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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날씨에서 핵심 역량 찾은 샐러드 플랫폼 ‘팜에이트(Farm8)’

시장•기술 피벗전략 시도하되
정체성 지키고 생산성 개선 힘써야

이규열 | 316호 (2021년 0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팜에이트(Farm8)’는 국내 샐러드 시장의 퍼스트 무버이자 글로벌 스마트팜 설비 시장의 패스트 팔로워이다. 여름 악천후에도 안정적으로 샐러드를 재배하기 위해 도입한 스마트팜이 팜에이트의 핵심 역량이 됐다. 팜에이트는 작물별 맞춤 레서피를 개발해 재배 원가를 낮췄고, ‘오버스펙’인 부품들을 개선해 설비 비용을 절감했다. 지하철 내 스마트팜인 ‘메트로팜’ 등 신선한 정부 사업을 진행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설비를 제공한 농장과 저렴한 가격에 계약 재배를 맺거나 스마트팜 소프트웨어의 구독료를 받는 등 ‘샐러드 플랫폼’의 가치사슬 내 사업 모델을 혁신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이 역사적으로 손꼽힐 투자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가 올 1월 피투자사들에 보낸 연례 서한의 내용이다. 기후변화가 투자사를 비롯한 기업들에 엄청난 투자 및 사업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의미다.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선 기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에너지, 건축, 바이오, 헬스케어, 농업 등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적응의 핵심으로 꼽히는 산업의 기술들은 개발 및 사용에 드는 비용이 높아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최근 그의 저서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탄소 제로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더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그린 프리미엄(green premium)’이란 용어로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통 에너지 대신 비싼 친환경 미래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돈이 곧 그린 프리미엄이다.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21년 3, 4월 호 인터뷰에서 게이츠는 “탄소 배출 제로 달성을 위한 핵심 변수는 그린 프리미엄을 얼마나 낮추는가에 달렸다”라며 그린 프리미엄 절감을 위한 과학기술의 녹색 혁신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대기업도, IT 공룡도 아닌 농업회사법인이 기후변화를 기회 삼아 남들보다 먼저 혁신 기술을 도입하고 상용화하는 수준까지 비용을 낮춘 기업도 있다. 내년 상장을 앞둔 ‘팜에이트(Farm8)’다. 이 회사가 글로벌에서 스마트팜 시장의 전통 강자들을 따돌리고, 국내에서 샐러드 시장을 선점하는 데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기후변화라는 인류 공통의 위기를 새로운 사업 모델의 기회로 만든 사례로 팜에이트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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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과 사업성, 모두 인정받은 예비 유니콘

샐러드 작물을 재배•가공•유통하는 팜에이트는 2010년 일본에서 스마트팜의 일종인 수직형 농장 설비를 수입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수직형 농장 분야에서 한국보다 30년 앞선 일본 업체들보다 2.5배 이상 저렴한 수준까지 설비 비용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작년에는 일본 업체에 설비를 역수출했고, 중동 시장을 겨냥한 설비 판매 입찰에서 쟁쟁한 글로벌 업체들을 따돌리고 계약을 따냈다. 가격 경쟁력과 품질을 인정받은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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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팜과 수직형 농장

스마트팜은 기존 농법에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ICT와 로봇 기술 등을 접목한 농장이다. 비닐하우스로 알려진 온실이든, 실내든 첨단 기술을 통한 과학적 관리가 이뤄진다면 스마트팜으로 분류된다.

기후변화 이슈가 심각해지면서 스마트팜은 식량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기후 위기 적응 분야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2020년 352조 원이었고, 2022년에는 450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직형 농장은 스마트팜의 한 종류로, 재배 선반을 층층이 쌓아 올린 실내형 농장이다. 태양광 대신 인공광인 LED를 활용한다. 태양광의 파장과 유사한 분홍색 LED 광원에는 광합성에 필요한 청색광과 적색광이 섞여 있다. 효율적인 공간 활용으로 기존 농업보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약 40배 높다. 층수를 높이거나 첨단 기술을 도입해 더욱 효율적인 관리를 할 수 있게 되면 생산성은 40배 이상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196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수직형 농장이 개발됐고, 수직형 농장을 부르는 방법도 국가별로 다르다. 수직형 농장(vertical farm)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식물 공장(plant factory)은 일본에서 주로 쓰는 명칭이다.

