 수익률을 1000% 올린 것은 물론 100여 곳이 넘는 병원의 마케팅과 컨설팅을 맡아 죽어가는 병원을 살렸다. 저서로 <우리 병원 좀 살려주세요>가 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