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마을에서 사계절 관광 도시로, 핀란드 로바니에미

42호 (2009년 10월 Issue 1)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의 무대는 핀란드 헬싱키다. 영화는 이 낯선 북국의 도시에서 미혼의 일본 여성이 식당을 운영하며 겪는 소소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우리에게 생소한 핀란드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도 영화가 주는 묘미다.
 
아직까지 핀란드 도시는 낯설다. 핀란드 남단의 항구 도시이자 수도인 헬싱키를 빼면 제대로 알려진 도시가 많지 않다. 이 중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고 있는 작은 도시가 있다. 바로 북쪽 라플란드의 관문 도시인 ‘로바니에미(Rovaniemi)’다.
 
이곳은 북위 66도 33분의 북극선이 관통하는 곳에 위치한 인구 6만여 명의 소도시다. 규모는 작지만 북극권의 중요한 거점 도시다. 핀란드에서 가장 긴 강인 케미요키 강과 오우나스요키 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항구 기능이 발달했고, 라플란드 지역인 스웨덴, 노르웨이, 러시아로 통하는 북극 무역의 거점 도시다.
 
 

 
이 작은 도시가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진 이유는 ‘산타클로스 마을’ 덕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산타클로스는 4세기 터키 지역의 성인이었던 상투스 니콜라우스에서 유래됐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핀란드의 산타 마을이 유명세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산타 마을을 자처하는 지역은 여러 군데가 있다. 캐나다 퀘벡 주의 발 다비드에도 산타 마을이 있고, 미국 인디애나 주에도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그러나 정통 산타 마을로 인정받고 있는 곳은 로바니에미 한 곳뿐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주소 없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To Santa Claus)’라고 편지를 쓰면 그 편지는 우표가 없어도 로바니에미의 산타 마을로 배달된다. 2007년 한 해에만 전 세계 150개국의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로 시작하는 75만 통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만 오는 것이 아니다.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100만 명이나 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수십만 명이 동시에 찾아온다. 이 시기에는 산타 마을로 가려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기 위해 일반 항공기뿐 아니라 전세기까지 뜬다. 핀란드 영공에 진입하는 비행기가 한 시간에 30대 정도나 된다니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동시에 몰려오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산타클로스가 핀란드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됐을까? 1927년 핀란드 라디오 방송국의 한 아나운서가 러시아와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해발 485m의 코르바툰투리 산에 산타클로스가 산다는 내용을 방송한 적이 있다. 이후 어린이들은 눈이 많이 오는 핀란드 라플란드 깊은 산속에 산타가 살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핀란드 산타 마을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아픈 과거도 만나게 된다.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러시아의 틈바구니 속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도시들도 대부분 파괴됐다.
 
1946년 전후 복구에 나선 로바니에미 시 당국은 산타클로스 마을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1950년 산타 마을에 처음으로 산타 관련 건물이 들어섰고, 이때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엘레노어 루스벨트가 로바니에미를 방문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 도시가 관광지로 발돋움한 계기는 1984년 무렵이다. 당시 영국 브리티시 에어라인이 라플란드 지역에 첫 취항을 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 ITV가 라플란드 지방에 대한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이 방송이 나가고 난 뒤 로바니에미에 처음으로 외국 관광객 100명이 찾아왔다. 1991년에는 영국 BBC가 세계 극지 지방을 소개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로바니에미를 산타클로스가 사는 곳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후 로바니에미에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다. 도시의 발전 과정에서 미디어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로바니에미 시 당국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85년 시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8km 지점의 전나무 숲 속에 산타 마을을 크게 짓고, 인근 코르바툰투리에 살고 있던 ‘산타클로스’를 마을로 모셔왔다.
 
동심을 사로잡은 산타 마을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산타 마을 건물은 동화 속의 집처럼 모두 지붕이 뾰족한 통나무집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마을에 들어서면 돈을 쓰지 않고 나오기 어렵게 만들었다. 관광객들은 산타가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 특히 어린이 관광객을 맞이하는 산타 집무실이나 산타 우체국, 산타 기념품 가게, 식당들을 거치면서 지갑을 열어야 한다. 산타 마을을 가로지르는 북극선을 통과했다는 도장조차도 돈을 내고 받는다.
 
