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사고의 80% 이상은 ‘인적 요소’ 때문
(Human element)
복잡성 걷어내고 자기 과신 경계해야
Article at a Glance
2026년 초불확실성 시대의 생존은 비싼 보안 도구가 아닌 인간의 한계를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조직의 ‘리스크 인텔리전스’에 달려 있다. 2025년의 대형 보안 사고들은 막대한 기술 투자에도 불구하고 리더의 ‘인지 편향’이 어떻게 기업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기업이 최고의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도 사고를 막지 못하는 원인은 복잡성 편향, 과신 편향 등 경영진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8가지 심리적 기제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복잡성 제거(Reduce), 실패 상상(Imagine), 반론 제도화(Systemize), 실패 자산화(Knowledge)의 ‘R.I.S.K. 전략’이 필수적이다. 이제 보안은 CISO의 기술적 숙제가 아니라 CEO와 이사회가 주관해야 할 핵심 거버넌스이자 조직문화의 문제다.
2025년은 기업 역사상 가장 뼈아픈 해로 기록될 것이다. 상반기 SK텔레콤의 2300만 명 정보 유출에 이어 하반기 쿠팡의 3370만 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기업의 존립 기반인 ‘신뢰(Trust)’를 붕괴시켰다. 쿠팡은 연간 900억 원에 달하는 보안 예산을 집행하고 200명 이상의 전문 보안 인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첨단 방화벽이 무색하게도 해커가 침투한 경로는 방치된 API 키나 퇴사자 계정 같은 지극히 기초적인 관리 취약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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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투입(Input)이 안전이라는 산출(Output)을 보장하지 않는 ‘보안의 역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왜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조직에서 아마추어 같은 실수가 반복될까? 리스크 관리의 실패는 시스템의 결함이기 이전에 그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인지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지적했듯 복잡하고 불확실한 환경일수록 리더는 직관에 의존하며 이때 발생하는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이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버라이즌(Verizon) 보고서에 따르면 보안 사고의 80% 이상은 ‘인적 요소(Human Element)’에서 기인한다. 이는 피싱 메일을 클릭하는 것 같은 직원의 단순 실수뿐만 아니라 ‘우리는 안전하다’ ‘설마 우리에게 그런 일이 생기겠어?’라고 믿는 리더십의 착각을 포함한다. 이제 보안은 CISO(최고정보보호책임자)의 기술적 숙제를 넘어 CEO와 이사회가 주관해야 할 거버넌스와 의사결정, 조직문화의 문제가 됐다.
경영을 위기로 몰아넣는 8가지 인지 편향
경영 현장에서 인지 편향은 어떻게 기업의 눈을 가릴까? 보안과 관련한 글로벌 실패와 성공 사례들을 분석해 우리 기업에 주는 시사점을 도출해보자.
1. 전략적 비전의 맹점: 본질을 가리는 화려함
쿠팡의 경우 AI 탐지 시스템 등 복잡한 보안 레이어를 겹겹이 쌓았지만 정작 해커는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된 API 키와 테스트 서버라는 단순한 구멍을 이용했다. 화려한 복잡성이 단순한 취약점을 가려버린 것이다. 특히 쿠팡은 대만에서 최신 인증 기술인 ‘패스키(Passkey)’ 도입을 혁신 사례로 홍보했지만 정작 한국 내 레거시 환경에서는 접근 제어 관리가 최신 표준을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혁신에 취해 ‘디지털 취약점 점검 및 근본 조치’라는 기본을 놓친 결과다.
1) 복잡성 편향(Complexity Bias):
“복잡한 것이 더 안전하다는 착각”
경영자는 복잡한 문제에는 복잡한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시스템의 투명성을 떨어뜨려 리스크를 은폐시킨다. 마이크로소프트(MS)조차 2024년 다중인증(MFA)이 적용되지 않은 방치된 테스트 계정 하나 때문에 러시아 해킹 그룹(Midnight Blizzard)에 이메일 시스템을 뚫렸다. 거대한 시스템을 운영하느라 기본 통제를 놓친 대표적인 사례다.
