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안전하게만 가려는 사람, 뺨 맞아야”

DBR | 18호 (2008년 10월 Issue 1)
조한상 KT 미래사회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피곤한 사진작가’라는 포토그래퍼 강영호를 지난달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앞 상상사진관(강 작가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그는 홍익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10년 넘게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의상디자인, 사진, 미학 그리고 다시 불문학 석사 과정을 거치면서도 아직까지 단 하나의 석사 학위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이번엔 또 물리학을 공부하려 계획 중이란다) 그는 또 수많은 영화, 광고 사진 히트작들을 통해 대중에게 가장 사랑 받는 사진작가로 손꼽히면서도 여전히 왠지 주류는 아닌 듯 느껴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강영호는 제대로 된 사진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뛰어난 감각과 창의성, 영화 시나리오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등의 참신한 시도로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영화 포스터 작업의 70∼80%를 독점한 뛰어난 사진작가다.
 
이후 미련 없이 영화판을 떠난 그는 몇 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이미지 광고 사진은 강영호가 최고’라는 평을 듣고 있으며, 광고와 소비자 및 예술의 흐름을 언제나 주시하고 이끌어가는 트렌드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DBR은 현재 모든 기업 경영의 화두인 상상력과 창의력, 고객 트렌드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강 작가를 만났다.
 
동그란 안경이 인상적인 사진작가 강영호는 처음부터 ‘세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먼저 자기 회사 매출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광고를 어떻게 만들지조차 모르는 광고주들을 도마 위에 올렸다. 역시 ‘다루기 힘든 사진작가’란 말이 헛소문이 아니었다.
 
“저는 예술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업 사진작가라는 것을 떳떳하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매출 증대’를 목표로 잡고 작업합니다. 그럼에도 일부 클라이언트들은 저를 불편해합니다. 제가 그들이 시키는 것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적잖은 국내 기업들은 일을 아무 생각 없이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 ‘빅모델은 무조건 클로즈업으로 가야 한다’는 식이죠. 그러나 빅모델이라 해도 제품이나 광고 콘셉트에 따라 클로즈업이 좋을 때도 있고, 감추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를 원해 비싼 돈 주고 저를 찾았으면서 셔터 누르는 손가락 하나만 원하니 참 바보 같은 짓 아닙니까?”
 
광고주나 광고대행사 측에서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안타깝지만 꼭 그런 것 같진 않아요. 얼마 전 주류 광고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광고주가 무조건 모델이 술병을 들고 있거나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을 찍어 달라는 거예요. 왜 그런 장면이 필요한지에 관한 전략적 이유는 제시하지 않더군요. 주류 광고는 원래 그렇게 간다는 것이죠.
 
그러나 사진은 TV CF와 달라요. CF가 ‘설명적인 소설’이라면 사진은 ‘함축적인 시’라고 봐야 합니다. CF는 소리와 움직임, 상대적으로 긴 노출 시간이란 요소가 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제품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은 오직 찰나의 비주얼만 가능하기 때문에 설명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광고주들은 단지 과거에 그렇게 해 왔고, 경쟁사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냥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안전하게만 가려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내 뺨을 한 대씩 갈겨 줘야 합니다. 이제는 ‘뺨을 갈겨 주는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아요.”
 
광고 분야에서 또 뺨을 맞아야 할 사람들은 누구라고 보시나요.
 
“우선 지나치게 ‘김태희’에 열광하는 광고주들이 떠오르네요. 일반적으로 예쁘면 공부 못한다고 생각하게 마련인데, 예쁜 친구가 공부도 잘했다니 이게 한국 남성들의 마음에 얼마나 확 당기는 판타지입니까?

그러나 저는 이것을 우리나라 광고주들이 촌스럽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쁘고 서울대 나온 여자를 향한 그들의 마음을 백 번 이해한다고 해도 광고 효과의 차별화를 포기할 만큼의 ‘김태희 쏠림 현상’은 한마디로 창피하다 못해 무식한 현상으로 봐야 합니다. ‘아나운서에 열광’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 사회와 기업은 ‘김태희와 아나운서들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생각해 볼 문제라고 봅니다.”
 