로바니에미 산타 마을의 산타는 선출직이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은 산타가 단 한 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로바니에미 산타 마을에는 여러 명의 산타가 있다. 역할도 각각 다르다. 산타 집무실에는 접객 담당 산타가 있고, 세계를 돌며 산타 마을을 알리는 홍보 담당 산타도 있다. 행정만 담당하는 행정 담당 산타까지 있을 정도다. 산타가 일반인에게 너무 알려지면 신비감이 깨지기 때문에 산타의 신분은 외부에 절대로 알리지 않는다.
 

 
아무나 산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산타 집무실의 접객 담당 산타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과 손님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외국 사정에 밝고 외국어에 능통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그곳에 선물을 주러 가봐서 잘 알고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런 산타를 보며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는 분명히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진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와 다정하게 사진도 찍는다. 즉석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기념사진을 구입하기 위해 부모들은 지갑을 열어야 한다.
 
산타 우체국도 관광객에게 잊지 못할 체험과 추억이라는 가치를 담은 각종 관광 상품을 제공한다. 산타 우체국에서 세계 각국에 보내는 엽서에는 산타 소인이 찍힌다. 북극 산타 마을에 온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관광객 한 명이 수십 장의 엽서를 사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산타 우체국은 세계 각국의 고객을 관리하는 고객관계관리 담당 부서의 역할도 한다. 자원봉사자인 요정(elf)들이 전 세계에서 날아오는 70만 통 이상의 편지에 답장을 써준다. 최근에는 한국어를 하는 한국인 요정도 생겨 한국 어린이가 산타 마을에 편지를 쓰면 한글 답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사회 공헌 활동도 산타 마을을 알리는 수단이다. 산타 우체국에 보내진 우표가 붙은 편지 봉투들은 30개 단위로 묶여 우표 수집가에게 판매된다. 이 판매 대금은 유엔아동기금(UNICEF)에 기부된다.
 
2007년 산타 마을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48만여 명. 이 중 56%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유럽 대륙 관광객들이 많지만, 요즘은 미국이나 호주에서도 상당히 많이 찾아온다. 동화적 환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일본 관광객도 많이 늘었다. 요즘에는 라플란드와 로바니에미가 중국에까지 알려져 중국 관광객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로바니에미가 산타와 산타 마을이라는 콘텐츠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매년 11월 산타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공식 선언하면 이곳의 또 다른 명소인 ‘아이스 파크 핀란드(Ice Park Finland)’가 개장한다. 이곳은 산타 마을 옆에 위치한 북극 겨울 체험 리조트다. 가족이나 기업 등 단체들이 북극의 겨울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리조트 내의 얼음 궁전에서는 얼음으로 지어진 오두막에서 잠을 자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얼음으로 된 미니 골프 코스에서 골프도 칠 수 있다. 아이들은 얼음 미끄럼틀, 얼음 미로에서 뛰어놀고 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얼음 궁전에서는 각종 음악회, 경연대회 등의 행사와 생일 파티 등의 이벤트가 열린다. 얼음으로 된 사우나, 얼음물 수영장도 큰 인기다.
 
로바니에미 시 당국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산타 마케팅의 전문화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시를 대신해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해줄 업체들을 선정하고, 전문가에게 마케팅을 맡긴다. 이런 노력이 지속된다면 로마니에미는 앞으로 전 세계에서 더욱 주목받는 도시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산타 마을, 로바니에미에도 고민은 있다. 산타 마을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워낙 강해 관광객들이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집중된다는 점이다. 다른 계절은 상대적으로 한가하다. 적당히 높은 산과 숲, 아름다운 강과 호수, 들꽃이 만발한 들판, 여기저기 한가하게 노니는 순록 떼, 눈썰매를 끄는 허스키 개 등 사실 라플란드처럼 수려하고 평화로운 자연환경을 갖춘 곳은 드물다. 로바니에미 시당국과 관광청은 아름다운 라플란드의 여름을 알리기 위해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고, 특히 국제회의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관광 도시에서 사계절 관광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필자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리드앤리더 대표이자 비즈니스 사례 사이트인 이마스(emars.co.kr)의 대표 운영자다. 서울대와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은행과 SK에너지에서 근무했고 건국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로하스 경제학> <글로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하인리히 법칙> 등의 저서와 <깨진 유리창 법칙> 등의 역서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