시장 조사 기관인 그린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수직형 농장의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약 25억1000만 달러(약 2조9400억 원)이고, 연평균 20% 넘게 성장해 2025년에는 약 99억6000만 달러(약 11조65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팜에이트의 매출 중 설비 판매에서 나오는 비중은 13%뿐이다. 나머지 87%는 샐러드용 채소 재배 및 판매에서 나온다. 매일 재배한 양상추, 로메인, 파프리카 등 150종의 채소 20∼30톤을 샐러드로 만들어 롯데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마트와 CU, GS25와 같은 편의점, 웰스토리, 아워홈 같은 급식업체까지 다양한 채널에 유통하고 있다. 서브웨이, 버거킹에 납품되는 양상추도 팜에이트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양을 공급하고 있다. 쿠팡에서는 대기업을 제치고 샐러드 판매 1위를 달성했다. 실내에서 수경 재배를 하기 때문에 이상기후가 발생해도 안정적으로 작물 재배를 할 수 있고, 수직형 농장 구조와 ICT를 활용한 과학적 관리로 노지보다 40배 이상 생산성이 높다는 점이 인기 비결이다. 또한 대기오염이나 토지오염으로부터도 안전하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건강한 음식 섭취를 중시하는 샐러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팜에이트는 최근 들어 스마트팜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강대현 팜에이트 대표는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이 ‘샐러드 플랫폼’임을 강조했다. 강 대표는 “샐러드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은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스마트팜 기술 역시 샐러드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수단이다”라고 말했다.

팜에이트는 시장 수익성을 기준으로 설비와 재배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막대한 노력을 들였다. 그 결과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가 기술성과 사업성을 검토해 유니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 15개를 선정한 ‘예비 유니콘 특별보증지원기업’ 중 하나로 선발됐다. 농업 분야에서는 팜에이트가 최초이며 ‘직방’ 등이 함께 선정됐다. 네덜란드의 한 종자 기업으로부터 ‘세계 10대 스마트팜’이란 찬사를 받는 등 국제적 인지도도 높여가고 있다.

극변하는 기후, 핵심 역량으로 스마트팜 도입

팜에이트가 2004년, ‘미래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될 당시에는 웰빙 열풍에 힘입어 붐이 일었던 새싹 채소가 핵심 상품이었다. 미국에서 실내 수경 재배 설비 10대를 들여와 새싹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당시 새싹 채소를 납품하는 곳이 많지 않다 보니 대형마트,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은 재배 업체와 독점 계약을 맺기 위해 애썼다. 그 덕분에 초창기 작은 규모임에도 어렵지 않게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싹 채소 시장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먹는 채소인 만큼 맛이 덜하다는 단점이 있었고 소비자들의 관심도 조금씩 멀어져갔다. 2006년 이후 새싹 채소 시장은 확대되지 않았고, 팜에이트 역시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했다.

그때 강 대표의 눈길을 끈 건 마트에서 새싹 채소 옆에 진열돼 있던 샐러드였다. 당시 샐러드 시장에는 경쟁 업체가 없었다. 대기업 식품 업체들 중 일부가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직접 재배는 하지 않고 가공만 했다. 재배 노하우를 갖춘 팜에이트는 원물 수급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배부터 가공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하면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오염을 줄일 수 있고, 새싹 채소 연관 품목인 만큼 기존 공급망을 활용하는 것도 용이해 보였다. 또한 샐러드는 새싹 채소에 비해 품목이 다양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쉬워 보였다. 현재 팜에이트의 주력 상품들도 야끼니꾸 불고기 샐러드, 로스트비프 샐러드, 리코타 치즈 샐러드 등 맛의 선택폭을 넓힌 ‘믹스 샐러드’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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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본격적으로 샐러드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예상과 달리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농산물인 새싹 채소는 농림축산식품부 관할 상품이었지만 식품으로 규정되는 샐러드는 식품의약안전처 관할이었다. 사업에 적용되는 제도상의 기준들이 완전히 달랐다. 특히 샐러드는 비가열 생식품이라서 위생 기준이 더 까다롭다. 위생적인 전 처리 과정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슈는 기후에 있었다. 봄과 가을에는 비교적 작물들이 잘 자랐지만 여름이 문제였다. 폭염과 집중호우로 수급이 불가능할 정도로 생산량이 떨어진 적도 있었다. 여름이라고 샐러드 수요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사시사철 안정적으로, 정해진 양만큼의 샐러드를 공급해내야 했다. 이는 거래처의 신뢰 관계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강 대표는 “다른 농장에서 비싼 값에 작물을 구입해 거래처의 요구량을 맞추기도 했다”고 전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기후변동이 심해질 것이라는 건 당시에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2020년만 해도 장마가 길고 태풍도 잇따라 상륙해 채소 값이 많이 올랐다. 강원도 노지에서 양상추가 나와야 할 가을에도 여름의 악천후 영향으로 수확을 제때 할 수 없었다. 여름철마다 수급난에 시달릴 수는 없었기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강 대표는 새싹 채소가 그랬던 것처럼 기상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실내에서 샐러드 작물을 재배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찾아보던 중 수직형 농업에 대해 알게 됐다.

