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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명품 쇼핑 온라인 플랫폼 ‘발란’

해외 부티크 직거래, 정품 인증 패키징…
명품 소비 심리 관통해 ‘명품급’ 성장

최한나 | 324호 (2021년 0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럭셔리 마켓이 큰 폭으로 성장한 데는 여행 등에 대한 수요가 명품 소비로 전환된 영향도 있지만 오프라인 못지않게 온라인 시장이 확대되면서 명품 소비층이 넓어지고 소비가 쉬워진 덕이 크다. 국내 명품 쇼핑 플랫폼 중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발란이 창업 6년 만에 연 매출 3000억 원을 바라보는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 협업 파트너가 갖고 있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주며 돈독한 신뢰를 구축하고 2) 소비자 경험을 심도 있게 파고들어 전략에 기민하게 반영했으며 3) 핵심 영역 외의 다른 분야는 잘하는 파트너에게 일임하고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영역과 잘해야 하는 영역을 선정해 집중한 점을 꼽을 수 있다.



#1. 2021년 2월21일 밤 10시20분경 명품 쇼핑 플랫폼 발란의 애플리케이션(앱)과 웹사이트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접속을 감당하지 못하고 모두 작동을 멈췄다. 일주일간 진행된 쇼핑 기획전 ‘발란 위크’의 첫날이었다. 이날 밤 10시 문을 연 기획전에는 구찌, 루이뷔통, 메종 마르지엘라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 254개의 4만여 개 제품이 최대 9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됐다. 특별가를 노린 소비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서비스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기획전은 같은 시간대 열린 손흥민 선수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보다 한때 더 높은 검색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국내 명품 소비자들의 온라인 쇼핑이 얼마나 활발한지를 보여주는 현상’으로 분석한다. 발란위크 기간 동안의 매출은 60억 원에 달했다.

#2. 2021년 3월20일 밤 8시. 쇼호스트 서경환 씨와 인플루언서 박정진 씨가 진행하는 네이버 쇼핑 라이브가 시작됐다. 톰브라운, 아미 등 4가지 명품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들이 소개됐다. 라이브를 보는 소비자들은 “어떤 소재인가요? 촉감을 설명해주세요”라든가 “입었을 때 몸에 감기는 느낌이 어떤지 궁금해요” 또는 “구입하면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요?” 등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며 적극적으로 쇼핑에 참여했다. 이날 쇼핑에 동시 접속한 소비자는 20만 명. 네이버 쇼핑 라이브 사상 최대다. 방송이 나간 한 시간 동안 기록된 매출은 4억 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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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소비 계층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일부 부유 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이제는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또는 얼마든지 시도해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상품이 됐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중장년층 이상뿐 아니라 20대 청년층 이하 역시 남녀 가릴 것 없이 활발하게 명품을 소비한다. 이런 현상을 주도하는 것이 명품의 이커머스 플랫폼, 즉 온라인 쇼핑이다. 백화점 명품관 앞에 줄 서며 기다리지 않아도 앱 또는 웹사이트를 통해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면서 적극적으로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다.

이런 트렌드는 전 세계적이다. 2020년 기준 글로벌 명품 시장 규모는 380조 원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이커머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3% 정도(50조 원)다. 아직 전체 거래 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최근 5년 새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2025년에는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가 100조 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명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한다는 것에 물리적•심리적으로 장벽이 높았지만 젊은 세대가 명품 시장의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온라인 거래가 빠르게 늘어나는 모양새다.

국내에도 럭셔리 이커머스를 전문으로 표방하며 인기를 끄는 플랫폼이 적지 않다.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도 발란은 해외 부티크와의 직거래를 통해 공급망의 상단에서 상품을 확보, 보유 상품 수를 늘리고 품절률을 낮추는 전략을 통해 명품 쇼핑의 온라인화 트렌드를 선봉에서 이끌어 가고 있다. 발란은 2017년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첫해 27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올 들어 월 16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올해 연간 매출은 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1000만 명을 넘었고,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200만 건을 기록하고 있다. DBR가 발란의 성장 과정과 전략적 행보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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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적인 명품 유통 플랫폼 사업 구조 비교

발란의 국내 경쟁사로는 대표적으로 머스트잇과 트렌비가 꼽힌다. 발란과 머스트잇, 트렌비는 럭셔리 유통 플랫폼을 표방하며 최근 몇 년 새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명품 소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물론 주요 투자사들로부터 거액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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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트잇: 2011년 2월 창업한 이래 10년 연속 연평균 80% 이상 성장률을 기록하며 이 분야 회사들 중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2019년 누적 거래액 3000억 원을 돌파했고 2021년 들어서는 300억 원에 육박하는 월 거래액을 기록하고 있다. 2020년 7월 150억 원의 시리즈A 투자를 받은 데 이어 2021년 5월에는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등에서 130억 원의 브리지 라운드 투자를 유치했다. 병행 수입 업체들이 셀러로 입점해 상품을 판매하는 오픈마켓 형태로 플랫폼을 운영한다. 병행 수입 업체들의 참여가 늘어날수록 플랫폼이 보유하는 상품 수가 늘고, 업체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셀러들에게 판매부터 배송, 교환•반품 등에 대한 서비스 일체를 위임하는 구조라 플랫폼이 전적으로 지원하는 고객 경험이 미흡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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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비: 2016년 8월 창업해 영국, 독일, 미국 등에 지사를 두고 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450만 명을 돌파했다. 2019년 3월과 9월, 2020년 7월 등에 투자를 유치, 누적 투자액이 400억 원에 달한다. ‘트렌봇’이라고 불리는 자체 AI 기술을 활용해 주요 명품 판매 사이트에 링크된 상품과 가격을 크롤링하고 매일 변하는 환율을 반영해 비교•분석한 후 전 세계에서 최저가를 찾아 명품 구매를 돕는 구조다. API가 연동된 형태가 아니므로 소비자가 상품을 주문했을 때 이미 품절된 상태를 맞는 경우가 잦았으나 직매입을 통한 재고 확보 규모를 키워 품절률을 낮춰가고 있다.

