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도나 켈리 뱁슨대 교수
“사내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함으로써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내 기업가정신 분야 석학인 도나 켈리(Donna Kelley) 미국 뱁슨대(Babson College) 교수는 “무조건 매출액을 늘려 기업 규모를 키운다거나 혁신을 추구한다고 해서 사내 기업가정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사업 창출과 혁신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모두 결합돼 있는 게 사내 기업가정신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켈리 교수는 기업가정신 및 사내 기업가정신 분야 석학이다. 기업가정신 관련 국제 비교 연구인 GEM(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 프로젝트의 총괄 관리기구인 GERA(Global Entrepreneurship Research Association)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사내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우선 기업가정신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기업가정신의 기본은 신사업 창출(creating new business)이다. 새로운 매출원(new source of revenue) 발굴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혁신 요소가 결합됐을 때를 사내 기업가정신이라고 한다.
생수 사업을 하는 중견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엔 미국에서만 생수를 팔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다른 나라에서도 팔게 됐다. 당연히 매출액이 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도 미국 시장에서 팔던 제품과 똑같은 생수를 판매한다면 단순히 기존 사업을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활동은 기업가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생수 회사가 생수를 담는 용기, 용기 뚜껑, 라벨, 이 세 가지를 따로따로 만들지 않고 한 번에 생산해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그로 인해 용기 조달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가정해 보자. 혁신을 통해 회사의 이익은 늘었을지 모르지만 매출액이 급격하게 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가정신의 주 목표는 이익을 확대하는 게 아니라 성장을 꾀하는 것이다. 비용 절감이 기업가정신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반면, 일반 생수가 아니라 비타민이 첨가된 물을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이어 비타민이 첨가된 주스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해 매출액을 늘려간다고 가정하자. 이건 과거의 생수 업체에서 건강음료 회사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런 게 바로 사내 기업가정신이다. 즉, 기존 비즈니스(생수)에 혁신(비타민)을 덧입혀 전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건강음료)를 만들어내는 게 사내 기업가정신의 핵심이다.
사내 기업가정신의 유형을 나눠 본다면.
크게 기존 역량을 활용해 신사업을 창출하는 유형과 기존 사업 대신 새로운 비즈니스로 재창안(reinvention)하는 유형 두 개로 나눠볼 수 있다. 전자는 기회주도형(opportunity-driven), 후자는 위기주도형(crisis-driven) 사내 기업가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역량을 활용해 신사업 창출에 성공한 대표적 기업으로 아이로봇을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원래 한 대에 수백만 달러는 족히 달하는 고가의 군용 로봇 전문 제작 업체였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겐 ‘룸바’라는 이름의 로봇 청소기를 만드는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아이로봇은 군용 로봇 제작을 통해 얻은 탁월한 전문성(기존 역량)을 바탕으로 일반 민간인 대상의 제품을 만들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유통채널(예: 월마트)을 구축해야 했고 소비자 대상 광고를 진행하는 등 과거와는 전혀 다른 역량 개발이 필요했지만 기본적으로 군용 로봇 제작에서 축적했던 기술적 전문성(기존 역량)에 기반해 신사업을 추진했다.
반면 몬산토는 화학 업체에서 생명공학 업체로 탈바꿈했다. 주력 시장이 저성장 국면에 처하고 수익성이 점점 압박을 받는 등 위기가 감지되자 아예 생명공학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몬산토처럼 비즈니스를 재창안한 경우에는 대개 기존 역량을 파괴해야만 성공적인 사업 재편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사업 재창안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사업을 버리는 과정에서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될 조직 내부 구성원은 물론 주가 하락을 걱정하는 주주, 공급선/유통망 변경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는 공급자/유통업체 등 다양한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반대 역시 잠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사내 기업가정신의 발현을 위해 요구되는 사항이 달라질 것 같다.
기업의 성장 사이클은 크게 창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초창기는 그 특성상 기업가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모든 것을 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업자를 비롯해 대부분 조직원들이 기업가적으로 행동한다.
문제는 성장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시작된다.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성이 중요해지고 그 과정에서 기업가적 정신이 사라지기 쉽게 된다. 따라서 성장기에는 신사업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확립하거나 참신한 아이디어 발굴을 위한 사내 경진대회를 개최하는 등 기업가적 정신이 조직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경영 관행 확립에 주력해야 한다. 즉, 조직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효율성이 창의성을 뭉개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숙기를 맞은 기업이 성장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려면 기존 역량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신사업 창출에 힘써야 한다. 이때 리더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특히 중요하다. 조직원들의 기업가적 역량이 기업의 전략적 목표와 일치해나갈 수 있도록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마구잡이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아니라 초점을 분명히 해 새로운 사업을 추구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신사업에 대한 구체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실제 추진하는 이들이 중간관리자라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핵심 사업을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중간관리자들이다. 이들이 기민하게 외부 환경 변화에 반응해 새로운 사업을 일궈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enabling)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 쇠퇴기에 접어든 기업이 사내 기업가정신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선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쇠퇴기는 저성장 국면이라는 위기 상황을 맞아 조직 재창안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변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기존 핵심 사업을 버리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조직 내외부의 저항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사업 재창안에 실패해 결국 파산에 이른 코닥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