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방해하는 ‘엔트로피’ 낮추려면…

45호 (2009년 11월 Issue 2)

무아지경을 경험한 사람들
TV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는 가끔 시청자를 감탄하게 만드는 인물들이 출연한다. 20여 년간 발레리나로 살아온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강수진도 그중 한 사람이다. 강수진은 발레에 전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레를 사랑했다. 그녀의 발레 사랑은 결혼 직후 신혼여행을 대신해 무용실에서 10시간 동안 안무연습을 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기량은 물론 발레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문외한에게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단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는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인 V3의 최초 버전인 V1을 만드느라 1991년 군 입대 당일 새벽까지 컴퓨터와 씨름을 했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입영열차에 올라탔다. 안 교수는 저녁 때 내무반에서 훈련소 동기들과 얘기를 나누다 가족에게 군대 간다는 말을 안 하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던 상황이었으니 가족들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일을 한없이 즐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지겨워하거나 고통스러하는 경험을 오히려 즐겁게 여길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 “누가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춤을 출 것 같았다”는 강수진의 말은 피로나 배고픔도 잊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을 떠올리게 한다. 무아지경을 경험한 사람들은 흔히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묘사한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러간 줄 몰랐다.”
“내가 붓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붓을 내가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춤을 추는 동안 내가 정말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아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마치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철가루가 줄을 서는 것처럼,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한순간에 한 방향으로 정렬되는 느낌이었다.”
 
동양의 문화적 전통에서 무아지경은 모두가 추구하는 이상적 정신 상태를 상징한다. 조선의 풍속화가 신윤복을 재조명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스승 김홍도는 제자 신윤복에게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무아지경에 이르렀느냐”며 재능을 칭찬한다. 자신의 일에 몰두한 나머지 시간과 공간,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잊는 상태인 무아지경(無我之境). 이것이 바로 미국의 세계적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20세기에 들어서야 발견한(혹은 재발견한) Flow다.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주창한 ‘Flow[개인적 차원의 몰입]’와 조직학자들이 말하는 ‘Engagement[성과몰입]’는 우리말로 모두 ‘몰입’으로 번역된다. 여기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영어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자아를 잊어버리는 행복한 경험, Flow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장이었던 헝가리 출신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개인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수집하는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에게 무선호출기를 나눠주고 예고 없이 연락을 취해 당시의 상황과 마음의 상태를 기록하게 했다.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의 공통적 특징을 조사한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활동에 몰입할 때 큰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어떤 일에 빠져들어, 그로 인해 행복감을 느끼는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 상태를 ‘Flow’라고 정의했다.
 
사람들은 Flow 상태에서 시간, 공간, 심지어 피로와 배고픔마저 인식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가용한 주의(attention)의 부족 때문이다. 칙센트미하이 교수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1초에 약 100개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한 사람과 대화할 때 뇌가 처리하는 정보가 약 60개나 된다. 이것이 우리가 동시에 두 사람과 별도의 대화를 진행할 수 없는 이유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몰두하다 Flow 상태에 진입한다. 이때 뇌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모든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다 보니 다른 정보를 인식하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이나, 주변의 소리, 배고픔, 심지어 자기 자신의 몸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특이한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일에 심리적 에너지를 총동원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깨닫게 된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Flow를 만드는 두 요소로 ‘과제의 난이도’와 ‘보유한 역량 수준’을 꼽았다. 사람들은 난이도가 낮은 과제를 지루해하지만, 너무 어려운 과제는 포기하고 만다(도전의 난이도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에 따라 같은 과제의 난이도를 다르게 느낀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역량으로 하기에 다소 버거운 과제를 맡아, 모든 것을 쏟아부을 때 성공과 실패를 떠나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을 통해 역량의 성장을 경험한다. 일단 버거운 과제를 성취하고 나면 그와 비슷한 난이도의 과제가 쉽게 느껴지기 때문에, Flow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과제에 도전해야 한다. 익스트림 스포츠가 보는 사람에게는 미친 짓 같지만, 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쾌감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런 과제와 역량 사이의 상호상승 작용 때문이다.(그림1, 2)
 
개인주의 사회에서 flow 연구의 의미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해보면 ‘Flow의 발견’이란 말은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무언가에 열중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 20세기에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지 않는가.
 