명품 소비, 온라인으로의 전환을 꾀하다

2015년 여름, 28세 청년이었던 최형록 대표는 전역을 앞둔 군인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공군 작전사령부에서 회계 장교로 군 생활을 보낸 그는 빌 게이츠가 쓴 『생각의 속도』를 읽으며 창업 의지를 다졌다. 전자상거래와 명품,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두 가지를 엮어 보자는 게 그의 창업 포인트였다.

6월 전역하자마자 그는 사람들을 모았다. 학교 친구들, 그들이 아는 또 누군가, 지인의 지인들을 모두 동원해 스터디 카페에서 창업설명회를 가졌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유난히 관심을 보인 5명이 남았다. 디자인, 개발, 운영, 마케팅 등 각자 역할을 갖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창업 콘셉트는 명확했다. ‘명품을 인터넷에서 살 수 있게 하자’였다. 인터넷에서 안 되는 게 없는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였지만 한국 시장에서 유독 명품만은 오프라인 위주의 거래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른바 ‘신상’이 풀리는 날이면 백화점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는 풍경이 당연했다. 샤넬 매장 갔다가 구찌 매장 가서 비교해보고 다시 샤넬 매장으로 돌아와 물건을 사는 등 한 매장에서 여러 브랜드를 한꺼번에 볼 수 없는 불편함도 여전했다. 최 대표는 명품을 인터넷에서, 여러 브랜드를 한곳에서 비교해가며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팔 수 있는 물건을 확보하는 게 먼저였다. 밑도 끝도 없이 글로벌 주요 명품 브랜드에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프라다, 루이뷔통, 펜디, 지방시 등 잘 알려진 명품 브랜드에 답변 없는, 또는 수신 확인조차 되지 않는 메일을 끈질기게 보내기를 1년여. 버버리에서 답장이 왔다. “명품 유통에 이커머스를 도입하고 싶은 한국 청년들이라고? 영국으로 한번 와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날로 바로 영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버버리 본사를 찾았다.

그들을 맞이한 사람은 버버리의 온라인 유통을 맡고 있던 이커머스 담당자였다. 버버리는 영국 브랜드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을 솔직하게 던져보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버버리 같은 영국 브랜드보다는 이탈리아 브랜드들이 인기가 많다. 이 브랜드들이 인터넷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이탈리아 명품을 받아 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칫 기분 나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버버리 담당자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공을 최 대표에게 넘겼다. “명품 도매상부터 만나야 할 것 같다. 부티크를 소개해 주겠다. 다만 그들은 나름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거래가 성사될지는 모르겠다.” 곧바로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버버리 담당자가 소개한 이는 이탈리아 브랜드들에서 명품을 받아 온•오프라인에 공급하는 도매상, 이른바 부티크의 오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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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다. 최 대표가 이탈리아에 가서 만난 사람은 명품 브랜드 하나를 담당하는 부티크 오너가 아니었다. 여러 부티크 오너의 모임을 총괄하는 부티크 조합장이었다. 조합에 속한 부티크 오너들과의 만남을 모두 노려볼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버버리 담당자의 소개로 만남이 성사되기는 했지만 이름도 없고, 간판도 없고, 사업의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동양의 청년들에게 우호적일 리 없었다. 조합장은 업무가 끝나고 퇴근 시간이 돼서야 부티크 사무실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최 대표를 마주했다.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카페에 있는 스탠딩 바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의 십여 분, 최 대표에게 허락된 시간이었다.

호흡을 골랐다. 노트북을 펴고 준비한 자료를 보여주며 최 대표는 구상한 사업을 설명했다. “그래요, 한번 검토해보겠습니다.” 조합장은 금세 자리를 떴다.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만난 이가 조합장이었던 덕분에 그를 발판 삼아 해당 조합에 속한 부티크 오너들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건강과 와인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노려 한국에서 준비해 간 인삼 성분 건강 기능 식품과 전통주 등을 들고 기다렸다가 퇴근하는 부티크 오너들을 잡고 말을 걸었다. 혹은 ‘지나가다가 들렸다’는 식으로 가벼운 만남을 시도했다. 한 명을 만나면 그로부터 또 다른 오너를 소개받아 사무실 근처를 서성거렸다. 사나흘 동안 한 곳만 집중적으로 방문해 일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계속 와인만 마시며 친분을 쌓기도 했다.

방문 횟수가 늘고 안면이 익으면서 부티크들은 그들이 관리하는 모노 혹은 멀티 브랜드 매장을 구경하게 해주기도 하고 재고를 쌓아두는 창고를 공개하기도 했다. 명품 유통의 핵심축으로 오랜 역사를 이어온 부티크답게 대형 축구장만 한 크기의 재고 창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엄청난 물량의 재고를 모두 수기(手記)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부티크 한 곳에서 관리하는 매장은 10여 개 안팎인데 매장마다 물건에 부착된 바코드를 찍어가며 재고를 관리하고 있었다. 하루 영업을 마감한 후에야 각 매장에서의 재고 물량들이 집계돼 정확한 전체 물량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나마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매장에서의 재고는 하루에 한 번 정도라도 업데이트할 수 있었지만 제3국으로 유통되는 물량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깜깜이’ 수준이었다.

