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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인간관계에 대하여

이치억 | 217호 (2017년 1월 Issue 2)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의 신체적 능력은 어느 하나 동물보다 뛰어난 것이 없고 인간이 자랑하는 뛰어난 지능조차도 혼자서는 무용(無用)하다. 인간이 홀몸으로 자연 상태에 내던져진다면 혹독한 자연환경 앞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흔히 인류가 생존에 성공하고 위대한 문명을 일구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의사소통 능력, 협업 능력, 결집력 등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은 단지 생존과 문명 발전의 측면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정(情)을 나눈다’는 말을 하듯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는 중요하다. 가족이나 말을 터놓을 친구가 없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정(情)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따뜻해지고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을 얻는다. 인간관계는 바로 행복의 원천이다.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해진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인간관계 중에는 성가시고 괴로운 관계도 있게 마련이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손해가 되는 인간관계도 있을 것이며 나에게 괴롭거나 위협이 되는 관계도 있을 것이다. 가만히 따져보면 도움이 되고 편안한 관계보다는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관계가 더 많은 것 같다. 배우자나 직장상사를 욕하고 비난하는 말들은 넘쳐나는 반면 그들에게 감사나 존경을 표현하는 말은 들어보기 힘든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 듯하다.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무너지는 원인 중 하나는 ‘이기심’이 아닐까 싶다. 서로 상대에게 바라기만 하는 것, 나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해 먹으려는 마음, 나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면 가까이하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멀리하려는 이기적 계산 같은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어차피 인간관계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어지는, 그런 것 아니냐?”는 태도, 즉 나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면서도 그 잘못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이렇게 왜곡된 마음으로 얽힌 관계 속에서 참된 인간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불신은 더 깊어지고 점점 이익이 되는 관계만 추구하다가 피폐한 인간관계에서 도피해서 고독을 추구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물질적·경제적 도움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도움은 그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나의 인격적 성장이다. 공자가 “세 명이 있으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선한 사람으로부터는 그를 본받으면 될 것이고, 불선한 자를 보고는 나의 잘못을 돌이켜봐서 고치면 된다”고 한 것은 이런 뜻이다.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좋은 벗이겠지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은 나를 단련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퇴계는 “가정과 고을은 인륜을 닦는 장(場)”이라고 했고, 맹자는 “나라 안에 법도 있는 집안과 쓴소리하며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나라 밖에 적국(敵國)과 외환(外患)이 없는 임금의 나라는 멸망하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적당한 위협과 우환조차도 나를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존재, 그래서 사회적 동물이다.


이치억 성균관대 초빙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교학상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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