2010년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수직형 농장 시장의 선두 주자였던 ‘미라이’로부터 60평 규모의 설비를 들여왔다. 6억 원에 달해 당시 팜에이트에는 큰 투자였는데 설비 구입을 위한 협상 자체가 쉽지 않았다. 미라이는 재배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도 꺼려하는 눈치였다. 심지어 일본에서 주로 생산되는 작물과 팜에이트가 생산하려는 샐러드 작물이 달라 재배법 자체를 새로 개발해야 했다.

수익성을 위해 절감, 또 절감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재배 노하우를 쌓는 시기였다. 한번은 로메인, 양상추 등 작물들이 하루아침에 일제히 죽어버린 적이 있었다. 온도, 광 시간, 배양액 성분, 전기전도도(EC) 등 확인해볼 수 있는 모든 요인을 다 점검해봤지만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각종 논문을 뒤진 끝에 물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간신히 알아냈다. 일본보다 한국 수돗물의 염소 농도가 높은 게 문제였다. 국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수돗물의 염소 농도가 다르다. 물 속의 염소는 공기로 휘발돼 제거된다. 하루 동안 물을 받아 놓은 이후 사용했더니 문제가 해결됐다.

재배 노하우 개발에도 명확한 방향성이 있었다. 바로 재배 원가 절감이다. 당시 수직형 농장의 생산량만으로는 샐러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농가와 수확 이전에 사전 계약을 맺고 생산물을 인수하는 계약 재배를 체결했다. 당시에는 계약 재배로 작물을 구입하는 비용이 수직형 농장에서 재배하는 비용보다 3배 정도 더 저렴했다. 팜에이트는 계약 재배 가격 정도로 재배 원가를 맞출 수 있어야 수직형 농업의 손익분기점도 달성될 것으로 보고, 재배법을 개선해나갔다.

수확까지 걸리는 기간을 줄이고 토지당 중량을 늘려 나갔다. 동시에 작물 품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예컨대, 영양분이 잎끝까지 닿지 못해 잎의 끝이 말라 죽는 ‘팁 번(tip burn)’ 현상이 발생하면 작물 무게가 10g씩 떨어진다. 수경 재배에 맞는 종자도 따로 선별했고, 작물별 배양액 레서피도 개발했다.

현재까지 LED, 이산화탄소, 배양액, 기류, 온도, 습도 등 10가지 환경 변수를 고려해 약 100종의 작물 재배법을 보유하고 있다. 재배 가능한 작물도 로메인, 케일, 루콜라와 같은 샐러드 채소, 페퍼민트, 타임, 레몬밤과 같은 허브, 채심, 한련화와 같은 식용 화까지 다양하다.

마침내 2016년, 계약 재배 수준까지 재배 원가를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이보다도 재배 원가를 낮춰 국내 스마트팜 중 유일하게 흑자를 달성하는 업체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일반 농가에선 양상추를 1년에 두 번 수확할 수 있는 반면, 팜에이트의 스마트팜에선 9번까지 수확할 수 있다. 포기당 중량은 10년 전 60g보다 2배 높은 120g까지 늘었다. 작물별 맞춤 환경과 재배법이 현장에 일정하게 적용돼 영양가를 골고루 갖춘 작물이 균일한 품질로 생산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스마트팜 업체들의 사례를 찾아봐도 팜에이트 수준까지 재배 원가를 절감한 곳은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재배 시설의 규모를 확장하는 것도 필수였다. 지금도 스마트팜을 도입할 때 높은 초기 고정비용이 수익성의 장애물로 지적된다. 실제 선제적으로 60평을 운영해 보니 수익이 나지 않았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2014년 270평 규모까지 수직형 농장 시설을 늘렸다.