Flow란 개념의 탄생은 자아의식을 잃지 않으려는 서양의 문화적 전통과 관련이 있다. 서양인들은 언제나 ‘자기만의 생각’을 강조한다. 외국인들과 토론을 하거나 해외에서 유학을 해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동양 사람들은 일찍부터 무아지경을 추구하는 전통을 발전시켜왔다.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무아지경에 도달하기 위한 활동을 장려했다. 요가나 무술은 대표적인 정신 집중 활동으로, 궁극적인 진리를 깨닫기 위해 몸을 다루는 기술이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인 미군 대위는 사무라이 마을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그들에게 동화된다. 이 영화에는 그가 일본인들이 이른 새벽부터 활을 쏘고 검술을 연마하는 것을 보며 감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작업 자체에 몰입하면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급기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한다. “이들의 삶은 이해할 수가 없다. 난 교회를 다닌 적이 없지만, 이들이 영적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동양인들은 무술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도 수련을 통해 무아지경에 도달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조직구성원이 되려고 노력해왔다. 우리는 도기를 굽는 장인들이 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목욕재계를 하는지 안다. 도공들에게 작업은 돈을 벌기 위한 경제 활동을 넘어,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수련이었다. 이처럼 동양인들은 일상에서도 무아지경에 도달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평소에도 수양을 통해 마음을 비우라고 가르친다. 잡념을 비워 명경지심(明鏡之心)에 이르면 우리 자신의 생각은 사라지고 자연의 원리가 우리 마음에 비춰진다고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상태를 영어로 번역(‘empty one’s mind’ 또는 ‘minds go blank’)할 경우, 많은 서양인들이 몹시 당황해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그들에게는 마음을 비워 깨끗해진다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서양인들은 자의식이 없는 것은 죽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는 정신 상태라고 여긴다. 평균적인 서양인들은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가지며, 이를 논리 정연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업적이 서양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그가 이런 서양식 사고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개인 행복의 추구’를 위한 방법으로 제시했다. 자의식의 결여를 끔찍이 싫어하는 서양인들도 ‘개인 행복의 추구’라는 연결고리가 제시되자 기꺼이 Flow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연구에서 Flow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들(예: 걷기, 종이 접기, 역대 왕조 암기하기 등)이 제시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소소한 행복 추구의 트렌드가 인정받는 것은 서양인들이 물질지향 사회의 폐해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질지향 사회의 구성원들은 한정된 물질을 차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경쟁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Flow는 한정된 자원을 나누느라 악다구니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행복관을 제시해 환영을 받았다.
 
지식 경제에서는 결국 ‘사람’이 답이다
Flow가 이 시대에 환영을 받는 것이 단지 ‘개인 행복의 추구’라는 관점 때문만은 아니다. Flow에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경제학적 의미가 있고, 이는 본 연재 글의 근본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21세기의 상당수 선진 국가들은 지식기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노동, 토지, 자본을 투입해 가치를 창출하던 산업사회에서 기업들이 추구했던 절대 명제는 우수한 품질의 상품을 싸게 만들어 파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기술 개발자보다 그 기술을 대중화한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많은 공을 들이는 가치 창조(value creation)보다, 이미 창출된 가치를 포착해 이용하는(value capture) 일이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제조업 중심의 경제에서는 기술의 표준화와 신속한 양산 체제의 확보가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었다. 자신이 만들지 않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raphic User Interface·GUI)를 사들여 윈도(Windows)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MS)는 가치의 포착과 이용에 뛰어난 ‘재빠른 2등(fast second)’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20세기는 여전히 자본과 유통망, 규모의 경제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시대였다. 이런 시대적 배경하에서 개인의 행복은 생산성과 그다지 큰 연관이 없는 요소로 인식됐다.
 