전 세계적으로 3만 개 이상의 고객사를 둔 네트워크 관리 기업 솔라윈즈는 고도화된 보안 시스템을 자랑했지만 복잡하게 얽힌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공급망 틈새로 악성코드가 침투하는 것을 수개월간 감지하지 못했다. 시스템의 복잡성이 오히려 공격자의 완벽한 은신처가 된 셈이다.
반면 시스코(Cisco)는 2000년대 후반부터 모바일, 클라우드, 재택근무 등의 확산으로 회사 ‘방화벽’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졌음에 주목했다. 이른바 ‘경계 없는 네트워크(Borderless Network)’의 시대를 예견하고 보안의 핵심 지표를 ‘방어율’에서 ‘탐지 시간(Time-to-Detection, TTD)’으로 전환했다. 해커가 침투하는 것을 100% 막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대신 이들이 내부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시스코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위협 인텔리전스 조직인 탈로스(Talos)를 통해 매일 수십억 건의 트래픽을 분석하고 새로운 악성코드가 발견되면 즉시 전 세계 장비에 방어 코드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또한 레질링크(Resilinc) 같은 전문 솔루션을 도입해 자사의 1차 협력사뿐만 아니라 2차, 3차 협력사의 공장 위치와 생산 품목까지 지도화하고 24시간 가동되는 사고관리팀을 운영하며 전 세계의 뉴스, 지진 정보,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실제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시스코의 공급망 위기관리 팀은 40분 만에 위기를 감지하고 17분 만에 경영진 보고를 완료했다. 시스코는 ‘보이지 않는 위협은 관리할 수 없다’는 원칙하에 위협을 조기에 포착하고 신속하게 전파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회복탄력성을 증명했다.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또한 고도화된 해커(APT)의 침입을 100%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사이버 킬 체인(Cyber Kill Chain)’을 도입했다. 이는 보안을 난해한 기술이 아닌 공격자의 ‘7단계 행동 프로세스’로 단순화한다. 해커가 목적을 달성하려면 ① 타깃 탐색(정찰) ②공격 도구 제작(무기화) ③침투 경로 확보(전달) ④시스템 취약점 공략 ⑤악성 프로그램 설치 ⑥원격 조종 권한 획득(명령 및 제어) ⑦데이터 탈취 및 파괴라는 7단계를 순서대로 거쳐야 한다. 록히드마틴은 공격자는 이 7단계를 모두 성공해야 하지만 방어자는 그중 고리 하나만 끊어도 이길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탐지 및 차단 도구를 배치해 한 단계가 뚫려도 다음 단계에서 막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록히드마틴의 ‘사이버 킬 체인’은 막연하고 복잡한 위협을 단계별로 시각화함으로써 복잡성 편향을 극복한 사례다. ‘어디선가 뚫릴 수 있다’는 실패를 가정하고 공격의 연결고리를 끊는 단순한 원칙에 집중함으로써 방어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2) 혁신 편향 (Innovation Bias):
“편리함이라는 혁신에 취해 빗장을 풀다”
경영자가 ‘혁신 기업은 속도와 사용자 경험(UX)이 우선이라는 믿음 아래 보안을 성장의 걸림돌로 치부할 때 기본기가 등한시될 수 있다. 팬데믹 초기, 줌(Zoom)은 ‘혁신적인 연결’을 가능케 함으로써 일일 사용자 3억 명을 돌파했다. 그런데 당시 연결의 편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회의 비밀번호나 대기실 같은 기본적인 보안 기능을 ‘꺼둠(Off)’ 상태로 출시했다. 그 결과 외부인이 회의에 난입하는 ‘줌 폭격(Zoom-bombing)’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또한 ‘종단 간 암호화(E2EE)’를 구현했다고 홍보했으나 기술적으로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기도 했다. 혁신에 대한 강박이 보안이라는 기본기를 삼켜버린 사례다.
