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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Interview: 김남호 나인후르츠 대표

의무방어적 ESG는 차별성 없어
브랜드 전략 관점에서 가치 확장해야

조윤경 | 337호 (2022년 0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지금까지 많은 기업에선 ESG를 사회적 책임(CSR)이나 재무 중심의 언어로만 설명해왔다. 그러나 기업이 ESG를 비즈니스 활동의 중심으로 내재화하려면 브랜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상이한 실무 부서들은 ESG 관련 기업의 지배구조 혁신과 CSR를 놓고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 이때 브랜드 언어는 각 부서의 사일로(silo) 현상을 줄이고 ESG를 고객 가치 창출 활동의 일부로 인식하게 할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이 인지하는 ESG는 도덕, 윤리적 의무, 혹은 리스크 매니징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ESG 2.0’ 시대에는 기업들이 ESG를 자사 비즈니스의 본류와 연결하고 조직적인 내재화를 이루는 단계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 경영의 ESG를 피할 수 없는 당면 과제로 인식한 결과다. 또한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의 실천 과정에서 부서 간 이해가 충돌하는 등의 사일로(silo) 현상을 맞닥뜨리고 있다. 하지만 조직적인 내재화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ESG는 성공할 수 없다. 또한 기업 고유의 비전과 기업이 추구하는 상위 가치에 맞는 ESG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인 김남호 나인후르츠 대표는 기업에서 ESG 전략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ESG와 브랜드 전략의 연결, 그리고 통합’의 사용을 꼽았다. 김 대표에 따르면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일 때는 기존의 전통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DBR가 김 대표를 만나 ESG와 브랜드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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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비즈니스와 ESG의 모습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기업에 ESG는 더 이상 도덕, 윤리적 의무, 혹은 리스크 매니징의 영역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본류와 가장 연결되는 개념이 될 것이다. 또 고객 가치를 위한 활동 안에 반드시 포함되도록 하는 노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윤리적이거나 의무적인 것이라는 생각에서 ESG 전략을 짜다 보니 기업마다 차별성도 없었다. 따라서 앞으로의 ESG는 기업이 가진 브랜드의 영역 안에서 고객 가치를 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ESG가 비즈니스 활동의 중심으로 들어오려면 조직적인 내재화가 중요하다. ESG는 진정성에 대한 도전을 지속적으로 받는 영역이기 때문에 뚜렷한 철학이 없다면 대응해 나가기 어렵다. ESG는 그간 사문화돼 왔던 기업의 이상적 가치, 목적, 비전을 현실 문제로 끌어오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하다고는 알고 있지만 현실에 치여 잠시 미뤄뒀던 기업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ESG 활동에 불을 댕길 수 있다.

브랜딩은 기업 ESG 관련 활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브랜드는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 층위 중 가장 상위에 있는 차원이다. 고객은 제품과 서비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또한 고객은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자 정체성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개인이자 특정 사회에 소속된 구성원이며 지구촌 시민으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다. 이 같은 고객 정체성을 기반으로 고객 가치를 확장시켜가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사회적, 환경적 행동 영역 안에서 기업의 고객 문제 해결 활동이 논의돼야 한다.

지금까지 기업의 ESG 활동은 기업 시민으로서 꼭 지켜야 하는 준법 활동과 같은 명분 아래, 주로 경영진의 의지에 의해 밀어붙여온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브랜딩 활동은 우리의 브랜드 목적과 핵심 가치가 진정성 있게 고객 가치로 전달되는 활동으로서 ESG 활동을 설명함으로써 기업 내부 안에 ESG를 필수적이고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자리 잡게 만들 수 있다. ESG를 브랜딩이라는 기업 활동의 전통적 언어와 문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구나’라는 크고 자연스러운 힘이 나올 것이다.

기업 내부의 전사적 역량을 한데 모을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인가?

그렇다. 산업군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실 ESG 활동은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직접적이고 실재하는(tangible) 가치로서는 효과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ESG 관련 기업의 지배구조 혁신과 사회적 책임 활동을 단기간 내에 고객 가치 창출 활동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영업부나 생산부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업무 영역과 관계없는 타 부서의 업무일 뿐이다. 따라서 기업 내부 구성원들이 ESG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위해 통합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통합적 미션과 전략을 세우는 브랜딩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재무, 판매, 마케팅, 생산 등 부서 간 발생할 수 있는 사일로 현상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다수 기업의 하위 부서에선 ‘회사의 성공’이라는 상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성과지표(KPI)가 목표로 설정이 돼 있다. 매출, 비용과 같은 재무 성과를 주된 지표로 활용한다. 이 때문에 경영진 차원에서 상위 목표를 ESG로 설정해도 하위 부서의 KPI와 충돌하는 문제가 생긴다. 영업 부서는 생산 단가나 생산 비용을 낮춰야 하는 미션을 안고 있는데 ESG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올라간다. 당장 자기 부서의 퍼포먼스를 증명하기가 어려워지는 것과 같은 혼란이 부서에 야기된다. 결국 ESG는 달성되지 않고 경영진으로부터의 압박만 남게 된다.

