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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리더가 : 배재훈 HMM 전(前) 대표이사

“내가 잘 몰라서”… 직원에게 이렇게 다가가라

Article at a Glance

배재훈 HMM 전 대표가 9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던 회사를 흑자 전환시키며 화려하게 부활시킬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고객 서비스 마인드다. 그는 LG전자, 범한판토스 등 다양한 회사에서 리더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운업체인 HMM에 고객 서비스 마인드를 이식했다. 또한 격식과 위계를 내려놓고 지시하기보다 경청하기를 앞세우는 ‘코칭 리더십’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애자일 조직 문화 도입 등 보수적인 해운업계에 혁신의 방향성을 제시한 점 역시 조직원의 사기를 높이고 성장하는 조직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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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과 2021년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장 화제가 된 종목은 단연 ‘HMM(옛 현대상선)’이었다. 2020년 초 3700원에 불과했던 HMM 주가는 약 1년 반 만인 2021년 5월28일, 종가 기준 5만1100원을 기록하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1년 반 사이 주가가 10배 넘게 폭등한 것이다. 이 같은 주가 급등에 국내 투자자들은 HMM을 두고 미국 테슬라에 빗댄 ‘흠슬라’라고 부르며 열광했다.

HMM 주가 급등은 실적 개선 덕분이었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9년간 영업 적자를 기록하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던 회사는 2020년부터 컨테이너 시황 개선과 함께 영업이익 9810억 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부활했다. 또한 2021년에는 영업이익이 7조3775억 원까지 뛰어오르며 9년여간의 손실을 1년 만에 만회했다. 이런 드라마틱한 턴어라운드를 이끌어 낸 이는 2019년 3월부터 회사를 맡은 배재훈 HMM 전(前) 대표이사다.

배 대표는 2019년 HMM 대표이사로 부임하면서 장기화된 영업 적자로 사기가 떨어진 회사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해운 산업 재건’이라는 공동의 목표 의식을 전파하기 위해 취임 직후부터 직급·부서별 간담회 실시, 국내외 지점·사무소 방문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월례조회도 신설해 회사 실적 및 주요 현안을 직원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선사들과 적극 만나 스킨십을 강화하고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2019년에는 HMM의 숙원 사업이었던 해운 동맹 ‘디 얼라이언스’ 정회원 가입에 성공해 경쟁력 강화와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배 대표는 HMM에 화주 입장에서 업을 바라보는 이른바 ‘고객 중심 마인드세트’를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위한 디지털 기술 및 애자일 조직 문화 도입 등 기존 해운업계에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들을 끊임없이 추진했다.

배 대표의 이 같은 과감한 시도는 지난 40여 년간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 덕분이다. 배 대표는 LG상사(현 LX International), LG반도체, LG전자 등을 거치며 글로벌 세일즈 및 마케팅 노하우를 체득했다. 특히 LG전자 근무 시절에는 ‘초콜릿폰’ 글로벌 마케팅을 진두지휘해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LG전자에서 고객 서비스 마인드와 글로벌 감각을 키운 배 사장은 2010년부터는 범한판토스(현 LX판토스) CEO로 취임해 재임 기간 동안 글로벌 시장 개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다. 이 같은 성공 경험과 경영 노하우가 HMM에 이식되면서 턴어라운드가 가능했다는 평가다.