명품에 관심이 많다,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열심히 잘해보겠다는 의욕만으로 부티크에서 물건을 떼 오는 일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보다 매혹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부티크가 처한 상황,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 그리고 자신이 구상하는 사업의 방향이 맥을 같이한다는 확신이 강해졌다. 최 대표는 수십 년간 오프라인 위주의 거래를 이어온 그들이 온라인 마켓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고, 갈수록 빨라지는 유행 주기 및 소비 패턴 변화와 이로 인한 수요 예측 및 재고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명품 거래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기 위해 스스로도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최 대표는 “아시아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과 테스트베드 및 IT 강국으로서 한국의 위치를 강조하는 한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주문 내역을 웹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시즌별 주문량 관리에 훨씬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재고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변화 앞에 뭔가 구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던 부티크 오너들은 끈질기게 찾아오는 최 대표 일행에게 “재고 관리 시스템을 오픈할 테니 웹 기반의 관리 서버를 만들어 달라”며 마음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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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명품 시장과 부티크

흔히 명품으로 불리는 럭셔리 패션 제품 유통시장은 유럽에 있는 부티크를 토대로 구성돼 있다. 전 세계 명품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380조 원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200조 원 이상에 해당되는 제품들이 부티크를 통해 유통된다. 부티크란 명품 유통망의 1차 벤더로 브랜드의 도매 독점권을 갖는다. 각 브랜드로부터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해 오프라인 매장에 깔기도 하고 제3국으로 넘기기도 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들이 운영하는 매장은 특정 브랜드의 단독 매장을 맡아 대리로 운영하는 모노 브랜드 매장과 여러 브랜드를 한곳에 모아 운영하는 멀티 브랜드 매장으로 나뉜다. 이들은 시즌별 패션쇼가 끝나자마자 해당 품목을 선주문하는 프리오더(pre-order) 방식을 통해 재고를 확보하고 구매 에이전트(buying agent)의 중개를 거쳐 각국의 도•소매업자들에게 물건을 넘긴다. 수요를 집계한 후 그 결과에 따라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고 판매가 시작되기 최소 6개월 전에 미리 구입해놨다가 각국 중개상에 넘기는 것이므로 실제 판매량이 예측과 크게 다르면 짊어져야 하는 재고 부담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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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해결에 적극 나서며 파트너 신뢰 확보

부티크들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듣기는 했지만 실은 아직 만들어놓지도 않은 플랫폼 2 을 내세워 맺어진 관계였으므로 마음이 급했다. 일단 그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바코드 시스템의 실체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물건에 리더기를 대고 바코드를 찍어 보니 화면에 뜨는 것은 상품 이름, 재고 관리 코드(SKU) 고유 번호, 가격, 제조와 관련된 몇 가지 정보가 전부였다. 온라인 거래에 필수인 이미지는 한 장도 없었다. 막막했다.

일단 마감 후 매일 업데이트되는 재고 물량을 받아보기로 했다. 엑셀로 관리되는 해당 파일은 매장별 재고 수량과 이를 합산한 총물량 정도가 전부였다. 물건의 기본 정보에 이미지를 붙이는 일이 급했으므로 구글에서 물건 이미지를 찾아 얹는 것부터 시작했다. 책마다 ISDN 코드가 있어서 동일한 책이라면 같은 코드로 통용되는 것처럼 명품 역시 아이템마다 고유의 코드가 있고 이를 검색하면 해당 대표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활용했다. 이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동일한 이미지를 가진 제품의 재고가 날짜별로 자동 합산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단계까지 가능해졌다.

이를 부티크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바코드 시스템과 합치는 것이 다음 과제였다. 당시 사용되던 바코드 시스템은 묵직한 이미지 정보를 담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부티크들이 주로 활용하는 바코드 시스템은 2, 3개의 회사에서 과점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최 대표는 바코드 회사를 방문해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바코드 시스템을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수준까지 업그레이드하기로 하는 데 합의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상품의 사진을 늘려가는 일에도 박차를 가했다. 상품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 없거나 온라인 판매용으로 적절한 이미지를 찾기 어려울 때는 직접 찍어 확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스튜디오와 포토그래퍼를 갖춘 부티크에서는 자체 촬영이 가능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일 경우 최 대표가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회사를 섭외해 연결해줬다. 이렇게 확보한 이미지들은 기존 바코드 시스템 안에 들어가 상품 정보와 연결됐고 온라인에 띄울 수 있는 상태로 정리됐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부티크별 재고 아이템에 이미지를 하나 더 얹어 정리했을 뿐, 수기로 관리하던 기존 시스템에서 크게 변화가 없는 상태였다. 재고 관리가 제대로 되려면 실시간으로 재고를 확인하고 가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했다. 부티크별로 중구난방으로 관리되던 재고 표기 및 관리 방식도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었다.

부티크들이 보내오는 파일을 책상에 펼쳐놓고 들여봤지만 아무리 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부티크마다 재고와 정보를 운영하는 방식이 너무나 다양했다. 이렇게 묶어보고 저렇게 엮어 봐도 체계적으로 통일된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최 대표는 “우리끼리 몇 날 며칠 고민해도 잘 모르겠더라.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자와 보조 인력들을 팀으로 묶어 부티크마다 들여보냈다. 해당 부티크에서 재고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몸소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부티크 직원들과 함께 작업을 하며 부티크마다 각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분류하고 기록하는지 체득했다. 몸으로 부딪혀가며 모아온 정보를 펼쳐놓고 공통으로 묶을 수 있는 정보를 먼저 골라냈다. 베스트셀러 제품인 캐리오버(carryover) 3 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들의 SKU 번호와 이미지, 기타 정보들을 먼저 골라내 큰 줄기로 묶었다. 파트너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고를 이 기준에 맞춰 재정렬했다. 수동으로 이 단계를 마치고 나면 이미지 클러스터링을 통해 비슷한 이미지들이 같은 그룹에 묶일 수 있도록 했다. 이어 해당 이미지에 맞는 정보들이 하단에 들어가며 아이템마다 고유 넘버와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따로 정리할 수밖에 없는 정보거나 브랜드별로 통일되지 않는 말단의 정보들은 서로 비교해가며 일일이 사람 손으로 업데이트할 수밖에 없었다.

