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비즈니스 트렌드 돋보기

위드 코로나 시대 역발상 ‘파자마 정장’

339호 (2022년 0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위드 코로나 시대, 일본에서는 새로운 상품 카테고리인 ‘파자마 정장’이 등장했다. ‘잠옷 이상, 정장 미만’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 제품은 편안한 착용감을 자랑하지만 편안해 보이지는 않은 정장이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확산으로 집에서 일하기 좋은 복장을 선호하면서도 온라인 미팅에서 지나치게 격식 없게 비치기는 싫은 직장인들의 수요를 포착한 이 제품은 단기간에 대히트를 쳤다. 파자마 정장을 필두로 한 기능성 정장의 성공은 기존 정장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제거해 철저하게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멋진 옷맵시를 결정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원칙을 고수한 결과다. 또한 정장이 외면받는 상황에서 고객의 목소리를 속도감 있게 반영하고 틈새시장을 포착한 것도 위기를 기회로 살린 비결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음식과 주거 생활뿐만 아니라 의복, 즉 입는 것에까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특징짓는 가장 큰 변화는 재택근무의 확산일 것이다. 원격 근무라는 새로운 업무 스타일이 정착되면서 패션 산업의 명암도 갈리고 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면서 정장 판매는 줄었고 편안한 의류를 구입하는 사람은 증가했다. 일본 정장 제조 업체들의 2020년 매출은 모두 2019년 대비 20% 이상 감소하며 코로나발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새로운 풍경이 등장했다. 일본의 경제 전문지인 닛케이신문이 선정한 ‘2021년 일본의 히트 상품 Best 30’, 닛케이가 발간하는 마케팅 전문지인 닛케이 MJ 선정 ‘2021년 우수 제품 및 서비스상’을 수상한 제품은 다름 아닌 ‘정장’이다. 정장 업체들이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역경의 시대에 히트 상품을 만들어낸 비결은 무엇일까. 파자마 정장의 성공을 통해 불황 속에도 팔리는 제품의 탄생 비결을 알아보자.

‘잠옷 이상, 정장 미만’ 틈새시장에서 탄생

“무슨 옷을 입어야 하지.” 코로나19 확산 이후 갑자기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회사가 늘면서 직장인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집에서 일하기에 편한 복장을 선호하면서도 온라인 줌 미팅에서 지나치게 격식 없거나 해이하게 비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정장을 입고 일하자니 불편했다.

일본의 남성 정장 업계 2위 제조사인 ‘아오키(AOKI)’는 이런 직장인들의 새로운 고민을 해결해 줄 상품을 고안했다. 편안한 착용감을 자랑하지만 편안한 옷처럼 보이지는 않은 정장을 개발한 것이다. ‘잠옷 이상, 정장 미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파자마 정장’이다. 파자마 정장은 신축성이 있으면서 구김이 잘 가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 활동성이 좋으면서 매일 세탁기에 빨아도 될 만큼 관리도 쉽고 동시에 포멀한 느낌도 나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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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는 이 제품 홍보를 위해 재택근무뿐만 아니라 여행, 산책, 심지어 골프장 등에서도 입을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옷이라는 콘셉트로 마케팅을 진행했으며 가격은 위아래 한 벌에 1만978엔 수준으로 정했다. 한화로 약 11만 원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정장보다는 부담 없는 가격이다.

이처럼 틈새시장을 겨냥한 결과 아오키는 2020년 11월 출시 후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약 3만 벌의 파자마 정장을 판매했다. 일반 정장의 경우 1년에 1만 벌이 팔리면 히트 상품으로 분류되는데 파자마 정장은 이보다 3배 빠른 속도로 팔린 것이다. 업계 기준으로 대히트 상품이 됐다. 이 같은 트렌드는 해외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 20여 개국에서 보도가 됐으며 온라인 몰 등을 통해 싱가포르, 홍콩, 미국 등지로도 판매가 됐다. 재택근무 인구를 핵심 타깃층으로 정했으나 신축성이 부각되면서 신축성 높은 제품 라인이 벨기에 축구팀 신트 트라위던(Sint-Truidense V.V.)의 공식 정장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기능성 정장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등장