배 대표는 2022년 3월 임기를 마치고 HMM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바쁘게 활동 중이다. 한국코칭협회 수석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오랜 기간 CEO로 일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CEO 코칭을 통해 다른 CEO들에게 전파하는 것은 물론 지난해 11월 출간한 저서 『B2B 경영, 훅하고 딜하라』 홍보를 위해 유튜브 촬영, 기업 강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 창업가를 대상으로 한 멘토링에도 나서고 있다. “‘최소한의 개입’과 ‘최대한의 자율’을 보장해야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배재훈 전 HMM 대표를 DBR이 만나 리더십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해운, 물류, 휴대폰, 반도체 등의 업종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샐러리맨으로서 다양한 기회를 경험했다. 여러 업종에서 공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항상 잘 안되는 사업을 맡게 됐던 것 같다. 안 되던 것을 살려 놓으면 또 다른 잘 안되는 곳으로 가게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됐다. 그런데 오히려 잘 안되는 비즈니스를 맡으면서 도전 의식이 생겼다. 지금 잘되고 있는 사업은 내가 가서 더 잘되게 하기 어려울 수 있다. 오히려 잘 안되는 사업은 어려움은 따르겠지만 좋아질 여지가 많아 기회일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임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HMM도 사실 대표이사 제안이 왔을 때 회사 상황이 최악이었다. 2015년 이후 20분기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해운 회사임에도 대형 선박이 없어 경쟁사들에 비해 원가 경쟁력이 떨어졌다. 주변에서 만류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더 나빠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LG반도체에 있으면서 사이클이 있는 산업을 경험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해운도 대표적으로 사이클이 있는 산업이다. HMM을 맡을 당시 해운업계의 사이클은 저점을 지나 다시 상향되고 있었다. 그래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다. 또 해운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 아닌가. 해운 산업을 살리는 데 내가 일조할 수 있다면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부임하던 시기, 해운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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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들었던 이야기다. 처음에 엔지니어로 있다 종합상사로 이직했을 때도 사람들은 내게 “당신은 상사업을 잘 모른다”고 했다. 반도체로 옮기니 반도체 전문가가 아니라고 무시하기도 했다. HMM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나는 해운은 몰랐지만 그전에 이미 6년 이상 물류 회사(범한판토스) CEO를 경험했다. 물류는 육해공을 다 다룬다. 특히 화주 입장에서 해운 산업을 바라볼 수 있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직원으로 간다면 해운에 대한 전문성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나는 CEO로 근무하는 게 아닌가. 해운이라는 개별 분야는 잘 모를 수 있어도 경영 경험과 이해도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경영은 ‘블랙박스에 시간과 돈과 사람을 투입해 아웃풋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어떤 자원과 사람을 어떤 비즈니스에 얼마나 투입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경영이다. 다양한 업종에서 일했지만 기본적으로 CEO의 일은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성 논란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 HMM 대표 자리를 맡았을 때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일단 임직원들의 분위기가 극도로 침체된 것이 눈에 보였다. 처음 회사에 부임했을 때는 직원들이 나를 피하는 것 같았고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함께 안 타려고 했다. 그땐 ‘어떻게 사기를 올릴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사실 적자투성이 회사에서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고심 끝에 오픈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려고 노력했다. ‘해운 산업 재건’이라는 공동의 목표 의식을 전파하기 위해 팀 단위 간담회, 월례 조회 등을 활용해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과 대화를 지속했다. 간담회 등을 하면서 “나는 도깨비가 아니다. 잡아먹지 않으니 무서워 할 필요 없다. 하지만 도깨비가 아니기 때문에 도깨비방망이도 없다. 나 혼자 뚝딱해서 회사를 정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힘을 합쳐야 회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하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특히 먼저 나서서 “이렇게 하자”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좋은 아이디어 없나?”고 묻는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또 대면으로는 불만을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회사의 각 직급이나 연차별 대표를 정해서 주변의 의견을 익명으로 받아서 경영기획실을 통해 전달받고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해 주고,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피드백을 주는 노력을 했다. 업무 프로세스상 불필요한 절차나 서류 작업을 줄여주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SWAT실(Strategic Work Activity TF)을 신설해 비용 절감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불확실한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HMM의 턴어라운드 원인을 설명할 때 ‘디 얼라이언스’ 1 가입을 첫손에 꼽는다.

2019년 당시 상황을 보면 HMM은 대형 선박이 없어 해상 운송 시 원가 구조가 경쟁사에 비해 좋지 않았다. 간단히 비유하면 부산에서 서울로 생선 500상자를 보낼 때 다른 경쟁사들은 4t 트럭 한 대로 보내는데 우리는 용달차 5대를 투입해 생선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용달차 1대가 4t 트럭보다 기름을 5분의 1만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우리는 유류비를 경쟁사보다 훨씬 더 많이 쓰고 있었다. 큰 배가 없다 보니 인건비에서도 낭비가 심했다. 초대형 선박이라 할 수 있는 2만4000TEU 선박에 보통 24~25명 정도가 승선하는데 8000TEU급도 20명 정도는 탄다. 작은 배라고 승선 인원이 크게 줄지 않는 구조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큰 배가 없는 회사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돈을 못 버는 구조였다. 그런데 2018년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2만4000TEU 12척, 1만6000TEU 8척 등 총 20척의 초대형선이 발주됐고 이 배들이 2020년부터 운항에 나서면서 원가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또한 자체 보유한 대형 선박 덕분에 디 얼라이언스 가입도 가능했다. 디 얼라이언스 정회원 가입을 통해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의 신뢰 확보와 비용 구조 개선, 서비스 항로 다변화 등이 가능해진 것이다.