브랜드 아이템별 정보를 통일한 다음은 실시간 주문에 연동해 재고 관리를 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단계였다. 각 매장에서 물건이 팔릴 때마다 차감되는 재고가 자동으로 집계돼 전 매장의 재고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 소비자가 주문을 넣으면 해당 아이템의 재고를 가진 부티크에서 주문을 받고 재고를 차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목표였다. 발란이 구축한 웹사이트와 부티크가 관리하는 바코드 시스템이 연결되고, 양쪽에서 사용하는 상품 코드가 일치하도록 연동해야 했다. 개발을 총괄하는 담당자 밑에 어느새 10여 명으로 늘어난 개발 인력이 모두 달라붙었다. 온라인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던 부티크들 역시 적극 협조했다. 최 대표는 “이 같은 시스템이 구축되면 실시간 재고 확인을 통해 트렌드 변화와 수요 변동을 즉시 확인하고 다음 시즌에 대한 프리오더 전략을 빠르게 세울 수 있다는 점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진행하는 작업에 적극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1년여 동안 작업을 함께 진행하면서 부티크 오너들은 발란에 큰 신뢰를 갖게 됐다. 온라인 시스템 개편을 시도하기 위해 바코드 회사들과 여러 차례 협업을 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고 답답하던 차에 한국에서 날아온 청년들이 보여주는 대책 없는 열정에 완고했던 오너들이 마음을 열었다. 부티크 오너들에게 디지털 마인드가 새롭게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변화였다. 개발 인력을 갖고 있지 않던 부티크들이 엔지니어를 채용하거나 이커머스 디렉터를 별도로 선임해 온라인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등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는 부티크가 늘었다. 최 대표는 “벽을 허물기까지는 오래 걸렸지만 일단 관계를 맺으면 파트너를 잘 변경하지 않는 것이 유럽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고객을 파고들어 쇼핑 경험 고도화

부티크들과 상품 정보 일원화를 위한 작업을 해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 즉 온라인 쇼핑몰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발란의 웹사이트가 정식으로 문을 연 것은 2017년 6월이다. 문을 열고 일주일쯤 후 첫 주문이 들어왔다. 팀원들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광고나 마케팅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100만 원, 200만 원짜리 물건이 팔려나가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생각보다 매출 성장이 더뎠다. 론칭 후 첫해 매출은 27억 원. 이듬해인 2018년 36억 원으로 늘긴 했지만 성장세는 미미했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화점에서 줄 길게 서가며 발품 팔지 않아도 되고, 상대적으로 가격 저렴하고, 생산지에서 직접 확보하니까 믿을 수 있고, 여러 브랜드를 비교해가며 쉽게 쇼핑할 수 있고… 이렇게 장점이 많은데 도대체 왜 안 사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최 대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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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미처 생각이 닿지 않은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2018년 여름, 고객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우선 온라인 설문을 통해 100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프라인으로는 대표가 CDO(Chief Design Officer)와 함께 고객을 일일이 찾아가 일대일로 47명을 만났다. 그들이 들려주는 쇼핑 경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명품을 언제, 어디서, 왜 구매하는가에서부터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다른 각종 아이템에 대한 쇼핑 경험까지, 그들이 겪고 느낀 온라인 쇼핑 과정에 대해 심도 있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상자도 다양화했다. 발란에서 물건을 많이 구매한 소비자와 발란이 아닌 다른 사이트에서 명품을 구입하는 사람, 주로 백화점을 이용해 명품을 구매해 VIP에 오른 사람, 또는 온라인에서는 아예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 사람까지 인터뷰 대상에 포함했다. 이들이 내놓은 답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고객의 구매 경험 고도화에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부티크와 협업을 통해 다양한 아이템을 확보하고 실시간 주문-재고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파트1’이라면 소비자에 초점을 두고 온라인에서의 명품 구입 경험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파트2’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최 대표는 말했다.

고객 설문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개선해야 할 사항들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먼저 보유하고 있는 상품의 수였다. 명품은 특성상 다른 아이템으로의 완전 대체가 쉽지 않다.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와 상품 수가 늘면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확실한 유인책이 된다. 2018년 기준 발란이 판매하던 상품은 4만 개 정도로, 확보한 브랜드는 400개가 채 안 됐다. 계약된 부티크에서 받아오는 물건이 전부였다. 최 대표는 일단 상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보자고 생각했다. 에어비앤비(Airbnb)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4 발란은 비슷한 사업 구조를 가진 글로벌 명품 쇼핑몰 파페치(Farfetch), 네타포르테(Net-a-porter) 등의 웹사이트에 등록된 상품 이미지와 정보를 크롤링해서 발란 사이트에 올렸다. 고객이 주문을 넣으면 발란이 대신 구입해 발송해주는 식으로 거래를 늘렸다. 선도 업체들이 보유한 아이템들을 대거 옮겨오면서 발란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당연히 관심을 갖는 고객 수도 크게 증가했다.

다른 회사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끌어온 것이었으므로 해당 업체들에서 항의를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해당 업체 담당자들은 발란을 통해 판매되는 물건이 적지 않다는 데이터를 확인하고 오히려 API 연동을 통해 자사 사이트의 물건이 발란에 바로 연결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아시아 시장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특히 온라인 시장의 성장 여지가 충분하지만 직접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발란을 활용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린 덕분이다.

