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德, “얻고자 하면 먼저 줘라”

47호 (2009년 12월 Issue 2)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을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그래도 역시 주인공은 유비(劉備, 161∼223)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비는 조조, 손권과 함께 중원대륙을 3분했던 군주였다. 유비의 자(字)가 기억나는가? 현덕(玄德)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덕이라는 유비의 자에 <도덕경(道德經)>에 기록돼 있는 노자의 철학적 사유가 압축돼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유비는 자애로운 군주, 다시 말해 유학자들이 극찬하는 성인 군주로 찬양되어왔다. 하지만 사실 유비의 속내에는 유학사상이 아니라 도가사상이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왜 그는 자신의 자, 혹은 인생의 좌우명으로 현덕이라는 말을 선택했던 걸까? 도대체 유비는 노자의 가르침으로부터 무엇을 얻었을까? 그것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자식 때문에 큰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
유비에게는 조운, 즉 조자룡으로 널리 알려진 장수가 있었다. 조자룡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던 천하무적의 장수였다. 관우나 장비는 도원결의를 통해 의형제를 맺었기 때문에, 유비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와 달리 조자룡은 잠시 유비의 곁에 의탁하고 있었던 장군이다. 유비는 조자룡을 탐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도원결의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때를 기다리던 유비에게 마침내 기회가 온다. 조조의 백만 대군이 유비를 압박했을 때, 그는 조자룡에게 2명의 부인과 자신의 아들인 아두(阿斗)의 안위를 부탁한다. 불행히도 조자룡은 난전 중에 유비의 부인 한 명을 지키지 못하고 간신히 유비의 아들만 보호할 수 있었다. 조자룡으로서는 목숨이 몇 개가 되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조자룡은 갑옷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던 유비의 아들을 건네주며 자신의 죄를 청했다. 바로 이때 기막힌 반전이 일어난다. 유비가 아들을 건네받자마자 땅바닥에 던져버리는 게 아닌가?
 
“이까짓 어린 자식 하나 때문에 하마터면 나의 큰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
조자룡은 황망히 허리를 굽히고 팽개쳐져 우는 아두를 끌어안고서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였다.
“제가 이제 간뇌도지(肝腦塗地)하더라도 주공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삼국지연의>
 
조자룡으로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유비가 나중에 태자가 되고 그 뒤에 황제가 될 맏아들보다 조자룡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당연히 그는 자신의 간과 뇌를 땅바닥에 쏟아서라도 유비를 위해 살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이때가 바로 유비가 자신의 사후에도 충성을 바칠 탁월한 장수를 얻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흐뭇한 이 장면에서 우리는 감동에 취해 있기보다는, 유비가 어떻게 조자룡을 얻게 되었는지를 철학적으로 숙고해야 한다. 도대체 유비는 어떻게 해서 조자룡을 관우와 장비처럼 절대 배신하지 않는 충복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이 물음은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동양 통치술의 핵심에 이를 수 있다.
 
‘덕(德)’은 마음까지 얻을 수 있는 능력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비의 자에 들어 있는 덕(德)이라는 개념이다. 일상적으로 쓰여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한비자(韓非子)>라는 책을 넘겨보자. 한비자는 “덕(德)은 득(得)이다”라고 규정했다. 덕은 단순히 도덕적 품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얻는 대상은 ‘사람’이다. 통치자의 덕이라면 그것은 탁월한 신하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고, 스승의 덕이라면 그것은 탁월한 제자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뇌리에는 유비가 조자룡을 얻는 두 단계의 과정이 떠오른다. 유비에겐 조자룡의 몸만을 얻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땅바닥에 내팽개쳤을 때가 중요하다. 이 순간 유비는 마침내 조자룡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얻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덕은 무력이나 재력과는 다른 능력이다. 무력이나 재력으로는 몸을 잡아둘 수 있을 뿐, 마음을 얻기는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덕은 마음까지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덕(德)이라는 글자는 ‘얻는다’는 뜻의 ‘득(得)’이라는 글자와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라는 글자가 합성된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덕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서 그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유비는 도대체 어디에서 덕이 가진 놀라운 힘을 배웠던 것일까? 바로 노자의 <도덕경>이다. 이 책 36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은미한 밝음(微明)’이라고 말한다. 유연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되고, 국가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 <도덕경>
 
노자의 통치술이 압축돼 있는 구절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하나 있다.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는 노자의 말이다. 이제 명확해진다. 아두를 땅바닥에 던질 때, 유비는 바로 이 교훈을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자신의 아들보다 더 총애한다는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유비는 조자룡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비는 조자룡의 마음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아들을 던졌다는 사실을 그에게 보여선 안 되었다. 그것은 조자룡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정으로 드러나야 했다. 만약 이를 눈치챘다면, 조자룡은 자신을 얻으려는 유비의 속내를 이렇게 혐오했을 수도 있다. “나를 얻기 위해 아들까지 던지다니 무서운 군주로군!” 그래서 노자는 “국가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유비는 노자의 가르침, 즉 덕은 ‘은미한 밝음’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잊지 않은 군주였다. 여기서 은미함(微)이 자신의 속내를 조자룡에게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노자의 경고였다면, 밝음(明)은 아두를 던진 이유가 조자룡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노자의 경고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야 유비의 자가 왜 현덕이었는지 분명해진다. 현(玄)은 어둠을 상징한다. 물론 이것은 덕으로 얻으려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결국 현덕이라는 자는 유비가 얼마나 노자의 가르침에 충실했던 군주였는지를 보여준다. 상대방을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주는 자신의 속내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노자의 가르침. 유비는 이것을 한시라도 잊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동양의 통치술은 노자의 ‘은미하지만 밝은’ 덕의 논리로 요약된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에서 숙직을 서다 졸고 있던 성삼문(成三問, 1418∼1456)에게 야단을 치기는커녕 곤룡포를 벗어주었다. 이런 세종의 덕은 나중에 성삼문으로 하여금 세종의 손자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하는 힘을 발휘했다.
 
탁월한 제왕들은 자신의 후예들에게 유비나 세종대왕이 실천했던 덕을 전했다. 그런데 모든 군주들이 유비나 세종대왕처럼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능력 있는 사람을 간파하지 못한 안목 때문이다. 능력 없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그에게 마치 유비처럼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들을 줬던 것이다. 이런 사람을 얻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심지어 군주들은 구변이 좋은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기까지 했다. 결국 인간을 통찰할 수 없던 눈을 가진 군주에게 덕의 논리는 자멸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었다. 국운을 쇠망하게 했던 군주들 옆에는 항상 능력이 없거나 구변이 좋은 신하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연세대 철학과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망각과 자유: 장자 읽기의 즐거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장자의 철학을 조명하고, 철학을 대중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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