보수적인 해운업계에 디지털 전환과 애자일 조직 문화 도입 등을 시도하신 걸로도 유명한데.

해운업계 대표 이전에 물류업계에 오래 몸담다 보니 해운업계에 필요한 것이 고객 중심 사고와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조선업계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저비용 고효율 선박 제조 등이 대표적 예다. 해운업계는 상대적으로 이런 혁신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ICT를 활용한 오퍼레이션상 코스트 절감이 필요했다. 특히 해운 회사들은 여전히 화주 입장을 세세히 고려하지 않기에 물건이 언제,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화주들은 내 컨테이너가 어디를 지나서, 언제 목적지에 입항하는지, 언제 겐트리 크레인(운반, 하역 장비)이 내 화물을 내려 주는지 등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이 정보를 제때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화주들은 다양한 의사결정을 통해 물류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그래서 ICT를 활용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해 보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해운업계 역시 혁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나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한다. 애자일 조직 문화 도입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운 회사의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고자 시도한 것이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재량의 범위를 확대해 줌으로써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 속에서 각자 알아서 결정을 하도록 위임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애자일 조직 문화 도입을 추진한 배경이다. 물론 성공했다고 자평하기는 어렵다. 임기 내 시도했던 디지털 전환이나 조직 문화 개선 활동 중 일부는 내부 반발로 속도 조절을 하거나 포기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고객 지향과 유연성의 중요성을 조직 내에 심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개입을 줄이고 자율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인상적이다.

기존에는 규칙이나 행동 강령 등 철저한 관리하에 구성원들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지시받은 업무만 수행했다. 하지만 변화된 환경에서는 구성원들에게 최대의 자율을 부여할 때 기업이 불확실한 환경에 보다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세세한 지시나 통제가 필요 없는 최고 인재들을 키워 내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미션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각자가 업무 과정에서 추구해야 할 기업 비전과 회사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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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일찍부터 리더가 됐는데, 본인의 리더십 스타일을 평가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리더는 딱히 바쁘지도 않고 특별히 무엇을 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회사는 잘 돌아가게 하는 사람이다. 노자가 이야기한 ‘유지(有之)의 리더’다. 다른 말로 하면 백조 같은 리더가 좋은 리더다. 수면 위 백조는 평화롭고 노는 것 같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나. 조직에서 리더가 수면 위 백조처럼 보이려면 업무의 프로세스가 잘 구축돼 있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선별해 잘 앉혀야 하고, 이 인재들에게 권한을 잘 위임해 줘야 가능하다. 또한 위임이 방임이 되지 않게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피드백이라고 하면 리더들은 지적하고 조언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드백에는 인정이나 칭찬도 포함된다. 업무를 위임한 경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일이 잘되는지 살펴보고 적절한 피드백을 해줘야 한다. 많은 리더가 너무 많은 일을 직접 챙기려고 하고 권한 위임을 하지 않는다. 또한 겉으로 권한 위임을 한다고 하고 부하 직원을 믿고 맡기지 못한다. 경영학자인 스티븐 코비가 설명한 ‘시간 관리 사사분면’이 있다. (그림 1) 이 사사분면은 시급성과 중요성으로 일을 나누는데 많은 리더가 시급성에 쫓겨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덜 중요하지만 급한 일(4사분면)에 너무 많은 힘을 쓴다. 이 4사분면은 무조건 위임을 해야 하는 일이다. 리더가 이런 일까지 신경 쓰고 챙기면 그것이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다.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리더 아래서는 직원이 성장하지 못한다. 리더는 지금 당장의 시급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회사에 중요한 일, 즉 2사분면의 일을 챙겨야 하는 사람이다. 리더들이 입버릇처럼 바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4사분면에 속하는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다. 이 일을 아래로 위임하고 기업의 미래를 고민하고 전략을 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리더로서의 강점은 무엇인가?