필요한 자금은 정부 지원 사업을 통해 일부 확보했다. 2010년, 미라이로부터 설비를 들여온 비슷한 시점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식물공장 시범 지원 사업’이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원으로 수직형 농장을 지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팜에이트는 지원서를 내지 않았다. 지원 규모가 50평대로 작아 수익성 확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설비 업체들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일괄적으로 단일 모델만이 제공됐다. 작물별로 재배법을 고안하는 데 집중하던 팜에이트에는 이 지원 사업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실제 사업에 참여한 10여 개의 업체가 현재는 모두 문을 닫고 말았다. 대신 팜에이트는 2012년, 1%대의 저리로 농업정책자금 20억 원가량을 대출받아 설비 확장을 위한 ‘총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국내에도 설비 업체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첫 도입 이후에는 미라이로부터 설비를 수입하지 않고 국내 업체들로부터 설비를 구입했다. 하지만 대규모로 시설을 구축하기엔 여전히 비용이 비쌌고, 업체들의 입김도 셌다. 팜에이트는 설비도 직접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재배의 전문성을 다지고 난 후 살펴보니 기존 설비에 과한 것들이 많았다. 태양광 패턴을 연구해 보니 기존 업체에서 사용하는 것만큼 비싼 LED 조명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 더 저렴한 제품으로 교체했다. 작물을 심는 선반에도 불필요하게 비싼 자재가 사용돼 합리적인 자재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팜에이트는 이처럼 ‘오버 스펙’인 부품들을 중심으로 설비 비용을 개선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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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고의 노력 끝에 처음에는 평당 3000만 원이 들던 설비 비용을 현재 평당 400만 원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저렴해진 설비비를 토대로 팜에이트는 현재 수직형 농장을 1200평(3960㎡)까지 확장했고, 향후 1만5000평(4만9500㎡)까지 넓히는 게 목표다.

2018년에는 ‘플랜티팜’이라는 수직형 농장 설비 전문 자회사를 설립했다.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 덕분에 설비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처음 팜에이트가 설비를 들여왔던 일본 시장 내 업체들도 오히려 팜에이트에 제작을 요청하는 게 더 저렴해졌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일본에 설비 7대를 수출했다. 올해에는 새로 개발한 평당(3.3㎡당) 200만 원대의 보급형 모델도 농가에 공급할 계획이다. 기존 모델의 철골 구조 대신 비닐하우스 형식으로 설계해 비용을 대폭 줄였다. 대신 추위나 더위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단열 소재를 보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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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에이트의 스마트팜 기술

팜에이트는 수직형 농장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팜 기술을 독자 개발하고 있으며 관련 산업재산권 15개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무인 농장 운영이 가능하지만 아직까지는 경제성과 효율성이 떨어져 인간과 로봇이 함께 일하고 있다. 재배 선반 128단에 어린잎 채소 15㎏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직원 0.5명이 필요하다.

생산 자동화 시스템 개발
원격 제어 시스템으로 작물별 자동 재배 및 맞춤 재배를 할 수 있다. 또한 재배 선반을 자동으로 이동시키는 로봇을 개발해 파종부터 수확까지 운영 과정을 자동화했다.

재배 환경 모니터링 및 원격 제어 시스템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배양액, 풍향, 풍속 등 재배 환경을 센서와 CCTV 같은 영상 장치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센서와 영상 장치로부터 받은 정보를 빅데이터화해서, 이를 바탕으로 관리 시스템이 재배 환경 최적화를 위한 명령을 내린다. 스마트폰, PC를 활용한 원격 제어도 가능하다.

고효율 LED 광원 개발
재배 선반 구석에 있는 작물까지 빛이 닿을 수 있도록 LED 소자 배열을 개선해 가장자리에 닿는 광원의 양을 49.4%에서 76.8%까지 개선했다. LED 냉각 기술을 개발해 LED 조명의 내구성도 50% 정도 향상시켰다.

공조 시스템
최하단층의 선반과 최상단층의 선반 사이의 기온 편차를 섭씨 1도 이내로 유지하는 기술을 보유 중이다. 또한 최적의 기류를 조성하는 시스템을 통해 이산화탄소 공급 효율을 극대화한다.

