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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방해하는 ‘엔트로피’ 낮추려면…

김용성 | 45호 (2009년 11월 Issue 2)
무아지경을 경험한 사람들
TV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는 가끔 시청자를 감탄하게 만드는 인물들이 출연한다. 20여 년간 발레리나로 살아온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강수진도 그중 한 사람이다. 강수진은 발레에 전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레를 사랑했다. 그녀의 발레 사랑은 결혼 직후 신혼여행을 대신해 무용실에서 10시간 동안 안무연습을 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기량은 물론 발레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문외한에게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단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는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인 V3의 최초 버전인 V1을 만드느라 1991년 군 입대 당일 새벽까지 컴퓨터와 씨름을 했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입영열차에 올라탔다. 안 교수는 저녁 때 내무반에서 훈련소 동기들과 얘기를 나누다 가족에게 군대 간다는 말을 안 하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던 상황이었으니 가족들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일을 한없이 즐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지겨워하거나 고통스러하는 경험을 오히려 즐겁게 여길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 “누가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춤을 출 것 같았다”는 강수진의 말은 피로나 배고픔도 잊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을 떠올리게 한다. 무아지경을 경험한 사람들은 흔히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묘사한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러간 줄 몰랐다.”
“내가 붓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붓을 내가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춤을 추는 동안 내가 정말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아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마치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철가루가 줄을 서는 것처럼,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한순간에 한 방향으로 정렬되는 느낌이었다.”
 
동양의 문화적 전통에서 무아지경은 모두가 추구하는 이상적 정신 상태를 상징한다. 조선의 풍속화가 신윤복을 재조명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스승 김홍도는 제자 신윤복에게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무아지경에 이르렀느냐”며 재능을 칭찬한다. 자신의 일에 몰두한 나머지 시간과 공간,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잊는 상태인 무아지경(無我之境). 이것이 바로 미국의 세계적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20세기에 들어서야 발견한(혹은 재발견한) Flow다.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주창한 ‘Flow[개인적 차원의 몰입]’와 조직학자들이 말하는 ‘Engagement[성과몰입]’는 우리말로 모두 ‘몰입’으로 번역된다. 여기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영어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자아를 잊어버리는 행복한 경험, Flow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장이었던 헝가리 출신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개인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수집하는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에게 무선호출기를 나눠주고 예고 없이 연락을 취해 당시의 상황과 마음의 상태를 기록하게 했다.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의 공통적 특징을 조사한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활동에 몰입할 때 큰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어떤 일에 빠져들어, 그로 인해 행복감을 느끼는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 상태를 ‘Flow’라고 정의했다.
 
사람들은 Flow 상태에서 시간, 공간, 심지어 피로와 배고픔마저 인식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가용한 주의(attention)의 부족 때문이다. 칙센트미하이 교수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1초에 약 100개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한 사람과 대화할 때 뇌가 처리하는 정보가 약 60개나 된다. 이것이 우리가 동시에 두 사람과 별도의 대화를 진행할 수 없는 이유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몰두하다 Flow 상태에 진입한다. 이때 뇌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모든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다 보니 다른 정보를 인식하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이나, 주변의 소리, 배고픔, 심지어 자기 자신의 몸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특이한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일에 심리적 에너지를 총동원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깨닫게 된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Flow를 만드는 두 요소로 ‘과제의 난이도’와 ‘보유한 역량 수준’을 꼽았다. 사람들은 난이도가 낮은 과제를 지루해하지만, 너무 어려운 과제는 포기하고 만다(도전의 난이도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에 따라 같은 과제의 난이도를 다르게 느낀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역량으로 하기에 다소 버거운 과제를 맡아, 모든 것을 쏟아부을 때 성공과 실패를 떠나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을 통해 역량의 성장을 경험한다. 일단 버거운 과제를 성취하고 나면 그와 비슷한 난이도의 과제가 쉽게 느껴지기 때문에, Flow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과제에 도전해야 한다. 익스트림 스포츠가 보는 사람에게는 미친 짓 같지만, 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쾌감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런 과제와 역량 사이의 상호상승 작용 때문이다.(그림1, 2)
 
개인주의 사회에서 flow 연구의 의미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해보면 ‘Flow의 발견’이란 말은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무언가에 열중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 20세기에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지 않는가.
 
Flow란 개념의 탄생은 자아의식을 잃지 않으려는 서양의 문화적 전통과 관련이 있다. 서양인들은 언제나 ‘자기만의 생각’을 강조한다. 외국인들과 토론을 하거나 해외에서 유학을 해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동양 사람들은 일찍부터 무아지경을 추구하는 전통을 발전시켜왔다.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무아지경에 도달하기 위한 활동을 장려했다. 요가나 무술은 대표적인 정신 집중 활동으로, 궁극적인 진리를 깨닫기 위해 몸을 다루는 기술이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인 미군 대위는 사무라이 마을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그들에게 동화된다. 이 영화에는 그가 일본인들이 이른 새벽부터 활을 쏘고 검술을 연마하는 것을 보며 감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작업 자체에 몰입하면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급기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한다. “이들의 삶은 이해할 수가 없다. 난 교회를 다닌 적이 없지만, 이들이 영적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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