반면 브랜딩이라는 기업 활동의 전통적 언어는 기업의 통합적이며 장기적인 전략 개념 아래에서 비재무적인 ESG를 각 부서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한다.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일 땐 기존의 전통 개념으로 치환된 설명이 필요하듯이 ESG라는 새로운 기업의 당면 과제를 각 부서에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브랜드 언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기업은 어떤 언어로 ESG를 추진해왔다고 보는가?

기업에서 지금까지는 CSR 부서나 재무 중심의 전략기획 부서에서 주도적으로 ESG를 추진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ESG가 ‘기업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거나 ‘안 하면 피해를 입게 된다’라는 언어로 설명돼 왔다. CSR 부서 입장에서는 ESG를 하면 박수받지만 안 한다고 비난을 받지는 않는 영역이며 재무전략 부서 입장에선 ESG는 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잠재적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영역인 셈이다. 반면 브랜드 관리 부서 입장에서 ESG는 기업의 브랜드 구축 전략의 영역 안에 포함된다. 이처럼 ESG를 고객 가치 관점에서 전사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부서임에도 지금까지 브랜드 관리 부서는 ESG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기업에선 ESG를 비(比)재무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재무적 관점이란 큰 틀에서 ESG를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어떤 개념을 정의할 때 ‘무엇이 아닌’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반면에 브랜드 전략 차원에서 ESG를 설명하는 경우엔 기업이 사용해온 전통적인 경영 전략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ESG 활동을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다.

현재 국내 기업들의 ESG와 브랜드에 대한 활동을 평가한다면?

유튜브에 ESG 광고 홍보 사례를 검색해 보면 ‘ESG(이에스지), 우리가 애쓰지’식의 기업 광고가 나온다. ESG를 위해서 우리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말장난이라도 가져다 이용한 것이다. 이건 기업이 전달하고자 하는 고객 가치로서의 ESG 개념이 실종된 상태에서 ESG를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만 남은 결과에 불과하다. 광고는 고객 가치 전달 활동인데 ESG 활동이 우리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득과 전달이 없기에 고객 가치 전달에서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회계법을 지키는 회사가 ‘우리는 회계법 잘 지키고 있지’라는 가사의 노래를 만들어 틀어주는 광고 활동이나 마찬가지다. ESG를 고객에게 알리는 마케팅 활동은 반드시 기업의 ESG 활동이 고객 가치로 간접 경험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 ESG와 같은 진정성 있는 활동은 단순한 문구나 호감 있는 광고 모델만으로 쉽게 전달하기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가?

제품이나 서비스가 제공하는 고객 가치와 ESG 활동이 기업의 브랜딩 활동 안에서 잘 연결돼야 한다. 예를 들어 보겠다. ESG 활동을 잘 해내고 있는 해외 기업 중엔 유니레버가 있다. 유니레버엔 ‘립톤’이라는 티(tea)백 사업부가 있다. 대부분의 차 비즈니스는 차 농장의 생산 비용을 낮춰서 이윤을 많이 내는 단가 싸움의 시장이다. 고객 가치 측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낀 유니레버는 차 농장의 작업 환경과 작업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근로자 자녀의 학비를 무상 지원하는 등의 결정을 내렸다. 유니레버는 이 같은 발표와 동시에 ‘차 한 잔 마시는 행동으로 지구가 바뀐다’는 메시지를 고객들에게 전달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결국 이는 유니레버 차 사업부의 시장점유율과 매출 모두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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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유니레버의 ESG 활동이 자사 제품과 브랜드에 잘 녹아 들어 있다는 것이다. 차라는 제품이 주는 고객 가치를 생각해보자. 일상의 분주함에 잠시 제동을 걸고 마음의 평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인간의 영혼이나 정신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런 차 제품의 고객 가치를 강화하는 브랜드 요소 중엔 환경적으로 무해하다는 것, 그리고 평화적인 것이 있다. 유니레버는 이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으로 끌고 왔다. 단순히 ‘여러분, 우리 착하죠?’가 아니라 ‘여러분, 차는 이래야 합니다’라고 브랜드 언어로 이야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업이 단순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착한 일을 하는 건 ESG 브랜딩이 아니라 CSR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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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회사 탐스(TOMS) 역시 ‘신발 한 켤레를 구매하면 지구 반대편에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겠다’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패션 브랜드의 고유 가치는 ‘뷰티’라는 점이다. 패션을 소비하는 고객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고 알아볼 줄 아는 안목을 갖고 있으며 이 사실을 통해 스스로 만족하거나 남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즐긴다.

