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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의 리더십

말 잘듣는 '손발'은 많은데 '똑똑한 머리는'...

고준 | 70호 (2010년 12월 Issue 1)
 
 
 
요즘 삼성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실행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실행력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던 삼성이 아닌가? 최근 만난 다수의 삼성그룹 임원들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다. 삼성만이 아니다. LG, 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표기업의 임원 중에서도 실행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 기업들은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급성장했다. 한국 기업의 핵심역량으로 강한 실행력을 꼽는 이도 적지 않다. 추진력만큼은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한국 대기업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국 기업의 실행력이 퇴보하기 시작한 걸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실행에 대한 오해가 깨지고 있다. 한국기업의 강한 추진력은 엄격히 얘기하면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지 본래 목적했던 결과를 달성했느냐라는 실행의 본질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기업이 좋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빨리, 성실하게 실천했더라도 투입된 자원 대비 결과가 미미하다면 이를 성공적인 실행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실천이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본래 목표했던 결과, 또는 그 이상을 창출했다면 이를 성공적 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기업들은 실천에는 강하나, 실행에는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 글로벌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전략 수립과 실행의 엄청난 차이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맘만 먹으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기업 전략 전문가의 자문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실행은 온전히 기업의 몫일 수밖에 없다. 셋째, 한국 기업들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전략적 목표와 사업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복잡한 시장 환경 속에서 세계 최고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며, 이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한 차원 더 높은 실행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행의 성공 요소는 무엇인가?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그룹들이 내놓은 실행력 강화 방법론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실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리더십을 공통적으로 꼽고 있다. 같은 조직과 전략하에서도 최고경영자(CEO) 등 조직의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창출하는 결과가 판이할 수 있다는 경험적 가설에 근거한 것이다. 특히 기업에 있어 리더십 이슈야말로 중요한 전략적 과제의 실행을 앞두고 가장 우선적으로 선결돼야 하는 핵심사안이다.
 
성공적인 실행을 위한 리더십 공식
이곤젠더는 지금까지 전 세계 약 15만 명의 리더들을 직접 대면, 평가하면서 제록스의 앤 멀케이, 닛산의 카를로스 곤, 할리데이비슨의 반 빌즈와 같은 수많은 실행 전문가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창업, 성장, 변화 및 회생 등 다양한 전략과제의 실행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준 리더십은 적어도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성공적인 실행을 이끌어내는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장기적이고 치밀한 전략적 식견(Strategic perspective)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스스로 최대 잠재치를 달성하기 위한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난관을 뚫고 목표를 달성하는 강한 결과 지향성(Result-orientation)을 보였다. 또한 이들은 누구보다도 개인의 역량이 뛰어났지만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보다 높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협력과 조직참여(Collaboration & Influencing)를 이끌어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것이다.
 
 
 
1.전략적 식견 (Strategic Perspective)
이곤젠더의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 앤 멀케이와 카를로스 곤 등은 매우 높은 전략적 식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회사뿐 아니라 산업의 구조적 변화까지 고려한 장기적 전략을 수립했고, 시시각각 일어나는 단기적 해결 방안들조차도 회사의 장기적 비전에 어긋나지 않도록 고려하는 전략의 고수였다. 취임 초기 앤 멀케이가 현장의 소리에 집중한 것은 단지 조직에 감동을 주려고 한 것만은 아니었다. 회사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시간이 부족했던 그녀가 단시간 내에 시장 정보와 통찰력을 얻기 위해 생각해낸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수단이었다. 앤 멀케이는 본인의 현장 경험 및 현장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얻어진 정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회사의 명확한 중장기 사업 방향을 제시했고 이와 함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단기 실행 방안들을 조직에 제시함으로써 전사적 공감대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형성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리더들의 전략적 식견은 어떠한가? 여전히 단기적 시각에 치우쳐 있는 듯하다. 강한 추진력이라는 우리기업만의 독특한 명성이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 중심의 기업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최근 국내 대기업들 간에 외부 인재 확보라는 과제가 화두다. 이에 따라 각 계열사들은 앞다투어 헤드헌터를 불러들이거나 채용 전담 직원을 지정하는 등 실행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이를 주관하는 임원과 실무자 모두 이러한 인재 확보를 통해 회사가 얻고자 하는 궁극적이고 장기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채 이력서 상에 나타나는 표면적 조건만 까다롭게 따진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수한 인재일수록 기업이 자신을 고용함에 따라 목표하는 장기적인 목표와 전략에 주안점을 둔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재 확보에 대한 논의 초기단계부터 자사 전략에 대해 매우 세세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많은 경우 실적을 올리기 위해 채용 자체가 목표가 되고,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보다 차선을 선택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외부 인재 채용이라는 목표의 단기적 실천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조직의 전략에 맞춘 실행에는 실패한 셈이다.
 
단기 성과주의는 실행의 만기일을 중시하는 문화를 낳는다. 일부 기업에서는 목표 기간안에 일을 끝내기 위한 역산이 실행 계획 도출의 근간이 되는 식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벌어진다. 우리 기업에 영입된 많은 외국인 임원들이 이러한 한국 기업의 독특한 실행문화가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반면, 최근 국내 한 대기업이 대체 에너지 신규 사업 진출을 위해 해외 전문인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한국기업의 실행의 한계를 극복한 매우 전략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과 활용 방안 등이 사업의 장기 비전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5개년 실행 전략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업은 전략 실행을 위해 영입해야 할 인재의 유형과 규모를 1년 단위로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몇 개월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성공리에 영입했다. 이는 해당 산업 진출을 노리던 국내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이 2년 넘도록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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