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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긴 아깝고 바꾸긴 어려워” KT의 유선전화 딜레마

장정주 | 6호 (2008년 4월 Issue 1)
위기에 처한 KT 유선전화
KT는 유선전화 사업을 바탕으로 한국의 독보적 통신업체로 성장해 왔다. 남중수 사장은 지난 세월 KT의 시장지배력과 그에 따른 독보적인 위치를 잘 알고 있다. 지금도 연간 4조 원에 이르는 현금 수익을 확보하고 있는 유선전화 사업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남 사장은 책상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굳게 다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화기 곁에 놓여 있던 자신의 컴퓨터는 이메일을 보내거나 문서작업을 수행하는 비교적 단순한 기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컴퓨터는 인터넷을 통해 음성통화뿐만 아니라 화상통화도 가능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파일을 첨부할 수도 있다. 반면 그 곁의 유선전화는 그야말로 단순한 ‘기계’로 전락했다.
 
펜을 만지작거리면서 남 사장은 유선전화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의 키보드로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한 그였지만 여전히 펜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유선전화 사업의 수익규모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그 기반이 된 PSTN (Public Switched Telephone Network)은 인터넷 망에 비해 발전 가능성이나 사업 확장 여지가 크지 않다. KT를 추격하는 후발업자들은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인터넷과 컴퓨터 기기를 결합하는 등 디지털화에 힘쓰고 있다.
 
남 사장과 KT 직원들은 이런 후발업체의 도전에 순순히 자신의 위치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인 와이브로의 상용화에 성공한 것을 비롯해 메가패스를 필두로 한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를 굳혔기 때문이다. KT는 이미 디지털 기반으로 사업 구도를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국가 기간망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익 규모도 엄청난 유선전화 시장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남 사장은 벌써 몇 년째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왔지만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2005년 KT의 메가폰을 잡은 후 그는 이 난제를 풀기 위해 고민했다.
 
민영화 후 변화 추진
KT의 모회사는 1981년 전기통신사업의 효율적 경영을 위해 당시 체신부에서 통신부문을 분리하면서 설립된 한국통신이다. 통신사업에도 경쟁 원리를 도입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한국통신은 2002년 KT라는 이름의 민영기업으로 거듭났다. 이후 KT는 유선통신 분야는 물론이고 무선통신과 인터넷, 위성 등에 이르기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연 매출 12조 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가치 네트워킹 기업(The Value Networking Company)’이란 비전에 걸맞게 KT는 높은 기술력과 고객 서비스 역량을 갖췄다. 2005년에는 민간 서비스 부문의 사업 경험과 역량을 갖춘 남중수 사장을 영입해 민영화 도약 2기를 맞았다. 이후 남 사장은 11개 계열사로 구성된 KT에 대해 사업전반에 걸쳐 다각도의 변화를 추진해왔다.
 
시장규모 위축 지속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한 KT는 와이브로(Wi-Bro)나 메가패스 같이 새로운 통신 환경에 적합한 신사업을 적극 추진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KT에게 막대한 현금 수익을 가져다준 유선전화 사업은 위축되고 있다. 2002년 KT가 유선전화로 벌어들인 돈은 대략 5조 원에 달했다. 그러나 2003년 4조7000억 원, 2004년에는 다시 4조4000억 원으로 줄어들었고 급기야 2005년에는 4조 원대 초반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2006년 말 KT는 유선전화 시장의 9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유선전화가 KT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이익 규모도 엄청나기 때문에 위축되는 시장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시장 상황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선 휴대전화가 빠르게 유선전화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비싼 통화료와 단말기 가격, 그리고 휴대하기 불편했던 휴대전화는 2000년을 넘어서면서 과거의 단점을 거의 대부분 극복했다. 특히 3세대 WCDMA 기술이 보급되면서 화상통화와 글로벌 로밍,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해졌고 각종 디지털 컨버전스 기능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에 비해 KT를 떠받치고 있는 유선전화는 음성통화 외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던 공중전화는 이제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이는 전화 시장에서 유선과 무선의 세대교체가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또 2005년 전체 유선전화 시장 규모는 6조7000억 원으로 전년대비 1% 가량 줄어들었지만 휴대전화 시장은 17조2000억 원으로 연 4% 이상 성장했다.
 
