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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실험자, 오타쿠를 이해하라

서성욱,기타바야시 겐(北林 謙) | 38호 (2009년 8월 Issue 1)
세계를 향해 비상하는 오타쿠
‘오타쿠’란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오타쿠는 1980년대 일본에서 ‘SF나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팬’을 지칭하는 용어로 생겨났다. 지금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이외의 분야에도 적용돼 ‘자신의 취미에 강한 고집을 가진 사람’이라는 폭넓은 뜻으로 쓰인다.
 
 

 
오타쿠란 말 자체는 SF 및 애니메이션 팬들이 서로 상대를 부를 때 ‘댁은(お宅(たく)は)…’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당시에는 이 호칭에 약간의 모멸적인 뉘앙스가 들어 있었다. 오타쿠라 불리는 마니아들이 패션에 무관심하고, 주로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며,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서투르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그런 부정적인 어감은 많이 사라지고 긍정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또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유통됨에 따라 ‘골수팬’을 뜻하는 용어인 오타쿠도 해외로 널리 퍼져 나갔다. 이제는 세계 어디서나 일본어 그대로 ‘Otaku’가 통용된다.
 
오타쿠가 하위문화(sub culture)의 일부였던 시기부터 그 문화를 접해온 필자들에게는 요즘의 이런 현상들이 매우 감개무량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타쿠의 의미에 대해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국과 대만에서는 ‘집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TV에 빠진 젊은 층’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오타쿠란 ‘고집’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말로,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미국에서는 ‘망가(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문화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는 존경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오타쿠가 주는 시사점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오타쿠를 ‘성숙한 소비 사회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으로 인식하고, 객관적 시점에서 분석을 시도해왔다. 그 결과 오타쿠의 소비 메커니즘이나 심리적 성향, 행동 원리가 주는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먼저 오타쿠의 소비 성향은 한마디로 ‘무조건 소비를 해버리는,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한 정보기술(IT) 소매점의 고객 조사에서 ‘연간 1000만 엔 이상을 사용하는 계층’이 존재하며, 그들의 숫자 또한 만만치 않은 정도(몇 명이 아니라 몇십 명)라는 사실이 밝혀져 많은 사람들이 놀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계층이 있다는 것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오타쿠들은 ‘필요한 품목을 전부 갖추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특정 작품이나 제품이) 좋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평가 기준이 있다’ 등의 심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
 
오타쿠는 돈의 소비뿐만 아니라 시간의 소비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할 정도로 인터넷 게임에 빠진 게임 오타쿠는 일본에서도 드물지 않다. 이런 게임 오타쿠는 전체 이용자의 3% 정도지만, 일본 네트워크 게임 시장의 대부분을 지탱하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서 2004년에 실시한 생활자 실태 조사1 에서는 일본의 ‘오타쿠 출현율’이 약 3.6%, 즉 27명 중 1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것은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소비 성향과 다른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치라 할 수 있다.
 
한국 오타쿠와 일본 오타쿠의 차이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오타쿠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으며, 실제 오타쿠라 불리는 사람의 특징도 다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차이는 ‘지식의 깊이’에 있다.
 
한국에서의 오타쿠는 아직까지 비평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보다는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을 말한다. 즉 전문가보다는 마니아 성격이 강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한 가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의 층이 엷으며, 많은 사람이 특정 주제에 흥미를 잃으면 쉽게 다른 콘텐츠로 눈을 돌린다.
 
이런 차이는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다. 일본은 문화 소비의 전통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더 오래됐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대중이 문화를 소비할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된 시기가 일본보다 많이 늦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를 왕성하고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형태도 아직 상대적으로 덜 보편적이다. 한국에서는 사실 문화의 소비보다는 인터넷 등을 통한 ‘공유’라는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문화를 폭넓게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은 일본과 차별화된, 한국만의 독특한 오타쿠 문화를 파생시킬 가능성을 크게 한다. IT 산업의 급성장으로 야기된 한국의 인터넷 사용은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는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오타쿠 문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오타쿠 연구 기반의 새 마케팅 프레임워크
소비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소비자의 기호는 급속하게 다양화·전문화된다. 이제는 4P 프레임워크(framework)로 대표되는 기존의 매스 마케팅(mass marketing)으로는 더 이상 시장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오타쿠는 기업들에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오타쿠는 기호(嗜好)가 급진화된 소비자이며, 소비 문화의 최첨단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반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선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최근 들어 오타쿠를 공략하면 대중 소비자들이 따라오는 확률이 점점 커지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최근 오타쿠 연구를 기반으로 성숙 시장의 마케팅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냈다. 바로 다음에 소개하는 ‘3C’다. 기업이 3C를 기존의 4P 프레임워크에 결합해 사용한다면 점차 복잡해지는 소비 시장의 변화에 좀더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그림1)
 
 

 
①수집(Collection)‘수집’이라는 행위는 오타쿠 소비자의 가장 대표적인 공통 행동이다. 오타쿠들은 본인이 강한 흥미를 가진 대상, 또는 관련 아이템을 가능한 많이 구입해 모아두려는 성향이 강하다. 대부분의 경우 투입 금액과 수집 아이템의 수가 많아질수록 대상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고, 수집을 멈추기가 어려워진다. 기업은 제품에 수집과 관련한 속성을 더함으로써 고객의 ‘생애 가치(lifetime value)’를 올릴 수 있다.
 
