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문을 연 일광전구는 ‘국내 마지막 백열전구 회사’이다. 외환위기, 중국산 저가 제품의 시장 침투, 전 세계적인 백열전구 퇴출 등으로 수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적시에 사업의 방향성을 전환하며 현재는 MZ세대가 주목하는 조명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일광전구는 전구보다 본질적인 ‘빛’에 초점을 맞춰 업을 재정의했다. 리브랜딩 과정에서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지키기 위해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오래 두고 사용할 수 있는 ‘롱 라이프(Long Life)’ 브랜딩을 추구했다. 변화에 따르는 기존 구성원들의 불만에는 작은 성과를 가시화해 정당성을 확보해나갔다. 변화에 대한 리더의 강한 의지 또한 구성원들의 불안을 덜고 확신을 강화했다.
1887년 봄 어느 날, 경복궁의 깊은 안쪽에 위치한 건청궁. 고종과 명성황후가 머물던 이곳에 조선 사상 처음으로 전깃불이 켜졌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약 8년 만의 일이었다. 동양 최초의 전등 설비로 아시아의 개화를 이끌겠다던 일본의 궁에 도입된 것보다도 2년 빨랐다. 이 모습을 숨어서 지켜봤다는 안씨 상궁은 1936년 등화사연구가 안겸과의 면담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서양인의 손으로 기계가 움직였는데
연못의 물을 빨아올려 물이 끓는 소리와 우레 소리 같은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얼마 뒤 궁전 내의 가지 모양의 유리에
휘황찬란한 불빛이 대낮같이 점화됐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 상궁의 말을 빌리면 조선인들에게 전구의 불빛은 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한 것”이며 “불가사의하고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누군가는 도깨비불이라고 하며, 누군가는 무서워서 어두운 곳을 찾아 숨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본 전깃불은 사실 인류에게 가장 친숙한 불인 모닥불을 닮았다. 전구가 발명되기 이전 인류는 약 100만 년간 모닥불을 피워왔고, 최초의 전구인 백열전구 또한 에디슨이 모닥불이 타는 원리를 빌려 발명했다. 탄화시킨 대나무로 필라멘트를 전기로 가열하면 빛이 만들어진다. 불빛이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모습 역시 모닥불을 떠올리게 한다. 이후 1900년 4월, 종로 네거리에 민간 최초로 가로등이 등장하며 백열전구가 우리나라 곳곳을 밝혀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처음으로 우리 땅에 백열전구가 켜지고 약 120년이 지난 2007년, 백열전구는 퇴출 위기란 ‘비극’을 맞았다. 그해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백열전구가 에너지 낭비의 주범으로 지목당하며 생산 및 사용 자제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또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가정용 백열전구에 대한 생산 및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