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충전, 로마에서 배운다
Article at a Glance – HR, 인문학
로마인이 현대인에게 전하는 조직의 사기 진작을 위한 교훈 1. 조직의 근본가치를 정립해 자부심을 고취시켜라. 2. 물질적 토대를 다진 후 열정과 헌신을 요구하고 사기를 올려라. 3. 감성적 영역도 정신적 에너지의 중요한 원천이다. |
조직 성공의 필요조건 ‘하드파워’와 충분조건 ‘소프트파워’
조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두 가지 조건은 바로 물질적인 조건을 확보하는 것과 정신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다. 국가의 발전과 기업의 성장, 군대의 승리 등 모든 성과는 결국 먼저 물질적인 토대를 확보하고 조직원의 단결을 이끌어 사기를 높이는 리더십과 조직문화의 조합에 따라 결정된다. 전쟁을 앞둔 군대가 최소한의 무기와 병참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굴의 투지만으로 덤벼들면 패배와 헛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요행히 작은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전체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작은 전투에서 이겼다는 오만에 빠져 판단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또 충분한 무기와 병참을 확보해도 싸우겠다는 의지가 결여되면 백전백패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거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적 조건을 확보하고 동시에 조직원의 사기를 높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조직이 확보해야 하는 물적 조건을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하드 파워’라고 지칭한다면 사기와 정신력은 충분조건인 ‘소프트파워’라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점은 공통적이다.
이탈리아반도 중부의 조그만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가 정복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세계적인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든 배경(하드 파워)은 막강한 군사력이다. 로마군은 병참과 무기 등 물질적인 조건에서도 주변국보다 앞섰다. 게다가 자부심과 사기라는 소프트 파워에서도 오랜 기간 우위를 유지했고 ‘무적의 로마군단’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무적의 로마군단은 다른 국가들을 정복할 때는 물론 제국으로 발전한 이후에도 넓은 국경을 지키고 공동체의 안정을 유지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팍스 로마나(BC 1세기 말 제정(帝政)을 수립한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부터 5현제(五賢帝)시대까지 약 200년간 계속된 평화)의 근간이 됐다.
로마가 역사상 수없이 명멸했던 정복민족으로 끝나지 않고 유럽·아프리카·아시아에 걸쳐 다인종·다민족·다종교·다문화로 이뤄진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었던 기본 동력은 개방성 때문이었다. 민주정치를 표방했던 그리스인에게 시민이란 ‘피를 나눈 자’라는 혈연의 개념이었다. 반면 로마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뜻을 같이하는 자’라는 가치의 개념이었다. 로마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피부색, 출신지역 등에 따라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고 후천적으로 사람들이 공동체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시민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폈다.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포용해 상호 공존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형성된 개방정책은 로마의 권역이 확대될수록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는 로마가 폐쇄적인 승리자의 집단에 머무르지 않고 개방적인 리더십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로마군은 자부심으로 무장된 시민군
고대 서방 세계는 자신의 안전을 돈을 지불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용병제도가 보편적이었던 시대였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군사력도 돈으로 사는 시대였다. 그러나 로마의 시민군 제도는 병사들이 공동체와 가족을 위해 싸운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존 용병제도와는 완전히 달랐다. 여기에서 로마의 전통인 개방적인 시민권 정책은 지속적으로 시민의 숫자를 늘려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병사를 계속 증가시켰다.
기원전 8세기 왕정 초기에 편성된 로마 최초의 정식군대는 3개의 부족을 근간으로 삼았다. 부족들은 각각 1000명의 보병과 100명의 기병을 제공했다. 로마군은 초기부터 입대할 수 있는 자격을 로마시민으로 제한했다. 초기부터 시민군의 형태였다. 무산자는 소집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이는 재산이라고는 자식밖에 없는 사람이 전쟁터로 나가면 남은 가족의 생계가 곤란해졌기 때문이다. 기원전 6세기 중엽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왕 시대에 실시된 군제 개혁은 재산에 따라 시민을 6계급으로 나눠 재산이 많은 사람이 많은 병역의무를 지고 이에 상응하는 권리를 가진다는 개념을 정립했다. 세르비우스의 개혁은 로마군 편성의 기본 개념을 씨족이라는 혈연집단에서 빼내 공동체가 부여하는 시민권에 기반을 두도록 했다. 타고난 부족은 변함이 없지만 재산은 개인의 노력과 운에 따라 얼마든지 늘거나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군단의 편성 과정을 보면 시민동원 체제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매년 민회에서 35개 행정구역에 소속된 로마시민권 소유자 중 17∼60세의 남자를 모두 소집해 일정 기준에 따라 군대를 편성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로마시민은 17∼45세 28년 동안 현역 대상이었다. 평화가 계속돼도 최소한 3∼4번 정도 복무해야 했다. 전쟁 시기에는 소집 대상 병력 수가 늘어나 많으면 열 번 정도 복무했다. 시민들은 소집 대상이 되면 자신의 돈으로 무장해 생업을 중단하고 입대해야 하기 때문에 병역의무 자체가 커다란 부담이었다.
따라서 무산자를 비롯해 이런저런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은 시민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로마사회에서 존경을 받거나 공직을 수행하려면 군복무 경력이 필수적이었다. 병역은 시민의 명예로운 의무이자 당당한 투표권을 의미했다. 이러한 형태의 시민군 편성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병사의 자부심이었다. 시민으로 이뤄진 군대는 자신들의 공동체와 가족을 지킨다는 점에서 사기를 유지하는 게 용이했다. 이는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에게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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