안전하게만 가려고 한다는 것과 특정 모델에 대한 쏠림 현상은 결국 우리 기업들 창의력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국내 기업의 창의력과 그 기반인 상상력이 일천하다는 것은 단적으로 청바지를 입는 최고경영자(CEO)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캐주얼 문화가 떠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CEO들의 캐주얼 의상이라는 것이 고작 넥타이를 매지 않은 셔츠에 면바지 입고 재킷 하나 걸치는 정도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한 분 정도는 청바지에 라운드 티셔츠를 입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은 CEO가 고개를 끄떡입니다. 그러나 그뿐이죠. ‘좋다,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처음 하기엔 좀 뭣하다’ 이런 생각들인 것 같습니다. 상상력이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내가 처음 생각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실제 행위로 옮기는 과정까지 포함합니다. 행위가 뒷받침되지 않는 생각은 상상력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좀 더 창의적일 방법은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과 상상력이 풍부한 인재를 채용하는 것입니다.
 
기업의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고객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고객에 대한 참된 배려가 없는 상상력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꼼수이거나 기껏해야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일 뿐입니다.
 
야구에서 ‘불펜 포수’ 아시죠? 불펜 포수는 몸을 푸는 투수들의 공을 받아 주는 사람입니다. 게임에 나가지 않으니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띄지 않지요. 그러나 훌륭한 불펜 포수는 연습하는 투수의 공을 ‘볼 집’이라 불리는 곳으로 그냥 편하게 받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바닥의 아픔을 참아가며 팡팡 소리 내어 받아 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투수들이 ‘오늘 내 공이 위력적이구나’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줍니다. 투수의 자신감은 실제 경기에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이런 상상력이 없는 불펜 포수는 그냥 자기가 편안하게, 자기 손이 안 아프게 공을 받아줍니다. 그러면 투수에게 자신감이라는 부가가치를 줄 수가 없습니다. 크리에이티브한 기업이 되려면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대하는 사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인재를 채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인재는 대개 인문학이나 과학, 문화예술 같은 순수학문 분야에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의 기본적인 순수학문 소양에 실용성을 부여하면 곧게 뻗어나가는 나무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경영학이나 응용과학 전공자들만 가지고는 기업의 창의력과 상상력 계발에 한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기업들이 ‘순수학문 인재 채용 쿼터제’ 같은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소비자 얘기를 하셨는데, 기업이 가장 주목해야 할 소비자 트렌드는 무엇일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트렌드를 콕 집어 말씀드리기보다 트렌드의 전체적인 구조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지금 우리 시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게 주류 트렌드와 이와 상반되는 역트렌드가 함께 공존하는 구조로 가고 있습니다. 이는 소비자들이 하나의 유행을 좇아가기보다 자기 스타일과 개성을 훨씬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유재석 씨를 보세요. 그는 상당히 젠틀한 개그맨입니다. 유재석 스타일은 현재 개그계에서 하나의 주류 트렌드입니다. 그러나 그 정반대인 김구라 씨나 개그콘서트의 ‘왕비호(유형빈)’ 같은 사람들이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주류와 대치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더그라운드 흐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메인스트림 내에서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이 동시에 충분한 시장성을 가진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좀 더 근본적인 것(따라서 기업이 트렌드와 관련해 꼭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트렌드의 가장 주된 속성이 ‘무의식적’이란 점입니다. 트렌드는 나도 모르게 따라가는 것이라는 말이죠.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트렌드를 따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최근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이고, 그들이 어떤 뉴스를 더 많이 접하고 있으며, 어떤 스타일의 인물에 열광하는지만 살펴봐도 트렌드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트렌드 탐색은 먼 곳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약간의 팁을 더 드리면 조금 앞서간다 싶은 사람들이 자주 접하는 잡지나 신문, 인터넷 사이트 등을 살펴보는 것 정도랄까요? 트렌드를 신기루처럼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구태여 트렌드 관련 전문서적을 살펴보거나 특별한 장소를 찾아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은 대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많은 창작활동을 했고, 그만큼 많은 호평을 들었습니다. 소비자들이 강 작가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진은 대상의 리얼리티 50%에 사진을 찍는 사람의 리얼리티 50%를 더해 완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 사진 속에 녹아 있는 솔직하고 담담한 슬픔이나 유머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을 보면 대개 샤프하고 멋진 것보다 그런 인간미 넘치는 정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색은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 분의 솔직함과 낙향한 후 보이는 인간미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봅니다.
 