또 다른 예로 일본의 구글이라 불리는, 시가총액 120조 원 규모의 거대 플랫폼 기업인 리크루트홀딩스(Recruit Holdings) 산하 리크루트커리어(Recruit Career)는 2019년 리크나비(Rikunabi)라는 혁신적인 AI 서비스를 출시했다. 구직 학생의 웹사이트 열람 이력을 분석해 특정 학생이 기업의 입사 제안을 거절할 확률을 예측해 기업에 판매하는 서비스였다.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 비용을 줄이는 획기적인 ‘HR 기술(HR Tech)’이었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동의 없이 취직 의향이 읽히고 점수가 매겨지는 섬뜩한 경험이었다. 이는 곧 거센 사회적 비난을 받았고 리크루트는 창사 이래 가장 큰 평판 위기를 맞았다.
이 사건은 ‘혁신 편향(Innovation Bias)’과 ‘집단 동조(Groupthink)’가 빚은 참사였다. 개발팀과 영업팀은 ‘데이터로 채용 시장의 비효율을 줄인다’는 기술적 효용에만 매몰돼 이런 서비스가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도외시했다. 법무팀조차 “데이터가 익명화돼 있으니 법적으로 문제없다”며 기계적으로만 법리를 해석했다. 사태 직후 리크루트홀딩스는 거버넌스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는 개혁을 단행했다. 우선 리스크 관리 위원회를 이사회 직속 기구로 격상해 독립성을 보장했다. 내부 임원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를 위원회에 포함시켜 조직 내부의 집단 사고를 깨뜨리는 ‘레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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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을 수행하게 했다. 또한 모든 신규 서비스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프라이버시 및 데이터 윤리 영향 평가’ 통과를 의무화해 수익성이 좋아도 고객 신뢰를 해칠 수 있는 서비스의 출시를 사전에 모니터링했다. 윤리적 레드팀으로 하여금 혁신의 속도에 제동을 걸 수 있게 함으로써 돈이 되더라도 고객 신뢰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조직문화로 확산시켰다.
2. 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위협하다
쿠팡 사태에서 보듯 ‘보안 인력만 130명’ ‘연간 1000억 원 투자’ 같은 숫자나 ‘작년 보안 감사 무사고’ ‘ISMS-P 인증 획득’ 같은 과거의 성적표는 경영진에 잘못된 안도감을 주고 이상 징후를 ‘일시적 오류’로 치부하게 만든다.
1) 과신 편향(Overconfidence Bias):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성공 가도를 달리는 기업일수록 자신의 통제 능력을 과대평가해 경고 시그널을 무시할 위험이 커진다. 특히 ‘최고의 보안 장비와 인력을 갖췄다’는 믿음은 ‘사람’이라는 가장 약한 고리를 간과하게 만든다.
우버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팀을 보유했지만 2022년 10대 해커의 ‘MFA 피로 공격(MFA Fatigue)’에 무너졌다. 해커가 직원이 승인할 때까지 끊임없이 알림을 보내자 지친 직원이 무심코 승인 버튼을 누른 것이다. 기술적 우위만 믿고 과신하며 인간의 심리적 취약성을 간과한 결과였다.
