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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스런 부하들’만 계속 쓰면…

하정민 | 70호 (2010년 12월 Issue 1)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최대 이변은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의 예선 탈락이었다. 4년 전 우승컵을 들었던 이탈리아는 조별 예선에서 2무 1패의 초라한 성적을 냈다. 주된 원인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2006년 우승 멤버들을 지나치게 중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현재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을 모아 새 팀을 꾸리는 대신, 과거 자신이 데리고 있었던 선수들을 모아 대표팀을 만들었다. 파비오 칸나바로, 젠나로 가투소 등 30대가 훌쩍 넘은 고참 선수들의 기량이 눈에 띄게 떨어졌지만 리피는 이를 무시했다. 가투소는 예선에서 쓸데없는 파울로 경기의 흐름을 자주 끊었다. 칸나바로도 종종 상대 공격수를 놓쳤다. 반면 지난 시즌 이탈리아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20대의 안토니오 카사노는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일본 야구 대표팀을 맡은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일본 야구계에서 반() 요미우리 진영의 대표자로도 유명하다. 명투수였던 그는 메이지대 졸업반 시절, 일본 최고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입단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요미우리는 약속을 깨고 다른 선수를 1순위로 지명했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호시노는 주니치 선수 및 감독 시절 요미우리와의 승부라면 유독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대표팀을 맡은 호시노는 주니치 선수를 선호하고 요미우리 출신은 꺼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선수 선발 때부터 그는 이와세, 모리노, 가와카미, 아라키 등 당시 주니치의 주력 선수를 대거 뽑았다. 그러나 요미우리의 간판 타자인 오가사와라, 투수인 우쓰미와 다카하시는 모두 제외했다.
 
베이징에서도 그랬다. 주니치 감독 시절 그가 아꼈던 마무리 투수 이와세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결정적 순간에 등판했지만 밥값을 못했다. 한국을 상대로 한 운명의 올림픽 준결승전에서는 이승엽에게 역전 투런 홈런까지 맞았다. 반면 요미우리의 에이스 우에하라는 베이징에서 등판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호시노의 반 요미우리 정서가 팀 패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처럼 리더가 과거 자신이 데리고 있었던 부서나 팀에 있었던 직원들을 더 아끼고 편애하는 경향을 내집단 선호(in-group favoritism)라 한다. 내집단(
內集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예일대 교수였던 미국의 사회학자 W. G. 섬너(Sumner)다. 그는 원시 부족민들을 상대로 한 연구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우리’라고 평가하는 내집단 이외의 사람들에게 종종 불쾌, 혐오, 경쟁심 등을 나타내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리피와 호시노의 실패는 리더의 내집단 선호가 야기하는 위험을 잘 보여준다. 베이징 야구 준결승전 8회 말에서 한국과 일본은 2대 2 동점이었다. 한 치도 예상할 수 없는 팽팽한 승부에서 호시노 감독은 다른 투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장인데다 구위도 좋지 않은 제자를 밀어붙였다. 결국 충격적 패배를 당한 일본 대표팀은 3,4위 결정전에서도 패배하면서 노메달로 베이징을 떠났다.
 
리피 감독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축구계는 리피에게 젊은 피 영입을 요구했다. 그러나 리피는 젊은 피보다 자신이 총애하는 기존 선수들 간의 호흡과 조화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최약체나 다름없는 뉴질랜드, 슬로바키아 등 축구 변방국을 상대로 졸전을 펼치며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이는 배타적 순혈주의가 강한 한국 기업 및 조직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정 시기에만 신입 직원을 채용해 기수를 부여하는 공채제도가 여전히 직원 선발 방식의 주류를 점하고 있다. 이는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과 변화 대응력을 떨어뜨린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들까지 조직원에 대해 ‘내 사람’ ‘남의 사람’이라는 식으로 편가르기를 하다 보면 리더 본인부터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훌륭한 차세대 리더를 길러내기도 힘들다. ‘굴러온 돌’을 용인하지 못하고 ‘박힌 돌’만 중시하는 편가르기식 사고는 기업 경쟁력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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