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험’ 해법은 신뢰

26호 (2009년 2월 Issue 1)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각국은 저마다의 발전 경로를 거치면서 경제적 성과의 명암이 갈렸다. 이와 더불어 국가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위험’들을 키워왔다. 예를 들어 한국은 국가 주도의 수출전략을 통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정치적 민주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가경제가 몇몇 재벌에 의존해야 하는 위험도 수반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세계 여러 나라가 키워온 고유한 위험들은 ‘세계화’와 더불어 섞이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복합위험’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화는 경제와 문화뿐 아니라 위험까지 통합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위기는 이러한 복합위험 사회의 여러 징후 가운데 하나다.
 
금융자본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
오늘날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처럼 보이는 외국인에게 자본시장이 개방된 것은 불과 1992년의 일이다. 그 전까지 한국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비율은 약 3%에 불과했다. 시장이 개방되자 외국인 투자가 빠르게 유입돼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직전에는 한국 자본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율이 40%에 육박했다. 한국이 안고 있는 고유한 위험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미식 자본주의의 위험이 더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한국에 들어온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과 이를 떠받치는 담론도 함께 유입됐다. 글로벌 스탠더드, 기업지배구조, 정실자본주의, 사외이사, 투자은행, 펀드, 주주중심주의 같은 단어들은 그 전의 한국 사회에서 대중에게 생소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이 위기를 맞이한 원인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와 있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채 국가가 불필요하게 경제에 개입했고 그러다 보니 힘 있는 자에게 줄을 서야 보상을 받는 정실자본주의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시대적 관행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일정 부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문제가 많은 한국이 어떻게 지난 30년 동안 경제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은 무시됐다. 당시 위기 상황에서는 한국적 발전 경로에 수반되는 위험만이 일방적으로 강조됐다. 한국 모델의 장점 또는 영미식 모델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입된 영미식 모델의 위험들은 한국이 원래 안고 있던 고유의 위험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복합위험을 만들어 냈다.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 사회에 함께 유입된 자본주의 모델과 그 담론의 내용은 무엇인가.
 
금융자본주의의 위험성
과거 테일러리즘이나 포디즘 시대에는 일단 ‘생산을 위한 조직’을 전제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반면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가장 최근 형태인 금융자본주의는 생산하지 않고 소비하며, 생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축적하기 위해 신용을 만들어낸다는 특징을 지닌다. 오늘날 미국에서 기업은 최우선적으로 금융 투자의 대상일 뿐이다. 미국의 젊은 자본가들에게 기업은 높은 차익만 가져다주면 언제든 매각할 수 있는 대상이다.
 
파생금융상품 등장으로 금융시장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졌다. 선진국 경제의 금융화가 진전되면서 ‘신용’은 더 이상 생산을 목적으로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니다. 이윤을 창출하고 축적하기 위해 끌어다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금융자본주의는 나름대로의 위험을 안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경제활동의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할 생산이 등한시된다. 소득이 실물 분야보다 금융 분야에서 더 많이 창출되므로 실물 분야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진다. 이로 인해 실질임금의 정체 또는 하락과 소득양극화를 부채질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이후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의 격차가 하루가 다르게 벌어져 최근에는 둘 사이에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어졌다. 한마디로 열심히 일해도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가상의 상품 거래를 통해 부풀려진 금융 위기가 주기적으로 현재화할 때 유일한 해법은 금융소득으로부터 혜택을 본 적이 거의 없는 대다수 납세자들의 세금을 쓰다는 문제점이 있다.
 