일본에서는 코로나 확산 전부터 이미 활동하기 편안하지만 포멀하게 보이는 ‘기능성 정장’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등장하며 조금씩 시장을 넓혀 가던 중이었다. 근무 복장의 캐주얼화, 1인 기업가 및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활동성과 격식을 모두 충족시키는 옷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덮친 팬데믹은 기능성 정장 시장의 기폭제가 됐으며 일본 기능성 정장 시장은 2025년 210억엔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될 만큼 커졌다. 파자마 정장 외에 히트를 친 기능성 정장의 사례를 조금 더 살펴보자. 최근 출시된 기능성 정장 중 가장 성공한 사례는 아오키가 출시한 또 다른 브랜드인 ‘액티브 워크 슈트(active work sui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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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1일부터 온라인 한정으로 사전 예약 판매를 실시한 이 기능성 정장은 2주 만에 완판이 됐으며 이후 2월15일과 22일에 추가 판매를 실시했을 때도 10일 만에 완판됐다. 약 1개월이 안 되는 기간에 5000벌 판매라는 기록을 달성하며 정장 업계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손꼽히게 됐다. 옷을 만든 제조사조차 생각보다 너무 좋은 반응에 놀랐다고 한다. 아오키 관계자는 “특별한 광고 없이 보도 자료만 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많이 팔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주문이 쇄도한 것은 실용성을 겸비한 정장에 대한 높은 수요를 반영한다.

또 다른 업체인 ‘오아시스 라이프스타일’이 생산해 히트를 친 기능성 정장으로는 ‘워크웨어슈트(Work Wear Suit)’라는 브랜드가 있다. 한때 일본 대중 매체에서 ‘정장을 입고 일하는 농부’가 소개돼 화제가 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사례다. 광고가 아니라 실제 워크웨어슈트를 입고 농사를 짓는 농부의 모습이 포착돼 전파를 탄 것이다. 이처럼 워크웨어슈트는 ‘정장처럼 보이는 작업복(スツに見える作業着)’이란 이름 그대로 공식 석상에서 입을 법한 정장처럼 보이지만 높은 기능성을 자랑하는 작업복이다. 물에 젖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김이 잘 가지 않고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원단이기 때문에 접어서 가방에 보관하다가 꺼내 입어도 주름이 생기지 않는다. 일반 세탁기에서 세탁이 가능하고 건조가 빨라 매일 입는 작업복으로 손색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크웨어슈트의 주된 소비층을 분석해 보면 주로 활동량이 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미용실 직원, 야외 활동이 많은 전문 포토그래퍼, 자동차 관리와 접객을 동시에 해야 하는 중고차 판매 딜러 등이 그 예다. 더욱이 최근 이 제품은 일본 내 다양한 스포츠팀의 공식 정장으로도 채택됐다. 일본 사람들이 복장 선택에 있어 주로 강조하는 TPO, 즉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과 관련된 고정관념을 깨고 정장의 이용자 기반을 확대한 상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양한 쓰임새만큼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옷을 만든 오아시스 라이프스타일이 의류 제조사가 아니라 건물의 수도관 공사 및 청소 사업을 하는 회사라는 점이다. 이 회사는 수도관 청소 업무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없어 고민 중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힘든 업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이에 회사는 젊은 직원을 유치하기 위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업무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작업복을 패셔너블(fashionable)하게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직원들이 매일 입고 싶을 만큼 멋있으면서 동시에 작업복으로서 충실히 기능할 수 있는 ‘작업복 같지 않은 작업복’을 만들자는 발상이었다. 이 의견이 받아들여지면서 오아시스 라이프스타일은 약 2년에 걸쳐 자체적으로 원단을 개발했고 직원들을 위해 정장처럼 보이지만 작업복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옷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오아시스 라이프스타일 회사 직원들부터 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직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내부적으로 반응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이 워크웨어수트를 입고 작업하는 직원들을 보고 거래처 회사에서 ‘우리 회사도 그 작업복을 입고 싶다’는 의뢰가 쏟아졌다고 한다. 이런 뜨거운 호응에 탄력을 받아 오아시스 라이프스타일은 작업복 제조를 별도 사업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작업복 가격이 위아래 한 벌에 약 3만 엔(30만 원) 정도로 저렴하지 않았음에도 이 제품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도 연간 1만 벌 정도를 판매, 연간 3억 엔의 매출을 올리는 히트 아이템이 됐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해 리모트워크가 확산되고 기능성 정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매출은 더욱 증가했고 현재까지 판매량은 누적 10만 벌에 달한다. 수도관 청소 전문 회사가 의류 업계의 상식을 뒤집는 발상과 기술력으로 대히트 상품을 탄생시킨 셈이다.