양액 공급 및 재처리 시스템
양액 농축액을 재배 매뉴얼에 맞게 자동 조제 및 공급한다. 사용 후 폐기되는 폐양액을 물과 비료로 분리해 재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해 재배 면적 1000㎡당 800만 원의 비료 대체 효과와 22만 원의 물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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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팜, 진실 혹은 의혹

사업 초창기에는 스마트팜을 통해 생산되는 생산량이 워낙 적다 보니 거래처와 소비자들 모두 스마트팜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소 낯선 시설에서 길러진 작물에 대한 우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을 기르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실내에서 물로 재배하는 수직형 농장은 농약도 사용하지 않고 토지 및 대기오염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실내에서 LED로 키운 작물이 온실에서 키운 것보다 호기성 세균이 10배 정도 적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굵직한 정부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마트팜 작물의 우수성과 팜에이트를 알릴 기회가 많아졌다. 2019년부터 서울시, 서울교통공사와 함께 지하철 내 유휴 공간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도역, 답십리역, 천안역, 을지로3가역, 충정로역 등 수도권 지하철 안에 스마트팜인 ‘메트로팜’을 지었다. 햇빛 하나 없는 지하에서 24시간 채소가 자라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이라는 특성상 지나가다 호기심을 갖고 둘러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함께 사업을 진행한 서울시를 통해서도 스마트팜 작물의 안정성과 팜에이트란 기업에 대한 소식이 대중들에게 전해졌다. BBC와 같은 유력 외신을 통해서도 메트로팜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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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직접 스마트팜을 체험해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팜아카데미’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시민들이 직접 작물을 수확하고, 먹어볼 수도 있다. 메트로팜은 수익성을 보고 시작한 사업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큰 홍보 효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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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컨테이너 형태의 스마트팜을 공급한 일도 크게 회자됐다. 기존의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실내형 농장에서는 상추와 같은 엽채류만 재배 가능했다. 하지만 10년 만에 팜에이트를 통해 교체되는 농장에서는 고추, 토마토, 오이, 호박 등 과채류까지 함께 재배할 수 있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됨에 따라 2019년에는 ‘신선함’이라는 이미지를 각인하기 위해 리브랜딩을 진행했다. 회사명을 미래원에서 팜에이트로 바꾼 것도 이때다. 당시는 미세먼지, 황사 등으로 식품 오염 문제와 유통 과정에서 발생되는 식품 안전 문제가 대두되던 때였다. 이에 따라 스마트팜이 제공할 수 있는 ‘신선함’이라는 가치를 강조하고자 했고, 로고도 싱그러운 느낌이 드는 청록색으로 제작했다. 팜에이트의 ‘에이트(8)’는 ‘무한대(∞)’로 보일 수도 있는데 매일 고객들의 식탁을 무한정 신선하게 혁신하자는 의미다.

샐러드 재배 업체에서 샐러드 플랫폼으로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식량 위기에 처할 인구가 약 2배가량(2억7000만 명)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 농업 전문가들이 식량 위기의 해법으로 농업의 디지털화를 꼽고 있어 스마트팜의 보급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또한 코로나19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집콕’으로 찐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 식사에 대한 수요도 증가해 샐러드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19년 대비 2020년 샐러드 매출은 롯데마트는 32.2%, 홈플러스는 42% 증가했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팜에이트 역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작년 매출액은 614억 원으로 재작년 대비 30% 증가했고, 올해는 47% 성장한 900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작년 전체 매출의 13%를 차지한 설비 매출을 82억 원에서 320억 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팜에이트는 단순 매출 성장뿐 아니라 재배 설비부터 샐러드 판매까지 모든 가치사슬에서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할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즉, 하나의 거대한 ‘샐러드 플랫폼’이 되는 게 팜에이트의 지향점이다.

설비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단순히 설비 수익만을 기대한 결과는 아니었다. 설비를 제공한 농장으로부터 작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게 팜에이트의 큰 그림이다. 아직까지는 자체 생산량만으로는 거래처의 주문량을 소화하기 어려워 계약 재배 작물을 들여오고 있다. 하지만 팜에이트가 설비를 공급한 스마트팜과 계약 재배를 맺으면 노지 농장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작물의 수급을 맞출 수 있다. 팜에이트의 노하우를 함께 전수해 재배 비용을 낮추면 팜에이트 역시 노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작물을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팜에이트 입장에서는 설비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시사철 일정한 양의 작물을 저렴하게 들여올 수 있고, 설비를 제공받은 농장 입장에서도 재배 노하우와 든든한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는 ‘윈윈(win-win)’ 모델이다.

설비에 필요한 스마트팜 기술을 옵션으로 구성해 판매할 수도 있다. 팜에이트 역시 연구소가 있어 스마트팜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량, 전기전도도 등 재배 환경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을 설비에 무상으로 탑재해왔다. 그러나 현재 개발 중인 빅데이터, AI, 로봇 기술 등 업체가 요구하는 설비와 기술을 함께 제공하고, 추가 설비 비용이나 소프트웨어 사용료를 받는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일본에 수출한 설비들도 업체의 요청에 따라 로봇을 탑재했다.

