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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실적 집착이 한국형 성과주의 걸림돌

김성수 | 43호 (2009년 10월 Issue 2)
지난 10년간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어떻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이들 기업의 성과 지향적 조직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 기업의 강한 성과 지향성과 빠른 실행력은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를 가져온 원동력이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 기업의 인사 제도는 연공서열제 그 자체였다. 하지만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많은 대기업들은 연공서열 위주의 인사 관리 방식을 재빨리 성과주의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후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약진이 이어지면서 성과주의 인사 관리 방식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성과주의 인사 관리가 한국 기업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인식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한국 기업의 성과주의 인사 관리가 어떤 제도들로 이뤄져 있는지, 한국식 성과주의의 특징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가 이를 집중 연구하는 이유다.

 
서구에서는 조직의 성과 향상에 효과가 있다고 검증된 인사 제도를 묶어 ‘고성과 작업 제도(High Performance Work System·HPWS)’라 부른다. 기업마다 이를 구현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대체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전략적 인사 관리: 전사 전략과 인사 전략의 통합 추구, 인사 부서의 역할 중시
 
- 조직 구조: 수직적 구조보다 수평적 구조 추구, 신속한 의사결정 중시
 
- 직무 설계: 개개인에게 한정된 좁은 범위의 직무 설계가 아니라 폭넓게 정의한 직무 설계를 통해 직무 범위 확대, 개인 단위보다 팀 단위 업무 설계 선호
 
- 사원 선발: 최고의 인재(best people)보다 조직 문화에 맞는 최적의 인재(right people) 선호, 이를 위해 수차례의 면접과 적성 및 인성 검사 등 다양한 선발 방식 사용
 
- 사원 교육: 사원 교육 및 투자 중시, 사원의 경력 개발 적극 지원
 
- 사원 평가: 객관적·계량적 지표를 중심으로 평가, 사원에게 평가 결과에 대한 충분한 피드백을 제공하며 다면평가도 적절히 활용
 
- 보상: 연공보다는 성과에 기초한 보상 제도 사용, 평가 결과에 따른 사원 간 보상 차별화 추구
 
- 사원 참여: 사원의 의견 중시, 사내 의사소통의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 고충 처리 제도나 사원 의견 조사 적극 활용
 
한국은 지난 10년간 서구식 고성과 작업 제도를 수용한 대표적인 나라다. 필자는 서구의 연구 논문을 주의 깊게 살펴본 끝에 고성과 작업 제도를 구성하는 인사 제도 28개를 선정했다. 이후 우리나라 기업이 추구하는 성과주의 인사 제도가 이들 고성과 작업 제도와 얼마나 유사한지를 조사했다. 조사는 한국 기업 101개에 대한 설문 및 면담 조사로 이뤄졌다. 그 결과, 한국 기업의 총 24개 성과주의 인사 제도 중 무려 75%에 달하는 18개가 서구의 고성과 작업 제도와 동일했다.

 
한국 기업의 제도 중 서구 제도와 특히 유사한 5가지 분야는 전략적 인사 관리, 조직 구조, 사원 평가, 사원 교육, 보상 제도였다. 즉 현재 한국 기업이 추구하는 성과주의 인사 시스템과 서구의 성과주의 인사 시스템은 별 차이가 없다. 이미 한국 기업은 사원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사원 교육에 적극 투자하고 있으며, 공정한 평가 시스템을 개발해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을 추구하고 있다. 조직 구조도 많이 단순해져 신속하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인사 부서의 역할도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의 성과 제도가 서구 제도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첫째, 사원을 선발할 때 서구 기업은 사원의 장기적 잠재력과 태도를 중시한 반면, 한국 기업은 업무 능력과 즉각적인 생산성 도출을 중시했다. 이에 따라 서구 기업보다 기술 교육을 중시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둘째, 서구 기업은 성과에 따른 높은 보상과 충분한 복리후생을 중시했지만, 한국 기업은 상대적으로 이를 중시하지 않았다. 보상의 주요 기준도 달랐다. 한국 기업은 성과 평가 시 근속 연수 또한 주요 변수로 인정하고 있었다. 셋째, 서구 기업은 사원의 불만 처리, 상사와 사원의 격의 없는 의사소통, 사원에게 정기적으로 경영 성과를 설명하는 일을 강조했다. 한국 기업보다 사원을 배려하고, 사원의 참여 경영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는 한국 기업이 사원 만족도 관리나 사원에 대한 배려에 상대적으로 소홀했음을 뜻한다. 한국 사원의 직무 만족도가 서구 기업보다 낮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8년 한국종합사회조사 결과, 한국 사원의 직무 만족도는 62%에 그쳤다. 동시에 진행된 세계 26개국 조사에서 최저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 기업의 성과주의 인사 시스템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연공서열 중심이었을 때보다 조직의 성과 향상 효과가 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기업의 성과주의 인사 시스템은 사원들이 회사의 비전과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도와줬다. 둘째, 사원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줬다. 셋째, 사원이 회사의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지를 올바로 평가하고 이에 따른 보상을 하여 동기부여 효과를 높였다. 인사 관리의 효과성이 대폭 높아진 셈이다. 인사 관리의 효과성이 높아질수록 해당 기업의 매출과 이익도 늘어난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 기업의 성과주의 인사 시스템이 개선해야 할 점도 많다. 첫째, 앞서 지적한 대로 낮은 사원 만족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의 시스템은 사원에 대한 배려보다는 성과 향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지속 가능한 성과 향상을 보장하긴 어렵다.
 
둘째, 단기 성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없애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의하면, 한국식 성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단기 성과에 대한 집착이었다. 해당 분기, 해당 연도의 목표 달성에만 집착하다 보니 장기적 성과를 창출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면 부서별 협력도 저해된다.
 
셋째,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사 시스템 또한 창조와 혁신을 강조해야 한다. 대다수 한국 기업은 창조자가 아니라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이 위치를 유지하려면 진정한 혁신가(Innovator)로 변신해야 한다. 아직 한국 기업의 조직 문화는 창조와 혁신을 장려하지 못하고 있어 보완이 시급하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성과 평가 체제의 비중을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성과에 두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구글의 20% 룰(업무 시간의 20%는 사원이 하고 싶은 업무에 전념하도록 허용)이나, BMW의 ‘이달의 가장 창의적인 실수상’ 등 창의적 시도를 장려하는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 이 점만 개선한다면 한국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더욱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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