비주얼로만 따지면 저는 ‘강북 필’입니다. 아마 대한민국 광고 스튜디오 중 강북에 있는 것은 상상사진관이 유일한 것 같아요. 다른 스튜디오는 다들 청담동에 있죠. 청담동 비주얼이란 것은 화려하고, 세련되고, 좀 있어 보이는 그런 겁니다. 기업들도 청담동으로 대표되는 강남 필에 좀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기업들이 좀 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실질적으로 기업에 돈을 벌어다 주는 곳은 청담동이 아닙니다. 청담동은 말 그대로 ‘얼굴 마담’이죠. 제 경험상 성공하는 광고는 대중보다 1.2배 정도, 아니면 반 발자국 정도만 앞서 있습니다. 1.5배만 앞서가도 대중은 외면합니다. 청담동 비주얼은 대중의 실제 라이프스타일에 최소 두 걸음은 앞서 있습니다.”
 
앞서 지적한 광고업계의 문제점이 흥미롭습니다. 조금 더 해 줄 이야기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저 같은 사진작가에게는 5000원짜리 도시락 한 번 안 사 주면서, 빅모델들과는 식사라도 한 번 하고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싶어 난리인 CEO들께 좀 아쉬운 기분이 듭니다. 아니 식사는 고사하고 국내 CEO 중에 자기네 기업 이미지를 누가 만들어 주고 있는지, 해당 작가 이름 석 자라도 알고 계신 분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이것이 장인 정신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기업들이 광고비를 지급할 때는 어떤지 아십니까? 어지간한 모델 광고료 수억 원은 현찰로 바로 지급합니다. 반면에 작가들은 그것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을 3개월 어음으로 끊어 줍니다. 금액 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현금지급과 어음결제 차이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 건가요? 자기 기업의 얼굴을 만들어 주는 작가는 납품업자 취급하고, 이미지만 제공하는 모델은 상전 대하듯 하는 우리 광고 문화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몇몇 빅모델들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이 친구들은 1년 계약에 보통 5억 원 가량을 받습니다. 1년 계약이라고 해 봐야 연 4, 5회 촬영이 다죠. 그런데도 사전 미팅 한 번 갖지 않고 와서는 의상도 3, 4벌 이상 입지 않습니다. 의상 한 번 더 입히려면 사정사정을 해야 겨우 입어줘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죠.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을 이렇게 만든 우리 광고 문화를 누군가 하루빨리 지적해 주고, 따끔하게 야단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뜩이나 크리에이티브가 떨어지는 대한민국 광고의 미래는 어둡다 못해 깜깜할 뿐입니다.”
 
강영호 작가는 4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어쩌면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창의적이지 못하고, 그렇다고 프로페셔널하게 제 앞길을 찾아가지도 못하는 답답한 비즈니스 세상의 뺨을 한 대 갈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동안 ‘별거 아닌 걸로 우려먹은’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더 큰소리로 뺨을 갈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조만간 한국을 떠나게 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물론 “가능하면 떠나기 전에 크게 한번 광고판을 뒤집어 놓고, 해외에서는 클라이언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외국물’도 들여오겠다”는 ‘일갈’도 잊지 않았다.
 
편집자 주 KT 경영연구소 미래사회연구센터와 DBR은 이번 호부터 문화, 예술, 사회, 경영 등 각계의 트렌드 리더로부터 미래 트렌드 변화의 단초와 그들의 통찰력 있는 아이디어를 들어보는 코너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이 코너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키우고, 세상과 소비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