개발이 완료된 허브를 들고 유럽을 찾아 아직 계약을 맺지 않은 부티크들을 만나고 협업을 늘려가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유럽에 발란 플랫폼이 알려지면서 주세페자노티, 톰브라운 등 일부 브랜드가 자발적으로 찾아와 자사 상품을 발란에 노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오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발란에서 판매하는 상품 수는 1년 만에 40만 개로 10배 이상 증가했고, 2020년에는 100만 개로 또다시 크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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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의 명품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신뢰도였다. 쉽게 말해 정품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백화점에서 물건을 직접 보고 개런티 카드를 확인해가며 명품을 구입하는 것에 익숙했다. 이미지만 보고 거금을 들여 온라인에서 명품을 구입하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 설문 조사를 통해 이를 파악한 발란은 ‘상품 포장(packaging) 영상’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른바 주문한 고객에게 ’내가 구입한 상품이 정품’이라는 것을 다각적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영상이다. 30초에서 1분 정도로 제작되는 이 영상에는 장갑을 낀 직원이 상품을 360도로 돌려가며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이어 구석구석 디테일을 보여주며 마지막에는 조심스럽게 고급 용지로 포장하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담긴다. 개런티 카드를 정면으로 들고 확인하게 해주는 장면이 포함되기도 한다. 매장에서 구입하는 것과 비슷한 만족도를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나온 시도였다. 패키징 영상이 도입되면서 고객 반응이 폭발적으로 밀려들어 왔다. “실제로 포장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심이 된다”부터 “이제 백화점에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까지. 고객들은 주문한 물건이 소중하게 담기는 모습을 보고 발란에 높은 신뢰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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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고객이 주문을 하면 부티크에서 보낸 상품을 발란에서 받아 다시 배송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발란 사무실에서 포장하면서 영상을 찍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매출이 늘고 주문이 많아지면서 발란 사무실에서 일일이 영상을 찍어 올리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2019년 이후에는 별도 요금을 지급하고 이탈리아 물류센터에서 한국으로 보내오기 전에 영상을 찍도록 하고 있다. 다만 패키징 영상을 일일이 찍을 경우 배송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으므로 현재는 ‘빠른 배송’과 ‘신뢰 확보’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둬야 할지 고민하는 상태다. 최 대표는 “초창기 고객에게는 발란에서 취급하는 물건이 정품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해서 신뢰를 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면 지금은 이미 많은 구매 이력이 쌓여 신뢰를 더해주고 있기 때문에 배송 속도를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며 “현재는 패키징 영상을 줄이고 빠르게 배송하는 일로 초점을 옮겨가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발란은 어떤 브랜드의 어떤 아이템을 주문하더라도 동일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직접 기획한 박스를 물류 파트너들에게 보내 패키징 아이덴티티를 통일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퍼스널 쇼퍼’ 제도를 도입한 것도 백화점에서 명품을 구입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다. 발란 웹사이트나 앱에서 ‘퍼스널 쇼퍼와 상담하기’를 클릭하면 명품 브랜드와 아이템에 전문적인 정보를 갖고 있는 쇼퍼들이 일대일로 상담을 해준다. 고민하는 아이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좀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다. 최 대표는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전환율은 1%에 불과한 데 비해 상담 서비스를 이용한 소비자들은 30%의 구매전환율을 보인다”며 “앞으로는 고객군에 따라 좀 더 차별화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DBR mini box III
명품을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발란이 자사 쇼핑몰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명품 구매력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25∼44세다. 전체 고객 중에 25∼34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30%, 35∼44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40%를 차지한다. 여성이 58%, 남성이 42%로, 여전히 여성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남성 소비자가 최근 몇 년 새 빠르게 늘고 있다. 구매 비중을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으로 비교해보면 압도적으로 모바일이 우위다. 모바일 점유율이 94%에 달하는 반면 PC 점유율은 6%에 그친다. 생수나 라면을 구입할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명품을 구경하며 돈을 쓴다는 얘기다. 특이한 것은 안드로이드보다 iOS 운영체제를 쓰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앱 접속자 중 77%가 iOS 체제를 이용해 들어왔다. 쉽게 말해 아이폰 유저의 명품 구매가 더 활발하다는 뜻이다. 최 대표는 “패션에 민감하고 명품 소비에 적극적인 소비자는 대체로 아이폰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51%)이 상위 15% 고객에게서 나오며 전체 고객 중 서울(강남, 서초, 송파) 및 분당에 거주하는 고객 비율이 6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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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정교하게, 더 빠르게

2018년 설문 조사를 통해 촉발된 고객 경험 고도화 작업은 현재 한층 업그레이드된 2단계가 진행되고 있다. 1차 조사를 벌인 지 2년이 지난 2010년, 발란은 고객 분석을 한 차례 더 시행했다. 매출 규모가 커지고 거래하는 고객이 늘면서 마케팅 전략을 좀 더 가다듬어야 한다는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2010년 하반기 진행한 고객 분석 결과에 따르면 상위 16% 고객에서 매출의 51%가 발생한다. 전체 고객의 평균 구매 단가를 계산하면 48만 원이지만 상위 16% 고객의 평균 구매단가는 78만 원에 이른다. 구매가 반복될수록 구매 주기가 짧아지는 것도 상위 고객군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한 번 구매한 고객이 다시 구매할 확률은 20% 정도지만 4∼5번 구매한 고객이 또다시 구매에 나설 확률은 60%, 10번 이상 구매한 고객의 재구매율은 90%에 육박한다. 일단 한번 구매한 고객이 또다시 구매에 나서고, 구매 경험이 누적될수록 지속적인 구매가 나타나며, 결국 이 고객들이 매출 규모를 키워주는 핵심 고객군이라는 의미다. 이 고객들에게 보다 특별한 경험을 하도록 구조화하는 것이 2단계의 핵심이다.

이들을 위한 마케팅으로 발란은 우선 온라인 마케팅 메시지를 다각화했다. 발란 앱에 처음 접속하는 고객에게 보이는 화면과 재구매를 시도하는 고객에게 보이는 화면은 완전히 다르다. 발란에 처음 들어온 고객에게는 명품 중에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가 다양하게 노출된다. 반면 과거 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의 경우 그가 어떤 브랜드의 어떤 아이템을 주로 검색했고, 어떤 경로를 따라 상품을 구경했으며, 어떤 상품을 장바구니에 넣어뒀는지 파악할 수 있으므로 이 데이터를 토대로 화면이 구성된다. 고객의 나이와 사는 곳, 구매 횟수, 구매 단가 등도 중요한 자료다. 확보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가 관심을 둔 브랜드와 아이템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고객마다 노출되는 기획전도 제각각이다. 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에게는 그가 관심을 보였던 브랜드의 신규 상품 출시 소식이나 할인 이벤트가 우선적으로 보인다.