하지만 지식기반 경제사회는 다른 논리로 움직인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복제와 유통 비용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신기술 개발자는 양산 체제를 확보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장에 쉽게 내놓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서비스 중심의 경제구조에서는 품질보다 이미지가 구매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국내 한 자동차 회사가 스스로를 디자인 전문 기업으로 정의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또 전 세계 시장이 통합돼 일순간에 전 지구적 시장을 장악하는 강자가 나타나 경쟁 구도를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다. 구글이 처음 검색엔진을 소개했을 때, MS는 이를 치기 어린 대학원생들의 장난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10년도 되지 않아 구글은 MS 오피스와 호환 가능한 문서 도구를 웹상에서 무료로 제공해 MS를 위협하고 있다.
 
지식기반 경제에서 가치는 정보의 생산과 가공 역량에 의해 창출된다. 그리고 고급 정보와 정보처리 능력은 암묵지(implicit knowledge)와 역량의 형태로 사람의 두뇌에 저장돼 있다. 따라서 이제는 경영자들이 오늘 퇴근한 직원이 내일도 회사에 출근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지식기반 경제에서 사람이 경쟁력의 근본이기 때문에, ‘개인 행복의 추구’는 부차적인 일이 아니라 기업의 핵심 업무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Flow가 이 시대에 환영받는 상황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당연히 찾아온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과를 높이는 몰입(Engagement)
Flow 연구가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에도 사람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있었다. 1920년대 말 미국의 전구 회사로부터 생산성 향상 연구 용역을 의뢰받은 연구자들은 예상치 못한 실험 결과에 당황해야 했다. 그들은 생산성을 최대화하는 최적의 조명 수준을 연구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먼저 공장 안의 조명을 밝히자 관찰대상 작업조의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명을 어둡게 하면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조명을 어둡게 해도 생산성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늘어났다. 연구진이 급기야 달빛 수준까지 조도를 낮췄지만, 직원들은 계속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학자들은 이 실험을 통해 사람들은 조명, 휴식시간, 급여 등의 외부 요소 이외에 다른 요소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구 공장 직원들은 자기들이 전체 공장 직원을 대표하는 관찰대상이란 사실을 알고, 조장의 지휘 아래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한 것이었다. 훗날 호손효과(Hawthorne Effect)로 이름 붙여진 이 발견을 통해 당시 학자들과 기업인들은 직원이 외부의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단순한 ‘노동 기계’가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는 인격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이로 인해 왜 특정한 팀이 유난히 성과가 좋은지, 어떤 팀에는 유독 안전사고가 많은지도 설명할 수 있었고, 인간관계와 동기부여, 리더십 연구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의 연구는 철저히 생산량 증대 관점에서 사람을 조종하는 요소를 찾는 데 주력했다는 한계가 있다.
 
기업들은 근래에 들어서야 직원 만족을 넘어서는 성과몰입이란 개념을 통해 생산성 향상과 개인의 행복 추구 간의 균형을 찾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성과몰입에 Flow 개념을 접목하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는 중이다. 휴잇 어소시엇츠(Hewitt Associates)가 2009년 아시아 지역에서 진행한 ‘2009년 아시아 최고의 직장(Best Employers in Asia 2009)’ 연구조사는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언급한 엔트로피(Entropy)에 대한 연구를 포함하고 있다.
 
엔트로피는 에너지가 분산된, 혼돈에 가까운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심리 에너지인 주의가 집중된 상태가 Flow라면, 엔트로피는 심리 에너지가 어디에도 집중되지 못한 혼돈(chaos) 상태를 말한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물리학과 화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엔트로피란 개념을 자신의 가설에 적용했고, 휴잇은 최고의 직장 연구조사로 이를 확증했다.