다른 한편 2010년대 이후 넷플릭스(Netflix)는 자사의 데이터센터에서 아마존 클라우드(AWS)로 시스템을 대거 이전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클라우드 환경은 유연한 대신 언제 어디서 서버 인스턴스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존재했다. 보통의 기업이라면 ‘제발 장애가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조심스럽게 운영했겠지만 넷플릭스는 오히려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넷플릭스 엔지니어들은 고의로 시스템을 부수는 ‘카오스 몽키’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의 역할은 근무시간 중에 멀쩡히 돌아가는 실제 운영 서버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꺼트리는 것이다. 이는 엔지니어들에게 ‘실패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훈련해야 할 상수(Constant)’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각인시켰다. 서버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시스템을 설계하면서 개발자들은 특정 서버가 응답하지 않을 때 자동으로 다른 서버로 연결하거나 서비스를 축소해서라도 중단 없이 제공하는 로직을 기본으로 탑재했다. 넷플릭스의 실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카오스 몽키’를 넘어 ‘카오스 콩(Chaos Kong)’까지 개발했다. 몽키가 서버 한 대를 끄는 수준이라면 콩은 아마존의 한 가용 영역(Region)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 실제 재난 상황처럼 특정 지역 전체가 마비돼도 넷플릭스 서비스는 멈추지 않고 다른 영역으로 트래픽을 이동시켜 서비스를 지속한다. 이러한 ‘카오스 엔지니어링’은 시스템의 취약점을 선제적으로 발견하는 것을 넘어 조직 전체가 위기를 일상적인 업무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 결과 넷플릭스는 어떤 장애가 발생해도 고객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복구하는 압도적인 회복탄력성을 갖추게 됐다. 넷플릭스 사례는 성공에 취하는 ‘과신 편향’을 경계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실패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을 넘어 실제 운영 환경에 ‘통제된 실패’를 주입해 위기 대응 능력을 조직의 ‘근육 기억(Muscle Memory)’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준다.
2) 고정 편향 (Anchoring Bias):
“과거의 데이터에 갇히다”
판단의 기준점이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나 초기 데이터에 ‘고정’되면 변화된 위협 환경을 감지하지 못한다. 트위터의 전 보안 책임자 피터 자트코의 폭로에 따르면 2022년 당시 경영진은 보안 리스크보다 ‘일일 활성 사용자 수(mDAU)’ 성장이라는 지표에만 초점(Anchor)을 맞추고 있었다. 서버의 절반이 낡은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다는 보안팀의 경고는 이런 성장 지표에 가려져 무시됐다.
미국 최대 의료 결제 네트워크인 체인지 헬스케어(Change Healthcare)는 2024년 랜섬웨어 사태로 완전히 마비됐다. 이 사건의 핵심 취약점 중 하나는 MFA가 설정되지 않은 원격 접속 지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레거시 시스템의 보안 강화가 지연된 탓에 생기는 전형적인 사고였다. 모회사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UHG)은 최신 보안 정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수한 자회사(체인지 헬스케어)의 노후화된 시스템은 보안 업그레이드 대상에서 누락됐다.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던 안일함이 미국 의료 시스템 전체를 멈춰 세우는 대재앙을 불러왔다.
3. 조직 역학의 그늘: 경고를 침묵시키는 만장일치
쿠팡의 경우 보안 대시보드에 수많은 경고등이 켜졌지만 경영진과 관리자는 ‘시스템은 정상이다’라는 가설을 지지하는 데이터에만 집중했다. 아웃라이어(Outlier) 데이터는 무시됐고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믿음을 재확인하는 보고서만 상층부로 올라갔다. 치열한 플랫폼 경쟁 속에서 “서비스 론칭이 시급하다” “비즈니스 로직 변경이 우선이다”라는 의견이 더 우세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프라 담당자가 “보안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혁신의 방해꾼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만장일치의 환상 속에 보안 구멍은 방치됐다.
1)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리더”
경영진이 듣고 싶어 하는 긍정적인 보고만 올라가고 불편한 진실(경고)은 무시하는 조직문화는 리스크를 키운다. 2023년 테슬라 직원 2명이 7만5000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했을 때 일각에서는 이를 예견된 사고로 봤다. 머스크 CEO가 평소 ‘보안보다 속도와 효율이 우선’이라는 신념을 강조하며 보안 부서의 우려를 ‘혁신의 장애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경영진의 신념을 거스르는 보안 보고서가 상부에 올라가기 힘든 구조였다.