탐스는 이를 잘 파고들어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이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눠 주는’ ESG 활동을 펼쳤고, 결과적으로 자사의 핵심 가치를 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의 경험을 기능적인 문제해결 경험을 넘어서 고객이 추구하는 자아실현과 가치관의 충족 경험까지 확장해 연결해주는 틀이 브랜드의 역할이다. 유니레버의 친환경적인 생산 활동, 탐스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기업의 책임과 윤리적 활동의 언어가 아니라 ‘고객 가치’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부서가 브랜드 부서이다. ESG의 통합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의 핵심은 브랜드 전략에 있다.

ESG를 브랜드 전략으로 연결하는 일에 주의해야 하는 점이 있다면?

ESG는 책임과 윤리, 준법 영역인 면이 분명히 있다. 모든 ESG 활동이 브랜드 전략과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브랜드는 기업의 목적과 사명, 핵심 가치를 모두 담아내는 틀이며 ESG 활동을 가장 고객 가치 측면에서 핵심적이고 고객친화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된다. 기업의 ESG 활동이 브랜드 전략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이 브랜드의 기초를 명확하게 준비해야 한다. 브랜드 목적, 브랜드 관점, 브랜드 포지셔닝, 브랜드 전략, 브랜드 내러티브 등 브랜드의 전략적 프레임이 단단할 때, 비로소 ESG 활동은 브랜드와 연결된다.

과거 미국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퍼스널 컴퓨터를 온라인을 통해 99달러에 판매한 적이 있었다. 탐스처럼 ‘컴퓨터 한 대를 사면 아프리카에 한 대를 기부하겠다’는 슬로건을 들고나왔다. 그런데 이 캠페인은 탐스와는 달리 실패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브랜드적 해석을 해보면 컴퓨터의 고유 고객 가치는 인텔리전스(intelligence), 즉 똑똑함이다. 컴퓨터를 구매하는 욕망은 똑똑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브랜드 전략면에서 패션 제품보다는 1+1 기부 활동과 잘 맞물리지 않는다. 기업 고유의 ESG 활동에 성공하려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기업의 명확한 브랜드 전략이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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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활동에 나서는 기업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소비자들의 ESG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실제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제품 정말 좋은데 사람들이 몰라줘, 안 사줘’라는 건 모든 사업체가 다 가지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이 고민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은 사람들이 제품에 매혹될 수 있도록 고객 가치 기반의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이 ESG를 정말 잘하는데 사람들이 몰라주고 나아가 제품을 사주지 않는다면 이 기업의 ESG 활동이 고객 가치로 전환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우리 ESG 애쓰고 있어’라고 외치는 것은 브랜드 활동, 마케팅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

사실 기업에서 마케팅 광고를 기획할 때, 차별성과 창의성의 한계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해당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타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차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ESG는 쉽게 경쟁사가 따라 할 수 없는, 지속가능한 차별적 경쟁 요소다. 이러한 면에서 ESG 활동은 매우 좋은 차별적 재료다. 그러나 아직 많은 기업이 자신들의 ESG 활동을 차별적인 고객 가치 커뮤니케이션에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6, 7년 전 국내 굴지 대기업의 CSR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다. 새로 출시한 제품의 친환경적 생산 방식과 원료를 자랑하듯 설명했다. 들어보니 정말 독특하고 좋아 보였다. 마케팅의 재료로 활용하면 마법처럼 놀라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란 촉이 왔다. 그런데 해당 기업의 신제품 광고나 캠페인엔 이런 얘기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전형적으로 톱모델을 쓰는 평범한 광고였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제품의 친환경적 생산 방식이나 원료에 대한 내용을 브랜딩 담당 부서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부적 소통의 부재, 공동의 브랜딩 노력이 결여된 결과였다.

ESG 활동을 몰래 하는 선행처럼 자랑하지 않는 기업도 있다. 그린워싱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 아닐까.

