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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Innovation - 영국 리버풀

비틀스를 팔아 유럽의 문화 首都가 되다

김민주 | 49호 (2010년 1월 Issue 2)
발라드, 레게, 사이키델릭 록, 블루스에서 헤비메탈까지 폭넓은 장르를 아우르며 현대 음악의 새 장을 연 전설적 록 그룹은? 빌보드 차트 1위곡을 가장 많이 보유한 가수는? 미국 내에서만 1억 장, 전 세계적으로 10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한 밴드는? 음악뿐만 아니라 1960년대 사회, 문화에 혁명적 영향을 미친 그룹은?’
 
바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로 구성된 영국의 전설적인 4인조 록 밴드 비틀스다. 그렇다면 비틀스의 고향은 어디일까? 영국의 항구 도시 리버풀이다. 리버풀은 영국 잉글랜드 중서부에 위치한 머지사이드 주의 주도다. 인구는 43만5000명, 면적은 113㎢다. 아이리시 해로 흐르는 머시 강 하구의 도시로 13세기 항구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18세기 무역항으로 번성했다.
 
 

 
쇠락한 항구 도시에서 문화 레저 도시로 턴어라운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미국에게 경제 주도권을 뺏긴 영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황폐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항구 도시에 공장 같은 산업 시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항구 도시인 리버풀은 대서양으로 향하는 교두보의 역할을 하며 반짝 성장했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1960, 1970년대를 기점으로 기반 산업이 쇠퇴하고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다. 리버풀의 상징이었던 영국 자동차회사 로버(MG ROVER) 공장이 중국에 매각될 만큼 도시 쇠퇴가 남긴 상처는 컸다.
 
도시가 후퇴 일로를 걷자 리버풀 시의회가 나섰다. 시의회는 1980년대 후반 관광 레저 중심 전략을 입안하고 공공 분야와 민간 기업의 협력을 시도하는 머시 강변 개발 공사(MDC·Merseyside Development Corporation)를 통해 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문화 인재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영화, 비디오, 방송 분야에 많은 예산을 지원해 문화 산업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 다양한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도시 마케팅을 펼쳐 문화 관광 산업을 육성하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MDC의 관광 레저 중심 전략의 대표적인 성과물이 바로 듀크 스트리트(Duke Street) 개발 사업이다. 옛 선창가 주변을 매입해 문화 거리를 조성하고 주택가, 상가, 레스토랑, 문화 시설 등에 투자자를 끌어들여 25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렇게 재건된 부두 지역은 영국 3대 관광지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
 
시의회는 또 리버풀의 새 산업 동력으로 비틀스 테마의 문화 산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비틀스를 흠모하는 수많은 팬들이 한 번쯤은 비틀스의 고향에 가서 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비틀스는 리버풀의 희망
비틀스의 멤버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지만 비틀스는 여전히 리버풀의 희망이자 꿈이다. 오늘도 리버풀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이 비틀스를 소비하기 위해 기꺼이 호주머니를 열고 있다.
 
리버풀 최고의 관광 명소는 비틀스 박물관인 ‘비틀스 스토리 (The Beatles Story) ’다. 비틀스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이곳은 비틀스 팬인 ‘비틀마니아’를 유혹한다. 끊임없이 흐르는 비틀스의 명곡을 들으면서 비틀스 멤버 4명에 대한 역사와 행적, 갖가지 소문, 활동 모습을 볼 수 있다. 비틀스 스토리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그들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다. 애비로드 스튜디오와 비틀스 결성 초에 공연을 펼쳤던 캐번 클럽(Cavern Club), 스타 클럽 등의 명소를 재현해놓았다. 비틀스가 출연했던 뮤직 비디오 같은 영상 자료와 비틀스의 오리지널 무대 의상, 존 레논이 연주했던 피아노도 볼거리다. 비틀스의 역사를 존 레논의 누나 줄리아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비틀스가 데뷔 하기 이전 쿼리맨, 실버비틀스 등의 이름으로 공연했던 재즈 카페인 캐번 클럽 역시 리버풀의 관광 명소다. 캐번 클럽은 매튜 스트리트에 있는데 빅토리아 시대에 창고로 쓰던 건물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비틀스는 1961년 2월 이 클럽에서 첫 공연을 시작한 이후 1963년 8월까지 300번이 넘게 공연했다. 1973년 지하철 공사로 창고 건물이 헐리자 1984년 캐번웍스 지역에 새로 건물을 짓고, 지하에 비틀스가 공연했던 때와 똑같은 모습의 캐번 클럽을 재현해놓았다. 1999년 12월 폴 메카트니가 이 무대에서 연주를 한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의 입지를 다시 다졌다. 이 클럽은 2001년에는 16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릴 정도로 상업적 가치도 높아졌다. 현재 이곳은 비틀스 마니아에게 성지 순례와 같은 의미를 가진 장소다.
리버풀에서는 매년 8월이면 전 세계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년간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인 비틀스 주간 축제(International Beatles Week Festival)가 열린다. 방문객들은 비틀스와 관련된 투어, 전시, 기념품 경매, 벼룩 시장 등에 참여할 수 있는데, 이 축제의 백미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밴드의 라이브 공연과 ‘카피밴드(비틀스 옷을 입고 비틀스 사운드를 흉내 내며 생활을 꾸려가는 직업적인 연주자들)’의 볼거리가 펼쳐지는 음악 축제다. 운이 좋으면 리버풀을 찾은 유명 인사들과 가까운 자리에서 함께 어울릴 수도 있다. 2008년에는 50만 명의 군중이 거리 축제에 참여했고 페루, 멕시코, 브라질, 호주 등 세계 각국의 밴드의 연주가 펼쳐졌다. 비틀스 축제는 이제 리버풀 시의 대표 문화 관광 상품이자 전 세계 음악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연례 행사다.
 