VIP를 케어하는 방식이나 전담하는 인력 면에서도 새롭게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작업을 위해 발란은 2021년 봄, 샤넬코리아에서 10년간 근무하며 유통망 및 디지털 전환을 담당한 전문가를 영입했다. 퍼스널 쇼퍼 제도를 보완해 VIP 전담 핫라인을 신설하고 이들만을 위한 혜택을 늘리는 등 여러 면에서 VIP만을 위한 서비스를 체계화한다는 계획이다. 최 대표는 “럭셔리 마켓의 주요 소비층을 우리 고객군으로 확보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컨시어지 서비스를 갖춰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송 속도도 좀 더 빨라진다. 다만 그 방식은 온라인 플랫폼을 업으로 하는 다른 스타트업과는 좀 다르다. 쇼핑 플랫폼은 업의 특성상 물건이 들고 나면서 발생하는 재고가 상당하다.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한 창업자 중 다수가 사업 규모가 확장될수록 물류 창고를 짓거나 확보하는 데 힘쓰는 이유다. 자체 배송 인력을 확충해 배송 속도 높이기를 꾀하는 곳도 있다. 신속한 배송 및 빠른 교환•반품은 쇼핑몰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류센터를 소유한다는 발상 자체를 굉장히 싫어한다.” 최 대표의 말이다. 물류 표준화와 빠르고 정확한 배송, 배송 과정 추적 및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정보 전달 면에서 잘하는 회사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각 단계 서비스의 질과 가격을 비교해 최저 가격에 우수한 품질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만 만들어 놓으면 물류를 직접 처리하지 않아도 충분히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물류는 그 자체로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드는 서비스”라며 “물류에 들어갈 에너지를 절약해 더 많은 파트너를 찾아 상품을 늘리고 고객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데 활용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발란은 삼성SDS의 첼로스퀘어를 적극 활용한다. 첼로스퀘어는 중소기업들이 API 연동을 통해 해외 배송과 국내 배송의 각 단계에서 최적의 물류 파트너를 찾아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발란은 여러 서비스 회사를 상대로 입찰을 실시하고 그중 적합한 파트너를 선정하기만 한다.

그렇다고 빠른 배송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올 초부터는 서울 및 경기 지역 소비자들에게 당일 배송을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물건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서울 및 경기 지역 소비자에 대한 배송 건이면 부릉(VROONG) 등 배달 대행업체가 출동한다. 물류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오토바이 배달자가 물건을 싣고 곧장 출발하는 식이다. 올해 안으로는 부티크에서 이탈리아 물류센터로 갔다가 국내로 넘어와 물류센터에서 다시 국내 배송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단순화해 부티크에서 직배송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해외 상품을 3일 안에 받아보는 일이 가능해진다. 최 대표는 “이제까지 다양한 파트너사와의 협업 관계 구축, 브랜드 및 상품 다양화, 고객 신뢰도 확보에 신경썼다면 이제는 고객 그룹에 따라 정교하게 서비스를 세분해 쇼핑 경험 만족을 높여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고객이 다양한 브랜드를 한 곳에서 비교하고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 매장을 구축할 예정이다. 또한 빈티지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들에 플랫폼을 개방해 MZ세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명품의 중고 거래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을 갖고 있다.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특수 덕을 톡톡히 봤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해외에서 직접 명품을 사거나 면세점을 이용해 구입하는 수요가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사는 수요로 대체됐다. 여행에 나서지 못하고 여러 대외 활동이 막혀버린 데 따른 보복성 소비 영향도 있었다. 이런 호재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면 이커머스 시장이 단기적으로 타격을 받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최 대표는 이에 대해 “온라인에서 명품을 구매하는 편리함을 맛본 소비자가 쉽게 이탈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면세나 해외 아웃렛에서의 명품 소비 비중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발란에서 노리는 모노 및 멀티 브랜드 매장과 온라인에서의 소비에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발란은 면세에서 발생하는 수요를 끌어오기 위한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면세점과 손잡고 해외 출국 전 국내 소비자가 낸 주문을 부티크에서 받아 국내로 바로 배송하도록 하는 구조를 짜고 있는 것. 최 대표는 “명품을 쉽고 빠르게 구매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채널을 마련하고 관련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➊
빠르게, 가볍게, 다양하게, 젊게

발란 사례를 보면 요즘 소비에 가장 큰 화두인 MZ세대를 떠올리게 된다. 기업 운영층도, 핵심 고객층도 모두 젊은 MZ세대다. 그러다 보니 기업 경영 프로세스와 시스템, 고객향 서비스 철학에 MZ세대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MZ세대는 한마디로 간결함을 추구한다. 군더더기를 싫어한다. 쓸데없는 허세보다는 필요한 것에 진정성을 다한다. 디지털 세대인 만큼 자신을 포함한 주변 상황에 대한 인식이 빠르고 기민하게 대응한다. 느리고, 무겁고, 지겹고, 머물러 있는 것을 피한다. 발란의 성공을 압축하면 ‘빠르고, 가볍고, 다양하고, 젊다’고 할 수 있다. 느리고, 무겁고, 지겹고, 머물러 있는 느낌을 주는 명품 구매라는 카테고리에 정반대의 콘셉트를 입혔다. 그 결과 불과 몇 년 사이에 매출 100배 성장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었다.