사면초가 양상
정부 정책도 KT에 우호적이지 않다. 정부는 통신시장의 신규진입을 유도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으며 IPTV(인터넷TV)나 VoIP(인터넷전화)처럼 KT의 유선전화 사업을 교란시킬 만한 기술의 상용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PSTN 기반의 유선전화 사업은 점차 다른 네트워크로 대체될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유선전화와 무선전화 서비스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면서 인터넷망이 디지털 통신의 중추가 되는 시장 흐름을 정부가 정책으로 뒷받침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유선전화에 가장 직접적인 위협을 주는 것은 바로 VoIP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음성 데이터를 디지털 데이터로 바꿔 인터넷으로 전송할 수 있게 된다. 또 컴퓨터로 유선전화나 무선전화를 쓰는 사용자에게 전화를 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자간 통화, 데이터 공유, 화상통화 등도 가능해진다. 아직까지 VoIP 시장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성장세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VoIP 기반의 전화 서비스를 쓰려면 투박하게 생긴 전화기를 이용해야 하거나 다소 복잡한 컴퓨터 조작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고객들의 수요가 커짐에 따라 이런 기술적 장벽은 사소한 문제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불과 몇 년 안에 크기가 놀랍도록 작아지고 사용방법이 간편해졌던 무선전화와 같은 길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하나로텔레콤은 싼 요금을 내세우면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모든 서비스를 묶어서 제공하는 ‘올아피(All IP)’ 전략을 구체화했다. ‘하나’라는 말이 주는 어감을 그대로 살려 IPTV, 초고속인터넷, 전화를 하나로 묶어 시장에 내놓았다. 데이콤은 단말기 하나로 실내에서는 무선 인터넷 전화를, 실외에서는 이동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Wi-Fi) 폰’을 기업고객 대상으로 출시했다. LG텔레콤은 일반 가정에서 KT의 자리를 위협한다. ‘기분존’ 서비스는 집안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로 유선전화 가격과 비슷한 수준(3분에 39원)으로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해 휴대전화에 대한 기존 관념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삼성네트웍스는 ‘삼성와이즈070’을 선보였다. 이 업체는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면 국내 유선전화 비용으로 저렴하게 국제전화를 쓸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이 사업자들은 최신기술을 기반으로 유선전화 사업에서 KT가 확보하고 있던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전화 전문 업체로 등장한 한국케이블텔레콤은 소규모 지역을 집중 공략하면서 KT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PSTN은 KT에게 유선전화 사업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안전한 장벽을 제공했다. 반면 인터넷은 신규사업자가 손쉽게 참여해 차별화한 사업 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넓은 길을 열어줬다. 이런 개방형 네트워크 때문에 비록 자본력은 부족하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후발 업체들이 KT에게 도전장을 내고 있는 것이다.
 
최선의 의사 결정은?
KT는 ‘안폰’과 ‘비즈폰’을 선보이며 유선전화 시장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실행했다. 기본적으로 통화 가격을 내리는 정책을 써서 최근 6개월간 통화요금에 월 500원을 추가하면 평균통화료의 두 배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마이스타일’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유선전화에 문자메시지 등 각종 부가서비스를 결합한 안폰과, 기존 유선 전화를 교체하지 않고도 사업자들에게 획기적이고 통신 환경을 지원하는 비즈폰까지도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또 가격 할인 역시 별반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했다. PSTN의 트래픽 자체가 감소하고 있는 마당에 이를 기반으로 한 유선전화 사업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과연 KT는 점차 쇠락하고 있는 유선전화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KT는 미래를 위해 유선전화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까.
[DBR TIP] KT서비스, 고객의 입장에서 혁신해야 한다
 