고객 가치에 대한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은 광고 활동과 꼭 동일하진 않다. 광고는 생산자가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던지는 것이지만 커뮤니케이션은 소비자가 원하는 게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찾을 때 이 정보를 찾도록 해주는 것이다. 기업이 제공하는 고객 가치를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소통하는 것은 기업의 의무이고 책무다. ESG가 고객 가치와 연결된 활동이라면 고객에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정확히 설명하고 제안하는 것은 기업 활동의 기본이다. 광고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내듯 외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ESG 활동을 의도적으로 감추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생수 회사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물이란 건 이런 거고, ESG 활동이 물맛에 기여하고 있어’라는 사실을 고객과 소통하는 콘텐츠에 넣어야 하고, ‘당신들이 만드는 물맛은 무엇이야’라며 찾아오는 고객이 이를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CSR와 ESG를 구분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맞다. 고객 가치와의 연관성이 기준이다. 단순히 기업이 착하다는 것은 자랑할 필요가 없지만 특정 활동이 고객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랑해야 한다. 그게 고객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ESG 브랜딩 전환에 성공한 사례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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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인 인터콘티넨털호텔그룹(IHG)은 10년 전부터 시작한 ‘Green Engage’ 프로그램을 통해 친환경 호텔로서의 브랜드 전환에 성공했다. Green Engage 프로그램은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호텔이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 물, 탄소 발자국에 관한 데이터를 산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각 호텔에서 소비되는 에너지가 생태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친환경 솔루션을 통해 호텔이 달성하는 친환경 임팩트와 비용의 절감 효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개별 호텔 상황에 맞는 지침을 제공하고 성과를 관리해 호텔별 친환경 인증 수준을 단계적으로 나눠 관리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친환경 정보를 매우 충분히, 체계적으로 전달하며 지역 상권과 연계된 친환경적 활동도 장려하고 있다. 호텔 브랜드 마케팅 활동에 친환경 활동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전통적 호텔 기업이 이렇게 적극적이고 성공적으로 ESG 활동을 하게 된 배경에는 호텔 산업 자체의 특성, 즉 기후변화와 밀접한 여행 산업, 종업원 고용 비용 다음으로 높은 에너지 비용, 여행 빈도가 높은 고객층의 친환경 호텔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ESG 활동을 호텔의 브랜드 전략 차원에서 전사적으로 통합하는 데도 성공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업들이 고객 가치와 ESG를 연결하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대부분의 기업은 대기업 가릴 것 없이 브랜드의 목적, 미션이 전사적으로 명확하게 내재화돼 있지 않다. 물론 이를 설명하는 개괄적인 단어는 있다. 근데 누구도 이를 풍성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브랜드 미션과 비전은 원래 기업 홈페이지에나 갇혀 있는 것 아닌가? 브랜드 목적이 있어도 그것들이 작동하지 않았다. 브랜드 존재의 이유와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영화로도, 음악으로도 이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브랜드의 기초를 정립하고 내재화한다면 이를 ESG 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브랜딩은 마케팅이나 세일즈에 비해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ESG는 이보다도 더 장기적인 전략의 영역이다. 브랜드를 이용한다면 저 멀리 화성에 있는 이야기를, 그래도 매일 바라보고 언젠가는 가볼 수도 있는 달나라 정도로 끌어올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제품과 서비스의 기능적 혁신은 어려운 시대가 왔다고들 말한다. 기능이 디폴트라면 남은 마케팅 활동은 브랜드 차별화다.

그래서 대기업보다는 아예 브랜드에서 사업의 이유를 찾고 출발하는 스타트업들이 브랜드와 ESG를 잘 연결시키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인기 있는 샐러드 전문점 ‘스위트그린’은 ‘건강한 음식을 즐겁게 즐기는 커뮤니티를 만들자’는 비전 아래 창업 9년 만에 미국 전역에 90개 매장을 운영 중인 회사다. 브랜드 목적에 맞게 매장마다 똑같은 인테리어를 적용하는 대신 지역 특성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발굴한 뒤 그의 그림을 건다.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고 전시회를 열거나 뮤직 페스티벌을 기획하기도 한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든다는 브랜드 목적의 연장선인 셈이다. 그 덕분에 미국 IT 스타트업에선 스위트그린의 샐러드볼을 각자의 책상에 두는 게 유행일 정도로 힙한 브랜드가 됐다. 이처럼 브랜드가 제대로 정립돼 있으면 ESG 활동과도 통합적으로 연결되고, 브랜드 가치가 ESG 활동과 함께 확장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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