그동안 명품 소비는 오프라인 중심으로 시니어들이 주 고객층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하지만 모바일의 급성장으로 MZ세대가 소비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패러다임 전환에 가속이 붙었다. 발란은 이 기회를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과학적 접근과 끈기를 바탕으로 고객 구매심리의 허들을 뛰어넘는 발상 전환을 시도했다. 과거 명품 구입은 남에게 보여주는 상징적 소비라는 면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보여주는 효용을 넘어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반영하고 사용을 통해 스스로의 만족을 얻고자 하는 면이 더 크다. 상징성과 실용성, 경험성이 결합하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네오실용주의적, 경험주의적 트렌드가 등장했고 같은 맥락에서 명품 소비에 대한 이해와 접근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발란 역시 이러한 시대적 변화 흐름을 빨리 읽고 MZ세대향 경영을 펼친 점이 돋보인다.

특히 발란의 철저한 소비자 조사에서 배울 점이 많다. 단순한 정량적 서베이에 그치지 않고 50명에 이르는 다양한 이력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끈질기게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그 결과를 반영한 점이 특징이다. 조사를 위한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고객의 진정한 미실현 니즈를 찾기 위한 실체적 조사를 한 것이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심층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시스템에 반영하는 노력이 큰 시사점을 준다. 많은 기업이 조사를 하지만 판에 박힌 또는 루틴에 젖은 형식적 조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인사이트는 제대로 된 소비자 조사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같은 조사와 데이터 기반의 경영은 발란의 전략적 행보에 탄탄한 뒷받침이 됐다. 상품 수 대폭 늘리기, 패키징 영상 도입, 퍼스널 쇼퍼와의 상담, 고객별 앱 화면 차별화, VIP를 위한 컨시어지 서비스 도입 등이 조사 및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접근에서 나온 산출물이다. 발란의 초창기 유럽 스토리에 등장하듯 명품 산업은 그동안 감으로, 주먹구구식으로, 관행에 따라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MZ세대가 소비 주역으로 등장한 만큼 명품 산업은 더 이상 비과학, 비첨단에 머무를 수 없다. 발란의 틀을 깨는 행보가 명품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프로세스와 시스템은 슬림하게 운영해 모두 소유하고 직접 하려 하지 않고 필요한 핵심 기능만 최소한으로 가져가는 효율적 접근이 눈에 띈다. 전문성이 부족한 서비스 영역은 이미 이 영역에서 잘하고 있는 기업을 파트너로 삼아 협업 체제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혼자 모든 영역을 커버하려면 민첩하게 대응할 수 없다. 컬래버레이션은 경영의 선택지가 아니라 필수 요소다.

발란 케이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빠르게, 가볍게, 다양하게, 젊게’라는 시대 변화의 키워드를 경영 시스템과 조직 구조에 녹여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 키워드는 모든 사업에 적용할 수 있다. 특히 전통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진 업종일수록 더욱 요구된다. 이 같은 변화의 4대 키워드를 민첩하게 적용하고 내부 시스템과 조직 구조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는 제2, 제3의 혁신 기업이 계속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marnia@dgu.edu
필자는 고려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단법인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저서로 『한국형 마케팅 불변의 법칙33』 『역발상 마케팅』 등이 있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과 시사점➋
해외 부티크 협업 ➡ 차별적 상품 제공 ➡ 충성 고객 유지

바야흐로 이커머스 천국이다. 코로나19 사태는 고객들의 소비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꿔놨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이커머스 시장이 온라인 구매의 가격 메리트와 극단적 편의성이 월등히 높은 소위 범용 상품 카테고리에 국한돼 있었다면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구매의 심리적 장벽이 높았던 장보기(그로서리)와 패션, 뷰티, 리빙 등의 고관여 카테고리의 온라인 시장이 빠르게 확대됐다. 특히 향후 2∼3년 동안은 고관여 제품 분야의 이커머스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시장은 바로 패션이다. 고관여 분야 이커머스 내 가장 큰 시장이자(2021년 기준 35조 원 규모), 가장 많이 분할될 수 있으며, 혁신적인 이머징 사업자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온라인에 익숙한 MZ세대를 메인 타깃으로 한 소위 논(non)-브랜드 패션(무신사, 브랜디, 지그재그 등)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오던 패션 이커머스가 서서히 럭셔리 패션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해외여행 불가, 억눌렸던 소비자들의 소비심리 반등, 여기에 럭셔리 중고 시장 활성화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럭셔리 패션 시장은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럭셔리 패션 이커머스 또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럭셔리 패션 이커머스 시장 내 100만 명 이상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1000억 원 이상의 거래액을 만들어내며 시장 내 주요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플랫폼으로는 발란, 트렌비,머스트잇 등이 있다. 유사한 듯 조금 다른 사업 모델로 각자 시장을 공략 중인 이 회사들 중 소위 ‘한국형 파페치(Farfetch)’를 꿈꾸는 발란의 성장을 주목할 만하다. 최근 발란이 보여주는 가파른 성장과 입지 확대의 배경에는 어떤 성공 요인이 있을까? 크게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온라인 쇼핑의 핵심을 탄탄하게 제공

