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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꽂히는 이름’ 어떻게 지을까

정재승 | 27호 (2009년 2월 Issue 2)
기업이 제품을 만들어 팔 때 ‘브랜드 이름’이 상품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약 10%다. 그런데 브랜드 이름을 짓기 위해 투자하는 예산은 불과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브랜드 이름이 적절치 않아 공들여 만든 제품이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기업이 비일비재하다.
 
미국 기업들은 브랜드 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다. 다양한 후보 이름을 발굴하고 다수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정교한 시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후보 이름이 고객의 시선을 더 잘 사로잡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선추적(eye tracking) 장치라는 첨단 장비를 활용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보고 있는지를 0.1초 간격으로 추적하는 장치다. ‘시각적 주의’를 측정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장치는 없다.
 
미국의 브랜드 회사들은 대기업의 의뢰를 받아 제품에 대한 적절한 후보 이름을 서너 개 정도로 압축한 뒤 다양한 환경 아래 이들 이름을 노출해 피험자들이 각 후보 이름에 ‘시선이 머무는 시간’(eye dwelling time)을 측정한다. 웹 페이지 구석에 후보 이름을 끼워 넣을 수도 있고, 길거리 간판이나 신문 광고 등에 제품 이름을 노출해 얼마나 주의를 끄는지 관찰할 수도 있다. 그러면 놀랍게도 이름마다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시간이 서로 다르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제대로 주의를 끌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이름들도 쉽게 걸러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름에 따라서는 로고와 함께 있을 때 주의를 더 잘 끄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특정한 색깔 바탕 위에서 주의를 더 잘 끄는 경우도 있다. 같은 이름이라도 어떤 글자체로 썼느냐, 대문자냐 소문자냐, 모델과 잘 어울리느냐 등에 따라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 시선추적 장치는 이런 것들을 실수 없이 정확히 측정해 준다.
 
미국 브랜드 회사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피험자들을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 안에 들어가게 한 뒤 브랜드 후보 이름을 로고와 함께 보여 주는 시험에 착수한다. 브랜드 이름이 ‘주의를 끄는 이유’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희한하거나 이상해서 오래 보는 것인지, ‘호감’으로 인해 오래 보는 것인지 반드시 확인한 뒤 이름을 최종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신경경제학과 뉴로마케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뇌의 어떤 부위가 호감을 나타내는지, 비호감인 때에는 뇌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저 희한해서 더 보는 경우에는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KAIST 내 연구실(Brain Dynamics Laboratory)에도 최첨단 시선추적 장치가 있다. 국내 유일의 연구용 fMRI 장치도 있어서 다양한 브랜드 이름을 피험자들에게 제시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구글이나 아이팟과 같은 좋은 이미지의 브랜드를 로고와 함께 보여 주면 피험자들의 전전두엽은 매우 활성화되는 반면에 부정적 이미지의 브랜드나 잘 모르는 브랜드를 보여 주면 대뇌 반응은 현저히 떨어진다. 포털의 현란한 웹 사이트 안에 조그맣게 브랜드 이름과 로고를 삽입해 주면 어떤 로고는 영락없이 피험자들의 눈을 사로잡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로고도 상당히 많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업 활동을 통해 그 문화권에서 신뢰를 쌓아가면서 형성된다. 그러나 브랜드의 글자체나 발음 등이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오랜 연구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기업이나 브랜드 회사들은 아직 어느 곳에서도 시선추적 장치나 fMRI를 이용해 인간의 무의식적 생체 반응을 측정하려는 시도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설문조사나 그룹 인터뷰를 통해 브랜드 이름의 이미지를 조사하고 있다. 물론 설문조사도 반드시 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현대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지금 우리는 21세기 외국기업들과 경쟁하며 21세기 고객들에게 21세기 물건을 팔고 있지만, 생산이나 마케팅 방식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영어 단어로 브랜드 이름을 만들 때 철자는 브랜드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A는 맑고 서늘한 느낌을 주며, U는 무거운 느낌을 준다. M, L, I는 온화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K, S, T는 차고 진보적인 느낌을 준다. E와 X는 현대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머금고 있다.
 
이를 이용한 이름 짓기의 성공 사례로 스포츠 패션 브랜드 ‘EXR’이 있다. 소비자 조사 결과 당시 불어 닥친 ‘몸짱’ 열풍으로 운동복을 평상복처럼 입을 수 있는 스포츠 웨어가 인기를 끌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기업이 ‘자기 관리에 충실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 단어’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진화(Evolution)와 혁신(Revolution)의 의미를 담은 ‘EXR’은 진보적인 느낌을 준다. 이 회사는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어 ‘Casual’과 ‘Sports’라는 2개의 서로 다른 영역을 결합한 ‘Caports’라는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브랜드는 제품의 의미와 느낌이 일치할수록 좋은데, 발음과 철자는 여기에 한 몫을 담당한다.
둘째로 중요한 점은 제품명을 들었을 때 ‘귀에 꽂히는 이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반복적으로 들려주고 많이 노출하면 잠재 고객들에게 장기기억으로 남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든다. 좋은 이름은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간단한 시험을 해 보자. 피험자들에게 다음과 단어를 들려준다.
 
‘혼란, 잠자리, 망치, 키스, 뛰다, 합의하다, 교정하다, 쓰다듬다.’
 
이 8개의 단어를 들려주고 30분 뒤 기억에 남아 있는 단어를 물어보면 가장 많이 인출되는 단어는 ‘키스’, 그 다음이 ‘망치’ ‘뛰다’ ‘쓰다듬다’ 순이다. ‘혼란’이나 ‘잠자리’ ‘교정하다’ ‘합의하다’처럼 귀에 익숙지 않고, 발음이 어려우며, 뜻이 추상적인 경우에는 기억에 오래 남기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브랜드 이름으로 ‘잠자리’가 들어간 이름보다 ‘키스’가 들어간 이름이 더 좋은 것은 당연한 얘기다!
 
지난 호에서 얘기한 효과적인 포장지 활용법에도 이와 같은 언어 심리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상품 뒷면이나 포장지에 적힌 문장들은 대부분 고객들을 향해 ‘저를 사 주세요!’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마트에서 제품을 구입할 때 포장지나 제품 뒷면의 소개 글을 읽고 구매하는 고객은 0.1% 정도에 불과하다. 아예 읽지 않는 소비자가 다수이며, 겨우 15∼20%의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한 후 집에 와서 제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볼 목적으로 제품 뒷면을 살펴본다. 그렇다면 포장지나 제품 뒷면에 쓰인 제품 설명에는 “내가 오늘 이 물건을 산 것은 잘한 선택일까”라고 의구심을 갖는 소비자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는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독일의 유명한 우유 회사 바이헨슈테판의 경영진은 진공 멸균 우유를 판매하면서 포장지 측면에 다음과 같은 제품 설명을 담았다.
 
‘알프스 전방의 광활한 지역에서 투철한 책임감으로 운영하는 농장. 바로 이곳이 우리 젖소들의 고향입니다. 우리는 신선한 풀과 건강한 목초를 먹고 자란 젖소에서 날마다 고품질의 우유를 얻습니다.’
 
고객들이 가장 듣고 싶은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이 제품 소개 글은 바이헨슈테판의 우유 판매량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들은 제품 소개 글을 작성할 때 독일어 철자 중에서 우유와 가장 잘 어울리는 철자와 단어를 사용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으며, 그 전략은 그대로 유효했다. 이렇게 기업이 정성을 들이면 고객 만족도는 높아진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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