금융위기는 신뢰의 위기
금융위기는 근본적으로 ‘신뢰’ 위기다. 금융자본주의에서 화폐보다 훨씬 많이 유통되는 신용은 그 자체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현대사회에서 추적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금융 네트워크는 결국 복잡하게 주고받은 신뢰의 네트워크다. 평상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의 어느 한 축이 의심받기 시작하면 이 신뢰의 구성물은 한꺼번에 붕괴할 위험에 처한다. 더욱이 파생금융상품 등장 이후 실물에서는 같은 자산 또는 부채가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포장되고 판매된다. 이 때문에 거래가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기가 찾아오면 금융거래와 실물상의 가치를 정확히 판별해 연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신뢰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찾아오면 투자자들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빨리 손을 털고 나오는 것이 손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판단한다. 이러한 행동은 마치 화재가 나 아비규환이 된 건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처럼 전체적인 피해 규모만 더 키우게 된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와야 피해를 줄인다고 생각하므로 사람들은 위험을 실제보다 훨씬 과장해서 평가한다. 금융시스템이 결국은 신뢰의 네트워크라는 점을 생각하면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이 시스템은 순식간에 과장된 불신의 네트워크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금융위기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전개되는 이유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한국은 한 가지 실수를 했다. 위기를 가능한 빨리 극복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사태의 모든 책임이 한국적 정실자본주의에 있다는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국내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큰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과장된 신뢰와 불신 사이를 극단적으로 왔다 갔다 하도록 만드는 미국 주도의 금융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 결과 한국식 자본주의 고유의 위험에 금융자본주의라는 또 하나의 위험을 받아들여 경제적 측면에서 복합위험 사회를 만들어냈다.
 
정부 신뢰 회복이 경제위기 해결의 근본
10여 년 전의 아시아 경제위기와 지금의 세계 경제위기는 절묘한 대조를 보인다. 아시아 경제위기 때 미국은 IMF를 앞세워 미국과는 다른 경제 시스템을 가진 나라들을 훈계하고 가르치면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을 수출했다.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의 세계적 확산이다. 이로부터 불과 10년 후 이번 위기는 미국으로부터 출발했고, 비난의 화살은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이번 위기에서 IMF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10년 전과 달리 세계경제시스템을 재정비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올해 상반기는 전 세계적 금융질서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우리로서는 국내 위기의 극복과 동시에 국제금융의 정치경제와 관련한 각국 동향에 민감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과거의 안정적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격변기일수록 우리가 게임 규칙 제정에 한 몫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은 셈이다. 시장만능주의를 버리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현실 자본주의의 역사적·국제적 맥락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게임 규칙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국내 위기는 단순히 금리 인하나 재정 지출 확대, 일자리 나누기 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신뢰의 위기라는 금융위기 특성상 정부의 신뢰 회복 여하에 따라 투입되어야 할 비용 규모는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이다. 이 점에서 현 정부는 1997년 위기 때보다 불리한 입장이다. 당시 위기는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막판에 찾아왔고,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 무결점 상태에서 강력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반면에 현 정부는 집권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위기가 커졌고, 2008년을 뒤흔든 ‘촛불 사태’의 와중에서 이미 국민과의 소통 부재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금융위기 극복에는 신뢰 회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신뢰 회복은 다분히 정치·사회적 영역이며, 이것은 바로 리더십의 역할이다. 올해 상반기에 정부에 대한 국내외적 신뢰를 얼마나 빨리 회복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신뢰 회복을 위해 특히 2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죽을 기업은 빨리 죽게 해야 한다. 부실한 기업을 놔두는 것은 강력한 국가 시스템에서 고질적인 문제다. 미래 가치가 높고 살릴 수 있는 기업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포기해야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건설업계와 금융권에 숨어 있는 부실이 산더미 같다는 루머가 계속 돌아다닌다면 아무리 재정 지출을 확대해 봐야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둘째, 친기업적 정책을 하려면 ‘친(親)국민’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해야 한다. 신뢰의 향방에 따라 엄청난 비용이 좌우되는 금융위기 상황에서 자칫 기업과 일반 국민을 구별하여 기업을 편드는 인상을 준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실제로 위기 극복 비용을 몇 배나 부풀려 놓을 수 있다.
 
한국경제의 오래된 위험에다 우리가 지난 10여 년 동안 집중적으로 받아들인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위험이 겹치면서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향후의 전 세계적 패러다임이 어느 방향으로 변화할지 이 큰 갈림길은 올해 상반기 중에 지나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위기 극복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며, 핵심은 정부의 신뢰 회복이다. 정부와 거대 여당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치적 타협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빨리 깨닫길 바란다.
 
필자는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경제·기업 사회학과 연결망 분석을 활용한 정보사회학 분야를 주로 연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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