2017년 에퀴팩스(Equifax)에서 1억4000만 명의 신용 정보가 유출된 사건의 원인은 아파치 스트럿츠(Apache Struts)라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취약점 탓이었다. 보안팀은 “패치가 완료됐다”고 보고했고 경영진은 이를 재확인 없이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부 서버가 패치 대상 목록에서 누락돼 있었다. ‘우리 시스템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믿음을 깨고 싶지 않은 심리가 철저한 팩트 체크를 가로막았다. 2) 집단 동조 편향(Groupthink):
“침묵하는 다수와 방치된 위기”
강력한 카리스마나 성과주의 압박이 거세지면 내부의 건전한 비판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조직 내 화합을 깰까 두려워 혹은 리더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명백한 위험 신호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 크라우드스트라이크(CrowdStrike) 업데이트 오류로 전 세계 항공, 금융, 방송이 마비된 사태는 잘못된 보안 업데이트 파일 하나에서 시작됐다. 최고의 기술 기업 내부에서 업데이트 파일 검증 프로세스(QA)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설마 문제가 있겠어?’라는 안일한 집단 사고가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무력화시켰음을 시사한다. 누구도 “잠깐만요, 이 업데이트 정말 안전한가요?”라고 묻지 않은 결과는 참혹했다. 업데이트 파일 검증 단계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대규모 기술 조직에서도 검증 절차의 사소한 누락이 대규모 장애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4. 위기관리의 인지 부조화: 신뢰를 무너뜨리는 방어기제
보안 관련 이슈가 발생했을 때 적잖은 기업들은 사고 원인을 내부의 ‘IT 자산 관리 실패’나 ‘기본기 부재’로 인정하기보다 ‘지능화된 공격’이나 ‘국가 배후 해커’ 탓으로 돌리며 면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탓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선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1) 프레임 편향(Framing Bias):
“본질을 호도하는 말장난”
프레임 편향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유리한 기술적 용어나 프레임을 씌워 책임을 축소하려는 행태를 의미한다.
메타(Meta)는 5억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때 이를 ‘해킹(Hacking)’이 아니라 공개된 정보를 수집한 ‘스크래핑(Scraping)’이라고 규정하며 시스템 침입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기술적 용어를 통해 법적 책임을 줄이려는 프레이밍 전략이었으나 정보가 털린 사용자 입장에선 결과적으로 똑같은 피해였다. 이는 기업의 도덕적 신뢰를 낮추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2) 이기적 편향(Self-serving Bias):“내 탓은 없고 남 탓만 있다”이기적 편향은 내부 통제 실패를 외부 요인이나 소수의 일탈로 돌려 리더십의 책임을 면피하려는 심리다. 티켓마스터(Ticketmaster)는 2024년 해킹으로 5억6000만 명의 정보가 유출됐을 때 클라우드 공급업체인 ‘스노플레이크(Snowflake)’ 계정이 털린 탓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스노플레이크는 티켓마스터가 다중인증(MFA)을 설정하지 않은 탓이라고 반박했다. 사고 이후 티켓마스터와 스노플레이크 간에 책임 소재를 두고 상반된 설명이 제시됐고 이런 책임 공방은 고객 신뢰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편향을 극복하는 ‘리스크 인텔리전스’프레임워크: R.I.S.K.인지 편향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교육과 훈련으로도 없애기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불확실성에 맞서 회복탄력성을 형성하고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영자는 어떻게 이런 인지 편향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리더는 복잡한 보안 기술을 나열하는 대신 조직의 체질을 바꾸는 4가지 핵심 전략 ‘R.I.S.K.’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1. 복잡성 제거(Reduce complexity)복잡성을 걷어내고 단순화하라. 경영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안은 통제 불가능한 리스크다. 복잡성 편향과 혁신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안 아키텍처를 단순화하고 조직 내 모든 자산에 대한 ‘가시성(visibility)’을 확보해야 한다. 경영자가 모르는 ‘그림자 자산(Shadow IT)’은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한 사례가
구글의 ‘비욘드코프(BeyondCorp)’ 모델이다. 2009년 오로라 작전 해킹으로 큰 피해를 입은 구글은 복잡한 사내망 경계 보안(VPN, 방화벽)을 과감히 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대신 ‘모든 네트워크는 위험하다’는 전제하에 접속하는 모든 사용자와 기기의 신원(Identity)을 검증하는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모델을 구축했다. 복잡한 경계를 지우고 단순한 원칙으로 돌아감으로써 구글은 보안성은 높이고 관리 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2. 실패를 상상하는 역발상(Imagine failure)성공에 취하지 말고 실패를 먼저 상상하라. 과신 편향과 고정 편향을 깨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실패를 미리 겪어보는 것’이다. 프로젝트 시작 전 ‘이미 대형 사고가 터졌다’고 가정을 하고 그 원인을 역으로 추적하는 프리모템(Pre-mortem)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조직 내에 만연한 낙관론을 강제로 끄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앞서 언급한 넷플릭스의 카오스 엔지니어링이 대표적인 사례다.