스스로 말하기는 어렵다. 같이 일해 본 사람들 중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하드 스킬 외에도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을 느끼고 이를 배양하려고 애썼다. 적절한 유머를 동반해 대화하고 권위를 내려놓고 진정성을 갖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달변가는 아니지만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초한지』의 두 영웅 항우와 유방 사례를 보면서 항상 ‘경청’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항우는 명장 항연과 항량을 조부와 숙부로 둔 초나라의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 반면 유방은 강소성 패현(沛縣)의 평범한 집안 자손이었다. 하지만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유방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항우와 유방의 대화법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항우가 주변을 향해 자주 쓰던 문장은 “어떠냐(하여·何如)?”였다. 즉 자신의 기량이 어떠냐는 과시하는 말투였다. 반면 유방은 “어떻게 하지(여하·如何)?”였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의견을 높이는 태도다. 작은 차이지만 전혀 다른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항상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의 생각을 묻고 경청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직 생활 중에 박사 학위와 코칭 자격증을 따는 등 자기 계발도 게을리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조직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론적 무장의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더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손에서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LG전자에서 임원으로 있으면서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의 컨설팅을 받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경험들도 학업의 필요성을 키웠다. 조직 생활을 하면서 학업을 놓지 않은 덕에 범한판토스를 떠난 후 우송대에서 교수 생활도 할 수 있었다. 코칭 자격증은 우송대 재직 시절 취득했다. 당시 재단 이사장으로부터 학생들 대상으로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 강의안을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떤 내용으로 수업을 할까 고민하다가 사회생활하면서 코칭을 받았던 내용들을 떠올리며 강의안을 만들었다. 이때 느낀 것이 ‘대인 관계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학습 자료들이 외국 중심이라 한국 상황에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례로 이스라엘의 ‘후츠파’는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때로는 뻔뻔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밝히라는 것인데 대학생들에게 취업해서 회사에서 이렇게 행동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한국 정서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코칭을 활용하기로 하고 이를 공부하면서 강의안을 개발했고 기왕 수업을 하는 김에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이수 자격증을 주면 어떨까 생각해 한국코칭학회에 요청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진전되고 보니 정작 가르치는 나는 무자격자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한국코칭협회 자격증을 따게 됐다. 학위도 그렇고, 코칭 자격증도 그렇고 당시에는 따기 힘들었지만 경력 연장에는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코칭을 할 때도 리더들에게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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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직장인들은 회사에서의 삶과 개인의 삶을 분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회사에서 빠르게 승진을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직장인들이 많은데.

직장 생활도 결국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상한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직장 생활에 너무 몰두해 버리면 그 자체가 삶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변화는 당연하다. 과거에는 직장의 의미가 지금보다 더 컸다. 평생직장이 당연했고 회사가 나의 삶을 책임져 줬다. 또한 과거에는 전반적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지금은 어떤가.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먹고 잘산다. 더 이상 회사에 목숨 걸지 않는다. 결국 가치관이 달라진 것이다.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먹고살 만한 세상이 됐다. 굳이 내가 승진하지 않아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평생 먹고사는 데 어려움이 없는 시대다. 직원들의 가치관 변화를 조직이 인정해야 한다. 일례로 내 사위는 한국인이지만 미군에 들어가 육군 상사로 복무 중이다. 예전 같으면 군대에서 빠르게 승진하기 위해 장교가 되려고 했겠지만 사위는 장교보다는 부사관으로 오래 일하고 싶어 한다. 상대적으로 책임이 덜해 가족들과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선 이상하지만 이게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이다.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 역시 관점을 바꿔야 한다. 단순히 급여 외에도 직원들이 만족할 만한 근무 환경을 조성해 직원들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뚜렷한 비전을 바탕으로 직원들이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그럼에도 젊은 직장인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것은 최소한 돈을 받고 일하면 그 정도의 값어치는 해야 한다는 것, 동료와 리더를 ‘존경’까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예의는 차려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치로서 요즘 같은 경기 침체기, 후배 CEO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일단 자기 임기 내 모든 것을 해내겠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조언하고 싶다. 기업은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내 임기 내에 무리해서 목표한 바를 다 이루겠다고 하다 보면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나도 HMM 대표를 지내면서 추진했던 다양한 시도 중 상당수는 저항에 부딪쳐 속도 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 경영은 속도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 회사가 오랜 기간 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지 시간을 정해놓고 무리하게 추진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 또 하나 많은 리더가 간과하는 것이 후계자를 키우는 것이다. 경영자라면 후계자를 키워야 한다. 뜻이 같은 사람, 즉 ‘동지(同志)’를 키워야 한다. 그러면 내가 임기 내에 못한 일을 동지가 이어서 해나갈 수 있지 않겠나. 하지만 우리 경영자들은 동지 키우기를 두려워한다. 동지가 결국 경쟁자가 돼서 내 자리를 빼앗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기업이 지속성을 갖고 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없다. 후계자를 키우고, 권한을 위임하고, 성장할 기회를 주는 리더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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