 
휴잇은 개인의 가치관과 조직문화, 조직의 미래상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엔트로피가 높다고 정의했다. 그리고 엔트로피가 성과몰입과 역(逆) 상관관계일 것이란 가설을 세웠다. 연구조사 결과 휴잇의 가설은 사실로 검증됐다. 최고 직장들의 엔트로피는 평균적 기업의 그것보다 낮았다.(표1)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한국 기업의 경우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된 기업이라 할지라도 엔트로피가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최고의 직장 10개사의 엔트로피 평균은 12%로 아시아 최고의 직장 평균에 비해 6%포인트나 높고, 아시아 기타 직장의 평균에 가까웠다. 이것은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업무 말고도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 주의를 집중해 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학연·지연에 의한 인맥과 효율성을 감소시키는 위계문화, 성차별적인 인사관리 등이 성과몰입 및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의 기업 조직원들은 일을 즐기기보다는 ‘직장 생활을 견디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Engagement를 떨어뜨리는 엔트로피
Engagement를 좀먹는 엔트로피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엔트로피를 높이는 요인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휴잇의 연구조사 설문은 기업 직원들이 제시된 조건을 묘사하는 단어를 선택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설문 참가자들은 개인의 가치 또는 행동을 표현하는 78개의 단어와 조직의 가치 또는 행동을 표현하는 99개의 단어를 검토하게 된다(이중 53개 단어가 공통으로 쓰인다). 이들은 각자 3개 항목별로 10개씩의 단어(자신의 가치 또는 행동을 표현하는 단어 10개, 현재 조직문화를 표현하는 단어 10개,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표현하는 단어 10개)를 선택한다.
 
이렇게 나온 각 단어 목록을 비교하면 개인의 가치와 조직문화가 얼마나 정렬되어(align)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단어 목록에는 엔트로피를 높이는 가치나 행동을 표현하는 단어들도 들어 있는데, 이런 단어는 직원들이 주로 현재의 조직문화를 묘사할 때 선택하게 된다.

 
엔트로피 상승 요인을 조사한 결과, 한국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된 기업들에서는 고용(불)안정과 관료주의, 통제 중심의 조직문화가 직원의 Engagement를 가장 많이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장시간 근무와 부서 이기주의, 지나친 내부 경쟁과 신중함도 엔트로피를 올리는 요인이었다.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 기업들은 펀(fun) 경영 바람을 타고 ‘즐거운 직장 만들기’ 운동을 벌였으며, 출근 시간에 어릿광대가 인사를 하거나 연말송년회에 마술쇼 또는 장기자랑을 프로그램에 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핵심을 벗어난 행동이었던 셈이다.(표3)
 
기업 구성원들은 일하기 좋은 환경만 조성되면 즐겁게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웃음과 재미를 강조해야만 즐거워지는 것은 아니다. 야구 경기의 역전극은 결코 웃기지는 않지만 매우 흥미롭고, 사람을 몰입시키는 매력이 있다. 직장에서 리더들이 지나친 통제와 관료주의적 언행을 삼가는 것만으로도 직원들의 엔트로피가 낮아지고 Engagement가 높아질 수 있다. 틈만 나면 호통을 치는 상사와 나란히 앉아 마술쇼를 보는 일이 어찌 즐거운 경험이겠는가.
 
