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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강상무를 구하라

[좌충우돌 강상무를 구하라] 회의 위한 회의 없애자고 했는데… “어차피 필요한데 정기회의 부활하죠”

장윤정,김연희,강효석 | 222호 (2017년 4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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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근데요. 본부장님. 매주 화요일 회의는 없애기로 한 것 아니었나요? 그 말씀 하신 게 바로
2주 전인데 지난주에도 불쑥 회의를 잡으시더니 이번 주도…. 에이, 저희 그냥 정기회의 살리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계속할 거면….”

능글맞게 웃으면서 정곡을 찌르는 이 대리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으니, 정기 회의를 없앤 것도, 그러면서 은근슬쩍 회의를 계속했던 것도 바로 나였다.



오늘은 화요일. 매주 있던 팀 정기 회의를 없앤 뒤에 맞이하는 두 번째 화요일이다.

이 회사로 옮겨오면서, 미래생명사업본부의 본부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결심한 것은 회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쓸모없고 불필요한 것이 회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 개인이 회사의 전체적인 전망과 목표 아래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그 수단으로서의 회의가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게다가 회의를 준비하는 데 반나절, 회의가 끝나면 그것을 정리하는 데 또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었다. 뭔가 뾰족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닌 회의를 오래 하는 것이야말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나는 이직 초기에는 회의 자체를 아예 없애버렸다. 필요한 내용은 팀 게시판을 이용해 공유를 하고 의견을 달게 했으며 토론이 필요한 내용은 점심식사 후에 티타임을 이용해 잠깐 대화하는 것으로 바꿨다.

어찌 보면 나름 파격적이었던 회의 문화에 대해 박 수석이나 최 책임은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다른 직원들로부터는 젊은 리더라는 말까지 들으니 은근히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식 회의라고 이름 붙이지 않은 티타임 회의는 업무 이야기와 사적인 이야기가 뒤섞여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벼운 회의는 그 내용이나 결정의 권위마저도 가볍게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연구팀, 기획팀, 디자인팀으로 구성된 미래생명사업본부의 본부장인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회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다시 시작된 정기회의.

그래도 원칙은 있었다. 한 주간의 업무를 시작하면서 신경 쓸 일이 많은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간결하게, 집중력 있게, 필요한 말만 하기 위해서 회의는 최대 한 시간을 넘지 말 것. 그러기 위해서 매주 화요일 오후 다섯 시, 퇴근을 앞두고 회의를 진행해왔다.

상명하달이 아닌 아래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구성원 모두가 함께 소통하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장소를 바꿔가며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었는데 이 또한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안건 정리와 자료 숙지 등 짧은 회의를 위한 사전 준비는 월요일 야근과 화요일 업무 시간 할애라는 당연한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말하는 사람만 말하다가 퇴근 시간과 함께 막을 내리는 뻔한 결말만 가져왔을 뿐이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의무적인 정기 회의를 없애고 필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무제한 브레인스토밍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 바로 2주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갑작스럽게 중동 수출과 관련한 디자인, 기능 변경 회의를 진행한 데 이어 이번 주에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야 할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생각났던 것이다.

‘하∼ 정말 중요한 내용이라 회의를 안 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자꾸만 회의를 없앴다가 또 하자고 하면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처럼 보이려나?’ 고민 끝에 어제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공지했는데 이 대리의 저런 반응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어제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자료 조사를 좀 해봤는데요. VR을 이용한 휴대용 헬스케어 기기를 개발하자고 하셨잖아요?”

“주말에 가족들이랑 VR 체험관에 갔는데 너무 재밌더라고. 그래서 VR을 접목시키면 이용자층을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니까.”

그런데 다른 팀원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그런데 저희 주력 제품은 진단, 측정 분야인데 활용 범위가 좀 애매할 것 같아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손 사원이 이야기를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는 구성원들.

“의료 분야에서 VR을 활용하는 것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데요. 주로 정신과나 심리치료에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VR은 헤드셋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휴대가 번거롭고요.”

“본부장님, VR 체험하실 때 어지럽지 않으셨어요? 어휴∼ 저는 오래 못하겠던데요?”

“새롭기는 하지만 지금 개발을 시작하는 건 이미 늦은 것 아닐까요?”



야심 차게 내 놓은 안건에 대해서 구성원 모두가 부정적인 의견만을 쏟아내자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발끈) 아니, 무조건 안 된다, 어렵다, 늦었다, 이런 이야기만 하면 어떡하나? 발전적인 이야기들을 좀 하라고! 엉? 되는 이야기를 하라고! 어디, 다른 의견 없나?”

그러자 전 과장이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저기, 본부장님. 그럼 그냥 지시를 내리시죠.

의견을 수렴하는 게 아니라 본부장님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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