②창조(Creativity)오타쿠들은 제품이 미완성이거나, 창조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을 선호한다. 많은 자동차 오타쿠들은 단순히 디자인이 훌륭하거나 연비가 좋은 실용 차가 아니라, 오히려 어딘가 모자란 듯한(창조의 여지가 남아 있는) 자동차에 의외로 열광한다. 이는 오타쿠들이 대상의 창조 과정에 참여하거나, 스스로 독창성을 발휘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로는 기업이 제품에 소비자가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또 창조 과정에서 정보의 수집과 교환이 필요하며, 완성 제품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런 욕구는 다음에 소개하는 ‘커뮤니티’ 형성에 구심력으로 작용한다.
 
③커뮤니티(Community)오타쿠는 단독으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같은 대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오타쿠는 보통 일반적인 미디어로부터 입수할 수 있는 정보보다 한층 고도의 전문적인 정보를 원한다. 그런데 이런 전문적인 정보는 커뮤니티에 소속되지 않으면 쉽게 얻을 수 없다. 또 커뮤니티는 결과적으로 정보 교환을 통한 취미의 정예화(精銳化)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대상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스스로가 수집이나 창조물에 대한 정열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오타쿠 특유의 생각도 커뮤니티 형성의 한 요인이다.
 
오타쿠 활용의 권유
영화와 애니메이션, 망가 등 콘텐츠 기업들은 충성도가 높고 소비액도 크다는 점에서 오타쿠들을 주목해왔다. 하지만 오타쿠는 성숙 시장의 선진적 소비자라는 측면에서 다른 산업에도 상당한 시사점이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오타쿠층의 높은 소비 성향뿐만 아니라, 산업 내에서 오타쿠가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산업 내 혁신과 관련한 오타쿠들의 역할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이들은 제품·서비스의 새로운 콘셉트나 사용법을 제안해 시장에 제시한다. 둘째, 실험적인 상품의 최초 사용자(스폰서)가 된다. 마지막으로, 초기 상품의 전도자(evangelist) 역할을 한다.
 
오타쿠층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기업 활동에 도입해 성공한 사례는 실제로 꽤 많다.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하드디스크(HDD) 레코더(PC용 하드디스크에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녹화할 수 있게 한 제품)’는 조립 PC 오타쿠가 발명한 것이라고 한다. 또 만화나 완구업계에서는 팬이 스스로 원작을 패러디한 만화나 등장인물의 피규어(figure)를 제작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 장려함으로써 소비 촉진에 성공하고 있다. 최근 비약적으로 회원 수가 늘고 있는 동영상 투고 사이트 ‘니코니코 동영상(www.nicovideo.jp)’에서도 일반 팬의 패러디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커뮤니티가 실제 여행 상품을 만드는 ‘클럽 투어리즘(club tourism)’이나, 의류업체가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을 흡수해 신제품을 만드는 등의 사례도 많아지는 추세다.
 
다만 기업은 탑재 기능의 선별 등 제품의 세부 사항에서는 오타쿠층의 의견을 반드시 걸러서 들어야 한다. 오타쿠층의 기호를 따라가다 일반 소비자에게 외면당한 상품의 예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오타쿠층의 왕성한 소비 성향과 일반 소비자의 추종 가능성만 놓고 시장 기회가 충분하다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오타쿠는 어디까지나 시장의 소수를 차지하며, 이들의 취향이 반드시 일반으로 확산되지는 않는다. 오타쿠는 시장 그 자체보다는 창의성과 혁신의 실험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기업은 오타쿠의 창조성을 실마리로 삼아 일반 고객이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 공감하는지를 철저히 확인하고, 신상품이나 서비스의 맹아(萌芽)를 탐색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일본 최대 컨설팅 회사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이번 호부터 일본 소비 시장의 최신 트렌드를 살펴보는 ‘Eye on Japan’ 코너를 연재합니다. 일본 소비자 트렌드는 한국 소비 시장 흐름의 ‘선행지수’ 또는 ‘거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기타바야시 겐(北林 謙) 노무라종합연구소 주임 컨설턴트는 정보통신 분야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 부문의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서성욱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오피스 컨설턴트는 기술 경영 및 환경 분야의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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