우선 “다양한 구색을, 편리하게,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이커머스의 가장 기본적인 고객 가치를 ‘럭셔리 패션’ 안에서 구현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발란과 같은 럭셔리 패션 커머스의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 국내 고객의 구매 경험은 백화점이나 브랜드 매장에서의 제한적인 경험을 제외하면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값비싼 명품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고객들은 해외 직구 사이트, 개별 판매자의 구매 대행, 수많은 병행 수입 업체 등의 파편화된 채널을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돌아다녀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정품 사기, 오랜 배송 시간, 반품•교환 불가 등은 조금이라도 싸게 구매하기 위해 고객이 응당 감수해야 하는 불가피한 리스크로 인식됐다. 수백만 원짜리 고가품을 구매하면서도 단돈 만 원짜리 생필품의 온라인 구매만도 못했던 국내 고객의 럭셔리 패션 쇼핑 경험을 단숨에 개선한 것이야말로 발란과 같은 럭셔리 커머스 플랫폼이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발란은 국내외 다양한 부티크 및 병행 수입 업체를 플랫폼으로 연계하고 일부 인기 상품은 직매입해서 단일 플랫폼 내 다양한 옵션을 제공할 뿐 아니라 글로벌 및 국내 주요 물류•배송 서비스 사업자와의 제휴를 통해 직매입 상품은 물론 해외 부티크 상품까지도 획기적으로 빠른 시간에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수많은 재고 관리 코드(SKU)의 정보를 통합해 표준화된 상품 DB를 구축하고 여기에 공급처의 재고 정보까지 연동하고자 하는 부분이 다른 럭셔리 패션 커머스 플랫폼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개별 상품 단위로 상이한 속성 정보를 통합 및 표준화해서 정확한 검색, 표준화된 상품 정보, 이를 통한 상품 간 비교, 정확한 재고 정보 제공이라는 온라인 쇼핑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기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해 서비스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플랫폼 주도적인 고객 경험 디자인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이커머스 플랫폼(중계 모델)이 존재하지만 사실 럭셔리 영역에서 플랫폼 모델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온라인 쇼핑의 ‘기본기’가 채워진다고 하더라도 관여도가 매우 높은 카테고리의 경우 고객은 필연적으로 단순히 불편이 없는 정도(hassle-free) 이상의 고객 경험을 기대하는데 단순 중계 모델만으로는 이러한 고객 니즈를 온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럭셔리 패션을 예로 들면 상품을 브라우징하고 검색하는 과정에서 구매욕을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또는 커뮤니티, 구매한 상품이 정품이라는 확실한 신뢰도, 구매하는 순간은 물론 물건을 실제 손에 쥐는 순간에 느낄 수 있는 명품 구매 특유의 즐거움, 고가품인 만큼 교환•반품 등 사후 서비스에 대한 기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이유로 파페치는 부티크 플랫폼인데도 부티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플랫폼 주도적인 차별적 서비스와 고객 경험 강화를 지향하고 있다. 중고 패션 시장에서도 럭셔리 패션으로 갈수록 단순 중계만 하는 C2C 플랫폼이 아닌 더리얼리얼(The Real Real) 또는 베스티에르 컬렉티브(Vestiaire Collective)와 같은 사업자 관리형 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 다른 럭셔리 패션 플랫폼들이 입점 부티크(셀러)를 강조한 오픈마켓형 모델이나 수많은 럭셔리 판매 사이트의 가격 정보를 한데 모아 보여주는 서비스로 차별화하는 데 반해 TV 광고 등을 통해 플랫폼 자체의 차별적 브랜드 포지셔닝을 하고, CS나 배송 등 고객과의 주요 접점 운영에 플랫폼의 적극적 개입을 마다하지 않는 발란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충성 고객층 넓히는 차별적 구색(assortment)

국내 소규모 병행 수입 업체들을 주요 셀러로 보유하고 있는 여타 플랫폼과 달리 해외 현지 부티크에 대한 직접 영업을 통해 셀러를 소싱하는 발란은 구색 면에서 차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소규모 병행 수입 업체들의 경우 재고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장성이 담보된 안전한 스테디셀러, 즉 캐리오버를 중점적으로 매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이 주요 소싱처가 되는 플랫폼의 경우 가격 경쟁력은 확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구색의 차별화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반면 유럽 현지 고객을 대상으로 한국과는 색다른 구색을 운영하는 해외 부티크를 확보한 발란은 다른 플랫폼에서는 보기 힘든 차별적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구색의 차별화는 특히 충성 고객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핵심 요인이다. 신규 고객 대비 유입 비용이 적고 객단가가 일회성 고객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커머스에서는 총 트래픽 규모 못지않게 충성 고객 확보가 중요하다. 럭셔리 패션 플랫폼에서 충성 고객을 만들어내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구색이다. 아무리 플랫폼의 기능과 서비스가 좋더라도 사고 싶은 물건이 없으면 고객이 플랫폼을 자주 방문할 이유가 없다. 한 해에도 수차례, 수백만 원 이상의 명품을 구매하는 충성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인기가 많은 클래식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지에 가지 않고는 만나볼 수 없었던 소위 희귀템들을 지속적으로 노출하고 제공하는 것이 필수다. 재구매율 40%+α라는 발란의 실적에는 이 같은 차별적 구색 또한 분명한 몫을 하고 있으리라 본다.

향후 과제

론칭한 지 불과 수년 만에 놀랄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발란에 잠재력이 크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방대한 럭셔리 패션의 SKU를 통합하고 표준화해 상품 DB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분명 의미가 있으나 수많은 시간과 인력 투입이 불가피한 만큼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다. DB 구축 후 이를 개인화 추천, 유사 상품 추천 등의 유의미한 기능으로 전환하거나 나아가 머천다이징, 프라이싱 등 운영의 고도화 용도로 활용하는 것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차별적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충성 고객층을 확대하기 위한 플랫폼 주도적인 노력 역시 다양한 범주에서 더욱 강화하고 고도화해야 할 것이다. 고객이 빈번하게 플랫폼을 방문하도록 하기 위한 차별적인 콘텐츠 개발, 로열티 확대를 위한 정교한 고객 관리 체계 구축, 차별적 구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소싱 다양화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과제다.

럭셔리 패션 이커머스 시장 내 경쟁사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특히 사업 초기 각각 달랐던 이들의 사업 모델이 조만간 중복 또는 혼합되며 서로 간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갈수록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발란이 보여줄 행보가 기대된다.


송지연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파트너 song.jiyeon@bcg.com
필자는 전략컨설팅사 BCG(Boston Consulting Group) 서울사무소의 파트너다. 서울사무소 외 도쿄, 뉴욕, 상하이 등에서 근무하며 15년 이상 컨설팅 경력을 쌓았다. 현재 BCG에서 유통/소비재 분과의 핵심 멤버로 특히 이커머스, 디지털 플랫폼, 배송/물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영역 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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