유럽 문화 수도로 도약
리버풀은 문화 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시티 센터를 중심으로 문화 인프라를 늘려나갔다. 꾸준하게 문화 자원을 확대한 리버풀은 2003년 경쟁 도시인 뉴캐슬, 버밍햄을 제치고 ‘2008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리버풀 시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해마다 주제를 정하고, 문화 도시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2005년은 ‘바다 리버풀’, 2006년은 ‘리버풀 공연’, 2007년은 ‘리버풀 800년’, 2008년은 ‘유럽문화수도’, 2009년은 ‘환경의 해’로 정했다. 올해 테마는 ‘혁신의 해’다. 유럽문화수도 행사는 유럽연합(EU)과 공동으로 비엔날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박물관, 전시관 등 8개 영역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문화적 투자가 리버풀의 방문객을 크게 늘렸음은 물론이다. 리버풀은 현재 영국 도시 중에서 연중 방문객 수가 여섯 번째로 많다. 2008년 조사에 따르면 하룻밤이라도 리버풀에 묵은 방문객 수가 1200만 명 정도다. 이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은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리버풀은 성공적인 문화 수도 사업과 새로운 문화 투자에 힘입어 2012년 까지 관광, 스포츠, 문화유산과 창조 산업 분야에서 1만3200 명의 직접적인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 산업 규모도 2000년 2억 6100만 파운드에서 2012년 5억 7100만 파운드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관광 부문에 3억 1000만 파운드가 추가 투자돼 29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버풀은 비틀스 관련 상품을 필두로 루벤스, 렘브란트 등 14∼20세기 유럽 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워커 미술관과 사진, 판화, 비디오, 설치미술 등 광범위한 영국 현대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테이트 리버풀, 리버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리버풀 생활 박물관 등의 문화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지역 연고의 프로축구 팀 리버풀 FC도 관광 수입에 일조하고 있다.
 
훌륭한 문화 자원만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문화 도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과의 연계망을 확보하고 관광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제반 시설을 확충한 다음에야 도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공 기관과 민간 기업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문화 산업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접근을 한 리버풀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때 영국의 대표적인 산업 혁명 도시였으나 제조업 몰락과 함께 20년 이상 침체를 겪다가 부활한 리버풀 사례를 통해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부존 자원과 입지 등 1차적 요인보다는 창의력에 비례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관광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접목이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도시 경제를 일으킨 리버풀의 예에서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비틀스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전통적 항구 도시에서 관광 도시로의 눈부신 부활을 맞이한 도시의 활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간의 창의성이 이룩한 성과를 보고 싶다면 눈과 귀가 즐거운 리버풀을 방문해보자.
 
필자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리드앤리더 대표이자 비즈니스 사례 사이트인 이마스(emars.co.kr)의 대표 운영자다. 서울대와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은행과 SK에너지에서 근무했고 건국대 겸임 교수를 지냈다. <로하스 경제학> <글로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하인리히 법칙> 등의 저서와 <깨진 유리창 법칙> 등의 역서가 있다.
  • 김민주 김민주 | - (현)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이마스 대표 운영자
    - 한국은행, SK그룹 근무
    - 건국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mjkim89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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