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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적 학습’을 버려라

신동엽 | 35호 (2009년 6월 Issue 2)
인과관계 모호성과 벤치마킹 열풍
노련한 경영자나 세계적 경영학자 모두 풀지 못한 난제가 있다. 기업 성과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뭐냐는 것이다. 대규모 표본과 극도로 정교한 통계 분석을 사용한 과학적 연구로도 구체적 성과 창출 요인을 규명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기업 성과가 한 가지 요인이 아닌 수많은 요인들과 이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복잡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전략, 구조, 제도, 시스템, 기술, 역량, 자원, 문화, 외부 환경 등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무수한 요인 가운데 하나만 잘못돼도 기업은 위기에 빠진다. 반대로 어떤 때는 다른 요인들이 모두 엉망이어도 한 가지만 잘되면 운 좋게 높은 성과를 내기도 한다. 더욱이 이런 요인들은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성과를 결정하므로, 개별 요인들이 모두 우수해도 이들 간 ‘적합성(fit·alignment)’이 낮으면 높은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즉 기업 성과와 그 결정 요인들 사이에는 높은 ‘인과관계 모호성(causal ambiguity)’이 존재한다. 자기 자신의 성과 창출 메커니즘을 파악하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다른 기업들의 성과 요인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업들의 성공 공식 베끼기는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best practice benchmarking)’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들 사이에서 열병처럼 시도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의 경영 방식을 모방하거나, 첨단 혁신 기법(fad)을 따라 하는 벤치마킹이 실제로 성과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러나 어떤 초우량 기업이 새로운 혁신 기법을 채택했다고 알려지면 다른 기업들도 앞다퉈 벤치마킹 대열에 합류한다. 이런 경향은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지만 그 정도에 있어 우리나라 기업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지식 경영, 팀제, 연봉제, 6시그마 등 새로운 베스트 프랙티스가 나타날 때마다 호들갑을 떨어댄다.
 
미신적 학습으로서의 벤치마킹
조직 학습(organizational learning) 이론을 정립한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거장 제임스 마치 교수는 ‘미신적 학습(superstitious learning)’이라는 독창적 이론으로 벤치마킹 현상을 설명했다. 미신에 빠지면 실제로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 우연히 동시에 일어나도 마치 상관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처럼 미신적 학습은 기업 성과와 요인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착각해, 실제로는 성과 창출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무익한 행동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현상을 말한다. 어떤 혁신 기법이 베스트 프랙티스로 알려지면, 실제로는 성과에 기여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활용되고 또 다른 기업들에 의해 모방된다. 따라서 미신적 학습에 매달리면 엄청난 경영 자원을 낭비할 수 있다.
 
미신적 학습은 기업 내부에서 과거의 성공 공식을 반복 활용할 때에도 나타나지만,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다른 기업들의 성공 공식을 모방할 때 나타난다. 다른 기업의 내부 프로세스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 표면적 관찰만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다음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 대상은 주로 성과 창출에 성공한 기업들이기 때문에 ‘생존 기업 중심 왜곡(survivors’ bias)’ 오류에 빠지기 쉽다. 즉 대부분의 경영학 책자나 경영 잡지, 언론 등을 통해 우리는 매일 GE나 애플, 도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의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듣는다. 이들과 경쟁하다 사라져간 대다수 기업들의 역사는 전혀 접할 기회가 없다. 만일 성공 기업들의 전략이나 시스템 등이 성과 창출의 기반이었다면, 실패한 기업들은 그런 베스트 프랙티스를 보유하지 않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연구 결과, 성공한 기업뿐만 아니라 실패한 기업 대다수도 베스트 프랙티스로 알려진 기법들을 활용하고 있다.
 
둘째, 예외적으로 고성과를 창출한 초우량 기업이라도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는 않다. 초우량 기업들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면은 뛰어나지만 다른 많은 면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가진 사례가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치마킹 사고에 빠진 기업들은 창출된 성과만 보고 그 기업의 모든 면을 배우려는 우를 범한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 스티브 잡스 등이 낙제생이었다고 해서 위대한 과학자나 발명왕, 창조적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위해 학교에서 낙제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셋째, 어떤 경영 방식이 실제로 성과 창출에 기여한 베스트 프랙티스가 맞다 해도, 상황이 변해 환경과의 ‘적합성’이 붕괴되면 과거의 성공 공식이 오히려 약점이 된다. 벤치마킹 광풍을 일으킨 톰 피터스가 저서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에서 완벽한 기업의 예로 거론했던 사례 중 절반 이상이 불과 10여 년 만에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바로 얼마 전 파산보호 신청을 한 GM은 1930년대 시장 세분화 및 다각화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부제 구조와 사업부별 성과주의를 도입했다. GM은 이를 토대로 당시 막강한 경쟁자 포드를 무너뜨렸고, 이 경영 방식은 당연히 베스트 프랙티스가 됐다. 하지만 일본이나 유럽의 값싼 소형차들이 시장에 몰려들자 GM의 사업부제 및 경쟁 시스템 등은 오히려 성과 향상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한때의 베스트 프랙티스가 나중에는 GM 붕괴의 결정적 요인이 됐던 셈이다. 모든 환경에서 성과를 창출하는, 진정한 의미의 베스트 프랙티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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