파자마 정장의 성공 요인과 시사점

이렇듯 기능성 정장이 히트 상품이 되자 자연히 시장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의 정장 메이커들이 비슷한 콘셉트의 제품을 속속 출시하면서 후발주자들 간 경쟁이 가열된 것이다. 그러나 카테고리 창조자였던 아오키의 제품이 유독 대박이 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당연하게 들리지만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런 성공 요인은 철저한 원가 절감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아오키는 액티브워크웨어의 상하의 세트를 5970엔(약 6만 원)에, 파자마 정장은 1만978 엔(약 11만 원)에 출시하며 타 정장 대비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그야말로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느낌으로 원가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무엇보다 액티브워크웨어의 경우 더 이상 줄일 곳이 없을 때까지 원단 재료비를 줄였다. 봄•여름용 재킷에서는 등이나 어깨가 닿는 면의 안감을 생략했다. 안주머니는 오른쪽만 만들고 소매 끝 단추도 2개로 줄였다. 심지어 브랜드명이나 사이즈를 표시하는 라벨까지 모두 생략한 채 품질 표시 태그만 달았다. 또 바지 길이를 짧게 만들어 대부분의 사람이 밑단을 줄이지 않거나 혹은 한 번 접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착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밑단을 줄일 때 자르는 천마저도 아깝다”는 게 이유였다.

정장 기성품들을 보면 체형과 키를 조합해 1개 품목에 10∼15개의 사이즈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오키는 사이즈 종류도 S, M, L, LL의 4가지로 줄여 가격을 낮췄다. 바지에는 허리끈이 붙어 있어 벨트 없이 사이즈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하며 재킷도 소매가 길면 접어서 착용하도록 추천했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비용 다이어트를 감행하면서도 설계와 봉제에서는 타협하지 않으려 애썼다. 즉, 밑단이나 라벨 등 불필요한 원단은 없애더라도 옷의 착용감과 맵시 등을 결정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원칙을 고집했다. 재킷의 팔 부분은 입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입체 봉제 방식을 사용했다. 이외에도 재킷의 뒷면이나 포켓의 가장자리를 보강 및 고정하는 작업의 경우 일반 정장의 포멀한 느낌을 연출하는 데 꼭 필요한 공정이라고 판단하고 공을 들였다. 즉, 옷의 품질과 직결되는 부분에서는 원칙을 지키고 나머지 부분에선 관성을 거부한 것이다. 정장 생산에 있어 어떤 부분은 생략하고 어떤 부분은 유지할지를 결정하는 데는 회사가 여태까지 축적한 체형 데이터와 생산 기술이 활용됐다.

두 번째, 아오키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또 다른 요인은 고객 목소리에 빠르게 반응했다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캐치하고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제품을 내놓기까지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 ‘속도감’이 차별화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사무실로의 출퇴근이 줄면서 정장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아오키는 오프라인 점포를 방문하는 고객들이 전하는 “집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평소 입던 정장을 입기 힘들다”는 고민을 놓치지 않았다. ‘정장 아니면 캐주얼’이란 이분법이 사라지고 재택근무 확산을 계기로 일과 사생활이 혼합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주목했으며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맞는 새로운 세그먼트가 필요한 것을 감지했다.

일반 정장은 상품화되기까지 반년에서 1년까지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파자마 정장의 경우 2020년 6∼7월 상품 개발이 시작된 지 반년도 안 된 그해 11월에 출시됐다. 생산뿐 아니라 마케팅에 있어서도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제품명까지 재빨리 바꿨다. 예를 들어, ‘파자마 정장’이라는 상품명은 제품의 특징은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발매 당시만 해도 제품의 별명일 뿐이었다. 정식 명칭은 ‘홈&워크웨어’였다. 하지만 판매가 개시된 뒤 각 매장에서 “파자마 정장 있나요”라고 묻는 고객이 많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됐고 본사는 기존 명칭을 버리고 고객에게 친숙한 별명을 공식 상품명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출시된 상품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이례적인 일일뿐만 아니라 비용이 드는 일이다. 판촉물은 물론이고 매장의 POP 등도 전부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오키의 회장을 필두로 경영진 모두 ‘고객에게 친숙한 이름을 상품명으로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이름 변경을 승인했다.

이렇게 현장의 목소리를 살리는 변화가 속도감 있게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로 인해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이 언제든 갑자기 변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행동력은 코로나 발발 직후의 성공 경험에서 기인했다. 2020년 4월 코로나 발생 초기, 아오키는 마스크 품절 대란 속에서 천 마스크를 빠르게 출시해 폭발적인 매출을 올렸다. 그리고 발매 후에도 사이즈나 끈 길이에 관한 고객의 의견을 듣고 대응한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바로바로 제공하는 신속성의 중요성을 체감한 회사는 코로나 사태가 수습된다 해도 남성 정장 수요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품을 기획했던 것이다.

파자마 정장 같은 신흥 카테고리의 성공 사례는 불황기에도 얼마든지 히트 상품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아오키 역시 제품이 팔리지 않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기에 ‘정장은 포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뒤집어 볼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렇듯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 기존의 상식을 깨는 역발상, 기술력, 실행력이야말로 정체된 시장에서도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결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희선 유자베이스 애널리스트 hsjung3000@gmail.com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