본 사례는 신기술의 도입에 따라 플랫폼이 흔들리면서 이를 기반으로 독점적 위치를 누리던 KT가 유선전화 사업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남중수 KT 사장은 유선전화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굴하는 게 타당한지, 그렇다면 어떤 전략을 구상해야 하는지, 혹은 KT가 유선전화 시장에서 40%의 매출액과 4조 원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빠르게 철수해야 할 것인지,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신기술 등장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
유선전화는 PSTN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당시 유선과 무선은 철저하게 분리돼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망이 깔리면서 유선과 무선을 가리지 않고 음성, 영상, 데이터를 모두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다. 이런 신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시장 영역이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과거 정보기술(IT)은 특정 상품과 동일시됐지만 이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플랫폼으로 변하면서 IT 인프라를 보유한 업체는 모두 서비스 업체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 역량이 곧 사업 역량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소위 초경쟁(hyper competition)상황이 도래함에 따라 특정 기술 기반으로 사업을 정의하고 이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려는 노력은 한계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기업들은 산업 및 사업 영역을 넘나드는 무한 경쟁 속에서 새로운 IT환경에 적합한 경쟁역량을 갖춰야 한다.
 
기존 기술을 활용한 신규사업
고객들이 무선통신과 인터넷 서비스, 그리고 디지털컨버전스에 점차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이런 서비스를 잘 제공하는 기업을 더욱 주목하고 있다. 비록 유선전화가 지속적인 혁신을 할 수도 있지만 기술에 대한 시장의 선호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소위 ‘올아피’ 전략과 같은 각종 와해성(disruptive) 혁신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에서 유선전화가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는 힘들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까지 유선전화의 서비스 형태가 매우 단순하고 초보적인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해 후발 업체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기존 기술을 활용한 사업 모델의 진보 속도가 매우 더뎠다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 제시됐던 안폰이나 비즈폰은 혁신을 추구하는 대표적 서비스였지만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신규 비즈니스를 도입할 때는 상품이 제공하는 가치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느끼는 서비스의 질도 중시돼야 한다. 과연 안폰과 비즈폰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으며 서비스의 질이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하는 점도 집중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더 나아가 신규사업을 구상할 때 ‘올아피’가 따라올 수 없는 PSTN만의 고유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를 발견해서 사업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플랫폼 형성과 신사업
비즈니스 모델과 경쟁 양상은 외부 충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은 IT다. 지금까지는 많은 기술 기업들이 기존 시장영역에서 상품을 만들어서 파는 사업전략에 의존했다. 하지만 최근과 같은 초경쟁 상황에서는 기존 상품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IT 플랫폼을 기반으로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생존할 수 있다.

KT
의 경우 유선전화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은 여전히 과거 상품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격이 저렴한 제품이나, 혹은 기능이 추가된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것이라는 ‘투입-생산-판매’의 가치 사슬(value chain) 과정을 따라 고객 가치가 늘어날 것이란 기존 관념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업이 일방적인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한다고 고객 가치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고객과의 협력을 통해, 협동적인 생산과정을 거쳐야 가치가 발생한다. 무선전화나 VoIP는 고객의 사용 행태나 요구, 욕망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디지털 경제 시대에 많은 기업들은 ‘생산 - 판매’라는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IT기반의 서비스 사업자로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고객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경영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안폰과 비즈폰도 이런 점에 신경을 썼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KT 서비스에는 혁신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IT플랫폼의 본원적 특성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면 그 플랫폼의 잠재력을 고객이 100% 인식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차별화한 경쟁우위를 갖춰야 한다. 지금까지 KT는 ‘전화는 누구든지 사용한다’는 관념에 빠져있었던 게 아닌가 되짚어봐야 한다. 고객이 IT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도록 서비스로 접근하고 이를 통해 혁신을 이뤄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를 창출하려는 경영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IEEE Transactions on Systems’과 ‘Man and Cybernetics’ 등 경영정보 분야 저명저널에 다수 논문을 실었으며 2004년 EJIS(European Journal of Information Systems) 발표 논문으로 영국 ‘Operation Research Society’로부터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주 연구 분야는 디지털 경영, IT전략, 경영혁신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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