온라인으로도 최종 소비자들과 연결되기 위해 이커머스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015년 온라인 진출을 위해 자사 몰을 만들기도 했는데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다. 비슷한 때에 쿠팡과 마켓컬리 측으로부터 먼저 요청을 받고 입점했다. 당시에는 두 회사 모두 지금처럼 유통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때가 아니었으나 선제적인 투자의 의미로 입점을 결정했다. 결과적으로는 옳은 판단이었다. 5%도 안 되던 온라인 매출 비중이 현재 쿠팡과 마켓컬리를 중심으로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일본의 샐러드 선도 업체 데리까푸즈와는 기술을 교류하고 있다. 샐러드 가공 기계나 살균 소독 방법을 컨설팅받았고, 팜에이트의 작물 재배 노하우를 데리까푸즈에 전수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지만 양사 모두에게 필요한 소독수, 가공 기계, 위생용품을 대량으로 공동 구매해 비용을 아끼거나 해외에서 작물을 공동으로 납품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메트로팜을 중심으로는 도심형 농업 모델을 구축할 예정이다. 메트로팜에서 재배되고, 메트로팜의 자판기를 통해 판매되는 샐러드의 양이 현재는 많지 않지만 메트로팜은 향후 도심형 농업 모델의 생산•판매•물류 허브가 될 예정이다. 더불어 올해 중 가정용 미니 스마트팜도 출시할 계획이다.



DBR mini box III: Interview: 강대현 팜에이트 대표
“혁신 기술의 화려함에 매료돼선 안 돼… 나만의 시장을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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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는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팜에이트 본사에서 강대현 팜에이트 대표를 만나 스마트팜 시장과 전략에 대해 물었다. 강 대표는 첫 직장인 삼성생명 마케팅팀을 거쳐 VC(벤처캐피털)의 농업 분야 심사역으로 이직했다. 팜에이트의 전신인 ‘미래원’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던 그는 2005년 아예 이 회사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실사 도중 실내에서 새싹 채소가 5일 만에 자라 판매까지 되는 걸 보고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창업자인 박종위 현 팜에이트 회장과 투자를 논의하던 중 박 회장의 경영 철학에 크게 공감한 그는 회사 합류 이후 샐러드 시장 개척, 수직형 농장 도입을 이끌었다.

최근 정부 지원과 투자기관의 관심이 높아져 스마트팜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10년 전 팜에이트가 처음 일본으로부터 설비를 들여올 때와 현재의 비즈니스 환경은 매우 다르다. 현재 스마트팜은 투자 시장이 눈여겨보는 사업 중 하나다. 그만큼 아이디어만 있다면 엔젤 투자나 VC 등 외부의 투자를 보다 쉽게 유치할 수 있게 됐다.

가장 신경써야 할 점은?

명확한 하나의 콘셉트를 잡아야 한다. 자기만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하거나 집중하고자 하는 작물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수직형 농장과 스마트팜의 설비 비용이 높은 만큼 버섯, 인삼과 같은 고부가가치 작물을 중심으로 재배해야 수익성이 보장된다는 학계와 정부의 조언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국내 스마트팜 시장에서 뚜렷한 특수 작물 성공 사례가 나타나지 않아 누가 성공하고 실패할지 알 수 없다. 다만 남들이 모두 하는 기술과 작물은 한발 빠른 선도 기업의 뒤만 좇게 될 확률이 높다. 한 분야의 기술 또는 작물의 전문가가 돼야 시장을 이끌 수 있다.

농가와 대립하거나 반대로 협업한 사례가 있다면?

기술을 통한 농업의 발전만큼 농가와의 상생도 중요하다. 노지에서 생산량이 충분한 작물은 피하거나, 노지에서 재배가 어려운 계절에만 특정 작물을 재배하는 등 농가와의 직접 경쟁을 피하려고 한다.

계약 재배를 맺어 농가의 유통망 역할을 하기도 한다.최근 창업 상담을 요청하는 영농 후계자들도 많다. 이들이 더욱 재배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 혁신 기술의 화려한 외향에 끌려선 안 된다. 신선한 기술을 도입한다고 사업이 저절로 성공하지는 않는다. 재배법이 없으면 IT로도 농장을 관리할 수 없다. 스마트팜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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