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팩 말호트라, 길리안 쿠, J. 케이스 머니
오직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후 그 결과를 경험하고서야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하고 후회한 적이 있는가? 이런 의사결정은 우리가 ‘맹목적 경쟁심(competitive arousal)’이라고 부르는 격앙된 감정상태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런 일은 경영활동에서 흔히 일어나며 대부분 뼈아픈 실수로 귀결된다.
맹목적 경쟁심에 의한 대표적인 실패 사례는 보스턴 사이언티픽(Boston Scientific)이 의료기기 제작업체인 가이던트(Guidant)를 인수한 거래에서 찾을 수 있다. 2004년 12월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은 가이던트를 254억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가이던트는 발표 후 얼마 안 있어 전체 생산량의 56%인 17만 개의 심장박동보조기를 리콜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를 안 존슨앤존슨은 당연히 거래중단 의사를 나타냈고, 가이던트는 존슨앤존슨을 상대로 계약이행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존슨앤존슨은 거래가를 215억 달러로 낮춰 제안했다.
그런데 갑자기 존슨앤존슨의 오랜 라이벌인 보스턴 사이언티픽이 가이던트를 247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가이던트의 재정이나 업계에서의 평판이 나빠진 상황이었지만, 보스턴 사이언티픽사의 개입으로 양사간의 인수전쟁이 시작됐다. 이 인수전은 2006년 1월 보스턴 사이언티픽이 가이던트를 272억 달러에 인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는데 이는 존슨앤존슨이 최초에 제시한 가격보다 18억 달러나 많은 액수였다.
이것은 성공적인 거래였을까? 2006년 6월 보스턴 사이언티픽은 가이던트 심장박동보조기 2만3000개를 다시 리콜해야 했고 이미 이식 수술을 한 환자 2만7000명에게 의사와 상담할 것을 권고해야 했다. 인수 초기에 25달러이던 보스턴 사이언티픽 주가는 17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포천지는 가이던트 인수를 AOL의 타임워너 인수 다음가는 최악의 거래라고 평했다.
가이던트의 사례는 맹목적 경쟁심에 휩싸인 관리자들이 거래가치의 극대화라는 최초의 목표를 망각하고 무조건 ‘경쟁자를 물리치자’는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포천지는 가이던트 인수 거래에 대해 심층 취재하면서 맹목적 경쟁심이 인수전 촉발에 중요한 구실을 했음을 밝혀냈다. 포천은 “가이던트 인수전은 결단력 결여의 도가 지나쳐 기업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인 실패 사례다”라며 “이는 현명한 경영자들도 맹목적으로 승리를 추구하면 대상 거래의 실제 가치를 잊게 된다는 확실한 교훈을 보여준다”고 표현했다.
맹목적 경쟁심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경영상의 실수를 부추겼다는 강력한 증거는 많다. 경매, 협상, 법정 투쟁, 인수 및 합병, 승진 시험, 인재 유치 등의 다양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자들은 경쟁자를 이기겠다는 의식에 쉽게 사로잡힌다. 사람들은 이기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라이벌을 이기고 싶어한다. 실제로 라이벌을 이기면 전략적인 혜택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만약 계약을 따내는 것이 경쟁자에게 장기간 재기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힌다면, 가격을 적정 수준보다 많이 지불하고서라도 이겨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수용 가능한 손해의 수준과 승리가 가져다 줄 혜택에 대한 명확하고 투명한 사전 분석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런 분석이 감정적으로 행해지면 맹목적 경쟁심에 의사결정이 지배되고 그 결과는 보통 ‘상처뿐인 영광’으로 나타난다.
이 논문은 △맹목적 경쟁심의 원인과 △전략적인 사고를 방해하고 거래의 가치를 파괴하는 상황 및 △경영자들이 어떻게 하면 이런 치명적인 영향을 회피하거나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경영 활동에서 맹목적 경쟁심을 일으키는 세 가지 주요 원인은 라이벌 의식, 시간의 압박, 우리가 ‘스포트라이트’라고 부르는 주위사람들의 관심 등이다. 이런 요인들은 개별적으로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심각한 손상을 끼치며, 때때로 복합적으로 작용해 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라이벌 의식
가이던트 인수전에서 볼 수 있듯이 맹목적 경쟁심은 라이벌 의식이 강할 때 가장 흔하게, 그리고 가장 위험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연구에서 일 대 일 라이벌 상황이 다른 어떤 대립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우리는 이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실험은 유명 미술가가 유리섬유로 디자인한 실물 크기의 암소 모형을 경매하기로 했다. 우리는 피실험자들에게는 경매 목적이 자선경매임을 알려주고, 1999년 11월에 140개의 암소 모형을 시카고 경매장과 인터넷에서 경매에 붙였다. 이 경매를 통해 모인 기금은 당초 예상보다 7배나 많은 350만 달러였다. 다른 도시에서도 같은 행사가 진행되었고 암소 모형뿐 아니라 돼지, 사슴, 물고기, 그리고 곰 모형까지 경매에 부쳐졌다. 우리는 이런 경매과정을 통해 수집한 거래 데이터와 경매 전후에 진행된 설문조사를 통해 ‘경매에서 경쟁자 수가 적을 때 참여자는 사전에 자신이 정한 한계보다 금액을 더 많이 부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참가자가 적은 경우(특히 단 두 명만 있는 경우)에 가장 강력한 라이벌 의식이 발생하고 참가자들이 경쟁적으로 높은 가격을 부르며, 사전에 정한 한계를 넘어서는 경향이 많았다. 동일한 현상이 실험실에서도 확인됐다. 피실험자들은 단 한 명의 경쟁자를 상대할 때 사전에 정한 금액을 초과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초과 경매를 부추기는 심리적인 자극(흥분과 열망)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