3. 반론의 제도화(Systemize dissent)조직 내 반론을 제도화하라. 확증 편향과 집단 동조 편향은 만장일치라는 가면을 쓰고 조직을 병들게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주요 의사결정 회의에는 반드시 ‘반대 의견을 내는 역할(Red Team)’을 공식적으로 지정해야 한다. 합의된 의견에 균열을 내는 것이 조직의 안전을 지키는 길임을 명문화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이를 ‘워게임(War Game)’ 문화로 정착시켰다. MS는 자사 클라우드(Azure)를 뚫는 내부 공격팀(Red Team)을 상설 운영하며 방어팀뿐만 아니라 클라우드를 성공적으로 뚫어낸 공격팀에도 포상을 내린다. 조직 내에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존재를 시스템적으로 양성함으로써 MS는 집단 사고를 방지하고 보안 수준을 상향 평준화했다.4. 실패의 자산화(Knowledge from Failure)비난을 멈추고 실패를 자산화하라. 프레임 편향과 이기적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고를 대하는 리더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사고 후 “누가 그랬어?(Who)”라며 범인을 색출하는 순간 조직은 방어적으로 변하고 진실은 은폐된다. 대신 “어떤 프로세스가 문제였나?(What)”를 물어야 한다.
2017년 깃랩(GitLab)은 개발자 실수로 운영 DB(데이터베이스)가 삭제되자 이를 숨기는 대신 복구 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구글 독스를 통해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했다. 깃랩은 이 사태를 개발자 개인의 잘못이 아닌 복구 프로세스의 문제로 진단해 시스템을 개선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투명성은 오히려 개발자 커뮤니티의 폭발적인 신뢰를 얻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2026년은 ‘초(超)불확실성’ 시대가 될 것이다. 생성형 AI는 누군가에게는 방어를 돕는 도구가 되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교묘하고 파괴적인 공격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비대칭적 위협 속에서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최신 보안 솔루션의 개수나 예산의 규모가 아니다.
진정한 방어력은 첫째, 복잡성을 걷어내 본질을 직시하고(Reduce), 둘째, 성공에 취하지 않고 실패를 먼저 상상하며(Imagine), 셋째, 조직 내 건전한 반대 의견을 제도화하고(Systemize), 넷째, 실패를 비난하지 않고 학습의 기회로 삼는(Knowledge) 조직의 ‘리스크 인텔리전스(Risk Intelligence)’에서 나온다. 앞서 살펴본 실패 사례들의 공통점은 화려한 보안 기술의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뒤에 숨은 ‘인지 편향’이라는 부실한 속살을 방치했다는 점이다.
이제 경영자는 ‘보안은 CISO의 일’이라는 방관자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지 편향을 경계하고 리스크 관리를 기업의 핵심 경영 전략이자 조직문화로 격상시켜야 한다. 2026년의 승자는 가장 비싼 도구를 가진 기업이 아니라 가장 겸허한 태도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기본을 지키는 기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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