지식기반 경제 속 리더의 과제
지식기반 경제 속에서 활동하는 리더들은 성과를 위해 직원의 만족과 행복도 챙겨야 한다. Flow와 최고의 직장 연구는 리더들에게 몰입이 가능한 조직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리더는 직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과제를 제공해야 한다. 최근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돌아온 홍명보 감독은 선수 한 명, 한 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 선수의 기량을 파악했다고 한다. 이렇게 개인별 역량 수준을 파악하면 그것에 맞는 과제를 제공해, 각 선수가 Flow를 경험하게 할 수 있다. 또 부수적으로는(강조하지만 정말 부수적으로) 역량의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리더는 조직의 필요와 개인 역량 개발 사이의 균형을 찾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부하 직원의 희망사항을 확인해야 한다. 이는 진정으로 조직 관리의 무게 중심이 사람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리더는 직원들의 소중한 심리 에너지를 낭비하는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연, 지연, 혈연을 이용한 이른바 ‘자기 라인 만들기’는 쓸데없이 조직의 엔트로피를 높이는 행동이다. 나이나 경력을 무기로 직원들을 동료가 아닌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행동 또한 자제해야 한다. 많은 외국계 기업과 생각이 앞선 한국 기업들이 직급 호칭을 없애려는 것도 이런 위계지향적 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셋째, 인사조직(HR) 부문의 리더는 사람 관리가 모든 부서의 핵심 업무 중 하나임을 각인시키고, 각 부서의 리더들에게 인재 관리의 원리와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HR 조직이 ‘행정 실무자’에서 ‘비즈니스 파트너’로 진화해야 한다. GE의 전설적인 HR 리더이자, 잭 웰치를 도와 제프리 이멜트를 육성한 윌리엄 코내티(현 휴잇 사외이사)는 HR 리더들에게 “경영자의 친구가 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HR이 경영자의 방침에 지나치게 충실하기보다는, 사업에 필요한 직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R 책임자는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리더들에게 지식기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사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지식기반 경제는 두뇌활동으로 가치가 창출되는 경제구조를 뜻하며, 과거의 물질지향적 헤게모니가 힘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동양적 사고와 리더십이 21세기에 재조명을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양 선진국들은 지식기반 경제시대에 진입하면서 지금까지 기사를 통해 소개한 동양적 사고와 리더십의 가치를 깨닫게 됐다. 많은 선구자들은 경제구조를 기준으로 인류 역사를 조명해볼 때, 현재의 지식기반 경제도 그 수명이 약 5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예견한다. 하지만 이는 적어도 50년 후까지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동양적 사고가 시대를 이끌어가는 등불이 될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DBR TIP
Flow
에 이르는 방법
우리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그 도전을 이룩할 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고, △의도적으로 자신의 의식에 질서를 제공해 집중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우호적인 환경이 Flow를 경험하는 데 일조를 하기는 하지만 Flow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단 점이다. 과제의 난이도와 보유 기술(역량) 수준이 비슷하다면 Flow에 도달하기 쉽다. 사람들은 과제의 난이도가 역량보다 높으면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한다. 반대로 과제의 난이도보다 기술 수준이 높으면 과제 자체가 시시해진다.
 
반대로 Flow를 방해하는 요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체면을 꼽을 수 있다. 체면은 ‘과도한 자의식’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상태를 말한다. 체면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즐기기 어렵다. 아이들이 쉽게 놀이에 몰입하는 것은 체면을 별로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혹시 자신이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Engagement를 구성하는 요소
직원의 Engagement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 행동을 관찰해야 한다. 휴잇은 이를 설문으로 만들어 일정 점수 이상을 기록한 직원을 성과몰입된 사람으로 분류한다. 성과몰입된 직원의 비율을 의미하는 성과몰입도 40%를 기점으로 자기 파괴적인 기업과 보통 기업이 구분되며, 60%를 기점으로 보통 기업과 최고의 직장이 구분된다.
 
SAY:당신은 동료, 고객, 입사 지원자 등에게 회사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가?
STAY:당신은 직장을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와도 계속 근속할 의사가 있는가?
STRIVE:당신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과를 높이기 위해 추가 노력을 기울이는가?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휴잇 코리아는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동양적 사고와 리더십의 우수성을 살펴보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이 동서양 리더십의 차이를 분석하고, 새로운 동양적 모델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